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그 둘만의 역사

연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연애의 과정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오롯이 둘만의 역사로 남는다. 이것은 그 연애가 어떤 성격을 띈 것이었냐와도 무관한 것이고, 연애라는 것의 기본 정의와도 관계 없는 이야기다. 단 하루밤의 뜨거운 연애였건 수년에 걸친 잔잔하고 고요한 연애였건 어찌되었건간에 서로간에 그 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그 과정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둘만의 것이란 이야기다. 물론 우리 개개인의, 개인의 역사가 그러하듯 연애의 끝맺음에 따라 그 역사들은 일부 사람들에게,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지기도 하고 그 역사를 듣고 보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들 또한 무한의 가지수를 가진다. 물론, 대단히 서글프게도,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어떤 가슴 시린 가사처럼 둘이 함께 공유한 역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에 대한 감정은 시간이 흐른 뒤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반사다. 한 사람에겐 지우고 감추고 싶은 흑역사가 되지만 어떤 이에겐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지기도 하는거다. 하지만, 어찌되었건간에 중요한것은, 연애가 끝나고 나서 그 역사의 한페이지를 들춰볼적에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것과 무관하게 그 시간들에 그 사람과 함께했던 모든것들은 둘이 함께 공유한다는 거다. 그것이 설령 지나고 나서 미치도록 짜증나고, 아예 시간을 온전히 삭제하고 싶은 감정에까지 들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할 수는 있지만 서로가 함께했던 시간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나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배려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둘만의 역사를 둘만의 역사 그대로 남겨두는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약하고 약한 사람이기에 가슴 아픈 이별을 겪었다거나 그도 아니고 아예 황당하고 기가 차기 짝이 없는 이별을 당했다거나 하는 경우에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위로를 구할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거다. 당장 내가 죽겠는데 상대에 대한 예의부터 따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겠나. 물론 그 순간에도 정말 에라이 개개끼야 (혹은 솽뇬아) 너 한번 어디 엿먹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상대와 알지 못하는, 알 가능성이 가급적 희박한, 혹은 비밀유지가 잘 될 수 있는 지인들 정도에게 이야기를 하고 털어버리는 것이 매너라고 생각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당장 내가 죽겠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짚신벌레라도 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에 그런 저런 둘만의 이야기를 하는것 정도야 사실 원치 않게 스스로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건너간것을 알게 된 그 상대라 하더라도, 그것이 최소한 어느정도 애정을 담보로 한 연애과정 후의 일이었다면 납득할 만 하지 않겠나. 좋아하고 아꼈던 사람인데 힘들고 괴로워 뒷다마좀 깠다는데 그걸 또 이해조차 못해주면 그건 그것대로 거시기한 일일 테고.

하지만 이거야 뭐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것이지 이게 무슨 어디 연애 법전같은데 기록되어 있는 것도, 이별 매너 가이드 Ver1.0 파일에 수록되어 있는 것도 아닌게다. 게다가 둘만의 역사를 참을 수 없이 어디 오픈하고 싶을때마다 구남친 구여친한테 전화 걸어 야 나 이 이야기 해도 되냐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할 적에, 행여라도 서로가 알게 된 후에 느끼게 될 감정들도 사람마다 다 다를것이다. 혹자는 에효 찌질하게 뭐 그런걸 떠들고 다니냐 걔는 하고 넘어갈거고 혹자는 어딘가에서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가슴 짠-한 그 시절의 다시 떠올려볼 수도 있겠지. 고로 이건,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이게 옳다고 주장하거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될 수가 없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실명도 아닌 익명으로 온라인 상에서 구남친 구여친 혹은 하룻밤 연애 상대들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 팍팍 써제낀다고 해도 그 사람이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것이며(물론, 세상은 좁기에 정말 대단히 극히 드문 확률로 알게되는 경우도 있겠지마는) 그게 무슨 대단한 문제가 되겠는가. 욱 하는 마음에 실명 까고 사진 까고 동영상 까고(;;) 그랬다가 쇠고랑 차는 사람들이 까먹을만하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쉽사리 그렇게 하지도 않지. 적어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누구한테 이런거 충고하거나 할 마음도 없고, 그냥 이건 오늘 우연히 이글루에 갔다가 굉장히 해묵은, 하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걸 보고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쓰는건데. 

난 그냥, 그게 안타깝고 안되었더라고.

가끔 온라인상의 어떤 글들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1,2,3으로 등장하는 그네들이. 물론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앞으로도 평생 알리가 없는 누군가들이지만 말이다. 그네들은 그렇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자기 가슴을 물어 삼키던 어떤 남자가 온라인상에서 자신과의 역사를 한 단어로 -잤다- 요약해서 까놓고 키득대고 있을거란걸 상상이나 할까. 그들은 그렇게나 사랑하네 좋아하네 너 없인 못사네 했던 그네들이 돌이켜 보면 참 개쌍놈이었죠 ㅋㄷㅋㄷ 하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까. 어찌되었건 어떤 이들에겐 어떤 무게감으로,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 어떤 기억들이 한낱 술안주감, 아니 그것도 아니고 그냥 온라인에 찍 싸고 마는 똥글 하나 정도로 나뒹굴고 있을거라는 걸 감히 짐작이나 할까. 그걸 안다면 혹시 그네들은 충격을 받을까. 아니면 그네들에게도 똑같이 그정도의 무게감으로 남은 그런 이야기들일 뿐인걸까. 이런건 그냥 어느 고리타분한 아저씨의 쓸데없는 생각과잉일 뿐인걸까 진행형이 아닌 과거로 돌아간 어떤 관계들은 어떻게 그걸 굴려대거나 팔아먹거나 한다고 해도 전혀 거리낄것이 없는걸까. 그렇다면 타인에게 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소설로 써서 누군가 대박을 쳐도 그 타인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면 그 소설가는 스스로에게도 한점 거리낌 없을 수 있는걸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정신작용일까 혹은 다만 이기적인걸까. 만날 적에 이 놈년이 헤어지고 나서 나랑 떡친 얘길 사방에 떠들고 다니지 않을만한 위인인가를 먼저 검증한 후에 연애라는 프로세스를 밟는것이 정상적인걸까 아니 그것은 검증이 가능한 것일까 기타 등등. 을 떠올리다보면.

그저, 누군가들의 상상속에서 제멋대로 각색된채로 둥둥 떠돌아다니고 있을 익명의 그대들에게. 유감이라는.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의 인생에서의 연애들은 더 멋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행여라도 또 이별을 경험한 후에라도, 행여라도 산뜻하고 쿨하게 돌아서고 난 후에라도 뒤통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기를. 건투를 빈다. 고 말할 도리밖에.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고파요, 사람이  (6) 2011.07.12
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8) 2011.06.13
독한 세상이다, 참.  (0) 2011.05.25
나는 블로거다(...)  (10) 2011.05.16
로동의 4월  (0) 201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