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고파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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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일... 그야말로 해일처럼 밀려오는 일들을 꾸역꾸역 밀어내며 지내고 있다. 언제부터 월화수목금금금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정말, 정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뭐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한방에 시원하게 풀리는 문제라곤 없었던 프로젝트였던지라 일하는 시간보다 구글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말할정도로,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문제들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풀어내가며  지금까지 흘러왔더랬다. 서비스 오픈을 앞둔 이제야 그 끔찍했던 이슈들은 에지간이 해결되고 이런저런 자질구래한 문제들만 보이곤 한다. 정말 고난의 행군이었구나. 사실 그래서, 오픈까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는데 어느정도 이제 풀려간다 싶으니 긴장감이 풀리려고 해서 그런지 사지가 오그라드는 피로감과 더불어 그간 무리를 강요해왔던 몸이 여기저기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줄 놓지 말아야지. 이상태면 딱 정신줄 놓는 순간 그냥 뻗어버릴게다. 탁 치니 억 했다. 그런. 

이런 순간들이면 언제나 조금 신기한것이, 몸과 마음은 역시 하나다. 이를테면 그런거다. 긴장감이 풀리는 순간 밀린 피로나 몸의 이상증후들이 확 하고 드러난다 한다면 마음 역시 마찬가지란 거다. 긴장감을 가지고, 몰입하고, 집중하고 있었던 순간들에는 전혀 의식할 수 없었던 마음의 허기, 공백들이 그런 긴장상태를 벗어나는 순간에 몰려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말로 민망하리만치 오랫만에 이렇게 키보드를 도닥도닥 해보고 있는 중이다. 배가 고프다. 사람이 고프다. 이야기가 고프다. 하기사, 회사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서, 신나는 무리에 섞여서, 일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며 신나게 웃고 떠든 기억이 꽤나 가물가물하지 않던가. 아 이런 된장.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 아, 뭐 비가 내려서 그냥 사-알짝 센치해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마는. 음켈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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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지 딱 일년밖에 안된 신입사원이 난데없이 퇴사한다고 했다. 올해 우르르 다섯명이나 신입을 받고 나름 멘토로 지정되었는지라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도 신경쓰려고 애를 쓰고 있는 와중에 소식을 듣게 되어 처음엔 기분이 참 씁쓰레 했더랬다. 미안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어쩔수 없었잖나. 돌이켜보면 작년도 올해보다는 아니었지만 참말로 쉽지 않은 하루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던데다가 갸가 입사하고 나서 겨울엔 바로 부산으로 떠났더랬었다고. 챙기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더랬지. 그래도 아쉽고 미안하고 그런 마음에 퇴사를 2주 앞두고 프로젝트 지원을 나왔길래 붙잡고 이유를 물었더랬다. 왜요, 적성에 안맞아요? 힘들었던거에요? 어디 옮길 회사는 알아보고 떠나는건가? 그리고 돌아온 의외의 답변. 아뇨, 전에 되게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사귀기도 했었구요. 그때도 좋아서 결혼하자고 그러고 했는데 채였더랬어요. 근데 이번에 다시 만나기로 해서. 여자친구가 호주에서 영주권 받으려고 하니, 거기 가서 다른 일이라도 하면서 같이 살려구요. 

이... 이자식. 남잔데? -_-!!?!?!?!?!?!?!?!?!?!?!?

허를 찔린 기분으로 껄껄껄 웃으면서 이야아 간지나네. 멋지다. 고고씽을 외쳐주고, 폭풍야근이 거듭되고 있던 지난주임에도 야근을 마치고 꾸역꾸역 팀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송별회를 해주었다. 역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사람들의 반응의 대세는 기대 < 우려 였는데 나만 옆에서 그냥 왜요 멋있는데. 간지 나잖아요 하고 있었다는건 자랑 혹은 안자랑? 팀장님께선 역시 어른이신지라 그런 얘기도 하셨더랬다. 청춘의 객기가 아니길 빈다고. 뭐 팀장님 말씀이신지라, 또 우려하시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지라 거기에 토를 달진 않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그 와중에도 외쳐주고 싶었다고. 로망이잖나 청춘. 청춘엔 객기도 부려봐야지. 멋있어. 사랑밖에 난몰라 하며 물론 지옥 노동에 시달리긴 하지만 안정된 직장과 그간 쌓은 이런저런 모든것들을 내던치고 새로운 삶으로 뛰어든다고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는것. 그런게 진정한 청춘의 로망 아니겠어. 난 그런게 좋다니까. 하하. 하하. 

이제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연락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외쳐주고 싶다. 자네의 청춘에 건배. 쩔어주는 기백을 보여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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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의 강렬한 기억은 다른 기억들을 잠식하는 효과가 있는듯하다. 언젠가까지는 이렇게 비가 바가지로 퍼붓듯이 내리는 날이면 이런저런, 꽤나 많은 기억들이 병렬로 떠올랐었는데 언젠가 이후부터는 이런 날이면 쏜살같이 기억의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기억이 있다. 쏟아지는 빗소리, 검은 방, 그리고 세상의 무엇보다 따뜻했던 온기, 아주 가느다란 숨소리. 물론 그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에게 그 기억이 어떻게 적혀 있을지는 이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기사, 그런 의문을 띄워보는게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었던가. 답이 없는 질문이라면 고민하지 않는것도 인생을 편하게 살기 위한 패시브스킬중의 하나인것을. 

더 센치해질까봐 당분따윈 허용되지 않는 요즘의 삶에서 그래도 달달한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역시 애인님이고나. 요즘의 피로는 뭐랄까, 정말 퇴근후에는 그야말로 꿈틀이(...)가 된듯한, 특히나 집에 들어가서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 꼼지락할 수도 없을만한 피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옆에 김태희가 누워있다 하더라도 손도 못댈지경(;;;;;) 뭐 그정도라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느즈막히 애인님과 만나 술잔 한잔 기울인다고 해도 술보다는 피로에 못이겨 먼저 떡이 되는 그런 상황인데 그런 상황이면 참 꼬옥 끌어안고 토닥토닥하며 잘도 재워주신다. 뭐랄까, 거의 품에 안기자마자 잠이 들긴 하는데 잠이 드는 와중에도 야 이게 천국이 따로 없구나(...) 뭐 이러면서 잠이 든달까. 천국이 별 거 있간듸. 사람이 사람에게 천국도 지옥도 되는게지. 당신은 내 천국. 내 썬샤인. 아 조금 부끄럽지만. 

플러스 원. 야근은 처 시켜놓고 퇴근시간 이후엔 에어컨 끄는 갑님의 자비없음에 아주 그냥 퇴근시간 이후, 혹은 휴일에는 사무실에서 익어가고 있는 요즘인데 그 얘길 했더니 어느날 불쑥 퇴근길에 USB선풍기를 사서 안겨주고 가신다. 햐, 참. 난 도대체 전생에 뭘 구한걸까. 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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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사람이 고파. 격하게 술을 마실 필요도 없고, 그냥 사알짝 취기가 오를 정도의 술, 음, 사케 좋겠다. 사케 아님 와인, 아니면 보드카 잔술로 시켜놓고 달각달각 돌려가며 사알짝식 마시면서 이런저런 세상이야기, 사는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생각하고 있는 모든것들을 주욱주욱 꺼내놓으면서, 눈을 맞추면서, 그렇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구나, 사람이 사람이랑 부대끼며 살아야제 하는 그런 밤들이 고파. 회사사람 말고! 하루에 열네시간씩 얼굴 보는 사람들 말고오오오오오오!!!!!!!!!!!!!!!!!!!!! 밀먀ㅓㄹ'ㅣㅓㅇㄻ읾'ㅓㅇㄹ 아 -_-;; 역시 정신줄을 살짝 풀어놓으니 과잉 스트렛흐가 밀려오는고나. 오후엔 다시 닥치고 일모드로 돌아가야지. 일단 이것만 끝내자. 일단 이것만. 이것만. 

하아, 또 그러면서 혼자 여행도 좀 가고 싶고 그런걸 보면 뭔가 단단히 속에 뭐가 비었어.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것. 그대에여 나머지 써루움은 나으 빈자안에 채워어 줘어어어어어어. 

두서없는 오늘의 밀어내기 끗끗끗. 그래도 조금 개운하고나. 히히. 장마철이라고 너무 늘어지지 마시고 모두 촉촉한 하루 되시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