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4.08.07 오랫만이야, 좋아보인다 2
  2. 2014.08.01 어른의 연애 2
  3. 2012.01.12 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6
  4. 2011.12.21 사랑 - 7 - (Just because it's Christmas!) 2
  5. 2011.12.15 사랑 - 6 - (사랑해서 떠난다는 그 말)
  6. 2011.11.28 사랑 - 5 - (그때가 아닌 지금) 4
  7. 2011.11.18 사랑 - 4 - (사랑의 성패를 가를 수 있나요) 2
  8. 2011.09.26 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4
  9. 2011.09.19 사랑 - 2 - (60억의 사람, 60억의 사랑) 4
  10. 2011.09.06 사랑 - 1 - (여는 글) 8

오랫만이야, 좋아보인다

오랫만이야. 좋아보이네. 


히에에엑 생각만 해도 손발, 아니 사지가 오그라들어 죽을 것 같은 말이지만 뭐 살다 보면 꼭 본인이 아닌 주변에서라도 한번씩은 하거나 듣게 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일단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구장창 나오고, 친구며 지인이며 지인의 친구며 친구의 지인이며... 요즘은 웃찾사인가? 개그 프로그램도 있더라. 다행스럽게도 나는 저 멘트를 해볼 기회가 없었더랬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대학교 친구 녀석의 사연 하나가 있다. 말복 기념으로(?) 잠깐 읊어본다면. 


오랜 연애를 한 친구 녀석이 있었다. 그리고 무수한 연인들이 그러하듯, 군대를 제대할 쯔음에 자연스럽게 이별을 했었더랬다. 뭐 한쪽의 바람이라거나, 진절머리나는 다툼의 결과였다거나, 집안의 반대였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으니 담백한 이별이었다고 얘기해도 좋지 않을까. 친구의 연인이었던 그녀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정받았던 존재였다. 여러모로 친구에게 헌신적이기도 했었더랬고, 덕분에 철없던 우리들까지도 많은 배려를 받았더랬으니. 술자리에서 종종 농담처럼 얘기가 나올 적이면 '그분은 명예의 전당에 올려드려야 하지' 이런 이야기에 모두들 끄덕끄덕 수긍할 수 있는. 그런 분이었기에 친구녀석이 이별을 선택했을때 여론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뭐 어쩌랴. 게다가 워낙 서로 간섭하는건 죽어라고 싫어하는 친구놈들의 특징도 있었으니 그저 그렇게 넘어갔었더랬는데. 


그만치의 비중을 차지하고 계셨던 분이니 이별 후에도 가끔 술자리마다 절반쯤은 친구를 골리려고, 절반쯤은 우연히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헤어진지 몇해가 지났을까. 언제나처럼 학교 뒤편의 술집에 다들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잔을 기울이던 중에 또 얘기가 나오게 되었더랬다. 그날은 술이 다들 좀 되었을까, 한참 이얘기 저얘기 하다가 어떤 놈 하나가 그놈의 휴대폰을 가져가서 한다는 얘기. '야, 나 네놈이 하도 떠들어대고 그래서 아직 전화번호도 외우고 있어. 내가 한번 전화 해 줘?' 라고. 지랄을 한다 해볼테면 해봐라 옥식각식 왁자지껄 떠들던 놈들을 바라보던 내가. 바로 내가. '뭘 그렇게 옥신각신대고만 있느냐아 -o-' 와 동시에 통화 버튼을 꾸욱. 설마 정말 누를 줄은 몰랐는지 모두가 순간 긴장속에 전화기를 바라보았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유난히 크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는 곧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와 함께 끊어졌다. 뭐 그런거지, 와하하하 차단당한건가 이러면서 언제 그랬냐는듯 까맣게 잊고 다시 화제를 돌려 술자리를 이어가던 중에 한시간쯤 지났나...


그놈의 전화벨이.울.렸.다.


그리고 그렇게나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 순식간에 정적. 생각해보면 아니 뭐 아주 늦은 밤도 아니었던지라 다른 전화가 충분히 올 수 있었을 법도 한데 정말 거짓말처럼 모두가 '그녀다' '그녀야?' '그녀구나!' 를 직감한게다. 그리고 삽시간에 굳어지는 녀석의 표정.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는 녀석을 보고 나머지 모두는 놈이 폭발할것이 두려워서였는지 이런 중요한 대화를 방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는지 일제히 테이블에서 일어나 구석자리로 대피. 그리고 사람이 없던지라 조용했던 술집에서, 나즈막하지만 그렇게나 술을 다들 퍼마신 와중에서도 또렷이 들리던 녀석의 말. 


'어 오랫만이야. 우리 참 어색하다'


...그리고 그 말은 전설이 되어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깊어지는 술자리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멘트가 되었으니. 마치 추억의 화룡점정이요 인생의 한페이지에 남겨진 굵은 마침표요 대연애시대의 새로운 시작과 종말을 알리는 빵빠레와 같은 멘트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아 근데 어쩌지. 오랫만에 떠올린 말인데 타자 치고 있는 손가락이 부끄러워서 오글오글. 아 저게 맨정신에 떠올려보니 사지가 오그라드는 기분이 두배로구나. 그땐 또 나름 간지 났었더랬는데 지금 와서 떠올리니 뭐 이 중2도 아니...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던 사연, 멘트라 썰이 좀 길어졌지만 이어가보면 그렇다. 앞서 얘기했듯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저런 멘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게 될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뭐 사랑했던 사람들과 다시는 얼굴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끝에 끝을 보고 헤어진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어쩌면 이별 후에 꽤 오래 나를 미워하기도 했었겠지만 그런 경우는 제껴두고라도. 배에 붙어 가는 나이살들에 슬슬 골이 아파지는, 정말로 아저씨가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도 가끔 센치해지거나 감상에 빠지는 날들이 되면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생각이 나는 이들은 있다. 가끔씩은 정말로 거짓말같은 우연처럼 한번이라도 스쳐가며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건 정말 찰나다. 그런 마음이 일어났다가도 금새 도리도리하게 되는거다. 그건 단순히 우연히 마주쳤을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스스로 손발과 사지를 오그라들게 만들 어떤 멘트들을 하게 될까봐 그래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나름의 어떤 주관과 고집의 산물인데 이를테면 이런것. 


과거는 과거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어느 시절엔가 그렇게 전력으로 사랑했던 나는 그 시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거다. 지금의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또 다른 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서 아쉬움, 미련 같은것들 한점 없이 쿨하게 맺고 끊어지는 관계가 어디 그렇게 많겠나. 공을 들이고 마음을 다했던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무얼 어쩌겠는가. 그렇게 드라마같은 우연으로 마주치게 되어, 충분히 '좋아보인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좋아보이면 어떨까. 다행이겠지. 다행이라서 뭘 어쩌겠는가. 다행이야 그때 내가 이별하길 잘했지 하며 웃기지도 않는 자위라도 할건가. 날 버리고 가더니 잘먹고 잘사는구나 하며 잔디라도 한움큼 뜯어먹은 기분으로 입맛이라도 다실건가. 그게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라도, 설령 순수한 기쁨만 있다 하더라도 남는건 없다. 그리고 장담컨데, 그 사랑이 뜨겁고 강렬했을 수록 그런 우연한 재회에서 남겨지는 감정의 찌꺼기들이란건 8할이 마이너스쪽이겠지. 


게다가 행여라도, 차마 인사치레라도 좋아보인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떻겠는가. 세월의 흔적이 조금 더해진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과거의 모습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게끔 변해버린 모습이라면 그 말도 못할 씁쓸함들은 어쩌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끊임없는 기억 속에서의 미화 버프를 받아 눈이 부시도록 빛나고 있던 그 모습들의 잔재가 개미 눈물만큼도 남아있지 않다면 어쩌겠는가. 꿈꾸던 미청년이 연신 식은땀을 훔쳐가며 기름진 배를 뒤뚱거리면서 걸어가는 아저씨가 되어 있다면 어떻겠는가. 꿈 속의 여신같았던 그녀가 애들한테 신경질 부리는 뚱뚱한 뽀글이 파마의 중년 아줌마가 되어 있다면 어떻겠는가. 이미 무수하게도 많은,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까진 아니어도)의 결과로 '괜한 짓을 했다'는 증언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이 먹을수록 삭막해져가는 세상살이에서, 삶의 어느 순간 문득 떠올리면 그리운 마음이 일어나는 사람 하나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얻기 힘든 축복일 지도 모른다. 그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추억은 추억 대로 사랑은 사랑 대로 그대로 두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if (그때 내가 이러저러요로그러 했더라면)  같은 의미없는 조건문들을 띄워보며 마음을 괴롭게 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그것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충분히 그리운 마음이 들 만치 좋은 사람이었던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의 증명이다. 살아서 나와 마주치는 우연이 없다 해도 분명히 그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스스로 꿈꾸던 일들을 이뤄가며, 밝게 빛나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굳은 믿음. 누군가에게 그런 믿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또 얼마나 복된 일인가. 설령 그걸 알 수야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쓸데없이 길게 늘어졌지만 뭐 결론은 그렇다. 지나간 것들은 그저 가끔 그리워할 수 있는 그것들로 남겨두자. 괜히 상투적 표현들로 손발 오그라들어가며 어버버버 할 일은 바라지도 만들지도 말자.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연찮게 마주쳐서, 그것도 어디 길가다가 모른척하고 폭풍처럼 스쳐지나갈 수도 없게 딱 마주쳐서 무언가 한마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차라리 이런건 어떨까. 표정도 대사도 어디 드라마에서 많이 본듯한 그런 것 말고, 깜짝 놀랄만치 솔직해진 한마디를 해보는건 말이다.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두어번 뛴 다음에 어마무지하게 환하게 웃으며, 아니 이게 누구야! 진짜 진짜 보고 싶었더랬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이런거 말이다. 적어도 씁쓸함보다는 누군가 나를 오랫동안 그리워했었구나 하는 마음에 서로 잠시잠깐 행복해지기라도 하게 말이다. 아 아냐. 무엇을 상상하고 설령 무엇을 연습해 놓는다 하더라도 정작 그 순간이면 대뇌의 전두엽이 작동을 멈출 수도 있겠지. 그러니 역시 이런건 그냥 상상만으로 그만두자. 마무리로 노래 한곡 띄워 드립니다(진짜 띄우는건 아니고). 버벌진트가 부릅니다. 좋아보여. 

어른의 연애

적어도 해는 넘겼을거다. 제목에 적은 저 말이 어느날 뜬금없이 어디선가 날아와 입에 콱 박힌 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텐데 해를 넘기는 시간 동안 이유는 잊어버린채 콱 날아와 박힌 저 타이틀만 가끔씩 오물거리게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나 오래 블로그에 글 쓰는 일을 멀리하고 살았음에도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저 타이틀로 무언가를 써봐야지 하고 생각해 왔던 거다. 그리고 그게 오늘이다. 휴가 시즌의 절정, 극 성수기,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 출근길 버스도, 사무실도 한산하고 괜히 그 한산한 사무실의 여파로 남아있는 사람들까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금요일 저녁. 시간은 직장인들이 하루 중 가장 일하기 싫어진다는 4:33분 언저리께. 야 좋다. 비록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작업 목록이 화면 한구석의 엑셀 차트에서 신경을 긁고 있긴 하지만 이보다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오늘에야말로 얼마나 오물거리고 있었는지 모를 저 문구를 시원하게 뱉어보자.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는 글이지마는. 


어른의 연애란건 뭘까?


무신 놈의 선문답을 하겠다고 뜬금없이 질문을 하나 딱 띄워보니 야 맞다 그랬더랬지 - 하며 그 문구가 콱 날아와 입에 쑥 들어오던날의 느낌이 살아난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어른의 연애'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어떤 글을 썼었더랬고, 그걸 읽었더랬지. 근데 그게 썩 개운치가 않았던거야. 뭐 사실 연애나 사랑이란게 뭐랄까, 좀 뜬구름 잡는 얘기기도 하고 그러니만치 누군가들이 정의하는 어떤 연애들이라는게 다 다르고 그럴 수 있다는건 분명히 알겠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의 모호함이 저 말을 그렇게 오랫동안 오물거리게 만들었던것. 그러니까 뭐 그렇다. 어른의 연애라는 걸, 아니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연애는 어떤 것이라는걸 좀 정리해 두고 싶었어. 그래서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띄워본다. 어른의 연애라는게, 어떤 것일까?


아주 간단한 것 부터 시작해보자. 나이로 나눠보는건 어떨까. 미성년자의 연애는 미성년자의 연애. 성년의 날 지난 다음에 하는 연애는 어른의 연애. 에이 이건 아닌것 같지? 그렇게 따지면 왜 청년의 연애 중년의 연애 노년의 연애 다 나누지 왜. 그럼 또 뭐가 있을까. 아 그래, 데이트 패턴같은 것으로 구분해보는건 어떨까. 김밥천국같은 데서 밥먹고, 놀이동산에서 두근두근 데이트하고, 독서실에서 쪽지 던지면서 알콩달콩해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성인 분장(?) 해서 어디 술집이라도 뚫어보려고 애쓰고 그런다면 애들의 연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칼질하고, 와인 한잔 기울이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하고, 평일 저녁에는 만나서 영화보고 술마시고 주말에는 교회 드라이브 - 이런 코스라면 어른의 연애. 어쩌면 조금 정확해진 분류같긴 하지만 어쩐지 모호하고 밋밋한건 여전해. 게다가 뭐 어른이라고 떡볶이 먹고 손잡고 두근두근하는 연애 하지 말란법도 없고 말이다. 그럼 이것도 땡 탈락. 


조금 19금으로 가본다면?


그래 뭐, 과거에 비해서 세태가 많이 바뀌어서 요즘은 뭐 애들도 할건 다하고 알건 다 안다지만 그래도 얼추 평균적으로 본다면 역시 어른의 연애와 애들의 연애를 나눌 수 있는건 스킨쉽이지. 딱 그어보자. 손잡고 뽀뽀하고 포옹까지만 -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아. 철수야 우린 아직 학생이잖아. 우리가 커서 어른되어 결혼하기 전까진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래 영희야 우리 커서 꼭 결혼하자. 그 전까지 내가 지켜줄께 뽜하하하 - 하면 애들의 연애. 이거 왜이래 아마추어같이(혹은 촌스럽게). 우리 한번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불살라보자구!!!!! 나도 마...만질거야!!! 등짝을 보자!!! 파...파워 쎼ㄱ(...) 하면 어른의 연애. 음 그래. 뭐 나름 설득력이 있나? 라고 해봐도 여전히 별로. 이건 뭐랄까, 아 다르고 어 다른거지만 어른의 연애라기보다는 성인의 연애같은 느낌이고. 아니 게다가 뭐 그럼 애들도 파...파워쎽... 만 하면 당장 어른 되는건가. 이건 뭐 어른 되고 싶어서 아부지 술 훔쳐마시고 겉담배 피워보는 애들도 아니고. 


이쯤에서 동네 교회 목사님같은 어조로 그냥 쾅쾅 해버리는건 어떤가. '뭐헛헛헛 여러분 잘 들으세요. 어른의 연애라는 것은 말입니다. 성인이 된 남녀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가짐으로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고 나아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한명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건전하고도 올바른 방식의 이성 교제를 통칭하는 말이랍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목사님도 있을 리가 없을 뿐더러(혹시라도 있는건?) 있더라도 잔뜩 삐딱한 아이 한명이 당장에라도 '아닌데요?' 하고 손들고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뭐 연애의 목적이 결혼만 있는겨? 그럼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연애는 다 풋내기의 연애여? 말짱 황이여?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쭈욱 사족이라고 치고 이제 슬슬 정리해보자.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아마도 모두가 다 딱 이거다 하고 정의내리기도 어려울거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정의할 수도 있을거야. 하지만 일단 내 생각은


서로를 연애 상대로서만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줄 수 있는 관계 - 라면. 그렇다면 어른의 연애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어찌되었거나 연인이란건 적어도 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다. 근데 안타깝게도 때로는 그 특별함이 관계에 있어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볼때, 남자 여자를 떠나서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면 절대로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을 것들을 단지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할 수 있을 것을 연인이 행한다면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하면서 대역죄인처럼 몰아헤우기도 한다. 눈먼 소유욕과 집착으로 끝도 없이 관계를 수렁으로 밀어넣기도 하고, 달콤함을 기대하고 한 연애에서 잠시잠깐 쓴맛이 느껴진다고 에비 퉤퉤하며 뱉어내기도 한다. 어제는 좋아서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을 것처럼 목을 매달다가 오늘은 갑자기 카톡으로 우리 이제 그만 만나 - 라는 무성의한 메시지 하나를 날리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어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처럼 굴어서 하룻밤의 달콤함을 얻어내더니 오늘은 아 왜 이렇게 질척거려 - 같은 아구창을 돌리고 싶은 멘트들을 던져대기도 한다. 


니가 내 마지막 사랑이야... 라는 말 앞에 (올해의), (이번달의) 같은 수식어를 고의적으로 누락하기도 하고 연애를 하자는건지 강탈을 하겠다는 건지 네것은 내것 내것도 내것 이러면서 물질적인 이득만을 갈취해내기도 한다. '태풍이 올라온다니 우리 이제 헤어지자' 급의 황당한 이유로 먼저 이별을 선언해 놓고는 좀 맘좀 추스르고 정신좀 차릴라 치면 인간이 가장 고독해진다는 새벽 두시 자니? 와 같은 전통적 멘트로 잠을 깨우고 추스르던 정신까지 와장창 깨놓기도 한다. 나에게는 30여명쯤의 언제라도 나를 위해 달려와서 술사주고 영화 보여주고 같이 놀아줄 '아는 오빠' 가 있지만 네 휴대폰에 여자 전화번호가 있는건 용납할 수 없다 우아아앙? 같은 극단적인 비논리성으로 상대를 피말리게 하다가 결국 알리바바와 30인의 교회도둑(?)중 21번째 도둑으로 환승하기도 한다. 


오해는 곤란하다. 나는 이 모든것들이 연애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어떤 형태의 연애건간에 '에이, 그건 연애도 아냐~ 사랑도 아냐~'같은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것들은 또 그 나름대로 누군가가 이름붙인 누군가의 연애다. 흔히 부르는 막장연애라고 마냥 가치없는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것들을 '어른의 연애' 좀 더 정확히는 '어른스러운 연애'라고는 부르지 못하겠다는 거다. 마치 어른이라는 것이 나이만 먹는다고 그냥 어른이 되는게 아니듯이, 연애도 나이 든 사람들끼리 연애한다고 그냥 어른의 연애라는게 아니라는 거다. 몸뚱이만 어른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를 그만치 처먹고도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상대에 대한, 인간으로써의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굳이 어설프게 '어른의 연애'를 흉내내고 싶어하지 말고. 


싱거운 결론이지만 결국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스스로가 '진짜 어른'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면. 삶이라는 것의 무게감도, 인연이라는 것의 귀함도 깨달은 어른이 된다면. 당신의 연인이 당신의 연인으로써만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 하나의 사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것. 아쉽기도 하겠지만 당신과 운명의 붉은 실로 엮이기 위해 독고다이로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나름의 관계들 속에서 얽히고 설키며 살아왔고 그 관계들까지 포함한 전부가 그 사람 하나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연인으로써의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조금 옅어지는 순간들이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써의 매력들을 바라보고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인내심과 진지함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평생 연애는 즐거운 것만 보고 살래/즐겁지 않은 연애를 할 바에야 고자(?)로 살래/풋풋함과 설렘 빼면 그게 연애야? 그런걸 왜해? 이런다 할지라도 스스로의 성장에 따라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새 '어른의 연애'를 하게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이야기다. 오랫동안 오물거렸던 이야기들은 무언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일단은 금요일 저녁이니. 어른의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끝. 

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파주의 겨울은, 제법 차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딛었던건 6년전의 일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다 보면 그때보다는 이런저런 상점들도 많이 들어섰고, 못보던 공장들도 몇 군데 더 생겨났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무언가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에지간한 공장지대가 그렇듯 여기도 여전히 풍경은 '황량하다'라는 말이 아직은 근사하게 어울린다. 구내식당의 짠밥에 지쳐 가끔 나가서 점심이라도 먹으려고 차를 타고 조금만 나서면 펼쳐지는 논과 밭, 늦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별빛들이 또 따져보면 서울에서 그렇게 거리가 먼 것만은 아님에도 뭔가 굉장히 먼 시골동네에 와서 있는 듯한 느낌을 더해주는 것이다. 

한참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기대와 설렘의 술잔을 부딪쳐야 하는 연말 연시에 그것도 빵꾸난 사이트 오픈 지원을 온 데다가 셔틀버스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있고 그걸 놓치면 출근시간이 두시간을 육박해버리는 통에 이래저래 최근 많이 궁시렁대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파주는 그런 달갑지못한 상황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썩 반가워하기만 할 수 있는 동네는 아니다. 그건 바로 이곳에 처음 발을 딛었던 2006년의 가을에, 어느 노래가사처럼 겁이 날만큼 미쳤었던 사랑의 기억이 그대로 머물러있기 때문인게다. 언제나 뜨거운것은 그렇다. 두고 두고 그 열기를 떠올리면 후끈후끈 달아오르다가도, 이제는 멀어진 열기다 하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던가. 한 겨울 차가운 방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자면 그렇게나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더 힘이 든 것 처럼. 그래서 야근 중에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뭉클 떠올라오는 기억들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이렇게 또 자판을 도닥인다. 

그렇게나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던 것 같던 그 사랑. 그 열정과, 사랑의 지속에 대한 이야기. 

*

겪어본 사람은 알거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파주라는 이 동네에 와서 그 뜨겁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는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과 여기 파주에 왔던 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을적에 이 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은 그 기억만으로 가득한 장소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괴로운 마음에 보드카와 데킬라를 하룻밤에 혼자 모조리 마시고 다음날 출근해 좀비가 되어 구석에 짱박혀 찌질대던 공장 옥상,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가 뭐라건간에 일은 해야지 - 라고 하며 매달리던 워킹 머신이 앞뒤 안가리고 눈치고 나발이고 다 팽개치고 매일같이 미친듯이 칼퇴근해서 달려갔던 경의선 철도역이며 열차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길가에서 항상 하늘거리고 있던 들꽃들이며 등등.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이 들때까지 전신의 신경이 다 그 사람만을 향해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함께 있을때는 단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 심장이 터져나갈듯 뛰어대서 스스로의 귓가에 북을 치는듯한 심장소리가 들려와 그 소리가 상대에게 전해질까 두렵기까지 한 그런 기분. 모든 판단과 모든 행동의 기준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상대의 감정선을 따라 똑같이 감정선이 일렁이고, 작은 말,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심한 감정의 소모를 경험하고, 끝없는 애착으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에 시달리고,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달콤함과 사지가 뜯겨나가는듯한 괴로움이 순간순간 교차하는. 무슨 약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만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심까지 되는 한계점까지의 감정의 고공비행. 그런 상태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 모든것이 과거가 된 어느 날에는, 다시 하라 그러면 도저히 못하겠네 -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 

어찌되었거나 나야 뭐 살아가며 한번쯤은 그런 것도 경험해 보는게 인생이 더 재미있어지는것 아니겠냐 - 는 입장이고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그 행복감만큼 느껴지는 괴로움을 호소할때 그저 '즐겨요 그 기분. 낄낄낄' 이라고, 어깨에 힘 빼고 그저 즐겨보라고 말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당사자에게 있어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건 분명히 안다. 힘이 빠져야 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게 마음대로 되나. 겨우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차분히 뭔가 생각이라도 좀 해보려 한다 해도 언제 그랬냐는듯 또 정말 아주 사소한 일 하나만으로 꿀렁꿀렁 밀어닥치는 감정의 파도가 머리를 가득 메우는데 그게 쉽겠냐말이다. 그러니 뭐, 즐겨요 그 기분 - 이라고 할 수 밖에. 스스로는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그렇게 해야 하는걸 모르겠나. 그게 안되니까 못하는 거지. 근데 굳이 옆에서 잔소리해봤자 그게 먹히겠냐 - 그런 생각이랄까. 

하지만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적어도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이렇다. 그런 어떤 극단적인 도취상태 - 는 말 그대로 사랑의 어떤 일면이고, 강도의 차이야 있어도 사랑하고, 사랑해서 연애하고, 뭐 그런 관계의 시작단계에서는 대부분 빠지지 않고, 선물처럼 다가오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게 사랑의 '지속'에는 그렇게 썩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거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것의 최대 딜레마는 밥을 먹여줄 수가 없다는거다. 사랑한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그런거다. 근데 이게 그런 고양감속에서는 마치 밥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고(정확히 말하면 밥이고 뭐고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고), 덕분에 이래저래 현실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써의 '생활'에는 어떤 삐걱대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거다. 그럼 뭐 어떻게 해야되. 일단 삶에 무리수가 생기면 그래도 좀 머리속에서 열기가 빠지게 마련이지. 근데 그게, 운 없게도 정말 많은 경우에 그러한데. 

타이밍이 달라. 그렇게나 함께 날아올랐던 두 사람인데, 한명은 연료가 바닥이라 비상 착륙이라도 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한명은 무슨 대기권을 뚫을 기세야. 이러면 이거 심각한 상황이 오는게다. 그러다보면 뭐 그런 얘기 나오게 마련이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흐엉엉엉. 아니 그게 사랑이 변했다기보다, 사랑도 쉼표가 필요하다, 충전이 필요하다 뭐 그런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건데 그게 또 쉽나. 아직 머리에서 열기가 덜 빠져나간 사람 입장에선 막 두렵고 공포스럽기만 한거지. 그러다보면 또 서로 무리수 반복. 그리고 정말 그런 부분들이 어떻게 조율되거나 수습되지 않으면, 정말 운 없는 경우라면 그저 그렇게, 사랑했지만 서로 등을 돌려야 하고 그런 상황도 오게 되는거지. 

*

이게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 그런가.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막 뽜이아 하고 있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 아무래도 좀 걱정이 앞선다. 아니 뭐 에지간히 좋고 샤방샤방하고 그런건 여전히 그냥 보면 좋고. 으헣허헣 청춘이로세 하며 멋진 비행 되길 - 이라고 빌어주고 마는건데 이게 좀 뭐랄까, 어 어 어, 그... 음... 어... 캄 다운 캄 다운 - 하며 이마에 얼음주머니라도 얹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보이면 그게 좀 걱정된다는 거다. 무슨 관제탑의 심정으로 레드 얼럿이라도 날려주고 싶은 기분. 고도 제한입니다 고도 제한입니다(웃음). 지금 파트너는 추락 직전이에요! 고도를 낮춰요! 착륙 준비하세요! 이런 거. 나중에 애 낳아서 첫 연애할때는 진짜 관제탑처럼 저러고 있을 수도 있어(푸풉;) 

정리하자면 이런거다. 사랑? 좋지. 좋은거지.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맺는 '관계'는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거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사랑만큼 쉬운게 어디 있냐. 당신이 좋고 좋고 좋고 좋아서 좋아 죽겠네요 - 이게 뭐 어려워. 근데 너와 내가 어떤 관계로 그런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며 얼마나 오래 서로 원하는 간격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공존할 수 있는가는 좀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서로의 삶, 서로의 인생, 서로가 맺고 있는 다른 관계들, 서로의 미래,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고민을 해야 하는데 뇌세포가 다 탔어?!?!? 이런 상황이면 좀 낭패다 이거지. 사랑에 빠졌다? 감정은 즐기되, 관계의 형성과 지속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는 것. 이게 요지란 거다. 

뭐 고대 벽화에도 요즘 것들은(...)이라는 낙서가 되어있다고 우스개소릴 하지만 모르겠다. 요즘 젊은 아가들을 보면 많이 영리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는 좀 많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한 부분이 있으니 오히려 그렇게 인생은 봐닝 럽!!!!!!!! 을 외치며 활활 불타오르기만 하는 경우가 더 드물어졌을지도. 그래도 청춘엔 불태웠어 새하얗게를 외쳐보는것도 좋은건데(웃음). 나이들어 타면 정말 재가 되요. 재생이 안될 수도 있어?!?! 어찌되었거나 지금 타고 있는 사람은 조금 열기를 가라앉히고 서로 수신호를 날리면서 어디쯤 날고 있는지를 잘 확인해가는 안정적 비행 하시길 바라고, 또 너무 소심하게 지상 3미터 이상 날면 추락할때 사지가 분쇄되지 않을까 하시는 분들은 좀 시원스럽게 날아보시길 바라고, 아직 활주로에 대기하고 계신 분들은 올해 반드시 함께 멋진 비행을 할 짝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사랑타령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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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7 - (Just because it's Christmas!)


드디어, 눈이 내렸다. 내가 보는 올해의 첫눈이다. 작년은 겨울의 피크를 부산에서 보내느라 눈이란건 제대로 뭐 구경도 못하고 지나간 것 같은데 그래도 올해 겨울에 몇 번쯤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꽤나 소심하게 내린 눈이라, 그것도 출근길에만 잠깐 보고 곧장 사무실에 들어와야 했던지라 여전히 첫눈으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눈은 눈 아닌가. 그래 그러니 뭐, 눈오는 날엔 사랑타령이 제맛이지. 마침 크리스마스도 코앞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에 얽힌 기억들이나 더듬어보며 사랑타령을 시작해보련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

30대 초반까지는 매년 꼭, 한번씩은 찾아보는 영화들이 있었다. 첫번째가 멜로영화의 탑으로 꼽는 If only 요, 두번째가 이터널 썬샤인이요, 세번째가 러브 어페어다. 정말로 한해에 한번은 일부러라도, 혼자 쉬는 날 틀어놓고 주책맞게 훌쩍거려가며 꼬박꼬박 챙겨보곤 하였는데 이제 그 정도까진 아니고 어디서 우연히 연상작용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들을 만나면 한번씩 찾아보고, OST를 들어보고는 하는 정도. 그리고 그렇게 일부러 찾아서, 챙겨서 보지 않지만 거의 매년에 한번씩은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러브 액츄얼리.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용 영화로 최고로 꼽는.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하면 나홀로 집에를 떠올리는 분들이 아마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겠지만... 케빈은 좀 그냥 냅둬라. 애가 큰지가 언젠데. 아무튼 처음 본 이후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시즌 쯤이 되면 어딘가의 방송에서 꼭 한번씩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고, 그게 또 봐도 봐도 재미있기에, 또 한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꼭 끝까지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탓에 매년 한번씩은 꼬박꼬박 보게 된다는거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요 영화의 매력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들의 사랑에 그때그때 다른 커플들에게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도 역시 메인 커플이라고 해야하나 - 무수한 패러디를 남기고 골백번도 넘게 어디 무슨 하이라이트 같은거에 꼬박꼬박 등장한 커플, 그리고 그 사랑, 그리고 그 명장면만큼은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게다. 그, 왜, 사실 따져보면 되게 불쌍하긴 한데 불쌍해서 더 극적이고 뭔가 간지나는 스케치북 프로포즈의 주인공들. 친구랑 결혼한 여자한테 찾아가서 스케치북 한장씩 넘겨가며 정말 담백하게, 덤덤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 장면. 캬 - 그야말로 명장면이다. 아마 그거 따라 프로포즈해서 혹해 결혼한 사람들도 많을거야. 꼬꼬마 연인들 100일 200일 이런거 챙길때도 많이 사용되었을 게고. 역시 좋은 영환데?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장면에서 내가 제일 감동했던 부분은 바로 스케치북의 그 페이지였다. 크리스마스엔 거짓말을 하면 안되잖아요 - 라는 부분. 스스로의 입장도, 상대의 입장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뭐 지금에 와서 당신과 뭐 어쩌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이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미친 짓이란것도 알고 있다. 또는 내가 이 짓을 함으로써 당신과의 관계가 굉장히 서먹스러워지거나, 아 뭔가 친구 보기 민망해지거나 할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당신의 어떤 리액션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그냥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해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갈건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좋은 핑계를 통해. 그 모든 마음들이 고스란히 그 페이지 안에 담겨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캬 이거 진짜 대박이구나. 간디 작살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러니까 뭐, 무수한 이들이 크리스마스는 예수를 만드는 날이 아니라 예수가 태어난 날이여! 를 외치며 닝기리 도심의 러브호텔들만 특수를 누리는 요즘의 크리스마스를 목소리 높여 비난하고는 하지만 그냥 내 생각은 그런거다. 저렇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 크리스마스란 좋은 핑계가 존재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게 아니냐 하는. 아니 그러니까 뭐, 요지는 인생 너무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잖수, 그런 얘기란거지.

*

조금 더 썰을 붙여보자면.

사랑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를 겪는 이들을 대할적마다 날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정말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운명의 빨간실같은게 있어서 딱 짝이 정해지고, 그 짝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그 짝과 함께하게 되기 때문에 사랑함으로써 아픔도 슬픔도 겪지 않는 그런 세상이면 어떨까 하는. 뭐 망상일 뿐이다. 어찌되었거나 살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에서는 참 많은 그런저런 사랑들이 남겨지게 마련이다. 사랑했었으나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사랑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면서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흐엌엌 추임새나 넣으며 괴로워하는 사랑도 있고, 잦은 다툼과 오해들이 조금씩 조금씩 누적되어가며 그 빛이 옅어져가고 있는 그런 사랑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거나 해서 말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사람도 있고, 선의의 거짓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있지만 어떤 부분을 감추고 숨기는 통에 영 찝찝하고 괴로운 사랑도 있고, 내가 저 사람이 정말 좋긴 한데 행여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저 좋은 사람을 그냥 잃게될까봐 겁나서 엄두도 못내는 경우도 있고... 사랑한다고 할말 못할말 다 하는거 아니잖은가. 얼마나 무수한 말, 말, 말들이 사랑의 과정에서 그대로 묻혀가는가.

물론 어떤 말들은 그것이 그대로 스스로의 기억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게 좋은 경우도 많다. 크리스마스라고 삘받아서 술마시고 멀쩡히 새 사람 만나 잘 살고 있는 전 애인 집에 찾아가 문 두드리며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엉엉 하고 난리치면 그건 그것대로 식어빠진 설렁탕 국물맛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이 사회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들을 바라본 경험에 따르면 적어도 그렇다. 굳이 감출, 굳이 참을, 굳이 못할 이야기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꿀꺽꿀꺽 삼켜낸다는 얘기다. 사랑한다는 표현, 좋아한다는 표현,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표현... 그 많은 표현들을 너무 많이 아낀다는 얘기다.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지극히 쫀쫀하고 인색하다. 그리고 용기들도 부족하다. 큰일 나는 얘기도 아닌데, 말하고 나면 굉장히 시원할텐데, 그럴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건 어떨까. 한때 꽤나 많은 연애상담들을 받고 있을 적에, 내가 가장 많이 반복했던 이야기는 바로 이 얘기였다. '지금 내게 하고 있는 이야기를, 당신의 연인에게 가서 차분히 들려주라고. 화내지 말고, 차분히, 진심을 담아서' 그것들이 어떤 이야기건간에.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예를 들어 고백을 망설이고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해줄 수 밖에 없는거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믿으라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진심을 담아 건넨 얘기에 무례하게, 가볍게, 진지하지 못하게, 혹은 반대로 정말 무겁게, 공포에 질린(;;), 공황에 빠진(;;) 그런 반응을 보일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고. 만약 정말 그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거라고. 그렇지 않은가?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거짓없이. 왜냐면, 크리스마스니까! 라고, 해주고 싶은거지.

*

그게 여보 미안해 고마워 - 건, 아빠 죄송해요 사랑해요 - 건, 그냥 당신이 너무너무 좋아요 - 건,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용서해주세요 - 건간에. 무엇이건 좋지 않을까. 일년에 한번, 솔직해져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좋겠지. 연말이고, 한해를 저물어가는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런 말들이 많이 가슴속에 쌓여 있을테니까.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정직하게, 진심을 담아 - 를 강조해대는 이유는. 어쩌면.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실 크리스마스때 꽤 곤혹스러운 일들도 많이 겪었더랬다. 시트콤같은 기억들만 한가득 남겨진 크리스마스도 많았더랬지. 헌데 그게 다 소시적 추억의 한페이지요 청춘의 흔적이요 뭐 대부분은 그런것으로 남겨져 있는데 꽤나 후회스러웠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있다. 간단히만 얘기하면, 그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에 솔직하지 못했더랬고, 덕분에 꽤나 쓰린 기억들이 남겨졌다. 그게 정말 그것 때문은 아니란걸 잘 알면서도, 내게 있어 원망할건 크리스마스에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밖에 없었기에, 꽤나 오랜기간동안 그것이 후회로 남겨졌던 것이다. 그때 솔직했더라면, 용기를 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조금은 많은것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물론 후회는 언제 해봐도 때가 늦었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나쁠 것 없지 않은가. 그저 마음일 뿐인데. 아니 뭐 어떻게 하자는건 아니고, 그냥 당신이 굉장히 좋아요 - 그 한마디라도. 크리스마스엔, 거짓말을 하면 안되니까 말이야. 그렇게, 조금은 조용하고 담백하지만, 부끄럽고 조심스럽지만, 그 마음들이 담은 열기는 도심을 활활 불태울 러브호텔들의 열기따위에 밀리지 않는 그런 뜨끈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사랑타령은 여기까지. 눈도 멎었고, 햇살이 비치는고나. 어헣허헣.

사랑 - 6 - (사랑해서 떠난다는 그 말)


몇 해 전의 일이었나. 이글루에서 어느 날 어떤 글 하나를 올렸다가 올라가자마자 비공개로 남겨지는 몇몇개의 항의 덧글에 아 생각이 짧았구나 뉘우치며 글을 내렸던 적이 있었더랬다. 사실 지금처럼 조용하게 혼자 깨작대고 있는 이 공간에서라면 그럴 일도 없겠지마는 당시야 어쨌든 뭐 하나 쓰기만 하면 그게 이래저래 스스로 예상치도 못했던 반응들을 이끌어내고 덕분에 당황하게 되고 하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랬던것이 너덧번은 있었더랬나. 근데 사실, 워낙 반성은 아낌없이 잘 하는 인간인지라 그때마다 그냥 맘 불편하다 하시는 분들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뭐 별 글이라고 하며 글 내리고도 적당히 툭툭 털어내기도 하곤 했는데, 유난히 그중에 위에 이야기했던 그 한번은 그게 꽤나 억울하고 답답해서 마음을 꽤나 괴롭게 하였더랬다. 그리고 그런 답답함들이 쌓인것도 내가 그곳을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하였더랬고.

그 글의 내용이 뭣이었냐 하면 그런 거였다. 간단히만 요약해보자. 사랑해서 떠난다는 그 말, 그거 말은 이쁘게 곱게 멋지게 간지나게 들린다 해도 따져 보면 변명 아니냐. 아니 그리고 정말 그래, 사랑해서 떠난다고 간지나게 등 돌렸으면 어찌되었거나 등 돌린 주제에 집착하고 매달리고 사람 헷갈리게 들었다 놨다 하는건 예의가 아닌거 아니냐. 결과적으로 내 힘으로 그 사람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서 등 떠밀어 밀어보낸거면, 그거 꼬리 내린 개꼴인거 아니냐. 꼬리 말고 도망친 개는 짖지 않는게 예의 아니냐. 뭐 그런 내용. 그게 얼마전에 모종의 이유로 이글루의 내 글들을 다시 정주행 할 일이 생겨서 우연찮게 다시 읽어보았는데 그 당시로써는 사실 꽤나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날이 시퍼렇게 서있고 냉소가 만연한 글이었던지라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 읽었을적엔 울컥 하고 화가 날만도 했었더랬다. 꼬리 내린 개라는 표현을 보면 알법 하지 않은가. 헌데 그게 그렇게, 오래 억울함으로 남았던 이유는.

그게 얼마나, 서글픈 자조였는데.

뭐 그러니까 그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정말로 악용하는 어떤 놈팽이에 대한 사연을 듣고 나 또한 울컥해서 쓴 것이었는데 글을 쓰면서는 한없이 스스로 자조적인 심정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날이 서고 냉소적인 글이 나오게 되었더란 얘기다. 결국 그 글에서의 꼬리 말고 도망친 개자식(;;)은 바로 다른 누구를 가리키는게 아닌 '나' 였던것. 그렇게 스스로 무한 자조에 허우적대고 있는데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난리를 치지요 아무튼 그래서 꽤나 억울했었다는 그런 얘기다. 그래서 그냥, 이제는 뭐 지난 일이니까 다시 한번은 얘기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 쓰는 글이다. 꼬리 말고 도망친 개 특집... 은 아니고 다만,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누군가들로 인해 오래오래 가슴 시려하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또 사랑해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안쓰러운 누군가들에게 조금의 위로나마 전해보고자 하는. 그런.

사랑, 그 망할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

근데 사실, 여전히 네놈이 반성을 못했구나 해도 할 말은 없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되게 막 뭐가 있어보이고, 막 가슴아프고 애절하고 절절하고 그런 사연들에만 얽혀서 주로 등장하는 대사니까 막 그런건데 현실을 보면 물론 정말로,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혹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피치 못할 어떤 이유들로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외려 저 있어보이는 멘트를 악용하는 경우도 엄청 많더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거 되게 흔하잖은가. 막 사랑해 좋아해 너 없인 살 수 없어 생 난리를 치다가 어느날 뜬금없이 으엌엌 아냐 난 물벼룩만도 못한 인간이야 널 사랑할 자격이 없어 널 위해 떠나줄끄어야 으엌엌엌 하며 일방적으로 이별 선언하더니 금새 딴 놈년 끼고 나타나는 것도 부족해서 가뜩이나 속이 말이 아닌데 어느날은 술처먹고 전화하더니 사실 여전히 널 사랑하고 있는데 있는데 있는데 이지랄. 이게 무슨 말이야 망아지야. 날 사랑하면 나랑 있으라는데 왜 설렁탕을 사와도 쳐먹질 못하니... 아 아무튼 이런 상황. 그런 상황에서 뻔질나게 악용되는 멘트가 저런 멘트 아닌가. 이게 다 짐이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해. 사람 막 혼돈의 카오스로 집어쳐넣는 그런.

아마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때야 또 한참 연애상담 받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어딘가에서 저런 비슷한 상황에 대한 상담을 받고 처음에 울컥 했던 것 같은데 정말 뭐 저런 상황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단 하나다. 언젠가 친한 처자가 저런 비슷한 멘트로 사람 헷갈리게 하는 놈팽이한테 걸려서 괴로워할적에 굉장히 직설적으로 날려줬던 기억도 있는데 이런 말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 하나 행복하게 해 줄 자신도 없는 모지리를 뭘 믿고 만날라고 그르냐. 아서라. 지금 당장 자신이 없더라도 나만 믿으라고 가슴 탕탕 두들겨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어금니 꽉 깨물고 살믄 되는거 아니냐. 근데 자신이 없어 헤어지자고 할정도면 언제라도 그정도 부하가 걸리면 같은 얘기 나온다. 뭐 대충 이런 얘기였던듯. 그리고 사실 정말로 상대를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거나 하는 상황과 말만 그럴싸하게 개폼잡는 그런 상황은 딱 대충 주변사람이 보면 견적이 나오는 법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 말부터 꺼내는건데, 뭐 이 혼자 깨작대는 글들을 별로 읽는 사람도 없겠지만 행여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 하면,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막 뭔가 비련의 주인공, 드라마속 슬픈 사랑의 주인공이 된 것도 같고, 막 안된다고 하니까 괜히 더 애틋하고, 더 매달리고 싶고, 막 다신 안볼것같이 그러다가 술만 쳐먹음 다시 연락오고 그러는것도 얼마나 저도 마음이 안좋으면 그렇겠니 으엌엌 하다보면 더 냉정함을 찾을수가 없고 그런거다. 그런 상황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정말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를 주의깊게 바라봐야 한다. 진심은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히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더 나은 어떤 행복을 얻길 바라고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되길 바라며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괴롭고 힘들어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미워도 그저 혼자 묵묵히 그런 마음들을 삭여내는 경우가 더 많다. 정말로.

그리고 정말, 나쁜 마음으로 드라마를 조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야 이놈들아 삼대가 재수가 없어라. 낄낄낄.

*

그때 더 시원하게 지르지 못해서 답답했던 이야기는 했으니, 이제는 조금, 정말로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먼저,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부터.

모든 사람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으니, 아마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 해도 그때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생각을, 당신의 결정을 모두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의 결정에 대한 몰이해로 더 괴롭고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결정으로 인해 당신은 오해를 받거나,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으로 남겨질런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생각하면 할 수록 괴롭고 또 괴로운 일이겠지요. 백번도 넘게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로 인해 여전히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이 사랑했던 그 누군가들이 당신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만한 그런 빛나는 존재들이었다면, 삶의 어떤 순간에서는 당신의 그 진심을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지금 당장 그 모든것들로 인해 괴롭고 힘들지라도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릅니다. 삶도, 사랑도 그렇게 계속해서 흐를 거랍니다. 너무 스스로를 많이 다치게 하지 않길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았던 기억은 평생에 걸쳐 알게 모르게 엄청난 자산으로 남게 마련입니다. 아마 당신이 사랑한 그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남겨지겠지요. 좋지 못한 상상으로 스스로를 더 괴롭히지 않기를. 인연이란 건 묘한 것이지 않습니까. 괴로워할 시간에 스스로의 삶에 더 집중한다면, 어쩌면 운이 좋아 또 기막힌 타이밍에 그때는 조금 더 자신있는 모습으로 상대를 마주하게 될 수도, 적어도 다시 또 사랑하기에 떠나야만 한다는 개같은 상황이 생길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의 누군가를 향한 뜨거운 진심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전해질거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조금쯤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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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들에게.

만약... 당신이 사랑하기에 그 사람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무조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길 권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고스란히 다. 그리고 주의깊게 당신의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그와 그녀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무언지,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가지고 있는 꿈은 어떤것이고, 서로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들이 있는지. 무조건입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내리는 것은 사랑에 있어서는 피해야 할 첫번째입니다. 우리는 혼자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잠도 자고 심지어 자위도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하는게 아니잖아요.

또 만약, 당신이 가진 어떤것들이 상대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작아보여서 쉴 틈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언젠가 찾아올 지 모르는 이별들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롭히는 것보다는 이렇게 가슴 쫙 펴고 외쳐보는 겁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란 사람의 손을 잡고 당신이 걷고 있는 것 자체가 당신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당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는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아요. 당신이 하루하루 어떻게 바뀌어갈지는 당신의 노력여하에 달려있지만, 아마도 당신이 그런 각오들을 다진다면 적어도 오늘의 당신보다는 내일의 당신이 나을 테니까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적어도 정말로 사랑하기에 선택한 이별이,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좋은 선택으로 남기 위해서는, 성급한 결정은 죽어도 금물이랍니다. 물론,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 우유부단해도 괜찮다는 말과 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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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묵은 이야기들을 좀 밀어내고 나니 스스로도 좀 개운해졌나. 이것으로 부산에서의 철수 전날 띄워보는 오늘의 사랑 이야기는 마무리.

뭐라 해도, 나 또한 믿고 있다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들은, 그것이 아무리 멀리 돌고 돌고 돌더라도, 반드시 그 마음이 닿아야 할 자리에 닿게 되어있다고. 어느날의 꼬리 말고 도망친 똥강아지 한마리라 하더라도, 꼬리를 내려야만 했던 마음만큼은, 언젠가는 전해질 거라고. 사랑, 그러니까 사랑.

사랑 - 5 - (그때가 아닌 지금)


매번 본방사수까진 아니어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은 거의 손에 꼽는다. 그리고 올해 그렇게 챙겨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나가수다. 사실 초반보다 많이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한 자리들을 차지하고 매주 그들의 색깔로 기억속에만 머무르던 노래들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법 하다. 그리고 그 가수들중의 하나가 김경호씨다. 요즘은 락하는 언니 컨셉으로 화제가 된다고 하지만 벌써 대학교시절부터 한참을 좋아해왔던 가수다. 한때는 노래방에 가면 반드시 부르는 애창곡에 꼭 들어가 있었더랬지. 금지된 사랑이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같은 노래들 말이다.

헌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진 노래 말고도, 김경호씨 노래중에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전혀 히트곡은 아니었으나 지금도 가사 안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그만치 혼자 많이 듣고, 흥얼거리고, 떠올렸었던 노래 말이다. 그래서, 그 노래의 한 소절을 소개해보며 오늘의 사랑타령을 시작해본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가끔 이런 생각 했죠. 만일 우리가 그때가 아닌 지금 서로를 만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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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이 시작도 끝도 깔끔하게, 시원하게, 그냥 그렇게 쿨하게 끝이 나고 그렇게 남겨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사랑이 그렇게 깔끔하고, 시원하고, 쿨했던 기억만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복된 삶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어떤 사랑들은 오래오래 기억속에 머무르며 어느 날에건 슬몃슬몃 치밀어 올라 마음을 괴롭게 하곤 한다. 또 당연스럽게도 그렇게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랑에 대한 기억들조차 좋지 못한 기억들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겠지마는 말이다.

헌데 사람 마음이란것이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 그게 또 그런거다. 스스로 어떤 사랑을 할적에 고되고 힘들기만 했었고,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더라도 이가 바득바득 다시 갈려올것같이 슬프고 화가 치미는 어떤 사랑을 했었더라면 그게 또 시간이 흘러가매 그렇게 어느정도는 누그러지기도, 스러지기도, 적당히 마모되고 적당히 미화되기도 하는 법이다. 다시 떠올릴바에야 내 머리통을 스스로 부수고 말겠다 하는 정도의 분노만이 가득했던 어떤 기억조차 시간 앞에서는 에휴, 그래 뭐 그래도 그런 건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더랬지 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 화가 나고 그 순간만큼 슬프고 괴롭지만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같은것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런 이유로 외려 우리를, 가장 보통의 존재들을 오랫동안 괴롭게 하는것은 내가 다 퍼주고 내가 많이 손해보았다 싶은 사랑이 아니라 내가 많이 받았고 그만치 다 주지 못했던 사랑이다. 내가 모지라고 부족해서, 뭘 제대로 몰라서, 혹은 너무 어려서 내가 받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온전히 깨치지 못하고 함부로 한 기억들, 손 안에 한가득 쥐고서도 욕심에 욕심을 부리다 놓쳐버린 어떤것들, 의도하진 않았으나 나의 모남이, 나의 부족함이 그래도 참으로 나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고마운 이에게 심하다싶으리만치 생채기를 내고, 그렇게 생채기를 내고서도 미안한줄도 모르고 시건방을 떨었던 기억들.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며 떠올릴적에 오랫동안 부끄럽고 오랫동안 마음의 짐처럼 남는 것은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란 얘기다. 또 물론, 개인적인 차이야 있겠지마는.

그리고 저 위의 노래는 그런 날들에 문득문득 입에서 가만히 흥얼거리며 어쩐지 쓰디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노래인 것이다. 문득, 받은것보다 너무 모자라게 주었다 싶어 참으로 떠올려볼수록 미안하고 미안한 어떤 이의 얼굴이 떠올라서 괴로운 마음이 들 적에. 차라리 지금이라면, 그래도 그때보다 조금은 자라고, 조금은 더 많이 그때 그 사람의 마음들을 이해할 수도 있고, 조금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조금은 더 둥글둥글해진 지금이라면. 차라리 지금 그대들을 만났다면 그렇게나 미안함만 가득 남기지는 않았을텐데. 그런 마음이 일어날 적에 말이다. 또 한대목 소개해보자면 저 노래의 2절 시작부분은 이렇다. 정말로 그런 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가사기에, 더 잊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내 곁에 있을 때 보다 그대의 삶이 만일 불행하다면 어떻하나요 나의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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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에게도, 그런 사랑의 기억이 있다. 너무 어려서, 스스로의 삶에 너무 치여서, 스스로 상처입고 상처입은 끝에 날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절이라서, 뭐 기타 등등의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내세워봐도 그게 변명이 될 수 없음은 매번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뭐 혼자 실수하고, 혼자 삽질하고 망가지고 무너지고 쑈하고 죽쑤고 했으면 그냥 이불속에서 하이킥이나 몇번 하고 말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런 순간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나 오래토록 마음의 채무를 가득 끌어안게 된 기억들, 그리고 그 사람들. 물론 비단 남녀간의 사랑을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단 한번 그런 사랑의 기억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태어나서 한번쯤은 누구나 느끼게 될 감정일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런 대상이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감히 그 은혜에 비해 스스로 갚은것을 어떻게 내세울 수도 없는, 언젠가의 시절에는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는, 부모라는 커다란 존재들이.

사실 우리는 또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머리속에서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괴로워해봐도, 부질없이 혼자 들리지도 않을 노래들을 중얼거리며 궁상을 떨어봐도 이미 지난 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것을. 무정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것을. 청춘남녀의 경우엔 그러다가 뭐 정말 믿지 못할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되고 다시 인연을 이어나가며 그 미안함들을 갚아나갈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한해 두해 먹어가면서 그런 가능성은 점점 기적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오히려 그런 마음들에 부질없이 후회하고 후회하며 시간을 허비하는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지금 그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지 못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사실은, 저 흘러간 노래를 끄집어내놓고 괜스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어떤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자극하는 이유는 그냥 이런 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간을 도로 돌려 그때가 아닌 지금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 미안함들은 이렇게 가끔 끄집어내보며 스스로를 다듬어가는 정도로 멈추는 것이 족하다는 얘기다. 노래 한곡에 얼추 4분. 4분의 시간동안 저 절절한 가사들을 곱씹어가며,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만치 더 행복하길,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삶들에 내 바램만큼의 행복들이 더 얹어지길 빌어봅니다 하는 마음으로 넘기고 다시 앞으로는, 또 어느날 또 이 노래를 떠올렸을적에 마음을 더 짓누르게될 누군가들은 만들지 않겠다 하는 마음을 다지는 정도로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인연들을 한번 더 돌아보고, 더 꼼꼼히 챙겨보고 하는 것으로.

그게 그러니까, 그렇지 않던가. 어떤 날 정말로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사랑을 하며 눈물 콧물 질질 흘릴적에는, 내가 과거에 아프게 했던 어떤 이들을 떠올리며 아 내가 그때 참으로 사람을 아프게 하였구나, 그 사람도 지금 나처럼 이렇게나 아팠겠구나, 내가 그때 그리 못되게 굴어 이제 벌을 받는구나, 이런 생각들 한번쯤은 해보고 살게 되지 않던가. 그렇지 않던가. 아파본 놈만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데 그래도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것은 비슷한 아픔을 경험해보는 것.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던가. 허나, 정작 그 마음들을 돌려줄 이들은 이미 과거속에 머무는데 지금 내 마음 헤집고 있는 그 사람에게 그 미안함에 더 공을 들인다 한들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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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타이밍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이란 것의 절반을 담당하는 하늘의 몫이고 이미 어긋나버린 타이밍 앞에서 아무리 후회하고 괴로워해본들 한번 어긋난 타이밍은 도로 제자리로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그렇게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그 시간들로 인해 스스로를 더 키워낼, 스스로에게 또 다른 어떤 가능성이 될 타이밍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일지라도.

잊으라는 것도 아니다, 괴로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일에 연연하지 말라는 진부한 충고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미안해하고 충분히 괴로워하되,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걸어가야함을 잊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는것이야말로, 어느 시절에 나란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주었던 누군가에 대한 생에서의 마지막 예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흘러간 노래의 마지막 대목을 남겨보며 오늘의 사랑타령을 매듭짓는다. 사랑. 아아, 사랑.

'용서해요 날, 그것밖에는 안됐었던 나를. 다시 산다면 원하셨던 그대 삶 내가 돌려주고 싶어요~'

사랑 - 4 - (사랑의 성패를 가를 수 있나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듯한, 아니 알려야 할 듯한 빗방울이 조심스레 떨어진다. 창밖은 뿌-옇게 흐려있는데 사무실 유리창에 하나 둘씩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어쩐지 애처롭다. 어쩐지 누군가의 눈가에 매달렸던 눈물방울같은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야기를 이어본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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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성공이란게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하면 어떤것이 그 사랑의 성공을 증거해주는 것일까? 간단한 예로 결혼. 결혼이란것이 어떤 사랑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가름해주는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아이를 갖는것이 더 분명하고 명확한 어떤 성패의 기준점인가?

대충 이렇게 명확한 질문을 던져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도리도리할 것이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나요 -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떤 순간 순간들에 어쩐지 막연하기만한 어떤 기준으로 인해 스스로의 사랑이 [실패]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달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고민에 빠진다. 사랑이 저물어간다는 기분에 사로잡힐때, 원치 않는 이별을 당했을때, 스스로 꿈꾸던 사랑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과의 갭이 어마무지하게 큰 것처럼 다가올때, 사람들은 그렇게 괴로워하며 외친다. 아 또 실패인가. 사랑따위 이제 정말 넌덜머리난다. 사랑에 실패하였으니 인생에서라도 성공해보자. 뭐 이런식의 몇해만 지나면 사실은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모르는 어떤 문구들을 어딘가의 노트에 끄적여가며 눈물로 밤을 지샌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공이나 실패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단어다. 그걸 알면서도 말이다. 

안그래요, 너만 그래요 - 라고 하면 뭐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아 그런가요 근데 난 그렇더라고 하겠지. 분명히 나는 지난 시간 속에서 그러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살아온 인생의 1/4정도를 연인이란 이름으로 함께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것은 슬픔과 미련, 혹은 외로움, 그런 것들보다 바로 저 [실패]라는 생각으로 인한 좌절감이었다(그렇다고 다른 것들이 힘들게 하지 않았다는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사랑에 실패했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사랑만은 자신 있었는데.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이지만 처음의 그 마음들 변치 않고 이어가는 것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들 말이다. 물론 그것이 [실패]로 생각될만한 외적인 어떤 불운들이 있다고는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어 하며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기억이다. 왜 그랬을까? 

시간이 꽤나 흐르고 나서 저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을때 내가 찾아낸 해답은 그렇다. 그게 소시적부터 쓸데없이 사랑이란놈은 뭘까란 어이없는 질문들을 대롱대롱 달고 살아가던 인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 역시 [나의 사랑]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내 사랑은 이런 모습이겠지, 나는 이렇게 사랑해야지 -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굉장히 뿌리깊게 가지고 있었기에 내 사랑이 그런 모습이 아니게 되었을때 그것이 [실패]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너무 큰 기대, 스스로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 그리고 지나친 환상. 그것들이 나를 실패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무언가에게 패배한듯한. 전혀 무언가를 이기고 무언가에게 지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랑이라는 녀석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패잔병의 기분에까지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참말, 돌아보면 놀라우리만치의 미숙한 생각 덕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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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이쯤에서 남 탓을 한번 해보자. 어린 시절의 바이블과 같은 동화책들에는 누구나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거다. 왕자와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는 사랑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하기사 왕자와 공주님은 3남 1녀를 낳고 살았지만 왕자님의 바람으로 공주님이 이혼소송을 내어 거액의 위자료를 물게된 왕자님은 그지꼴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매듭을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떤 굉장히 상징적인 결과물을 딱 내놓고, 그 이후에 대해서까진 얘기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게지. 어디 동화만 그런가. 위기를 극복한 남녀 주인공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나는 영화는 좀 많아. 뭐 어찌되었거나 그러저러요러한 이유로 인해 꼭 결혼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사랑의 성패에 대한 어떤 보편 타당한 선입견들을 가지게 된다는 얘기다. 요러저러해서 요러저러한 모습이 똭 나오면 사랑을 이룬거고, 성공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거다. 요런 더듬어보면 참 괴상한 이분법적 생각을 하게 되는게지. 

요약하자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는 뭔가 보편 타당한 어떤 [골]이 있는것이 아니라는것. [행복한 가정]이란건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서 얻고 싶은 중요한 가치로 꼽고 있지만 그 가치를 얻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성공하고 실패하고 하는게 아니란 얘기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되는거고. 왜냐고? 어떤 분명한 [골]을 가지고 거기에 도달하는 순간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것이 사랑이라면 그렇게나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외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이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니까. 물론, 그런 정도로 사랑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사람들 역시 있고 그들의 관점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 사랑? 종족유지본능으로 진화한 생물체의 유통기한있는 호르몬작용에 대해서 말하는가? 라고. 음, 어, 뭐, 그럼 무슨 할얘기가 있겠냐. 끽해야 우성인자를 보유한 후세를 남기소서 하고 덕담이나 하고 말겠지. 

아니 그리고 뭐, 따져보면 또 그렇다. 사랑을 누가 우아아앙 내일 오후 3:45분부터 사랑에 빠져주겠다? 이러면서 하나. 어느날 우연히 - 빠져들게된 사랑에 무슨 실천과제라는게 따라붙어있어서 사랑이 끝나면 아프고 괴로운것도 서러운데 달갑지않은 [실패]라는 딱지까지 붙이게 된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렇지 않나?

*

그러니까, 되는대로 떠들어댄 이 글은 행여라도 과거의 나와 같은, 으엌엌엌 난 사랑의 실패자다 나같은건 죽어야해 하고 있을법한 이들이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에. 

언젠가 과거의 블로그에 사랑을 [이룬다]라는 말에 대해 비슷한 맥락으로 얘기한적이 있다. 이뤄진 사랑은 뭐고 이뤄지지 않은 사랑은 뭐냐고. 사랑해서 연애하고, 연애하다가 결혼하고 이래야 그게 이뤄지는 사랑이고 나머진 그게 아닌거냐고. 사랑에 빠진 대상과 명명백백한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그게 이뤄지는거냐고. 그렇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런 말들로 그렇지 못한 사랑들에 달갑지 않은 무언가들을 달아주는 표현들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랑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이런저런 모습들로 변화해가고, 사람마다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어나가고 하는가가 다 다른데 뭔가 완결시키는 것처럼 아 내가 사랑을 이뤘다! 이러는 것도 우스운거다. 그런데, 굳이, 에이 그래도 그런거 없으면 좀 뭐랄까, 너무 극적이지도 않고 너무 뭐 노력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없고, 좀 너무 밋밋하고 뭐가 빠진것 같고. 그 좀 그렇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뭐랄까요. 60억의 인구중에 어떤 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그 사람을 위해 내 어떤 부분들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고,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바빠지고, 내 곁의 가장 가까운곳에 그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고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순간, 그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순간, 그 순간 자체가 오히려 가장 극적인 사랑의 [성공]이 아닐까요. 사랑의 [완결]이란 것 보다는 사랑의 [시작]이라는 그 순간이. 물론, 세상의 모든일이 그렇지만 무언가의 성공 그 이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오히려 성공보다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퀫퀫퀫퀫 - 이라고 말해주며 이야기를 마치겠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는 밤인데 달큰-한 사랑하시길. 

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가끔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만약 언젠가 결혼이란 것을 하고, 요행히 그럭저럭 어여쁜 딸네미 하나를 얻어 그럭저럭 키워내고, 어느새 그 아이가 말만한 처자가 되어 햐 어느새 이만치 자랐구나 하는 시점에 그 아이가 아빠 제가 사랑하는 남자에요 - 라고 하며 왠 놈팽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상상 말이다. 그런거 다 한번쯤 해보는거 아닌가? 나만 그런가?(웃음) 그것도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성향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아이의 팔짱을 끼고 등장한 사내녀석이 징 박힌 가죽자켓에 스킨헤드에 혀찌 귀찌를 뚫은 띠동갑 무직(...) 사내일때라거나 하는것. 물론, 언제나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금새 쓸데없는 생각이 종료되는 효과는 있다. 아 제길.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겠어. 

물론, 아마도 그런 상황을 내가 겪을 가능성이란건 극히 희박한 확률일 거다. 또, 직접 그 상황이 되어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내가 만에 하나라도 정작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미리 넘겨짚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철이 덜 들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마음,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솔직히 양심에 발을 얹고 지금 네 선택을 응원해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너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라고. 하지만 만약에라도 네가 어느 순간에 스스로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땐 괜한 자존심이나 오기들로 그 그릇된 선택이 네 삶을 망치게 두지 말고 언제라도 다른 선택을 하라고. 그리고 어떤 사랑을 하게 되건간에 그 안에서 네 삶을 더 나은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노력하라고. 캬 말은 잘한다. 정작 그 상황이 되면 몽둥이를 휘두다가 신문 1면에 날지도 모르겠다만. 

그것은 물론 네 삶은 네것, 내 삶은 내것이라는 어떤 기본적인 마인드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게 그렇게 싸늘하고 이기적인 이유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학습효과고, 지금껏 경험을 통해 도출한 어떤 결론들이 꽤 스스로 한순간에 풀어내기 힘든 어떤 딜레마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것은 방치와 존중의 미묘한 경계다.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어떤, 내 관점에서 보면 좋지 못한 선택을 할때 그것을 그래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존중할때, 이게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얼마든지 방치일 수도 있는거다. 심지어 그 선택을 한 그 사람마저도 후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거다. '왜 그때 안말렸냐' 이런 멘트에 담겨있는 거 말이다. 이건 물론 비단 사랑이라는 것을 떠나서도 충분히 골때리는 고민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엔 이런저런 연애에 관련된 것들이 가장 그런것을 많이 고민하게 했던 순간이니 이렇게 써 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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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트윗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 같은데 그건 바로 '꼰대의 딜레마'다. 이쯤해서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리라 믿고 절대 답이 안나오는 문제 하나를 또 이 재미없는 글을 읽고 계실 어떤 분들께 던져본다. 아, 그 전에 우선 기본적인 생각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러니 대략 청소년기 이후의 삶에서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이라는 것은 결국 고통, 슬픔, 괴로움 등의 어떤 '고난'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행복한, 기쁜, 즐거운 어떤것들이 아예 도움이 안된다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성장의 측면만을 바라보자면 그런 고난과 극복의 과정만큼 정신적인 성장에 현격히 기여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아끼는 어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적에, 물론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것이 굉장히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 적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첫번째 의문은 내가 그 사람을 어디까지 고통에서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과연 그렇게, 그 사람을 예상되는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에서 보호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삶에 정말로 '기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사랑에 대한 예를 들자면.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본인 말고 다른 사람은 모두 인정하는 천하에 개늠/뇬이랑 사랑에 빠졌다 그말이다. 사실 불행히도 빠져버리고 나선 견적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빠질랑말랑 하고 있다고 치자. 막 내가 길길이 날뛰면서,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나를 밟고 만나라 하며 길길이 날뛰어서 결국 그 선택을 취소하게 만들었다고 치자 말이다. 생각만해도 진이 다 빠지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 상황에서 바로 우리에게 남겨지는건 너때문에 내 인생을 구했네 땡쓰얼랏이 아니라 바로 저 답 안나오는 두가지 의문이다. 이노무 새키가 다음번에 또 어디서 이상한 놈년한테 꼬여 흔들흔들하면 어쩌지. 대체 언제까지 내가 그걸 막아줄 수 있을것인가. 아무리 내가 옳지 못한 사랑이 니 인생에 끼치는 48325가지의 해악에 대해 스티브 잡스 PT 하듯 네게 떠들어줘도 결국 니 스스로 겪어보기 전까진 어마 이게 그런것이었구나 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또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터질지 모르지. 그럴때마다 이래야 한다고? 이게 딸자식이면 내가 평생 지고 살 각오로 그러기라도 하지. 그렇지 않다면?

누구나 과잉보호가 애들을 망치는건 알지만 과잉보호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장 애가 불에 타거나 물에 빠지거나 할 것 같으면 당연히 보호해야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사랑이나 연애같은것에 대해서는 애매 - 하다 그얘기다. 애정남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이게 내가 어느날 사로잡힌 딜레마고, 내가 점점 타인들에게 어떤 충고 혹은 오지랖을 부리지 못하게 되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그런것. 내 삶도 녹록치 않고 이미 짊어지고 가는 것들도 많은데, 아무리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그렇게 내가 적극적인 보호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고 그게 오히려 그 사람의 삶에는 마이너스가 되는게 아닐까란 걱정마저 된다는 거다. 사실 또 따져보면 그렇잖나. 좋지 못한, 실패, 괴로움과 고통, 그런것들은 그래도 청소년기만 지나고 나면 빨리 겪어두는게 좋은거다. 그게 나이 먹고서 어마 뜨거라 하는것 보다야 백배 낫지. 그땐 일단 뭐든지 싱싱해서 회복도 빠르잖나. 

라고 해봐도, 언제나 그런 상황이 닥치면 비겁한 어른이 되어가는건가... 란 씁쓸함이 먼저 일어나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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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그런저런 연유로, 내가 타인의 사랑에, 연애에 간섭하게 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건 내가 그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모자라서,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끔은 그런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저 사랑을 졸업하면, 저 사람은 또 많이 성장하겠구나 라는. 스스로 인지하건, 인지하지 못하건간에. 하지만 분명히, 지금 그렇게 괴롭고 괴롭고 괴롭고 괴로운 사랑의 미로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딱 하나 이 얘기만큼은 해주고 싶다. 역시 이것도, 사랑을 떠나서도 어떤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지금 그렇게나 괴로운 순간들도 어느 날이면 과거가 되겠지만, 어쩌면 왜 그렇게 괴롭고 힘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아픔들이 가라앉을 시기가 되면 반드시 그것들을 복기해보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괴로움을 겪었고, 그 괴로움들을 겪을 적에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해 왔으며 그 괴로움들을 불러온 근원이 된 것은 본인의 어떤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괴롭고 아플적에 그걸 떠올리며 또 스스로를 괴롭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무슨 M도 아니고. 다만 그 모든것들이 흘러지나갈 무렵, 진지하게 그것들과 대면해 보기를. 사람이란게 그렇다. 똑같은 Input 이 있다고 똑같은 Output 이 나오질 않아요. 어떤 Input 을 어떤 Output 으로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다른거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삶들을 어떻게 꾸려나가는가 - 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거고. 

언젠가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마지막으로 남기며 줄여본다. 그렇게나 더럽게 아팠는데, 남긴거 하나 없으면 그만치 억울한일이 또 있겠냐말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억울한 일인게지. 그런게지. 

꼬리 : 어쩐지 월요병에 시달릴때만 글을 이어가는 듯한 느낌은... 기분탓인가(...)

사랑 - 2 - (60억의 사람, 60억의 사랑)


사랑, 아아 그래. 사랑

첫 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놓고 몇일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한숨이 나오는 메일을 읽고, 산더미같은 일거리들에 기가 질려오는 와중에 다시 메모장을 연건 어쩌면 현실 도피... 는 아니고 다만 찬바람 덕분이다. 분명 정확히 지난 주 금요일 퇴근할때까지만 하더라도 해가 저문 시점에서조차 후끈한 열기가 마치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한 여름같은 기분이었는데 주말을 보내고 나니 아침에 집을 나설때 소름이 돋는 찬바람이 불어닥친다. 이런 날이면 길고양이라 할지라도 서로 몸을 부대끼며 나른한 온기에 젖어들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던가. 뭐, 잠깐의 현실도피정도야 어떠랴. 어차피 일이야 끝도 없는것을.

지난 글에 이어 보자면 그렇게,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사랑을 뭐허러 하냐 - 라는 게 기본 전제로 깔려버린 인간이기에 소시적엔 참 오지랍도 많이 부렸더랬다. 물론 덕분에 적잖이 낭패도 보았더랬다. 스스로와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냐 여부에 따라, 심한 경우엔 좀 죽쑤고 있는 친구를 보고 니놈이 계속 그리 꼴같잖게 구는걸 보느니 차라리 네놈과 의절을 하리라 하며 길길이 날뛰기도 했었더랬다. 하하. 참 어렸더랬지. 과거의 그 좁디 좁디 좁았던 시절들은 우선 그저 부끄러움으로 남겨둔채 현재를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런 말,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싫다. 타인의 사랑에 대해 '그건 사랑이 아냐' 혹은 '그건 집착일 뿐이야' 와 같은 말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 이들 말이다. 설령 그것이 그 사람이 대상에게 갖는 애정에 기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건 사랑이 밥맥여주냐 하는 비아냥보다 더 나쁘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그것은 그래도 살아온 인생의 절반정도를 그 사랑이란 녀석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며 살았다는 스스로가, 생의 어떤 순간에서 나의 사랑이건 타인의 사랑이건 누군가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무언가를 접했을 적마다 매번 새삼스레 깨달았던것이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보편 타당한 사랑의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 정말로 억지에 억지를 부리고 쥐어짜고 뜯어보고 하면 어쩌면 60억 인류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것조차도 그것이 어떤 사랑의 확고한 정의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매 순간 이 사실을 실감할적마다 조금 기운이 빠진다. 결국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품어왔던 그 근원적 의문에 대한 어떤 명쾌한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는걸 매번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내가 생을 마칠때까지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 라는것을 대충 예상하고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더 허탈한 노릇인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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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다. 아니 그럼 스스로 답이 없다는걸 알면서 그걸 왜 남한테 물어보고 지랄이슈(...) 라고. 오해 말라. 정확히 내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것은 '60억 인구에게 보편 타당한 사랑이란 놈의 정의'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어쩌면 시간낭비지. 하지만 '당신이 가진 사랑이라는 것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장담하건데 꽤나 유익한 일이다. 떠돌이 약장수의 심정으로 조금 더 과대광고를 해보자면 아마 당신이 어느 시점에 당신의 어떤 사랑에 대해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건 이런것이구나 라는 진지한 고찰들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남은 생동안 꽤 능동적으로 사랑하고 사랑이란 녀석으로 인해 상처입고 다치게되는 일을 꽤 많이 줄일 수 있다. 물론 100%는 무리지. 오 형제여. 세상에 100%로 단언할 수 있는것들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간단히 말해 사람들이 가지는 다면성 만큼이나 그 개개인이 하는 사랑이라는 것에도 개인차야 있겠지만 어마무지하게 다른 면들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가장 스스로가 하는 사랑속에서 반복되게 등장하는 어떤 '메인화면'이 있다는 얘기다. 윈도우 XP 메인화면마냥. 그리고 그걸 발견해내는 작업이란건 많은 경우에 꽤나 유의미하고, 즐겁기도 하고, 여러모로 삶에 유익한 일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스스로의 사랑이란 녀석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단면들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가 넓어진다면 그건 더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 다양한 단면들 중에서 어떤 것이 '이것이 나 개똥이의 사랑이다'라고 당당히 누군가들에게 주장할 수 있게 그것들을 선택하고 밀어붙이게 될 수도 있다. 꽤나 근사한 일이 아닌가.

약장수같은 과대광고는 이쯤 해두고 여기서 한번 짖궂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이 지난 과거에 어떤 괴로운 사랑을 하고 치떨리는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치자. 또, 그런 사랑을 하고 난 이후에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 이런 말을 중얼거린 적이 있다고 치자. '돌아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으 사랑은 그러치 아나아아아아아아' 같은 말들을. 그렇다면 물어보자.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니었나? 정말 진심으로, 양심에 발을 얹고? 또 당신은 그것들에 대해 사랑 대신에 다른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을것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외로움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었지' 뭐 그런, 썩 긍정적으로 와닿지만은 않는 이름들 말이다. 정말 그랬나? 당신의 사랑은 무언가 킹왕짱 근사하고 달콤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환타스틱 어메이징 뷰티풀한 어떤것이고 그것은 단지 축축하고 끈적한 집착같은것일 뿐이었나? 정말로? 진짜진짜?

당신이 만약 '진짜로! 찍고! 진짜진짜진짜로!' 라고 대답한다면 내가 해줄 얘기는 없다. 아 그러셨구나 - 하는 수 밖에. 비꼬는 뜻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음... 사실 생각해보면, 좀 지나고 났을땐 아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애써 그걸 부정하려고 해봤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그 시절의 내 사랑이었던거죠 뭘' 이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런 이야기들을 이어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지금 사랑이라고 믿는것이, 당신의 사랑이 가지고 있는 어떤 단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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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말은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면 꽤나 위험하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지만 사람 뼈와 살을 분리할 기세의 공포를 심어주며 스토킹을 하는 놈들이 제일 먼저 대는 핑계가 이거 아니냐. '난 단지 사랑했을 뿐인데에! 왜 나에게 이런이리이이이이이' 항상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참 그렇다. 좋고, 멋지고, 예쁘고, 근사하고, 유용한 것으로 둘 수 있는 어떤것들을 꼭 이상한쪽으로 활용해서 오물을 뒤집어씌우지. 사람론을 얘기하려는건 아니니 일단 넘어가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상황 자체에서도 얼마든지 어? 하는 기분은 들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세미 스토킹을 들어보자. 왜 다들 그런거 하잖냐. 헤어진 연인 싸이, 블로그, 뭐 그런거 찾아내서 들여다보고 흐엌엌엌 하거나 메일 아이디 패스워드 한번 알아보고 너무나 우연찮게지만 사실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이 로그인 해서 메일 뒤져보고. 애정남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미 스토킹과 스토킹의 범주를 정확히 구분할수도 없을 뿐더러, 어떤건 사랑이고 어떤건 집착인지 구별할 방법도 없는거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애절한 심정에서 하는 소심한 미련이고 니가 하는건 범죄여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 적당한 이중잣대야 정신건강에 좋다지만 그렇다고 너무 뻔한 이중잣대를 타인에게 함부로 휘두르는건 사람이 할짓이 아닌게 아닌가. 결국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다보면 한가지는 확실한거다. 세상의 어떤것도 스스로 사랑이라 믿지 않으면 그게 사랑이 되는게 아이다. 뭐 헤어지고 나서 사랑인걸 알았네 어쩌네 해도 그건 어느 순간엔 그걸 믿게 되고 인정하게 된 거고.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란건 결국 스스로 무엇을 사랑이라 믿느냐에 달려있으니 아닌갑다 하면 쉴새없이 부정하라 그런 얘기가 아니다. 반대다. 그러니까, 당신이 과거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것들이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의 어떤 단면이라고 보고 진지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당신이 하는 사랑의 어떤 면은 집착의 형태를 띌 수도 있고, 헌신의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고, 연민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은 외로움과의 적극적 투쟁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면은 몰입, 어떤 면은 유희의 성격을 띌 것이다. 물론 시간에 따라, 마치 다면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제자리에서 돌고 돌듯 다른 면이 가장 앞으로 나와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몰입으로 시작했다 집착이 주가 되기도 하고 유희로 시작했다가 연민으로 변해갈 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스스로가 이런저런 사랑의 미로속을 헤메이고 있을적에 가장 두드러지게, 자주 등장하는 어떤것들이 있을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어떤 조건에 의해 그것들이 발동하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쯤에 당신에게 누군가 묻는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 있을것이다. '내 사랑은 이것이에요'라고. 물론, 그 역시도 남은 생동안 어떻게 변해갈지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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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로 하고 오늘의 약팔이는 여기까지 - 라고 하고 물러가려는데 문득 어디선가, 누군가 물어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뭔가 잘난척 실컷 떠들어놨는데 그럼 당신의 사랑은 뭐요? 라고. 떠돌이 약장수는 이렇게 대답할것이다. '내 사랑은, 내가 믿는, 나의 주된, 내가 앞으로 주욱 가져가고 싶은 사랑의 모습은 [공존]이외다' 라고. 그리고 흥얼거리며 약가방을 챙겨 떠나는거다. 낄낄. 어쩐지 진짜 가방 챙겨 어디론가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네.

함께 머무르고 싶었고, 함께 머무르고 싶다. 생의 끝까지라도. 그게 아무리 무리한 바램일지라도. 찬바람 부는 날이다. 모두 온기가 함께하시길.

사랑 - 1 - (여는 글)


사랑. 

사실은 이 조용한 블로그에 은근슬쩍 이 카테고리를 열적에 처음 쓰고자 했던 글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제 어느정도는 나도 사랑이란 것을 말할 수 있을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 나이보다는 그 뭣이냐, 그래도 너무 가볍지도 너무 죽죽 쳐지지도 않게, 나의 사랑, 사람들의 사랑, 그 모든 사랑이라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죽죽 써볼 수 있지 않을까 - 라는 생각에 기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냥 별 것 없는 단상에 가까운 글 세개만 달랑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역시 무모한 자신감이었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 라는 이문세씨의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지 않더라도 여전히 나는 그 사랑이라는 녀석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꺼낼 적이면 알 수 없군... 이란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혓바닥 위로 단어를 도르륵 굴리면 마냥 달콤하기만 한, 하지만 입을 오물거리며 곱씹어 보다 보면 왠지 모를 쓴물이 한켠으로 번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그 사랑이라는 녀석. 녀석의 실체라는 것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서야 어렵게 어렵게 이렇게 첫 이야기를 시작해보는 이유는 별거 없다. 날씨탓이다. 맑은 햇살, 서늘한 바람, 한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 그 모든것이 그저 마음을 가만히 두드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멋대가리 없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미래와 현재와 같은 딱딱하고 복잡스러운 레퍼런스들만을 잔뜩 읽어대며 오만가지 서비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으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한대 태우러 나가 바라본 하늘이, 날씨가 어느핸가 세상의 모든것들이 사랑으로만 충만했던 어느 가을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는 이유 하나 뿐이다. 역시나 멋대가리는 없지만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있고, 듣도보도 못한 나라로 잠시 떠나게 될 지도 모르니 어쩌면 이 글들 역시 계획들과는 반대로 조루처럼 찍 싸버린채 끝나버리는 글이거나, 전설속에서만 연재가 유지되고 있다는 모 만화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쯔음에만 하나씩 남겨지는 글들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들 어떠랴. 뚜렷한 사계절이란말이 무색하게 동남아틱한 날씨들로 변해가는 한해한해를 겪고 있으나 최소한 앞으로 내가 눈을 감을 적까지는 이런 가을 날씨는 매해 하루쯤은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이 늙으면 느는건 여유밖에 없는 거다 원래. 느긋해지는건지 게을러지는건지는 모르겠다만. 

*

혹시나 기억들 하시는지? 처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게 언제쯤이었는지? 혹자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5학년때 우리반 부반장 아이스케키하고 도망치다 담임선생님께 잡혀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눈이 빨갛게 물든채 훌쩍이고 있는 그 아이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왠지 모를 미안함과 왠지 모를 심술을 동시에 느끼며 괜한 심박수 증가를 감지했을 적에 사랑의 도를 깨우쳤노라 -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흔치 않은 경우겠지마는. 마침 날도 좋겠다 한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떤가? 뭐 태어나서 처음 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이 '남녀간의 애정과 호르몬 분비에 대한 진지한 고찰' 따위일 리는 없으니 제법 달달한 기분, 명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못하더라도 꽤나 좋은 기분, 훗... 그땐 참 그랬더랬지 하는 막연한 풋풋함들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가. 그랬다면 그것은 이 철없는 삼촌이 그대들에게 보내는 가을날의 선물이다. 하하. 이런걸 공 안들이고 생색내기라고 하지. 

그런데, 그러나, 아쉽게도 나의 경우에 - 처음 사랑이란 것에 대해 고민했던 순간은 그렇게 썩 달콤하고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아 내 소시적 풋사랑(개인적으로 풋사랑과 첫사랑은 좀 구별해서 불러주고 싶은 편이다. 이유는 나중에) 이 굉장히 슬프고 괴롭고 구질구질한 기억들로 점철되어있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내가 얘기하는건 그러니까 생애 최초로, '대체 사랑이란게 뭐길래?'라고 의문을 품었던 순간을 얘기하는 거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는 그런 의문을 품었던것이 풋사랑에 빠진 타이밍보다 빨랐다는 것이랄까. 사실 뭐 당연한거 아닌가. 요즘에야 더 빨라졌겠지만 에지간히 TV도 보고 책도 읽고 할 수 있을 적이면 얼마나 사랑이란 말이 넘쳐 흐르는가. 그것도 또 굉장히 미화된 채로 말이다. 사랑이란건 좋은거야. 환상적인거지. 마법이지. 끝내주는거지. 마치 술이란놈만 마시면 미칠듯한 흥겨움에 돌입하는 어른들을 보며 저건 무슨 매지컬 포션이냐... 라고 어린이들이 궁금해하게 되는 것처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건갑다. 아빠랑 엄마랑 사랑하면 내가 뿅 생기는거구나. 뭐 그런 막연하고 막연하고 또 막연한 '개념'을 잡게 되는게 먼저지 않던가. 뭐 밋밋하게 그냥 단어장에서 보고 외울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진지하게 '사랑이란 놈은 뭘까?' 라고 고민을 시작하게 된건 저렇게 미디어를 통해 일단 개념은 잡고 그런갑지 -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근데 진짜 뭘까 하게 된다는 건데...아, 본격적으로 내가 '사랑이란게 뭘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품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밝힐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들에는 나란 사람의 옛 이야기들은 많이 나오게 되겠지만 나란 사람이 사랑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거-의, 단편적인 에피소드 외에는 찾을 수 없을 거란걸 먼저 쓰고 넘어가야겠다. 항상 주변인들에게 얘기하듯, 난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썩 좋아하지 않는다. 막말로 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가 어떻게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 사람이 그 기억들을 그저 둘만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은건지 어쩔런지는 알래야 알 수도 없지 않은가. 이를테면 예의란거지. 음음. 아 갑자기 흐름이 끊겨 미안한데 어쨌든 이런 부분들은 스스로 좀 어느 시점 이후로 민감해하고 있는 부분들이라 말이다. 자, 그럼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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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번째로 사랑이란놈이 뭔가 하며 머리를 쥐어뜯게 된 계기가 그렇게 달달하지 못했던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 덕분이다. 나를 아는 지인들은 잘 알겠지만 난 어린시절중 '꽤 오랜 시간'을 재래시장에서 보냈더랬다. 뭐 학교를 안다니고 그런건 아닌데 일단 뭐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유년기 교육은 아버지의 하드코어 학습법(...) 으로 대체, 초등학교(국민학교였지) 입학 후에 꽤 많은 방학기간들을 재래시장, 그것도 새벽시장에서 부모님 일을 거들었더랬다. 대-충 중학교 저학년때까지는 꾸준히 했던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 이후에도 가끔, 공부 안하고 탱자탱자거리는걸 보고 아버지께서 분기탱천하셔서 넌 닥치고 가업이나 이어라 하며 시장으로 끌고나가실적이면 가끔 따라나서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했던 것은 그때까지 정도. 

근데 이게 - 우선, 이게 절대 뭐 재래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비하하려거나 그러는건 결코 아니라는 것 먼저 밝혀두고 - 뜬금없이 사랑이라는 녀석과는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그게 어린 시절의 그 좁은 시각으로 바라본 '시장 사람들'의 특징이라는게 그렇게 잡히는거다. 아니 새벽시장 일이라는게 워낙 쉽지가 않다. 힘들고 어렵지.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일하면서도 참 근사하게 멋지게 바람직하게 사시는 분들이 당연히 대부분이지. 근데 그게 그렇잖나. 그냥 다 좋고 좋은건 눈에 잘 안잡혀도 좀 튀고 나쁘고 그런건 눈에 잘 들어오잖나. 그게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내 눈에 딱딱 잡히기 시작하는거다. 아니 보니까, 아주머니들은 세상에 그렇게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진짜 고생해가며 자식들 두어너덧명 다 대학 보내고... 깔린게 그런 분들인거야. 얼마나 순하시고 착하시고 꼬맹이가 부모 일 거들러 나왔다고 기특하다고 뭐라도 하나 주고 먹이고 하시려 그러시고... 근데 음, 그당시에 꽤나 많은 그런 참 이야 대단하신 분들이다 - 라고 어린시절에도 존경심이 막 일어나던 아주머니들의 남편분들께선, 음, 꽤나 많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거다. 쓰다 보니 이거 내가 운이 없었던건가?(웃음) 

아니 왜 막 그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80년대형 나쁜 남자들 코드 있잖나. 부인이 애써 돈벌어오면 술, 노름, 친구 빚 보증 후 사기 뭐 이런걸로 탕진하고 그러면서도 잘났다고 마누라 쥐어 패고 왠갖 중독을 주렁주렁 달고다니고 결국 말년에 좋은 꼴 못보고 비명횡사하는 그런 코드. 그게 어린 눈으로 보고 듣고 했을때 또 에지간한 숫자였어야지 말이다. 그쯤 되니까 이게 뭐라고 해야하나, 어리둥절? 대충 그런 기분이 드는거야. 아니 저렇게 좋은 아주머니들이 왜 저런 썅늠(;) 들을 만나서 고생을 하시는걸까. 원래 저랬던걸까 사람이 저렇게 바뀐걸까 뭐 이런 어린시절에 할법한 고민이 아닌 고민들을 막 하게 되는거야. 뭐 조숙했더랬지. 그렇게 궁금증과 의아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까 그런 근원적인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는거다. 남녀가 사랑하면 결혼한다며, 저분들은 사랑해서 결혼한건가? 그럼 대체 그 사랑이란놈이 뭔데. 아니 멀쩡한 사람 평생을 저렇게 개고생에 쩔어주게 만드는놈이 사랑이란거야? 뭐지 이 빨간약을 먹은 기분은? 이렇게 무서운거였어? 아냐 아냐 나의 사랑은 그러치 않아 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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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는 오버였겠지. 그당시에 거기까지 생각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정말로 꽤나 어렸던 시절에 나는 저런 이유로 그러한 의문을 품었더랬다. 사랑이란놈이 뭘까. 이게 꽤 중요한거다. 정말로, 나중에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퍼뜩 깨달았지만 바로 저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저 의문들이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어떤 '틀'을 다져버린거다. 그러니까 애들은 좋은것만 보고 자라야한다...는 결론은 아니고, 물론 나이를 이만치나 먹어버린 지금에 와서도 어째서 멀쩡한 사람들이 누가 봐도 참 개 아드님 두 여자님(...이해 못하면 패스하시라) 같은 사람들을 만나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인생의 고뇌를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몇가지의 어떤 생각들이 건물 기초공사하듯 딱딱 깔려버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것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랑같은것은 하면 안된다. 사랑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거다. 사랑은 행복하고, 예쁘고, 달콤하고, 환상적인 것이었으면 좋겠다(이건 물론 바램). 예전에 이글루에 글을 쓰면서 Life & Love 라는 글에 이런 '사랑관'이 담긴 글을 썼더랬는데 바로 그 근간이 저 시기에 형성된거다. 왜.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거잖나. 스스로의 삶을 현저히 망가뜨린다고 생각되는 사랑을, 굳이 아둥바둥거려가며 끌고 갈 이유나 필요가 있나.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씁쓸한 기분마저 드는, 어떤 사랑에 대한, 최초의 고민과 최초의 생각. 

사실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야기들에도, 꼭 의도한바가 아니더라도 이 생각은 곳곳에서 묻어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생각들에 절대 동의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이 글들은 피하는게 좋다. '헹 - 행복하기만한 사랑이 무슨 맛이여! 사랑이란건 모름지기 개고생과 피눈물과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이 있어야 제맛인 법이제!' 이러는 분들이 있다면 말이다(...과연 있을까? -_-;) 어쨌든, 그래서 그,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그 의문, 그 출발점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이 쓸데없고 기나길 것이 예상될 글의 시작을 열어본다. 아, 어쩐지 용두사미가 막 머리속에 그려지는 기분이다마느으으으은....

어떤가 뭐. 좋지 아니한가. 사랑이란건 무엇일까 - 따위의 되도 않은 고민으로 끙끙대며 벤치에 앉아 고독한 도시의 가을 남자가 되어보기에 충분한 날이 아니던가.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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