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0건
- 2012.01.12 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6
- 2011.12.21 사랑 - 7 - (Just because it's Christmas!) 2
- 2011.11.28 사랑 - 5 - (그때가 아닌 지금) 4
- 2011.11.18 사랑 - 4 - (사랑의 성패를 가를 수 있나요) 2
- 2011.10.20 가을녁 사랑
- 2011.09.26 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4
- 2011.09.06 사랑 - 1 - (여는 글) 8
- 2011.06.13 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8
- 2010.08.18 반발짝 8
- 2010.08.18 밤 6
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파주라는 이 동네에 와서 그 뜨겁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는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과 여기 파주에 왔던 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을적에 이 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은 그 기억만으로 가득한 장소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괴로운 마음에 보드카와 데킬라를 하룻밤에 혼자 모조리 마시고 다음날 출근해 좀비가 되어 구석에 짱박혀 찌질대던 공장 옥상,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가 뭐라건간에 일은 해야지 - 라고 하며 매달리던 워킹 머신이 앞뒤 안가리고 눈치고 나발이고 다 팽개치고 매일같이 미친듯이 칼퇴근해서 달려갔던 경의선 철도역이며 열차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길가에서 항상 하늘거리고 있던 들꽃들이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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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7 - (Just because it's Christmas!)
드디어, 눈이 내렸다. 내가 보는 올해의 첫눈이다. 작년은 겨울의 피크를 부산에서 보내느라 눈이란건 제대로 뭐 구경도 못하고 지나간 것 같은데 그래도 올해 겨울에 몇 번쯤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꽤나 소심하게 내린 눈이라, 그것도 출근길에만 잠깐 보고 곧장 사무실에 들어와야 했던지라 여전히 첫눈으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눈은 눈 아닌가. 그래 그러니 뭐, 눈오는 날엔 사랑타령이 제맛이지. 마침 크리스마스도 코앞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에 얽힌 기억들이나 더듬어보며 사랑타령을 시작해보련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
30대 초반까지는 매년 꼭, 한번씩은 찾아보는 영화들이 있었다. 첫번째가 멜로영화의 탑으로 꼽는 If only 요, 두번째가 이터널 썬샤인이요, 세번째가 러브 어페어다. 정말로 한해에 한번은 일부러라도, 혼자 쉬는 날 틀어놓고 주책맞게 훌쩍거려가며 꼬박꼬박 챙겨보곤 하였는데 이제 그 정도까진 아니고 어디서 우연히 연상작용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들을 만나면 한번씩 찾아보고, OST를 들어보고는 하는 정도. 그리고 그렇게 일부러 찾아서, 챙겨서 보지 않지만 거의 매년에 한번씩은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러브 액츄얼리.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용 영화로 최고로 꼽는.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하면 나홀로 집에를 떠올리는 분들이 아마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겠지만... 케빈은 좀 그냥 냅둬라. 애가 큰지가 언젠데. 아무튼 처음 본 이후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시즌 쯤이 되면 어딘가의 방송에서 꼭 한번씩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고, 그게 또 봐도 봐도 재미있기에, 또 한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꼭 끝까지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탓에 매년 한번씩은 꼬박꼬박 보게 된다는거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요 영화의 매력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들의 사랑에 그때그때 다른 커플들에게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도 역시 메인 커플이라고 해야하나 - 무수한 패러디를 남기고 골백번도 넘게 어디 무슨 하이라이트 같은거에 꼬박꼬박 등장한 커플, 그리고 그 사랑, 그리고 그 명장면만큼은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게다. 그, 왜, 사실 따져보면 되게 불쌍하긴 한데 불쌍해서 더 극적이고 뭔가 간지나는 스케치북 프로포즈의 주인공들. 친구랑 결혼한 여자한테 찾아가서 스케치북 한장씩 넘겨가며 정말 담백하게, 덤덤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 장면. 캬 - 그야말로 명장면이다. 아마 그거 따라 프로포즈해서 혹해 결혼한 사람들도 많을거야. 꼬꼬마 연인들 100일 200일 이런거 챙길때도 많이 사용되었을 게고. 역시 좋은 영환데?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장면에서 내가 제일 감동했던 부분은 바로 스케치북의 그 페이지였다. 크리스마스엔 거짓말을 하면 안되잖아요 - 라는 부분. 스스로의 입장도, 상대의 입장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뭐 지금에 와서 당신과 뭐 어쩌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이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미친 짓이란것도 알고 있다. 또는 내가 이 짓을 함으로써 당신과의 관계가 굉장히 서먹스러워지거나, 아 뭔가 친구 보기 민망해지거나 할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당신의 어떤 리액션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그냥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갈건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좋은 핑계를 통해. 그 모든 마음들이 고스란히 그 페이지 안에 담겨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캬 이거 진짜 대박이구나. 간디 작살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러니까 뭐, 무수한 이들이 크리스마스는 예수를 만드는 날이 아니라 예수가 태어난 날이여! 를 외치며 닝기리 도심의 러브호텔들만 특수를 누리는 요즘의 크리스마스를 목소리 높여 비난하고는 하지만 그냥 내 생각은 그런거다. 저렇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 크리스마스란 좋은 핑계가 존재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게 아니냐 하는. 아니 그러니까 뭐, 요지는 인생 너무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잖수, 그런 얘기란거지.
*
조금 더 썰을 붙여보자면.
사랑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를 겪는 이들을 대할적마다 날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정말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운명의 빨간실같은게 있어서 딱 짝이 정해지고, 그 짝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그 짝과 함께하게 되기 때문에 사랑함으로써 아픔도 슬픔도 겪지 않는 그런 세상이면 어떨까 하는. 뭐 망상일 뿐이다. 어찌되었거나 살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에서는 참 많은 그런저런 사랑들이 남겨지게 마련이다. 사랑했었으나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사랑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면서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흐엌엌 추임새나 넣으며 괴로워하는 사랑도 있고, 잦은 다툼과 오해들이 조금씩 조금씩 누적되어가며 그 빛이 옅어져가고 있는 그런 사랑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거나 해서 말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사람도 있고, 선의의 거짓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있지만 어떤 부분을 감추고 숨기는 통에 영 찝찝하고 괴로운 사랑도 있고, 내가 저 사람이 정말 좋긴 한데 행여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저 좋은 사람을 그냥 잃게될까봐 겁나서 엄두도 못내는 경우도 있고... 사랑한다고 할말 못할말 다 하는거 아니잖은가. 얼마나 무수한 말, 말, 말들이 사랑의 과정에서 그대로 묻혀가는가.
물론 어떤 말들은 그것이 그대로 스스로의 기억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게 좋은 경우도 많다. 크리스마스라고 삘받아서 술마시고 멀쩡히 새 사람 만나 잘 살고 있는 전 애인 집에 찾아가 문 두드리며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엉엉 하고 난리치면 그건 그것대로 식어빠진 설렁탕 국물맛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이 사회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들을 바라본 경험에 따르면 적어도 그렇다. 굳이 감출, 굳이 참을, 굳이 못할 이야기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꿀꺽꿀꺽 삼켜낸다는 얘기다. 사랑한다는 표현, 좋아한다는 표현,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표현... 그 많은 표현들을 너무 많이 아낀다는 얘기다.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지극히 쫀쫀하고 인색하다. 그리고 용기들도 부족하다. 큰일 나는 얘기도 아닌데, 말하고 나면 굉장히 시원할텐데, 그럴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건 어떨까. 한때 꽤나 많은 연애상담들을 받고 있을 적에, 내가 가장 많이 반복했던 이야기는 바로 이 얘기였다. '지금 내게 하고 있는 이야기를, 당신의 연인에게 가서 차분히 들려주라고. 화내지 말고, 차분히, 진심을 담아서' 그것들이 어떤 이야기건간에.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예를 들어 고백을 망설이고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해줄 수 밖에 없는거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믿으라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진심을 담아 건넨 얘기에 무례하게, 가볍게, 진지하지 못하게, 혹은 반대로 정말 무겁게, 공포에 질린(;;), 공황에 빠진(;;) 그런 반응을 보일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고. 만약 정말 그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거라고. 그렇지 않은가?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거짓없이. 왜냐면, 크리스마스니까! 라고, 해주고 싶은거지.
*
그게 여보 미안해 고마워 - 건, 아빠 죄송해요 사랑해요 - 건, 그냥 당신이 너무너무 좋아요 - 건,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용서해주세요 - 건간에. 무엇이건 좋지 않을까. 일년에 한번, 솔직해져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좋겠지. 연말이고, 한해를 저물어가는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런 말들이 많이 가슴속에 쌓여 있을테니까.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정직하게, 진심을 담아 - 를 강조해대는 이유는. 어쩌면.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실 크리스마스때 꽤 곤혹스러운 일들도 많이 겪었더랬다. 시트콤같은 기억들만 한가득 남겨진 크리스마스도 많았더랬지. 헌데 그게 다 소시적 추억의 한페이지요 청춘의 흔적이요 뭐 대부분은 그런것으로 남겨져 있는데 꽤나 후회스러웠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있다. 간단히만 얘기하면, 그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에 솔직하지 못했더랬고, 덕분에 꽤나 쓰린 기억들이 남겨졌다. 그게 정말 그것 때문은 아니란걸 잘 알면서도, 내게 있어 원망할건 크리스마스에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밖에 없었기에, 꽤나 오랜기간동안 그것이 후회로 남겨졌던 것이다. 그때 솔직했더라면, 용기를 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조금은 많은것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물론 후회는 언제 해봐도 때가 늦었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나쁠 것 없지 않은가. 그저 마음일 뿐인데. 아니 뭐 어떻게 하자는건 아니고, 그냥 당신이 굉장히 좋아요 - 그 한마디라도. 크리스마스엔, 거짓말을 하면 안되니까 말이야. 그렇게, 조금은 조용하고 담백하지만, 부끄럽고 조심스럽지만, 그 마음들이 담은 열기는 도심을 활활 불태울 러브호텔들의 열기따위에 밀리지 않는 그런 뜨끈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사랑타령은 여기까지. 눈도 멎었고, 햇살이 비치는고나. 어헣허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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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5 - (그때가 아닌 지금)
매번 본방사수까진 아니어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은 거의 손에 꼽는다. 그리고 올해 그렇게 챙겨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나가수다. 사실 초반보다 많이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한 자리들을 차지하고 매주 그들의 색깔로 기억속에만 머무르던 노래들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법 하다. 그리고 그 가수들중의 하나가 김경호씨다. 요즘은 락하는 언니 컨셉으로 화제가 된다고 하지만 벌써 대학교시절부터 한참을 좋아해왔던 가수다. 한때는 노래방에 가면 반드시 부르는 애창곡에 꼭 들어가 있었더랬지. 금지된 사랑이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같은 노래들 말이다.
헌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진 노래 말고도, 김경호씨 노래중에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전혀 히트곡은 아니었으나 지금도 가사 안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그만치 혼자 많이 듣고, 흥얼거리고, 떠올렸었던 노래 말이다. 그래서, 그 노래의 한 소절을 소개해보며 오늘의 사랑타령을 시작해본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가끔 이런 생각 했죠. 만일 우리가 그때가 아닌 지금 서로를 만났다면~'
*
모든 사랑이 시작도 끝도 깔끔하게, 시원하게, 그냥 그렇게 쿨하게 끝이 나고 그렇게 남겨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사랑이 그렇게 깔끔하고, 시원하고, 쿨했던 기억만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복된 삶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어떤 사랑들은 오래오래 기억속에 머무르며 어느 날에건 슬몃슬몃 치밀어 올라 마음을 괴롭게 하곤 한다. 또 당연스럽게도 그렇게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랑에 대한 기억들조차 좋지 못한 기억들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겠지마는 말이다.
헌데 사람 마음이란것이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 그게 또 그런거다. 스스로 어떤 사랑을 할적에 고되고 힘들기만 했었고,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더라도 이가 바득바득 다시 갈려올것같이 슬프고 화가 치미는 어떤 사랑을 했었더라면 그게 또 시간이 흘러가매 그렇게 어느정도는 누그러지기도, 스러지기도, 적당히 마모되고 적당히 미화되기도 하는 법이다. 다시 떠올릴바에야 내 머리통을 스스로 부수고 말겠다 하는 정도의 분노만이 가득했던 어떤 기억조차 시간 앞에서는 에휴, 그래 뭐 그래도 그런 건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더랬지 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 화가 나고 그 순간만큼 슬프고 괴롭지만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같은것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런 이유로 외려 우리를, 가장 보통의 존재들을 오랫동안 괴롭게 하는것은 내가 다 퍼주고 내가 많이 손해보았다 싶은 사랑이 아니라 내가 많이 받았고 그만치 다 주지 못했던 사랑이다. 내가 모지라고 부족해서, 뭘 제대로 몰라서, 혹은 너무 어려서 내가 받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온전히 깨치지 못하고 함부로 한 기억들, 손 안에 한가득 쥐고서도 욕심에 욕심을 부리다 놓쳐버린 어떤것들, 의도하진 않았으나 나의 모남이, 나의 부족함이 그래도 참으로 나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고마운 이에게 심하다싶으리만치 생채기를 내고, 그렇게 생채기를 내고서도 미안한줄도 모르고 시건방을 떨었던 기억들.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며 떠올릴적에 오랫동안 부끄럽고 오랫동안 마음의 짐처럼 남는 것은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란 얘기다. 또 물론, 개인적인 차이야 있겠지마는.
그리고 저 위의 노래는 그런 날들에 문득문득 입에서 가만히 흥얼거리며 어쩐지 쓰디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노래인 것이다. 문득, 받은것보다 너무 모자라게 주었다 싶어 참으로 떠올려볼수록 미안하고 미안한 어떤 이의 얼굴이 떠올라서 괴로운 마음이 들 적에. 차라리 지금이라면, 그래도 그때보다 조금은 자라고, 조금은 더 많이 그때 그 사람의 마음들을 이해할 수도 있고, 조금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조금은 더 둥글둥글해진 지금이라면. 차라리 지금 그대들을 만났다면 그렇게나 미안함만 가득 남기지는 않았을텐데. 그런 마음이 일어날 적에 말이다. 또 한대목 소개해보자면 저 노래의 2절 시작부분은 이렇다. 정말로 그런 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가사기에, 더 잊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내 곁에 있을 때 보다 그대의 삶이 만일 불행하다면 어떻하나요 나의 죄를~'
*
물론 나에게도, 그런 사랑의 기억이 있다. 너무 어려서, 스스로의 삶에 너무 치여서, 스스로 상처입고 상처입은 끝에 날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절이라서, 뭐 기타 등등의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내세워봐도 그게 변명이 될 수 없음은 매번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뭐 혼자 실수하고, 혼자 삽질하고 망가지고 무너지고 쑈하고 죽쑤고 했으면 그냥 이불속에서 하이킥이나 몇번 하고 말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런 순간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나 오래토록 마음의 채무를 가득 끌어안게 된 기억들, 그리고 그 사람들. 물론 비단 남녀간의 사랑을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단 한번 그런 사랑의 기억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태어나서 한번쯤은 누구나 느끼게 될 감정일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런 대상이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감히 그 은혜에 비해 스스로 갚은것을 어떻게 내세울 수도 없는, 언젠가의 시절에는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는, 부모라는 커다란 존재들이.
사실 우리는 또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머리속에서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괴로워해봐도, 부질없이 혼자 들리지도 않을 노래들을 중얼거리며 궁상을 떨어봐도 이미 지난 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것을. 무정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것을. 청춘남녀의 경우엔 그러다가 뭐 정말 믿지 못할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되고 다시 인연을 이어나가며 그 미안함들을 갚아나갈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한해 두해 먹어가면서 그런 가능성은 점점 기적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오히려 그런 마음들에 부질없이 후회하고 후회하며 시간을 허비하는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지금 그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지 못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사실은, 저 흘러간 노래를 끄집어내놓고 괜스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어떤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자극하는 이유는 그냥 이런 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간을 도로 돌려 그때가 아닌 지금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 미안함들은 이렇게 가끔 끄집어내보며 스스로를 다듬어가는 정도로 멈추는 것이 족하다는 얘기다. 노래 한곡에 얼추 4분. 4분의 시간동안 저 절절한 가사들을 곱씹어가며,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만치 더 행복하길,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삶들에 내 바램만큼의 행복들이 더 얹어지길 빌어봅니다 하는 마음으로 넘기고 다시 앞으로는, 또 어느날 또 이 노래를 떠올렸을적에 마음을 더 짓누르게될 누군가들은 만들지 않겠다 하는 마음을 다지는 정도로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인연들을 한번 더 돌아보고, 더 꼼꼼히 챙겨보고 하는 것으로.
그게 그러니까, 그렇지 않던가. 어떤 날 정말로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사랑을 하며 눈물 콧물 질질 흘릴적에는, 내가 과거에 아프게 했던 어떤 이들을 떠올리며 아 내가 그때 참으로 사람을 아프게 하였구나, 그 사람도 지금 나처럼 이렇게나 아팠겠구나, 내가 그때 그리 못되게 굴어 이제 벌을 받는구나, 이런 생각들 한번쯤은 해보고 살게 되지 않던가. 그렇지 않던가. 아파본 놈만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데 그래도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것은 비슷한 아픔을 경험해보는 것.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던가. 허나, 정작 그 마음들을 돌려줄 이들은 이미 과거속에 머무는데 지금 내 마음 헤집고 있는 그 사람에게 그 미안함에 더 공을 들인다 한들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
사랑만큼 타이밍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이란 것의 절반을 담당하는 하늘의 몫이고 이미 어긋나버린 타이밍 앞에서 아무리 후회하고 괴로워해본들 한번 어긋난 타이밍은 도로 제자리로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그렇게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그 시간들로 인해 스스로를 더 키워낼, 스스로에게 또 다른 어떤 가능성이 될 타이밍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일지라도.
잊으라는 것도 아니다, 괴로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일에 연연하지 말라는 진부한 충고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미안해하고 충분히 괴로워하되,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걸어가야함을 잊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는것이야말로, 어느 시절에 나란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주었던 누군가에 대한 생에서의 마지막 예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흘러간 노래의 마지막 대목을 남겨보며 오늘의 사랑타령을 매듭짓는다. 사랑. 아아, 사랑.
'용서해요 날, 그것밖에는 안됐었던 나를. 다시 산다면 원하셨던 그대 삶 내가 돌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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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시작을 알리는듯한, 아니 알려야 할 듯한 빗방울이 조심스레 떨어진다. 창밖은 뿌-옇게 흐려있는데 사무실 유리창에 하나 둘씩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어쩐지 애처롭다. 어쩐지 누군가의 눈가에 매달렸던 눈물방울같은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야기를 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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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녁 사랑일랑 하지를 마오
2011.10.20 - 가을녁 사랑
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가끔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만약 언젠가 결혼이란 것을 하고, 요행히 그럭저럭 어여쁜 딸네미 하나를 얻어 그럭저럭 키워내고, 어느새 그 아이가 말만한 처자가 되어 햐 어느새 이만치 자랐구나 하는 시점에 그 아이가 아빠 제가 사랑하는 남자에요 - 라고 하며 왠 놈팽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상상 말이다. 그런거 다 한번쯤 해보는거 아닌가? 나만 그런가?(웃음) 그것도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성향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아이의 팔짱을 끼고 등장한 사내녀석이 징 박힌 가죽자켓에 스킨헤드에 혀찌 귀찌를 뚫은 띠동갑 무직(...) 사내일때라거나 하는것. 물론, 언제나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금새 쓸데없는 생각이 종료되는 효과는 있다. 아 제길.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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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사회 생활 초반에 일했던 회사에서 대표님이 얘기해주셨던 일화다. 신혼때의 일이셨단다. 맞벌이를 하셨던 중이었던지라 아침에 와이프분께서 먼저 출근을 하고 자신은 좀 늦게 집을 나서곤 했었더란다. 하루는 둘다 늦잠을 자는 통에 와이프는 눈뜨자마자 허둥지둥 준비해서 집을 나서고 자신은 그제야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변기를 열었는데 크고 아름다운 그것 (-_-;) 이 둥둥 떠다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경황없이 나서다가 화장실 물을 내리고 가는걸 깜빡하고 갔더라는 것. 사실 뭐 새신부라고 응가를 안하는것도 아니고 자신도 딱히 뭐 굉장히 놀라거나 한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신혼이 신혼이었고 처음 보았던 것이었던지라 좀 당황스럽긴 했었다고.
이게 근데 그냥 혼자서 보고 놀래고 어헣허헣 웃고 넘어갔으면 그뿐인 건데 그게 또 그게 아니었던지라. 아침에 경황없이 출근한 와이프분께서 이게 이게 (-_-;) 내가 물을 안내린것 같은데... 설마 설마? 를 하루종일 반복하고 계셨더라는 거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와서 TV를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하루 일을 마친 와이프가 들어오는데 이게 들어오면서부터 왠지 자기 눈치를 보는 것 같고(...)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고 그렇더라는 것이다. 속으로는 쿡쿡 웃음이 나오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자리를 물리고 둘이 쇼파에 앉아있는데 그제야 참지 못하고 슬쩍 물어보더란다. '저... 음... 그러니까... 그... 아침에 화장실에서... 음... 혹시.. 아니 그러니까 내가...' , '아니 왜? 뭘 그리 뜸을 들여?' , '아니 그러니까... 내가... 혹시... 물 안내리고 갔나 해서...' 사실 그때쯤에야 거의 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여기서 웃어버리면 몇날 몇일 와이프 얼굴 보기 힘들것 같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응? 아냐 물 내리고 갔었는데 뭘' 하고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추궁을 해도 끝까지 부인을 하셨다는 훈훈한 미담(?) 이었달까.
우리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라도,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을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을 감아야 할 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다. 물론 우리는 관계 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때, 눈을 감기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조율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 그런, 조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많은 경우에 좋은 방법이라고 권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떤 것들은 분명히, 끊임없이 부딪치고 다투며 그 모습들을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보다 그저 한번 웃으며 슬그머니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본인의 황금변을 확인시켜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정도야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에피소드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려면 반드시 우리는 눈을 감는 것이 좋은 상황에서 눈을 감는 방법에 대해 깨우쳐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어느정도 배변훈련은 시키더라도 가끔 엉뚱한곳에 똥오줌을 갈긴다고 해서 몽둥이 찜질부터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굉장히 애지중지하던, 선물받은 낡은 책상에 생긴 자그마한 흠집정도는 그저 세월의 훈장인 셈 치며 너그럽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속적인 열정을 유지하려면 대머리 박부장의 괜한 생트집 정도야 안들려 안보여 하며 시크하게 넘어가는 법부터 깨쳐야 하는 것이고 단골 가게의 반찬에 나온 한올쯤의 머리카락은 에이 아주머니~ 혹은 조용히 휴지에 감싸 구석으로 밀어놓는 정도도 괜찮다는 것이다. 즐거운 피서를 즐기고 싶으면 물보다 많은 인파야 적당히 부대낄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애인이 예쁘고 곱게 입고 다니길 원한다면 좀 짧다 생각이 드는 미니스커트에도 요쏘쎅시 하며 쿨하게 넘어가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이 빠르게 반감되는 원인 중 하나는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굳이 보고싶어하는 사람의 속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애정을 품는다면, 그것들에서 스스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시선 조절을 할것인가에 따라 그 애정의 유통기한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슬프게도, 어떤것들은 거기에서 죽어도 눈을 돌리고 싶다 해도 반드시 보아야 하거나, 보게 되거나 하는 것들이 있겠지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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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멀어졌을까
문득 가늠해보려 할 참이면
이제는 너와 나 팔 벌려
한치, 두치 헤아릴 수는 없는
어쩌면 일생을 서로를 향해 걸어도
머리에 하얀 눈 내릴적이면 만날까
생각할수록 먹먹하게 멀어진 거리
어쩌면 반발짝
기껏해야 반발짝
등을 돌려 걸어가게
이렇게나 멀어지게 만든
그대와 내 마음의 거리는
고작해야 반 발짝
그때도, 지금도 닿을 수 없는
이제는 발을 내밀 기회조차 없는
그대로 영원이 되어버린 반발짝
2010.8.18 - 반발짝 -
살아가며, 만남과 이별을 거듭해가며, 또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을 바라보며 매번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만남과 이별에, 인연의 맺고 끊어짐에 뭔가 거창하거나 대단한 이유가 있는 편이 오히려 드물다는것. 사람들은 너무나 간단한 우연으로도 만나게 되고, 너무나 우스운 이유로도 이별하게 된다. 황당하리만치 어이없는 이유로도 말이다. 예를 들어 어제 친구와 마신 술 한잔 때문에 오늘 헤어지게 되는 연인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그렇기에 사람은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을때 더욱 더 힘차게 한발짝씩 서로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고작해야 반발짝, 서로의 마음이 자리하는 간격 반발짝. 그 반발짝을 다가서지 못해 평생토록 찐득하게 남는 후회를 질질 끌고가게 된다면 그만치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고작해야 반 발짝 마음의 거리가 지구를 일곱번 돌고도 남을만치 기나긴 그리움이 된다면 그건 또 상상만 하더라도 얼마나 끔찍한 일인 것인가.
일년 열두달
날로 풀어 삼백 육십 오일
앞으로 반백년
혹은 운이 좋아 그 이상 살아가며
제 아무리 기이한 밤들을 만나더라도
더는 놀라지 않으리
그밤
그대 깊은 눈동자에 깃들었던
그 그윽한 어둠을 품었던 밤보다
남은 생동안 내게 얼마나 더
놀랍고 경이로운 밤이 있을까
후덥지근한 여름 밤
함께 깨어있는 놈은 모기 뿐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밤보다 그대
어둠을 덮고 함께 잠들 내 작은 그대
2010.08.17 - 밤 -
이틀째 새벽까지 사무실에 불을 밝히고 있다. 낮에는 일도 정신이 없는데 사방에서 신경쓰이게 하는 전화들이 줄을 서서 녹초가 되었고 무정하게도 일찍 꺼져버린 에어컨탓에 잔뜩 후덥지근한 밤이다. 이런 밤에 제 연인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으랴.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