'사랑'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2.01.12 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6
  2. 2011.12.21 사랑 - 7 - (Just because it's Christmas!) 2
  3. 2011.11.28 사랑 - 5 - (그때가 아닌 지금) 4
  4. 2011.11.18 사랑 - 4 - (사랑의 성패를 가를 수 있나요) 2
  5. 2011.10.20 가을녁 사랑
  6. 2011.09.26 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4
  7. 2011.09.06 사랑 - 1 - (여는 글) 8
  8. 2011.06.13 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8
  9. 2010.08.18 반발짝 8
  10. 2010.08.18 6

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파주의 겨울은, 제법 차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딛었던건 6년전의 일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다 보면 그때보다는 이런저런 상점들도 많이 들어섰고, 못보던 공장들도 몇 군데 더 생겨났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무언가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에지간한 공장지대가 그렇듯 여기도 여전히 풍경은 '황량하다'라는 말이 아직은 근사하게 어울린다. 구내식당의 짠밥에 지쳐 가끔 나가서 점심이라도 먹으려고 차를 타고 조금만 나서면 펼쳐지는 논과 밭, 늦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별빛들이 또 따져보면 서울에서 그렇게 거리가 먼 것만은 아님에도 뭔가 굉장히 먼 시골동네에 와서 있는 듯한 느낌을 더해주는 것이다. 

한참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기대와 설렘의 술잔을 부딪쳐야 하는 연말 연시에 그것도 빵꾸난 사이트 오픈 지원을 온 데다가 셔틀버스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있고 그걸 놓치면 출근시간이 두시간을 육박해버리는 통에 이래저래 최근 많이 궁시렁대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파주는 그런 달갑지못한 상황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썩 반가워하기만 할 수 있는 동네는 아니다. 그건 바로 이곳에 처음 발을 딛었던 2006년의 가을에, 어느 노래가사처럼 겁이 날만큼 미쳤었던 사랑의 기억이 그대로 머물러있기 때문인게다. 언제나 뜨거운것은 그렇다. 두고 두고 그 열기를 떠올리면 후끈후끈 달아오르다가도, 이제는 멀어진 열기다 하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던가. 한 겨울 차가운 방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자면 그렇게나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더 힘이 든 것 처럼. 그래서 야근 중에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뭉클 떠올라오는 기억들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이렇게 또 자판을 도닥인다. 

그렇게나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던 것 같던 그 사랑. 그 열정과, 사랑의 지속에 대한 이야기. 

*

겪어본 사람은 알거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파주라는 이 동네에 와서 그 뜨겁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는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과 여기 파주에 왔던 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을적에 이 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은 그 기억만으로 가득한 장소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괴로운 마음에 보드카와 데킬라를 하룻밤에 혼자 모조리 마시고 다음날 출근해 좀비가 되어 구석에 짱박혀 찌질대던 공장 옥상,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가 뭐라건간에 일은 해야지 - 라고 하며 매달리던 워킹 머신이 앞뒤 안가리고 눈치고 나발이고 다 팽개치고 매일같이 미친듯이 칼퇴근해서 달려갔던 경의선 철도역이며 열차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길가에서 항상 하늘거리고 있던 들꽃들이며 등등.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이 들때까지 전신의 신경이 다 그 사람만을 향해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함께 있을때는 단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 심장이 터져나갈듯 뛰어대서 스스로의 귓가에 북을 치는듯한 심장소리가 들려와 그 소리가 상대에게 전해질까 두렵기까지 한 그런 기분. 모든 판단과 모든 행동의 기준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상대의 감정선을 따라 똑같이 감정선이 일렁이고, 작은 말,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심한 감정의 소모를 경험하고, 끝없는 애착으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에 시달리고,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달콤함과 사지가 뜯겨나가는듯한 괴로움이 순간순간 교차하는. 무슨 약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만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심까지 되는 한계점까지의 감정의 고공비행. 그런 상태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 모든것이 과거가 된 어느 날에는, 다시 하라 그러면 도저히 못하겠네 -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 

어찌되었거나 나야 뭐 살아가며 한번쯤은 그런 것도 경험해 보는게 인생이 더 재미있어지는것 아니겠냐 - 는 입장이고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그 행복감만큼 느껴지는 괴로움을 호소할때 그저 '즐겨요 그 기분. 낄낄낄' 이라고, 어깨에 힘 빼고 그저 즐겨보라고 말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당사자에게 있어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건 분명히 안다. 힘이 빠져야 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게 마음대로 되나. 겨우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차분히 뭔가 생각이라도 좀 해보려 한다 해도 언제 그랬냐는듯 또 정말 아주 사소한 일 하나만으로 꿀렁꿀렁 밀어닥치는 감정의 파도가 머리를 가득 메우는데 그게 쉽겠냐말이다. 그러니 뭐, 즐겨요 그 기분 - 이라고 할 수 밖에. 스스로는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그렇게 해야 하는걸 모르겠나. 그게 안되니까 못하는 거지. 근데 굳이 옆에서 잔소리해봤자 그게 먹히겠냐 - 그런 생각이랄까. 

하지만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적어도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이렇다. 그런 어떤 극단적인 도취상태 - 는 말 그대로 사랑의 어떤 일면이고, 강도의 차이야 있어도 사랑하고, 사랑해서 연애하고, 뭐 그런 관계의 시작단계에서는 대부분 빠지지 않고, 선물처럼 다가오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게 사랑의 '지속'에는 그렇게 썩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거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것의 최대 딜레마는 밥을 먹여줄 수가 없다는거다. 사랑한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그런거다. 근데 이게 그런 고양감속에서는 마치 밥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고(정확히 말하면 밥이고 뭐고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고), 덕분에 이래저래 현실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써의 '생활'에는 어떤 삐걱대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거다. 그럼 뭐 어떻게 해야되. 일단 삶에 무리수가 생기면 그래도 좀 머리속에서 열기가 빠지게 마련이지. 근데 그게, 운 없게도 정말 많은 경우에 그러한데. 

타이밍이 달라. 그렇게나 함께 날아올랐던 두 사람인데, 한명은 연료가 바닥이라 비상 착륙이라도 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한명은 무슨 대기권을 뚫을 기세야. 이러면 이거 심각한 상황이 오는게다. 그러다보면 뭐 그런 얘기 나오게 마련이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흐엉엉엉. 아니 그게 사랑이 변했다기보다, 사랑도 쉼표가 필요하다, 충전이 필요하다 뭐 그런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건데 그게 또 쉽나. 아직 머리에서 열기가 덜 빠져나간 사람 입장에선 막 두렵고 공포스럽기만 한거지. 그러다보면 또 서로 무리수 반복. 그리고 정말 그런 부분들이 어떻게 조율되거나 수습되지 않으면, 정말 운 없는 경우라면 그저 그렇게, 사랑했지만 서로 등을 돌려야 하고 그런 상황도 오게 되는거지. 

*

이게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 그런가.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막 뽜이아 하고 있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 아무래도 좀 걱정이 앞선다. 아니 뭐 에지간히 좋고 샤방샤방하고 그런건 여전히 그냥 보면 좋고. 으헣허헣 청춘이로세 하며 멋진 비행 되길 - 이라고 빌어주고 마는건데 이게 좀 뭐랄까, 어 어 어, 그... 음... 어... 캄 다운 캄 다운 - 하며 이마에 얼음주머니라도 얹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보이면 그게 좀 걱정된다는 거다. 무슨 관제탑의 심정으로 레드 얼럿이라도 날려주고 싶은 기분. 고도 제한입니다 고도 제한입니다(웃음). 지금 파트너는 추락 직전이에요! 고도를 낮춰요! 착륙 준비하세요! 이런 거. 나중에 애 낳아서 첫 연애할때는 진짜 관제탑처럼 저러고 있을 수도 있어(푸풉;) 

정리하자면 이런거다. 사랑? 좋지. 좋은거지.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맺는 '관계'는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거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사랑만큼 쉬운게 어디 있냐. 당신이 좋고 좋고 좋고 좋아서 좋아 죽겠네요 - 이게 뭐 어려워. 근데 너와 내가 어떤 관계로 그런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며 얼마나 오래 서로 원하는 간격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공존할 수 있는가는 좀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서로의 삶, 서로의 인생, 서로가 맺고 있는 다른 관계들, 서로의 미래,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고민을 해야 하는데 뇌세포가 다 탔어?!?!? 이런 상황이면 좀 낭패다 이거지. 사랑에 빠졌다? 감정은 즐기되, 관계의 형성과 지속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는 것. 이게 요지란 거다. 

뭐 고대 벽화에도 요즘 것들은(...)이라는 낙서가 되어있다고 우스개소릴 하지만 모르겠다. 요즘 젊은 아가들을 보면 많이 영리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는 좀 많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한 부분이 있으니 오히려 그렇게 인생은 봐닝 럽!!!!!!!! 을 외치며 활활 불타오르기만 하는 경우가 더 드물어졌을지도. 그래도 청춘엔 불태웠어 새하얗게를 외쳐보는것도 좋은건데(웃음). 나이들어 타면 정말 재가 되요. 재생이 안될 수도 있어?!?! 어찌되었거나 지금 타고 있는 사람은 조금 열기를 가라앉히고 서로 수신호를 날리면서 어디쯤 날고 있는지를 잘 확인해가는 안정적 비행 하시길 바라고, 또 너무 소심하게 지상 3미터 이상 날면 추락할때 사지가 분쇄되지 않을까 하시는 분들은 좀 시원스럽게 날아보시길 바라고, 아직 활주로에 대기하고 계신 분들은 올해 반드시 함께 멋진 비행을 할 짝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사랑타령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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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7 - (Just because it's Christmas!)


드디어, 눈이 내렸다. 내가 보는 올해의 첫눈이다. 작년은 겨울의 피크를 부산에서 보내느라 눈이란건 제대로 뭐 구경도 못하고 지나간 것 같은데 그래도 올해 겨울에 몇 번쯤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꽤나 소심하게 내린 눈이라, 그것도 출근길에만 잠깐 보고 곧장 사무실에 들어와야 했던지라 여전히 첫눈으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눈은 눈 아닌가. 그래 그러니 뭐, 눈오는 날엔 사랑타령이 제맛이지. 마침 크리스마스도 코앞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에 얽힌 기억들이나 더듬어보며 사랑타령을 시작해보련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

30대 초반까지는 매년 꼭, 한번씩은 찾아보는 영화들이 있었다. 첫번째가 멜로영화의 탑으로 꼽는 If only 요, 두번째가 이터널 썬샤인이요, 세번째가 러브 어페어다. 정말로 한해에 한번은 일부러라도, 혼자 쉬는 날 틀어놓고 주책맞게 훌쩍거려가며 꼬박꼬박 챙겨보곤 하였는데 이제 그 정도까진 아니고 어디서 우연히 연상작용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들을 만나면 한번씩 찾아보고, OST를 들어보고는 하는 정도. 그리고 그렇게 일부러 찾아서, 챙겨서 보지 않지만 거의 매년에 한번씩은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러브 액츄얼리.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용 영화로 최고로 꼽는.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하면 나홀로 집에를 떠올리는 분들이 아마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겠지만... 케빈은 좀 그냥 냅둬라. 애가 큰지가 언젠데. 아무튼 처음 본 이후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시즌 쯤이 되면 어딘가의 방송에서 꼭 한번씩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고, 그게 또 봐도 봐도 재미있기에, 또 한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꼭 끝까지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탓에 매년 한번씩은 꼬박꼬박 보게 된다는거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요 영화의 매력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들의 사랑에 그때그때 다른 커플들에게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도 역시 메인 커플이라고 해야하나 - 무수한 패러디를 남기고 골백번도 넘게 어디 무슨 하이라이트 같은거에 꼬박꼬박 등장한 커플, 그리고 그 사랑, 그리고 그 명장면만큼은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게다. 그, 왜, 사실 따져보면 되게 불쌍하긴 한데 불쌍해서 더 극적이고 뭔가 간지나는 스케치북 프로포즈의 주인공들. 친구랑 결혼한 여자한테 찾아가서 스케치북 한장씩 넘겨가며 정말 담백하게, 덤덤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 장면. 캬 - 그야말로 명장면이다. 아마 그거 따라 프로포즈해서 혹해 결혼한 사람들도 많을거야. 꼬꼬마 연인들 100일 200일 이런거 챙길때도 많이 사용되었을 게고. 역시 좋은 영환데?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장면에서 내가 제일 감동했던 부분은 바로 스케치북의 그 페이지였다. 크리스마스엔 거짓말을 하면 안되잖아요 - 라는 부분. 스스로의 입장도, 상대의 입장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뭐 지금에 와서 당신과 뭐 어쩌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이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미친 짓이란것도 알고 있다. 또는 내가 이 짓을 함으로써 당신과의 관계가 굉장히 서먹스러워지거나, 아 뭔가 친구 보기 민망해지거나 할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당신의 어떤 리액션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그냥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갈건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좋은 핑계를 통해. 그 모든 마음들이 고스란히 그 페이지 안에 담겨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캬 이거 진짜 대박이구나. 간디 작살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러니까 뭐, 무수한 이들이 크리스마스는 예수를 만드는 날이 아니라 예수가 태어난 날이여! 를 외치며 닝기리 도심의 러브호텔들만 특수를 누리는 요즘의 크리스마스를 목소리 높여 비난하고는 하지만 그냥 내 생각은 그런거다. 저렇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 크리스마스란 좋은 핑계가 존재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게 아니냐 하는. 아니 그러니까 뭐, 요지는 인생 너무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잖수, 그런 얘기란거지.

*

조금 더 썰을 붙여보자면.

사랑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를 겪는 이들을 대할적마다 날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정말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운명의 빨간실같은게 있어서 딱 짝이 정해지고, 그 짝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그 짝과 함께하게 되기 때문에 사랑함으로써 아픔도 슬픔도 겪지 않는 그런 세상이면 어떨까 하는. 뭐 망상일 뿐이다. 어찌되었거나 살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에서는 참 많은 그런저런 사랑들이 남겨지게 마련이다. 사랑했었으나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사랑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면서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흐엌엌 추임새나 넣으며 괴로워하는 사랑도 있고, 잦은 다툼과 오해들이 조금씩 조금씩 누적되어가며 그 빛이 옅어져가고 있는 그런 사랑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거나 해서 말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사람도 있고, 선의의 거짓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있지만 어떤 부분을 감추고 숨기는 통에 영 찝찝하고 괴로운 사랑도 있고, 내가 저 사람이 정말 좋긴 한데 행여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저 좋은 사람을 그냥 잃게될까봐 겁나서 엄두도 못내는 경우도 있고... 사랑한다고 할말 못할말 다 하는거 아니잖은가. 얼마나 무수한 말, 말, 말들이 사랑의 과정에서 그대로 묻혀가는가.

물론 어떤 말들은 그것이 그대로 스스로의 기억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게 좋은 경우도 많다. 크리스마스라고 삘받아서 술마시고 멀쩡히 새 사람 만나 잘 살고 있는 전 애인 집에 찾아가 문 두드리며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엉엉 하고 난리치면 그건 그것대로 식어빠진 설렁탕 국물맛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이 사회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들을 바라본 경험에 따르면 적어도 그렇다. 굳이 감출, 굳이 참을, 굳이 못할 이야기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꿀꺽꿀꺽 삼켜낸다는 얘기다. 사랑한다는 표현, 좋아한다는 표현,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표현... 그 많은 표현들을 너무 많이 아낀다는 얘기다.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지극히 쫀쫀하고 인색하다. 그리고 용기들도 부족하다. 큰일 나는 얘기도 아닌데, 말하고 나면 굉장히 시원할텐데, 그럴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건 어떨까. 한때 꽤나 많은 연애상담들을 받고 있을 적에, 내가 가장 많이 반복했던 이야기는 바로 이 얘기였다. '지금 내게 하고 있는 이야기를, 당신의 연인에게 가서 차분히 들려주라고. 화내지 말고, 차분히, 진심을 담아서' 그것들이 어떤 이야기건간에.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예를 들어 고백을 망설이고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해줄 수 밖에 없는거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믿으라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진심을 담아 건넨 얘기에 무례하게, 가볍게, 진지하지 못하게, 혹은 반대로 정말 무겁게, 공포에 질린(;;), 공황에 빠진(;;) 그런 반응을 보일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고. 만약 정말 그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거라고. 그렇지 않은가?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거짓없이. 왜냐면, 크리스마스니까! 라고, 해주고 싶은거지.

*

그게 여보 미안해 고마워 - 건, 아빠 죄송해요 사랑해요 - 건, 그냥 당신이 너무너무 좋아요 - 건,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용서해주세요 - 건간에. 무엇이건 좋지 않을까. 일년에 한번, 솔직해져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좋겠지. 연말이고, 한해를 저물어가는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런 말들이 많이 가슴속에 쌓여 있을테니까.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정직하게, 진심을 담아 - 를 강조해대는 이유는. 어쩌면.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실 크리스마스때 꽤 곤혹스러운 일들도 많이 겪었더랬다. 시트콤같은 기억들만 한가득 남겨진 크리스마스도 많았더랬지. 헌데 그게 다 소시적 추억의 한페이지요 청춘의 흔적이요 뭐 대부분은 그런것으로 남겨져 있는데 꽤나 후회스러웠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있다. 간단히만 얘기하면, 그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에 솔직하지 못했더랬고, 덕분에 꽤나 쓰린 기억들이 남겨졌다. 그게 정말 그것 때문은 아니란걸 잘 알면서도, 내게 있어 원망할건 크리스마스에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밖에 없었기에, 꽤나 오랜기간동안 그것이 후회로 남겨졌던 것이다. 그때 솔직했더라면, 용기를 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조금은 많은것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물론 후회는 언제 해봐도 때가 늦었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나쁠 것 없지 않은가. 그저 마음일 뿐인데. 아니 뭐 어떻게 하자는건 아니고, 그냥 당신이 굉장히 좋아요 - 그 한마디라도. 크리스마스엔, 거짓말을 하면 안되니까 말이야. 그렇게, 조금은 조용하고 담백하지만, 부끄럽고 조심스럽지만, 그 마음들이 담은 열기는 도심을 활활 불태울 러브호텔들의 열기따위에 밀리지 않는 그런 뜨끈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사랑타령은 여기까지. 눈도 멎었고, 햇살이 비치는고나. 어헣허헣.

사랑 - 5 - (그때가 아닌 지금)


매번 본방사수까진 아니어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은 거의 손에 꼽는다. 그리고 올해 그렇게 챙겨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나가수다. 사실 초반보다 많이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한 자리들을 차지하고 매주 그들의 색깔로 기억속에만 머무르던 노래들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법 하다. 그리고 그 가수들중의 하나가 김경호씨다. 요즘은 락하는 언니 컨셉으로 화제가 된다고 하지만 벌써 대학교시절부터 한참을 좋아해왔던 가수다. 한때는 노래방에 가면 반드시 부르는 애창곡에 꼭 들어가 있었더랬지. 금지된 사랑이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같은 노래들 말이다.

헌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진 노래 말고도, 김경호씨 노래중에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전혀 히트곡은 아니었으나 지금도 가사 안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그만치 혼자 많이 듣고, 흥얼거리고, 떠올렸었던 노래 말이다. 그래서, 그 노래의 한 소절을 소개해보며 오늘의 사랑타령을 시작해본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가끔 이런 생각 했죠. 만일 우리가 그때가 아닌 지금 서로를 만났다면~'

*

모든 사랑이 시작도 끝도 깔끔하게, 시원하게, 그냥 그렇게 쿨하게 끝이 나고 그렇게 남겨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사랑이 그렇게 깔끔하고, 시원하고, 쿨했던 기억만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복된 삶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어떤 사랑들은 오래오래 기억속에 머무르며 어느 날에건 슬몃슬몃 치밀어 올라 마음을 괴롭게 하곤 한다. 또 당연스럽게도 그렇게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랑에 대한 기억들조차 좋지 못한 기억들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겠지마는 말이다.

헌데 사람 마음이란것이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 그게 또 그런거다. 스스로 어떤 사랑을 할적에 고되고 힘들기만 했었고,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더라도 이가 바득바득 다시 갈려올것같이 슬프고 화가 치미는 어떤 사랑을 했었더라면 그게 또 시간이 흘러가매 그렇게 어느정도는 누그러지기도, 스러지기도, 적당히 마모되고 적당히 미화되기도 하는 법이다. 다시 떠올릴바에야 내 머리통을 스스로 부수고 말겠다 하는 정도의 분노만이 가득했던 어떤 기억조차 시간 앞에서는 에휴, 그래 뭐 그래도 그런 건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더랬지 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 화가 나고 그 순간만큼 슬프고 괴롭지만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같은것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런 이유로 외려 우리를, 가장 보통의 존재들을 오랫동안 괴롭게 하는것은 내가 다 퍼주고 내가 많이 손해보았다 싶은 사랑이 아니라 내가 많이 받았고 그만치 다 주지 못했던 사랑이다. 내가 모지라고 부족해서, 뭘 제대로 몰라서, 혹은 너무 어려서 내가 받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온전히 깨치지 못하고 함부로 한 기억들, 손 안에 한가득 쥐고서도 욕심에 욕심을 부리다 놓쳐버린 어떤것들, 의도하진 않았으나 나의 모남이, 나의 부족함이 그래도 참으로 나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고마운 이에게 심하다싶으리만치 생채기를 내고, 그렇게 생채기를 내고서도 미안한줄도 모르고 시건방을 떨었던 기억들.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며 떠올릴적에 오랫동안 부끄럽고 오랫동안 마음의 짐처럼 남는 것은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란 얘기다. 또 물론, 개인적인 차이야 있겠지마는.

그리고 저 위의 노래는 그런 날들에 문득문득 입에서 가만히 흥얼거리며 어쩐지 쓰디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노래인 것이다. 문득, 받은것보다 너무 모자라게 주었다 싶어 참으로 떠올려볼수록 미안하고 미안한 어떤 이의 얼굴이 떠올라서 괴로운 마음이 들 적에. 차라리 지금이라면, 그래도 그때보다 조금은 자라고, 조금은 더 많이 그때 그 사람의 마음들을 이해할 수도 있고, 조금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조금은 더 둥글둥글해진 지금이라면. 차라리 지금 그대들을 만났다면 그렇게나 미안함만 가득 남기지는 않았을텐데. 그런 마음이 일어날 적에 말이다. 또 한대목 소개해보자면 저 노래의 2절 시작부분은 이렇다. 정말로 그런 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가사기에, 더 잊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내 곁에 있을 때 보다 그대의 삶이 만일 불행하다면 어떻하나요 나의 죄를~'

*

물론 나에게도, 그런 사랑의 기억이 있다. 너무 어려서, 스스로의 삶에 너무 치여서, 스스로 상처입고 상처입은 끝에 날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절이라서, 뭐 기타 등등의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내세워봐도 그게 변명이 될 수 없음은 매번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뭐 혼자 실수하고, 혼자 삽질하고 망가지고 무너지고 쑈하고 죽쑤고 했으면 그냥 이불속에서 하이킥이나 몇번 하고 말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런 순간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나 오래토록 마음의 채무를 가득 끌어안게 된 기억들, 그리고 그 사람들. 물론 비단 남녀간의 사랑을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단 한번 그런 사랑의 기억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태어나서 한번쯤은 누구나 느끼게 될 감정일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런 대상이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감히 그 은혜에 비해 스스로 갚은것을 어떻게 내세울 수도 없는, 언젠가의 시절에는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는, 부모라는 커다란 존재들이.

사실 우리는 또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머리속에서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괴로워해봐도, 부질없이 혼자 들리지도 않을 노래들을 중얼거리며 궁상을 떨어봐도 이미 지난 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것을. 무정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것을. 청춘남녀의 경우엔 그러다가 뭐 정말 믿지 못할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되고 다시 인연을 이어나가며 그 미안함들을 갚아나갈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한해 두해 먹어가면서 그런 가능성은 점점 기적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오히려 그런 마음들에 부질없이 후회하고 후회하며 시간을 허비하는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지금 그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지 못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사실은, 저 흘러간 노래를 끄집어내놓고 괜스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어떤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자극하는 이유는 그냥 이런 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간을 도로 돌려 그때가 아닌 지금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 미안함들은 이렇게 가끔 끄집어내보며 스스로를 다듬어가는 정도로 멈추는 것이 족하다는 얘기다. 노래 한곡에 얼추 4분. 4분의 시간동안 저 절절한 가사들을 곱씹어가며,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만치 더 행복하길,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삶들에 내 바램만큼의 행복들이 더 얹어지길 빌어봅니다 하는 마음으로 넘기고 다시 앞으로는, 또 어느날 또 이 노래를 떠올렸을적에 마음을 더 짓누르게될 누군가들은 만들지 않겠다 하는 마음을 다지는 정도로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인연들을 한번 더 돌아보고, 더 꼼꼼히 챙겨보고 하는 것으로.

그게 그러니까, 그렇지 않던가. 어떤 날 정말로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사랑을 하며 눈물 콧물 질질 흘릴적에는, 내가 과거에 아프게 했던 어떤 이들을 떠올리며 아 내가 그때 참으로 사람을 아프게 하였구나, 그 사람도 지금 나처럼 이렇게나 아팠겠구나, 내가 그때 그리 못되게 굴어 이제 벌을 받는구나, 이런 생각들 한번쯤은 해보고 살게 되지 않던가. 그렇지 않던가. 아파본 놈만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데 그래도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것은 비슷한 아픔을 경험해보는 것.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던가. 허나, 정작 그 마음들을 돌려줄 이들은 이미 과거속에 머무는데 지금 내 마음 헤집고 있는 그 사람에게 그 미안함에 더 공을 들인다 한들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

사랑만큼 타이밍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이란 것의 절반을 담당하는 하늘의 몫이고 이미 어긋나버린 타이밍 앞에서 아무리 후회하고 괴로워해본들 한번 어긋난 타이밍은 도로 제자리로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그렇게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그 시간들로 인해 스스로를 더 키워낼, 스스로에게 또 다른 어떤 가능성이 될 타이밍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일지라도.

잊으라는 것도 아니다, 괴로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일에 연연하지 말라는 진부한 충고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미안해하고 충분히 괴로워하되,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걸어가야함을 잊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는것이야말로, 어느 시절에 나란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주었던 누군가에 대한 생에서의 마지막 예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흘러간 노래의 마지막 대목을 남겨보며 오늘의 사랑타령을 매듭짓는다. 사랑. 아아, 사랑.

'용서해요 날, 그것밖에는 안됐었던 나를. 다시 산다면 원하셨던 그대 삶 내가 돌려주고 싶어요~'

사랑 - 4 - (사랑의 성패를 가를 수 있나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듯한, 아니 알려야 할 듯한 빗방울이 조심스레 떨어진다. 창밖은 뿌-옇게 흐려있는데 사무실 유리창에 하나 둘씩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어쩐지 애처롭다. 어쩐지 누군가의 눈가에 매달렸던 눈물방울같은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야기를 이어본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

사랑에 성공이란게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하면 어떤것이 그 사랑의 성공을 증거해주는 것일까? 간단한 예로 결혼. 결혼이란것이 어떤 사랑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가름해주는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아이를 갖는것이 더 분명하고 명확한 어떤 성패의 기준점인가?

대충 이렇게 명확한 질문을 던져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도리도리할 것이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나요 -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떤 순간 순간들에 어쩐지 막연하기만한 어떤 기준으로 인해 스스로의 사랑이 [실패]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달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고민에 빠진다. 사랑이 저물어간다는 기분에 사로잡힐때, 원치 않는 이별을 당했을때, 스스로 꿈꾸던 사랑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과의 갭이 어마무지하게 큰 것처럼 다가올때, 사람들은 그렇게 괴로워하며 외친다. 아 또 실패인가. 사랑따위 이제 정말 넌덜머리난다. 사랑에 실패하였으니 인생에서라도 성공해보자. 뭐 이런식의 몇해만 지나면 사실은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모르는 어떤 문구들을 어딘가의 노트에 끄적여가며 눈물로 밤을 지샌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공이나 실패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단어다. 그걸 알면서도 말이다. 

안그래요, 너만 그래요 - 라고 하면 뭐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아 그런가요 근데 난 그렇더라고 하겠지. 분명히 나는 지난 시간 속에서 그러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살아온 인생의 1/4정도를 연인이란 이름으로 함께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것은 슬픔과 미련, 혹은 외로움, 그런 것들보다 바로 저 [실패]라는 생각으로 인한 좌절감이었다(그렇다고 다른 것들이 힘들게 하지 않았다는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사랑에 실패했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사랑만은 자신 있었는데.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이지만 처음의 그 마음들 변치 않고 이어가는 것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들 말이다. 물론 그것이 [실패]로 생각될만한 외적인 어떤 불운들이 있다고는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어 하며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기억이다. 왜 그랬을까? 

시간이 꽤나 흐르고 나서 저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을때 내가 찾아낸 해답은 그렇다. 그게 소시적부터 쓸데없이 사랑이란놈은 뭘까란 어이없는 질문들을 대롱대롱 달고 살아가던 인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 역시 [나의 사랑]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내 사랑은 이런 모습이겠지, 나는 이렇게 사랑해야지 -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굉장히 뿌리깊게 가지고 있었기에 내 사랑이 그런 모습이 아니게 되었을때 그것이 [실패]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너무 큰 기대, 스스로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 그리고 지나친 환상. 그것들이 나를 실패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무언가에게 패배한듯한. 전혀 무언가를 이기고 무언가에게 지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랑이라는 녀석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패잔병의 기분에까지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참말, 돌아보면 놀라우리만치의 미숙한 생각 덕분으로. 

*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이쯤에서 남 탓을 한번 해보자. 어린 시절의 바이블과 같은 동화책들에는 누구나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거다. 왕자와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는 사랑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하기사 왕자와 공주님은 3남 1녀를 낳고 살았지만 왕자님의 바람으로 공주님이 이혼소송을 내어 거액의 위자료를 물게된 왕자님은 그지꼴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매듭을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떤 굉장히 상징적인 결과물을 딱 내놓고, 그 이후에 대해서까진 얘기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게지. 어디 동화만 그런가. 위기를 극복한 남녀 주인공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나는 영화는 좀 많아. 뭐 어찌되었거나 그러저러요러한 이유로 인해 꼭 결혼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사랑의 성패에 대한 어떤 보편 타당한 선입견들을 가지게 된다는 얘기다. 요러저러해서 요러저러한 모습이 똭 나오면 사랑을 이룬거고, 성공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거다. 요런 더듬어보면 참 괴상한 이분법적 생각을 하게 되는게지. 

요약하자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는 뭔가 보편 타당한 어떤 [골]이 있는것이 아니라는것. [행복한 가정]이란건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서 얻고 싶은 중요한 가치로 꼽고 있지만 그 가치를 얻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성공하고 실패하고 하는게 아니란 얘기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되는거고. 왜냐고? 어떤 분명한 [골]을 가지고 거기에 도달하는 순간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것이 사랑이라면 그렇게나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외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이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니까. 물론, 그런 정도로 사랑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사람들 역시 있고 그들의 관점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 사랑? 종족유지본능으로 진화한 생물체의 유통기한있는 호르몬작용에 대해서 말하는가? 라고. 음, 어, 뭐, 그럼 무슨 할얘기가 있겠냐. 끽해야 우성인자를 보유한 후세를 남기소서 하고 덕담이나 하고 말겠지. 

아니 그리고 뭐, 따져보면 또 그렇다. 사랑을 누가 우아아앙 내일 오후 3:45분부터 사랑에 빠져주겠다? 이러면서 하나. 어느날 우연히 - 빠져들게된 사랑에 무슨 실천과제라는게 따라붙어있어서 사랑이 끝나면 아프고 괴로운것도 서러운데 달갑지않은 [실패]라는 딱지까지 붙이게 된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렇지 않나?

*

그러니까, 되는대로 떠들어댄 이 글은 행여라도 과거의 나와 같은, 으엌엌엌 난 사랑의 실패자다 나같은건 죽어야해 하고 있을법한 이들이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에. 

언젠가 과거의 블로그에 사랑을 [이룬다]라는 말에 대해 비슷한 맥락으로 얘기한적이 있다. 이뤄진 사랑은 뭐고 이뤄지지 않은 사랑은 뭐냐고. 사랑해서 연애하고, 연애하다가 결혼하고 이래야 그게 이뤄지는 사랑이고 나머진 그게 아닌거냐고. 사랑에 빠진 대상과 명명백백한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그게 이뤄지는거냐고. 그렇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런 말들로 그렇지 못한 사랑들에 달갑지 않은 무언가들을 달아주는 표현들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랑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이런저런 모습들로 변화해가고, 사람마다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어나가고 하는가가 다 다른데 뭔가 완결시키는 것처럼 아 내가 사랑을 이뤘다! 이러는 것도 우스운거다. 그런데, 굳이, 에이 그래도 그런거 없으면 좀 뭐랄까, 너무 극적이지도 않고 너무 뭐 노력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없고, 좀 너무 밋밋하고 뭐가 빠진것 같고. 그 좀 그렇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뭐랄까요. 60억의 인구중에 어떤 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그 사람을 위해 내 어떤 부분들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고,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바빠지고, 내 곁의 가장 가까운곳에 그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고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순간, 그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순간, 그 순간 자체가 오히려 가장 극적인 사랑의 [성공]이 아닐까요. 사랑의 [완결]이란 것 보다는 사랑의 [시작]이라는 그 순간이. 물론, 세상의 모든일이 그렇지만 무언가의 성공 그 이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오히려 성공보다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퀫퀫퀫퀫 - 이라고 말해주며 이야기를 마치겠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는 밤인데 달큰-한 사랑하시길. 

가을녁 사랑


가을녁 사랑일랑 하지를 마오
고작 한철 벌겋게 얼굴 붉히다
이내 바람결에 쓸려 떨어져
끝내 누런 먼지로 밟혀나갈
부질없는 정일랑 주지를 마오
아즉, 겨울도 되기 전이외다
그대 견뎌야할 고독은 차고도 깊소
둘러보오, 그대보다 어린 나무들도
홀로 북풍을 이겨낼 준비를 하오
다시 봄의 싹을 얻기 위해선
한껏 아름답게 물드는것보다
단단한 뿌리내림이 중요한 법이외다
이른 봄바람에도 휘청거릴
뿌리 약한 연일랑 맺지를 마오
얼기설기 엉성한 얽어짐들이
서로를 긁어내고 생채기 입히다
끝내 끊어져버릴 연이라면
애초에 너른 들에 홀로 서시오

2011.10.20 - 가을녁 사랑

외로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맺는 관계라는 것을 생각해볼때면, 스스로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이란 것은 반대로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나쁜 변수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외로움은 분별력을 흐리고, 조급하게 만들고, 그럼으로 인해 쉽게 오판을 불러오게 된다.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외로움은 긍정적으로 바라볼때는 끈질기게 사람을 향하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려고 할 때는 항상 그 관계를 지금 원하는 이유가 '외로움' 때문인지는 반드시 한발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는 거다. 언제나,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거다. 관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이유로, 사실 가을이란 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에 썩 좋은 계절이 아니다.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감상적으로 변하며, 다가올 추운 날들에 대한 걱정으로 조급해지기 십상이다. 물론 우리는 적당히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만한 월동준비를 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지금 시기에 구매한 대단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난로를 내년 봄이 되면 창고에 쳐넣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그리고, 너무다 당연히도 사랑은 필요할때 창고에 쳐넣어둘 수 없다.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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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가끔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만약 언젠가 결혼이란 것을 하고, 요행히 그럭저럭 어여쁜 딸네미 하나를 얻어 그럭저럭 키워내고, 어느새 그 아이가 말만한 처자가 되어 햐 어느새 이만치 자랐구나 하는 시점에 그 아이가 아빠 제가 사랑하는 남자에요 - 라고 하며 왠 놈팽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상상 말이다. 그런거 다 한번쯤 해보는거 아닌가? 나만 그런가?(웃음) 그것도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성향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아이의 팔짱을 끼고 등장한 사내녀석이 징 박힌 가죽자켓에 스킨헤드에 혀찌 귀찌를 뚫은 띠동갑 무직(...) 사내일때라거나 하는것. 물론, 언제나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금새 쓸데없는 생각이 종료되는 효과는 있다. 아 제길.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겠어. 

물론, 아마도 그런 상황을 내가 겪을 가능성이란건 극히 희박한 확률일 거다. 또, 직접 그 상황이 되어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내가 만에 하나라도 정작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미리 넘겨짚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철이 덜 들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마음,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솔직히 양심에 발을 얹고 지금 네 선택을 응원해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너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라고. 하지만 만약에라도 네가 어느 순간에 스스로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땐 괜한 자존심이나 오기들로 그 그릇된 선택이 네 삶을 망치게 두지 말고 언제라도 다른 선택을 하라고. 그리고 어떤 사랑을 하게 되건간에 그 안에서 네 삶을 더 나은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노력하라고. 캬 말은 잘한다. 정작 그 상황이 되면 몽둥이를 휘두다가 신문 1면에 날지도 모르겠다만. 

그것은 물론 네 삶은 네것, 내 삶은 내것이라는 어떤 기본적인 마인드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게 그렇게 싸늘하고 이기적인 이유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학습효과고, 지금껏 경험을 통해 도출한 어떤 결론들이 꽤 스스로 한순간에 풀어내기 힘든 어떤 딜레마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것은 방치와 존중의 미묘한 경계다.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어떤, 내 관점에서 보면 좋지 못한 선택을 할때 그것을 그래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존중할때, 이게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얼마든지 방치일 수도 있는거다. 심지어 그 선택을 한 그 사람마저도 후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거다. '왜 그때 안말렸냐' 이런 멘트에 담겨있는 거 말이다. 이건 물론 비단 사랑이라는 것을 떠나서도 충분히 골때리는 고민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엔 이런저런 연애에 관련된 것들이 가장 그런것을 많이 고민하게 했던 순간이니 이렇게 써 보는 수 밖에. 

*

얼마전에 트윗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 같은데 그건 바로 '꼰대의 딜레마'다. 이쯤해서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리라 믿고 절대 답이 안나오는 문제 하나를 또 이 재미없는 글을 읽고 계실 어떤 분들께 던져본다. 아, 그 전에 우선 기본적인 생각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러니 대략 청소년기 이후의 삶에서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이라는 것은 결국 고통, 슬픔, 괴로움 등의 어떤 '고난'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행복한, 기쁜, 즐거운 어떤것들이 아예 도움이 안된다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성장의 측면만을 바라보자면 그런 고난과 극복의 과정만큼 정신적인 성장에 현격히 기여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아끼는 어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적에, 물론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것이 굉장히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 적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첫번째 의문은 내가 그 사람을 어디까지 고통에서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과연 그렇게, 그 사람을 예상되는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에서 보호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삶에 정말로 '기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사랑에 대한 예를 들자면.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본인 말고 다른 사람은 모두 인정하는 천하에 개늠/뇬이랑 사랑에 빠졌다 그말이다. 사실 불행히도 빠져버리고 나선 견적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빠질랑말랑 하고 있다고 치자. 막 내가 길길이 날뛰면서,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나를 밟고 만나라 하며 길길이 날뛰어서 결국 그 선택을 취소하게 만들었다고 치자 말이다. 생각만해도 진이 다 빠지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 상황에서 바로 우리에게 남겨지는건 너때문에 내 인생을 구했네 땡쓰얼랏이 아니라 바로 저 답 안나오는 두가지 의문이다. 이노무 새키가 다음번에 또 어디서 이상한 놈년한테 꼬여 흔들흔들하면 어쩌지. 대체 언제까지 내가 그걸 막아줄 수 있을것인가. 아무리 내가 옳지 못한 사랑이 니 인생에 끼치는 48325가지의 해악에 대해 스티브 잡스 PT 하듯 네게 떠들어줘도 결국 니 스스로 겪어보기 전까진 어마 이게 그런것이었구나 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또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터질지 모르지. 그럴때마다 이래야 한다고? 이게 딸자식이면 내가 평생 지고 살 각오로 그러기라도 하지. 그렇지 않다면?

누구나 과잉보호가 애들을 망치는건 알지만 과잉보호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장 애가 불에 타거나 물에 빠지거나 할 것 같으면 당연히 보호해야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사랑이나 연애같은것에 대해서는 애매 - 하다 그얘기다. 애정남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이게 내가 어느날 사로잡힌 딜레마고, 내가 점점 타인들에게 어떤 충고 혹은 오지랖을 부리지 못하게 되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그런것. 내 삶도 녹록치 않고 이미 짊어지고 가는 것들도 많은데, 아무리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그렇게 내가 적극적인 보호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고 그게 오히려 그 사람의 삶에는 마이너스가 되는게 아닐까란 걱정마저 된다는 거다. 사실 또 따져보면 그렇잖나. 좋지 못한, 실패, 괴로움과 고통, 그런것들은 그래도 청소년기만 지나고 나면 빨리 겪어두는게 좋은거다. 그게 나이 먹고서 어마 뜨거라 하는것 보다야 백배 낫지. 그땐 일단 뭐든지 싱싱해서 회복도 빠르잖나. 

라고 해봐도, 언제나 그런 상황이 닥치면 비겁한 어른이 되어가는건가... 란 씁쓸함이 먼저 일어나고는 하지만. 

*

어찌되었건 그런저런 연유로, 내가 타인의 사랑에, 연애에 간섭하게 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건 내가 그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모자라서,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끔은 그런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저 사랑을 졸업하면, 저 사람은 또 많이 성장하겠구나 라는. 스스로 인지하건, 인지하지 못하건간에. 하지만 분명히, 지금 그렇게 괴롭고 괴롭고 괴롭고 괴로운 사랑의 미로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딱 하나 이 얘기만큼은 해주고 싶다. 역시 이것도, 사랑을 떠나서도 어떤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지금 그렇게나 괴로운 순간들도 어느 날이면 과거가 되겠지만, 어쩌면 왜 그렇게 괴롭고 힘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아픔들이 가라앉을 시기가 되면 반드시 그것들을 복기해보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괴로움을 겪었고, 그 괴로움들을 겪을 적에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해 왔으며 그 괴로움들을 불러온 근원이 된 것은 본인의 어떤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괴롭고 아플적에 그걸 떠올리며 또 스스로를 괴롭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무슨 M도 아니고. 다만 그 모든것들이 흘러지나갈 무렵, 진지하게 그것들과 대면해 보기를. 사람이란게 그렇다. 똑같은 Input 이 있다고 똑같은 Output 이 나오질 않아요. 어떤 Input 을 어떤 Output 으로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다른거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삶들을 어떻게 꾸려나가는가 - 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거고. 

언젠가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마지막으로 남기며 줄여본다. 그렇게나 더럽게 아팠는데, 남긴거 하나 없으면 그만치 억울한일이 또 있겠냐말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억울한 일인게지. 그런게지. 

꼬리 : 어쩐지 월요병에 시달릴때만 글을 이어가는 듯한 느낌은... 기분탓인가(...)

사랑 - 1 - (여는 글)


사랑. 

사실은 이 조용한 블로그에 은근슬쩍 이 카테고리를 열적에 처음 쓰고자 했던 글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제 어느정도는 나도 사랑이란 것을 말할 수 있을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 나이보다는 그 뭣이냐, 그래도 너무 가볍지도 너무 죽죽 쳐지지도 않게, 나의 사랑, 사람들의 사랑, 그 모든 사랑이라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죽죽 써볼 수 있지 않을까 - 라는 생각에 기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냥 별 것 없는 단상에 가까운 글 세개만 달랑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역시 무모한 자신감이었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 라는 이문세씨의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지 않더라도 여전히 나는 그 사랑이라는 녀석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꺼낼 적이면 알 수 없군... 이란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혓바닥 위로 단어를 도르륵 굴리면 마냥 달콤하기만 한, 하지만 입을 오물거리며 곱씹어 보다 보면 왠지 모를 쓴물이 한켠으로 번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그 사랑이라는 녀석. 녀석의 실체라는 것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서야 어렵게 어렵게 이렇게 첫 이야기를 시작해보는 이유는 별거 없다. 날씨탓이다. 맑은 햇살, 서늘한 바람, 한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 그 모든것이 그저 마음을 가만히 두드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멋대가리 없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미래와 현재와 같은 딱딱하고 복잡스러운 레퍼런스들만을 잔뜩 읽어대며 오만가지 서비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으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한대 태우러 나가 바라본 하늘이, 날씨가 어느핸가 세상의 모든것들이 사랑으로만 충만했던 어느 가을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는 이유 하나 뿐이다. 역시나 멋대가리는 없지만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있고, 듣도보도 못한 나라로 잠시 떠나게 될 지도 모르니 어쩌면 이 글들 역시 계획들과는 반대로 조루처럼 찍 싸버린채 끝나버리는 글이거나, 전설속에서만 연재가 유지되고 있다는 모 만화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쯔음에만 하나씩 남겨지는 글들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들 어떠랴. 뚜렷한 사계절이란말이 무색하게 동남아틱한 날씨들로 변해가는 한해한해를 겪고 있으나 최소한 앞으로 내가 눈을 감을 적까지는 이런 가을 날씨는 매해 하루쯤은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이 늙으면 느는건 여유밖에 없는 거다 원래. 느긋해지는건지 게을러지는건지는 모르겠다만. 

*

혹시나 기억들 하시는지? 처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게 언제쯤이었는지? 혹자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5학년때 우리반 부반장 아이스케키하고 도망치다 담임선생님께 잡혀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눈이 빨갛게 물든채 훌쩍이고 있는 그 아이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왠지 모를 미안함과 왠지 모를 심술을 동시에 느끼며 괜한 심박수 증가를 감지했을 적에 사랑의 도를 깨우쳤노라 -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흔치 않은 경우겠지마는. 마침 날도 좋겠다 한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떤가? 뭐 태어나서 처음 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이 '남녀간의 애정과 호르몬 분비에 대한 진지한 고찰' 따위일 리는 없으니 제법 달달한 기분, 명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못하더라도 꽤나 좋은 기분, 훗... 그땐 참 그랬더랬지 하는 막연한 풋풋함들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가. 그랬다면 그것은 이 철없는 삼촌이 그대들에게 보내는 가을날의 선물이다. 하하. 이런걸 공 안들이고 생색내기라고 하지. 

그런데, 그러나, 아쉽게도 나의 경우에 - 처음 사랑이란 것에 대해 고민했던 순간은 그렇게 썩 달콤하고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아 내 소시적 풋사랑(개인적으로 풋사랑과 첫사랑은 좀 구별해서 불러주고 싶은 편이다. 이유는 나중에) 이 굉장히 슬프고 괴롭고 구질구질한 기억들로 점철되어있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내가 얘기하는건 그러니까 생애 최초로, '대체 사랑이란게 뭐길래?'라고 의문을 품었던 순간을 얘기하는 거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는 그런 의문을 품었던것이 풋사랑에 빠진 타이밍보다 빨랐다는 것이랄까. 사실 뭐 당연한거 아닌가. 요즘에야 더 빨라졌겠지만 에지간히 TV도 보고 책도 읽고 할 수 있을 적이면 얼마나 사랑이란 말이 넘쳐 흐르는가. 그것도 또 굉장히 미화된 채로 말이다. 사랑이란건 좋은거야. 환상적인거지. 마법이지. 끝내주는거지. 마치 술이란놈만 마시면 미칠듯한 흥겨움에 돌입하는 어른들을 보며 저건 무슨 매지컬 포션이냐... 라고 어린이들이 궁금해하게 되는 것처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건갑다. 아빠랑 엄마랑 사랑하면 내가 뿅 생기는거구나. 뭐 그런 막연하고 막연하고 또 막연한 '개념'을 잡게 되는게 먼저지 않던가. 뭐 밋밋하게 그냥 단어장에서 보고 외울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진지하게 '사랑이란 놈은 뭘까?' 라고 고민을 시작하게 된건 저렇게 미디어를 통해 일단 개념은 잡고 그런갑지 -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근데 진짜 뭘까 하게 된다는 건데...아, 본격적으로 내가 '사랑이란게 뭘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품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밝힐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들에는 나란 사람의 옛 이야기들은 많이 나오게 되겠지만 나란 사람이 사랑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거-의, 단편적인 에피소드 외에는 찾을 수 없을 거란걸 먼저 쓰고 넘어가야겠다. 항상 주변인들에게 얘기하듯, 난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썩 좋아하지 않는다. 막말로 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가 어떻게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 사람이 그 기억들을 그저 둘만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은건지 어쩔런지는 알래야 알 수도 없지 않은가. 이를테면 예의란거지. 음음. 아 갑자기 흐름이 끊겨 미안한데 어쨌든 이런 부분들은 스스로 좀 어느 시점 이후로 민감해하고 있는 부분들이라 말이다. 자, 그럼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

그, 첫번째로 사랑이란놈이 뭔가 하며 머리를 쥐어뜯게 된 계기가 그렇게 달달하지 못했던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 덕분이다. 나를 아는 지인들은 잘 알겠지만 난 어린시절중 '꽤 오랜 시간'을 재래시장에서 보냈더랬다. 뭐 학교를 안다니고 그런건 아닌데 일단 뭐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유년기 교육은 아버지의 하드코어 학습법(...) 으로 대체, 초등학교(국민학교였지) 입학 후에 꽤 많은 방학기간들을 재래시장, 그것도 새벽시장에서 부모님 일을 거들었더랬다. 대-충 중학교 저학년때까지는 꾸준히 했던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 이후에도 가끔, 공부 안하고 탱자탱자거리는걸 보고 아버지께서 분기탱천하셔서 넌 닥치고 가업이나 이어라 하며 시장으로 끌고나가실적이면 가끔 따라나서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했던 것은 그때까지 정도. 

근데 이게 - 우선, 이게 절대 뭐 재래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비하하려거나 그러는건 결코 아니라는 것 먼저 밝혀두고 - 뜬금없이 사랑이라는 녀석과는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그게 어린 시절의 그 좁은 시각으로 바라본 '시장 사람들'의 특징이라는게 그렇게 잡히는거다. 아니 새벽시장 일이라는게 워낙 쉽지가 않다. 힘들고 어렵지.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일하면서도 참 근사하게 멋지게 바람직하게 사시는 분들이 당연히 대부분이지. 근데 그게 그렇잖나. 그냥 다 좋고 좋은건 눈에 잘 안잡혀도 좀 튀고 나쁘고 그런건 눈에 잘 들어오잖나. 그게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내 눈에 딱딱 잡히기 시작하는거다. 아니 보니까, 아주머니들은 세상에 그렇게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진짜 고생해가며 자식들 두어너덧명 다 대학 보내고... 깔린게 그런 분들인거야. 얼마나 순하시고 착하시고 꼬맹이가 부모 일 거들러 나왔다고 기특하다고 뭐라도 하나 주고 먹이고 하시려 그러시고... 근데 음, 그당시에 꽤나 많은 그런 참 이야 대단하신 분들이다 - 라고 어린시절에도 존경심이 막 일어나던 아주머니들의 남편분들께선, 음, 꽤나 많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거다. 쓰다 보니 이거 내가 운이 없었던건가?(웃음) 

아니 왜 막 그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80년대형 나쁜 남자들 코드 있잖나. 부인이 애써 돈벌어오면 술, 노름, 친구 빚 보증 후 사기 뭐 이런걸로 탕진하고 그러면서도 잘났다고 마누라 쥐어 패고 왠갖 중독을 주렁주렁 달고다니고 결국 말년에 좋은 꼴 못보고 비명횡사하는 그런 코드. 그게 어린 눈으로 보고 듣고 했을때 또 에지간한 숫자였어야지 말이다. 그쯤 되니까 이게 뭐라고 해야하나, 어리둥절? 대충 그런 기분이 드는거야. 아니 저렇게 좋은 아주머니들이 왜 저런 썅늠(;) 들을 만나서 고생을 하시는걸까. 원래 저랬던걸까 사람이 저렇게 바뀐걸까 뭐 이런 어린시절에 할법한 고민이 아닌 고민들을 막 하게 되는거야. 뭐 조숙했더랬지. 그렇게 궁금증과 의아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까 그런 근원적인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는거다. 남녀가 사랑하면 결혼한다며, 저분들은 사랑해서 결혼한건가? 그럼 대체 그 사랑이란놈이 뭔데. 아니 멀쩡한 사람 평생을 저렇게 개고생에 쩔어주게 만드는놈이 사랑이란거야? 뭐지 이 빨간약을 먹은 기분은? 이렇게 무서운거였어? 아냐 아냐 나의 사랑은 그러치 않아 앙대...

*

까지는 오버였겠지. 그당시에 거기까지 생각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정말로 꽤나 어렸던 시절에 나는 저런 이유로 그러한 의문을 품었더랬다. 사랑이란놈이 뭘까. 이게 꽤 중요한거다. 정말로, 나중에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퍼뜩 깨달았지만 바로 저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저 의문들이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어떤 '틀'을 다져버린거다. 그러니까 애들은 좋은것만 보고 자라야한다...는 결론은 아니고, 물론 나이를 이만치나 먹어버린 지금에 와서도 어째서 멀쩡한 사람들이 누가 봐도 참 개 아드님 두 여자님(...이해 못하면 패스하시라) 같은 사람들을 만나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인생의 고뇌를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몇가지의 어떤 생각들이 건물 기초공사하듯 딱딱 깔려버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것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랑같은것은 하면 안된다. 사랑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거다. 사랑은 행복하고, 예쁘고, 달콤하고, 환상적인 것이었으면 좋겠다(이건 물론 바램). 예전에 이글루에 글을 쓰면서 Life & Love 라는 글에 이런 '사랑관'이 담긴 글을 썼더랬는데 바로 그 근간이 저 시기에 형성된거다. 왜.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거잖나. 스스로의 삶을 현저히 망가뜨린다고 생각되는 사랑을, 굳이 아둥바둥거려가며 끌고 갈 이유나 필요가 있나.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씁쓸한 기분마저 드는, 어떤 사랑에 대한, 최초의 고민과 최초의 생각. 

사실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야기들에도, 꼭 의도한바가 아니더라도 이 생각은 곳곳에서 묻어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생각들에 절대 동의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이 글들은 피하는게 좋다. '헹 - 행복하기만한 사랑이 무슨 맛이여! 사랑이란건 모름지기 개고생과 피눈물과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이 있어야 제맛인 법이제!' 이러는 분들이 있다면 말이다(...과연 있을까? -_-;) 어쨌든, 그래서 그,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그 의문, 그 출발점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이 쓸데없고 기나길 것이 예상될 글의 시작을 열어본다. 아, 어쩐지 용두사미가 막 머리속에 그려지는 기분이다마느으으으은....

어떤가 뭐. 좋지 아니한가. 사랑이란건 무엇일까 - 따위의 되도 않은 고민으로 끙끙대며 벤치에 앉아 고독한 도시의 가을 남자가 되어보기에 충분한 날이 아니던가. 으하하하.  

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사회 생활 초반에 일했던 회사에서 대표님이 얘기해주셨던 일화다. 신혼때의 일이셨단다. 맞벌이를 하셨던 중이었던지라 아침에 와이프분께서 먼저 출근을 하고 자신은 좀 늦게 집을 나서곤 했었더란다. 하루는 둘다 늦잠을 자는 통에 와이프는 눈뜨자마자 허둥지둥 준비해서 집을 나서고 자신은 그제야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변기를 열었는데 크고 아름다운 그것 (-_-;) 이 둥둥 떠다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경황없이 나서다가 화장실 물을 내리고 가는걸 깜빡하고 갔더라는 것. 사실 뭐 새신부라고 응가를 안하는것도 아니고 자신도 딱히 뭐 굉장히 놀라거나 한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신혼이 신혼이었고 처음 보았던 것이었던지라 좀 당황스럽긴 했었다고.

이게 근데 그냥 혼자서 보고 놀래고 어헣허헣 웃고 넘어갔으면 그뿐인 건데 그게 또 그게 아니었던지라. 아침에 경황없이 출근한 와이프분께서 이게 이게 (-_-;) 내가 물을 안내린것 같은데... 설마 설마? 를 하루종일 반복하고 계셨더라는 거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와서 TV를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하루 일을 마친 와이프가 들어오는데 이게 들어오면서부터 왠지 자기 눈치를 보는 것 같고(...)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고 그렇더라는 것이다. 속으로는 쿡쿡 웃음이 나오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자리를 물리고 둘이 쇼파에 앉아있는데 그제야 참지 못하고 슬쩍 물어보더란다. '저... 음... 그러니까... 그... 아침에 화장실에서... 음... 혹시.. 아니 그러니까 내가...' , '아니 왜? 뭘 그리 뜸을 들여?' , '아니 그러니까... 내가... 혹시... 물 안내리고 갔나 해서...' 사실 그때쯤에야 거의 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여기서 웃어버리면 몇날 몇일 와이프 얼굴 보기 힘들것 같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응? 아냐 물 내리고 갔었는데 뭘' 하고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추궁을 해도 끝까지 부인을 하셨다는 훈훈한 미담(?) 이었달까. 

우리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라도,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을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을 감아야 할 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다. 물론 우리는 관계 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때, 눈을 감기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조율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 그런, 조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많은 경우에 좋은 방법이라고 권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떤 것들은 분명히, 끊임없이 부딪치고 다투며 그 모습들을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보다 그저 한번 웃으며 슬그머니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본인의 황금변을 확인시켜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정도야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에피소드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려면 반드시 우리는 눈을 감는 것이 좋은 상황에서 눈을 감는 방법에 대해 깨우쳐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어느정도 배변훈련은 시키더라도 가끔 엉뚱한곳에 똥오줌을 갈긴다고 해서 몽둥이 찜질부터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굉장히 애지중지하던, 선물받은 낡은 책상에 생긴 자그마한 흠집정도는 그저 세월의 훈장인 셈 치며 너그럽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속적인 열정을 유지하려면 대머리 박부장의 괜한 생트집 정도야 안들려 안보여 하며 시크하게 넘어가는 법부터 깨쳐야 하는 것이고 단골 가게의 반찬에 나온 한올쯤의 머리카락은 에이 아주머니~ 혹은 조용히 휴지에 감싸 구석으로 밀어놓는 정도도 괜찮다는 것이다. 즐거운 피서를 즐기고 싶으면 물보다 많은 인파야 적당히 부대낄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애인이 예쁘고 곱게 입고 다니길 원한다면 좀 짧다 생각이 드는 미니스커트에도 요쏘쎅시 하며 쿨하게 넘어가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이 빠르게 반감되는 원인 중 하나는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굳이 보고싶어하는 사람의 속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애정을 품는다면, 그것들에서 스스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시선 조절을 할것인가에 따라 그 애정의 유통기한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슬프게도, 어떤것들은 거기에서 죽어도 눈을 돌리고 싶다 해도 반드시 보아야 하거나, 보게 되거나 하는 것들이 있겠지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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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짝

얼마나 멀어졌을까
문득 가늠해보려 할 참이면
이제는 너와 나 팔 벌려
한치, 두치 헤아릴 수는 없는
어쩌면 일생을 서로를 향해 걸어도
머리에 하얀 눈 내릴적이면 만날까
생각할수록 먹먹하게 멀어진 거리

어쩌면 반발짝
기껏해야 반발짝
등을 돌려 걸어가게
이렇게나 멀어지게 만든
그대와 내 마음의 거리는
고작해야 반 발짝
그때도, 지금도 닿을 수 없는
이제는 발을 내밀 기회조차 없는
그대로 영원이 되어버린 반발짝

2010.8.18 - 반발짝 -

살아가며, 만남과 이별을 거듭해가며, 또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을 바라보며 매번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만남과 이별에, 인연의 맺고 끊어짐에 뭔가 거창하거나 대단한 이유가 있는 편이 오히려 드물다는것. 사람들은 너무나 간단한 우연으로도 만나게 되고, 너무나 우스운 이유로도 이별하게 된다. 황당하리만치 어이없는 이유로도 말이다. 예를 들어 어제 친구와 마신 술 한잔 때문에 오늘 헤어지게 되는 연인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그렇기에 사람은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을때 더욱 더 힘차게 한발짝씩 서로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고작해야 반발짝, 서로의 마음이 자리하는 간격 반발짝. 그 반발짝을 다가서지 못해 평생토록 찐득하게 남는 후회를 질질 끌고가게 된다면 그만치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고작해야 반 발짝 마음의 거리가 지구를 일곱번 돌고도 남을만치 기나긴 그리움이 된다면 그건 또 상상만 하더라도 얼마나 끔찍한 일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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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열두달
날로 풀어 삼백 육십 오일
앞으로 반백년
혹은 운이 좋아 그 이상 살아가며
제 아무리 기이한 밤들을 만나더라도
더는 놀라지 않으리

그밤
그대 깊은 눈동자에 깃들었던
그 그윽한 어둠을 품었던 밤보다
남은 생동안 내게 얼마나 더
놀랍고 경이로운 밤이 있을까

후덥지근한 여름 밤
함께 깨어있는 놈은 모기 뿐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밤보다 그대
어둠을 덮고 함께 잠들 내 작은 그대

2010.08.17 - 밤 -

이틀째 새벽까지 사무실에 불을 밝히고 있다. 낮에는 일도 정신이 없는데 사방에서 신경쓰이게 하는 전화들이 줄을 서서 녹초가 되었고 무정하게도 일찍 꺼져버린 에어컨탓에 잔뜩 후덥지근한 밤이다. 이런 밤에 제 연인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으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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