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의 4월


뼈와 살이 분리될 뻔 했던 제안 프로젝트 하나를 또 하나 마치고 분명 3일 휴가를 얻었던 것 같은데 어째 정신차려보니 출근해있다. 타임 워프라도 한 기분. 하기사 그럴 만도 하다, 마지막 날 그야말로 통째로 날을 새우고, 아침 열시까지 설렁탕에 소주 한잔 마시며 마무리를 하고 집에가서 풀썩 쓰러져 기절한 후로 휴가 내내 밀렸던 잠이 폭풍처럼 휘몰아쳐오는 통에 고생에 고생을 했으니. 뭐랄까, 짧은 휴가가 아까워서 뭐라도 하려고 기를 쓰며 눈을 떠도 몸이 침대에 바짝 달라붙어 꿈틀대다가 다시 잠들어버렸던. 물론 그와중에 야구장도 두번이나 갔다마는. 하하.

뭐 언제는 대단히 한가한 생활을 영위했던 것도 아니니 그럭저럭 적응이 될만도 한데 사실 그게 그리 만만한게 아니더라. 작년 봄 이후 정말 숨돌릴 틈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와 무슨 이런 해가 있냐, 한 삼년치 일할것을 한해에 다 하는구나 하고 엄살을 부렸었는데 그게 정말 엄살이었던 게다. 이번에 제안 쓰며 개인 과제 등에 대해 계획해서 제출하게 되었었는데 나름 최대한 방어적으로 계획을 짜려고 했음에도 짜서 제출해놓은 과제들을 보자니 한숨부터 푹푹 나온다. 사실은 그제서야 조금 걱정이 들었더랬다. 아, 정말로 이젠, 이게 아주 보통의 강도가 되는구나. 비단 업무에 대해서만이 아닌 삶에서 가해지는 강도 말이다. 정말 우연찮게도, 그리고 또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이런 저런 이유로 반쯤은 넋이 나가 살았던 30대 초반의 그 시절은 정말 천운으로 주어졌던 휴식의 시간이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들에 조금은 더 괜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더랬다. 하아, 좋은 시절 다 갔군. 이라면서.

그런데 사실은, 그게 참 기기묘묘한 기분이다. 이게 또 재미있는게 어느정도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향 덕분이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퍼뜩 느낀건데,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더랬다. 요즘 많이 바쁘니?/네 요샌 좀 바쁘네요/그래... 뭐 바쁜건 좋은거긴 하다만 건강 조심해라 - 라는. 하기사 내가 지금 아무리 바쁘다 바쁘다 한들 어머니께서 한참 일하시던 그시절보다야 십분지 일도 바쁘지 않을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바쁜게 좋은거라고, 놀아봐야 소용없다고, 일단 일도 많고 그런건 좋은거라고 하신다. 어쩌면 죽을때까지 일하고 싶다 - 라는, 틈만 나면 노동이란 신성한것이여를 외치는 내 성향은 그대로 물려받은게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아주 작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이라도 스스로 끊임없이 무언가의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스스로도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모르는 어떤 생각들의 뿌리를 찾아낼때의 기분은 꽤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주말 이틀동안 이긴 야구를 본 영향도 있고(웃음) 휴가 내내 애인님께 따끈한 기운 받은 덕분도 있고,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한 월요일이다. 그리고 어떻게, 감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도 안날 만치 산처럼 쌓인 일 앞에서 괜한 여유를 부려본다. 괜찮아, 적어도 한계치에 달할 때 까지는, 바쁠수록 힛-업 하는 스타일이라구. 짧았지만 봄나들이도 했었더랬고, 슬슬 져가던 벗꽃이었지만 충분히 예쁜 꽃비도 보고 왔고. 나보다 더 지독하게 달리셨던 C차장님은, 그래도 교육은 재미있더라 - 라고 하시며 눈을 반짝반짝 하고 계시고. 딱히 잔인하지만은 않았던 4월이었다. 그리고 삶의 도처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산다 여전히. 우선은 이정도면 좋지 않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시 한번 힘을 내 보는게지. 그래도 이정도면, 썩 나쁘지 않은 봄날이 아니더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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