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세상이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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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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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속이 편치가 못하다. 괜히 마음이 우울하고 쓰리다. 사실 즐거운 주말 마무리였고 즐거운 한주 시작이었고, 사지가 오그라들게 바쁘긴 하지만 일도 꾸역꾸역 잘 밀어내고 있는 상황인지라 개인적으로야 충분히 업 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스스로도 놀라우리만치 여파가 크다. 사실 이틀간 포탈 사이트만 띄워도 사방에 보이는 잡놈들 덕분에 인터넷 자체를 꼴도 보기 싫었고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이게 도저히 안되겠더라. 조금이라도 풀어놓아야 이 묵직한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려나 하는 마음에 이야기를 한다. 해당 이슈에 대해 더는 어떤 이야기도 보고싶지 않다 하시는 분들은 미리 패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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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야구팬이기야 하지만 데일리 야구 소식은 아이러브베이스볼쪽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편이고, 그냥 스쳐가듯 몇번인가 TV에서 보았다 하더라도 워낙 안면인식이 안되는 인간인지라 기억을 할리 만무하다. 또 워낙 연예인이건 누구건 스캔들이네 어쩌네에 대해 별 관심도 없기에 처음 사건이 터졌을때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트위터에서 언뜻 이야기만 들었더랬다. 디테일한것까진 모르고 그냥 둘이 썸씽이 났는데 임태훈이 발뺌하는건가 정도로 이해하고 흘려보냈다. 관련해서 트위터에 나쁜놈은 물구나무를 서도 나쁜놈이라고 썼던게 전부. 그런데 이렇게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뭔가 일이 커지면서부터 대체 무슨일이야 싶어 찾아봤다가, 인터넷상에 넘쳐흐르는 왠갖 패러디와 조롱들을 보고, 그리고 좀처럼 수습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거에서 어 어 하다가 임태훈 1군 올라왔던날 두산 구단이랑 임태훈 인터뷰하는거 보고 정말 사실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더랬다. '야야, 이거 큰일 나는거 아냐 이러다?' 솔직히 그런 생각 왠만큼 사태 돌아가는거 보고 있던 사람이었으면 한번쯤 다 들지 않았겠나. 아니 진짜 입장바꿔 생각해봐. 예를 들어 내가 회사에서 누구랑 썸씽이 났어, 내가 맘 주고 좋아했어, 근데 그게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참 듣기 더러운 형태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상대 여자랑 회사에서 두 사람은 아무 관계가 없었다고 발표하고 일에만 전념한대. 난데없이 난 뇌내망상연애를 시전한 스토커가 된거야. 와 참. 죽지는 않더라도 죽고싶을 정도일테고, 최소한 회사는 더 못다니겠지. 근데 야구팬을 천만 잡고 국민중에 천만이 아는, 얼굴 다 팔린, 나이도 적당히 먹은 여성의 입장에서 그런 꼴을 당한다? 이쯤되면 위험한거 아냐? 라는 생각, 누구라도 한번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근데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하나. 야, 야, 이거 큰일나는거 아냐? 그냥 이러고 또 내 할일 해야지. 네이버 관련 기사 하나만 까도 덧글란에 미친놈들이 수두룩한데 내가 그거 다 쫓아다니며 신고를 할것이여 뭘할것이여. 이글루라도 열심히 쓰고 있었을적엔 최소한 거기다라가도 좀 적당히 해라 이것들이 한마디라도 갈겼겠지. 그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그거였다. 누군가 죽을 것 같아. 그리고 분명히 굉장히 많은 다수가 고의건 고의가 아니건 그걸 부추기고 있었어. 근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까, 이 사회는 이미 제법 많이, 그렇게 누구에게 딱히 살해당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 누군가들이 아주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찝찝한 죽음을 많이 경험했단 말이야. 근데 또 그렇다는 거. 그리고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굉장히 리얼하게 생중계되고 있었다는거. 딱 죽는 순간만 빼고. 이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와, 내가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은 세상인데 참 사람 별거 아닌걸로 그냥 훅 보내버리는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그, '흉기'가 된게 그래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고 살고 있는 넷이라는 것이. 오버 조금 보태서, 정말 소름이 끼쳤더랬지. 정말 소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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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책임을 말하면 이게 물타기네 잘못한놈은 따로 있는데 애궂은 네티즌 잡네 뭐 이런 얘기들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많은 이들이 칼꽂은 범인으로 꼽고 있는 '그'에 대해 말해본다면.

사실 얘에 대해선 길게 말하기도 싫다. 솔직히 말하면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꺼려져. 근데 내가 항상 생각하는 삶의 기본 원칙이란게 있어서 그걸 적용시켜보면 그래 그렇다. 난 얘가 계속 야구를 하건 말건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아. 사람이 한번 잘못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되거나 하는거에 난 언제나 반대해왔으니까. 그래 뭐,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그러면 뭐 또 공던지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분명한건 난 다신 얘가 마운드에 서서 공던지는걸 내 눈으로 보진 않을거야. 기아랑 두산이랑 경기하는데 얘가 올라온다 그러면 티비 채널을 돌리던가 야구장에 있으면 담배를 피우러 나가던가 하겠지. 이건 그냥 개인적인 감정이다. 꼴도 뵈기 싫어. 내가 오죽했으면, 화요일엔 하도 열이 뻗쳐서 얘 미니홈피 찾아볼까 생각이 다 들더라. 태어나서 두번째로 악플 달뻔했다. 물론 아서라 말아라 하고 말았지만. 왜 그렇게 싫은거냐고? 불특정 다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말하면서도 얜 왜 그렇게 싫은거냐고?

그래 뭐, 얘 인터뷰가 마지막 한방이 되었다는 얘기도 사실 아주 틀린말은 아니고, 떠돌아다녔던 루머가 사실이라면 이건 뭐 그냥 존나 찌질해서 싫기도 하긴 한건데 제일 큰 이유는 그게 아니다. 나같이, 아무 연관도 관심도 없는 그냥 일반 야구팬 한명조차 야, 이러다 큰일나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내몰리고 있었는데 그걸 방치했다는게 제일 싫어. 사실 온갖 루머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다들 괜히 니탓이오만 하고 있는 이 상황이지만 분명한건 하나 있지. 설령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게 '모두'라 하더라도, 그녀를 '살릴' 수 있었던건 걔 하나 뿐이었지.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지.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그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어. 어려서? 운동만 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피식. 암튼 그래서 싫다. 야구를 계속 하건 뭘 하건, 메이저리거가 되건 만년 2군에서 썩건 20승 투수가 되건 뭘하건, 그냥 난 더이상 볼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 그냥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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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입이 닳도록 얘기해 온거지만.

그러니까 넷에서 표현의 자유 나부랭이가 어쩌구 저쩌구 나대는것도 좋고, 설치는것도 좋고, 뭐 그래 적당히 서로 놀려먹기도 하고 갈구기도 하고, 그렇게 아웅다웅 사는것도 좋지. 근데 좀, 진짜, 누군가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때엔 적당히좀 해라. 씹히고 뜯기고 하는 사람 맘좀 이해하라고. 연예인 스캔들 가지고 신나게 웃고 떠들고 할라면 그냥 니 친구들하고 술이나 처먹는 자리에서나 해. 넷에 찌질찌질 써갈기지 말고 쫌. 하기사, 이런 얘기를 알아먹을만한 애들이면 그렇게나 개 생지랄을 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이건 뭐 정말 한 한시간 웹서핑만 해도 싸이코패스같은 애들이 한타스는 나와. 참, 거, 정말 세상 참.

그리고 왠만하면, 정말 힘들고 괴로울때에 인터넷에 기대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누굴 까지 못해 안달난 눈알이 시뻘건 들개새끼들이 넘치는 곳이랍니다. 정말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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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야구도 안보려다가 퇴근하고 딱 들어가니까 베이스볼 투나잇 야가 하는데. 마무리 멘트 들으며 증말 짠하더라. 에효. 참.

진심으로 고인이 편히 쉴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진심으로.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없기를. 정말 다시는.

P.S : 마지막으로, 여전히 정신못차리고 있는 놈들은 몽창 고자나 되어부러라. 에라이.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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