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해는 넘겼을거다. 제목에 적은 저 말이 어느날 뜬금없이 어디선가 날아와 입에 콱 박힌 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텐데 해를 넘기는 시간 동안 이유는 잊어버린채 콱 날아와 박힌 저 타이틀만 가끔씩 오물거리게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나 오래 블로그에 글 쓰는 일을 멀리하고 살았음에도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저 타이틀로 무언가를 써봐야지 하고 생각해 왔던 거다. 그리고 그게 오늘이다. 휴가 시즌의 절정, 극 성수기,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 출근길 버스도, 사무실도 한산하고 괜히 그 한산한 사무실의 여파로 남아있는 사람들까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 금요일 저녁. 시간은 직장인들이 하루 중 가장 일하기 싫어진다는 4:33분 언저리께. 야 좋다. 비록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작업 목록이 화면 한구석의 엑셀 차트에서 신경을 긁고 있긴 하지만 이보다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오늘에야말로 얼마나 오물거리고 있었는지 모를 저 문구를 시원하게 뱉어보자.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는 글이지마는.
어른의 연애란건 뭘까?
무신 놈의 선문답을 하겠다고 뜬금없이 질문을 하나 딱 띄워보니 야 맞다 그랬더랬지 - 하며 그 문구가 콱 날아와 입에 쑥 들어오던날의 느낌이 살아난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어른의 연애'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어떤 글을 썼었더랬고, 그걸 읽었더랬지. 근데 그게 썩 개운치가 않았던거야. 뭐 사실 연애나 사랑이란게 뭐랄까, 좀 뜬구름 잡는 얘기기도 하고 그러니만치 누군가들이 정의하는 어떤 연애들이라는게 다 다르고 그럴 수 있다는건 분명히 알겠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의 모호함이 저 말을 그렇게 오랫동안 오물거리게 만들었던것. 그러니까 뭐 그렇다. 어른의 연애라는 걸, 아니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연애는 어떤 것이라는걸 좀 정리해 두고 싶었어. 그래서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띄워본다. 어른의 연애라는게, 어떤 것일까?
아주 간단한 것 부터 시작해보자. 나이로 나눠보는건 어떨까. 미성년자의 연애는 미성년자의 연애. 성년의 날 지난 다음에 하는 연애는 어른의 연애. 에이 이건 아닌것 같지? 그렇게 따지면 왜 청년의 연애 중년의 연애 노년의 연애 다 나누지 왜. 그럼 또 뭐가 있을까. 아 그래, 데이트 패턴같은 것으로 구분해보는건 어떨까. 김밥천국같은 데서 밥먹고, 놀이동산에서 두근두근 데이트하고, 독서실에서 쪽지 던지면서 알콩달콩해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성인 분장(?) 해서 어디 술집이라도 뚫어보려고 애쓰고 그런다면 애들의 연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칼질하고, 와인 한잔 기울이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하고, 평일 저녁에는 만나서 영화보고 술마시고 주말에는 교회 드라이브 - 이런 코스라면 어른의 연애. 어쩌면 조금 정확해진 분류같긴 하지만 어쩐지 모호하고 밋밋한건 여전해. 게다가 뭐 어른이라고 떡볶이 먹고 손잡고 두근두근하는 연애 하지 말란법도 없고 말이다. 그럼 이것도 땡 탈락.
조금 19금으로 가본다면?
그래 뭐, 과거에 비해서 세태가 많이 바뀌어서 요즘은 뭐 애들도 할건 다하고 알건 다 안다지만 그래도 얼추 평균적으로 본다면 역시 어른의 연애와 애들의 연애를 나눌 수 있는건 스킨쉽이지. 딱 그어보자. 손잡고 뽀뽀하고 포옹까지만 -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아. 철수야 우린 아직 학생이잖아. 우리가 커서 어른되어 결혼하기 전까진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래 영희야 우리 커서 꼭 결혼하자. 그 전까지 내가 지켜줄께 뽜하하하 - 하면 애들의 연애. 이거 왜이래 아마추어같이(혹은 촌스럽게). 우리 한번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불살라보자구!!!!! 나도 마...만질거야!!! 등짝을 보자!!! 파...파워 쎼ㄱ(...) 하면 어른의 연애. 음 그래. 뭐 나름 설득력이 있나? 라고 해봐도 여전히 별로. 이건 뭐랄까, 아 다르고 어 다른거지만 어른의 연애라기보다는 성인의 연애같은 느낌이고. 아니 게다가 뭐 그럼 애들도 파...파워쎽... 만 하면 당장 어른 되는건가. 이건 뭐 어른 되고 싶어서 아부지 술 훔쳐마시고 겉담배 피워보는 애들도 아니고.
이쯤에서 동네 교회 목사님같은 어조로 그냥 쾅쾅 해버리는건 어떤가. '뭐헛헛헛 여러분 잘 들으세요. 어른의 연애라는 것은 말입니다. 성인이 된 남녀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가짐으로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고 나아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한명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건전하고도 올바른 방식의 이성 교제를 통칭하는 말이랍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목사님도 있을 리가 없을 뿐더러(혹시라도 있는건?) 있더라도 잔뜩 삐딱한 아이 한명이 당장에라도 '아닌데요?' 하고 손들고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뭐 연애의 목적이 결혼만 있는겨? 그럼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연애는 다 풋내기의 연애여? 말짱 황이여?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쭈욱 사족이라고 치고 이제 슬슬 정리해보자.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아마도 모두가 다 딱 이거다 하고 정의내리기도 어려울거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정의할 수도 있을거야. 하지만 일단 내 생각은
서로를 연애 상대로서만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줄 수 있는 관계 - 라면. 그렇다면 어른의 연애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어찌되었거나 연인이란건 적어도 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다. 근데 안타깝게도 때로는 그 특별함이 관계에 있어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볼때, 남자 여자를 떠나서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면 절대로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을 것들을 단지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할 수 있을 것을 연인이 행한다면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하면서 대역죄인처럼 몰아헤우기도 한다. 눈먼 소유욕과 집착으로 끝도 없이 관계를 수렁으로 밀어넣기도 하고, 달콤함을 기대하고 한 연애에서 잠시잠깐 쓴맛이 느껴진다고 에비 퉤퉤하며 뱉어내기도 한다. 어제는 좋아서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을 것처럼 목을 매달다가 오늘은 갑자기 카톡으로 우리 이제 그만 만나 - 라는 무성의한 메시지 하나를 날리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어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처럼 굴어서 하룻밤의 달콤함을 얻어내더니 오늘은 아 왜 이렇게 질척거려 - 같은 아구창을 돌리고 싶은 멘트들을 던져대기도 한다.
니가 내 마지막 사랑이야... 라는 말 앞에 (올해의), (이번달의) 같은 수식어를 고의적으로 누락하기도 하고 연애를 하자는건지 강탈을 하겠다는 건지 네것은 내것 내것도 내것 이러면서 물질적인 이득만을 갈취해내기도 한다. '태풍이 올라온다니 우리 이제 헤어지자' 급의 황당한 이유로 먼저 이별을 선언해 놓고는 좀 맘좀 추스르고 정신좀 차릴라 치면 인간이 가장 고독해진다는 새벽 두시 자니? 와 같은 전통적 멘트로 잠을 깨우고 추스르던 정신까지 와장창 깨놓기도 한다. 나에게는 30여명쯤의 언제라도 나를 위해 달려와서 술사주고 영화 보여주고 같이 놀아줄 '아는 오빠' 가 있지만 네 휴대폰에 여자 전화번호가 있는건 용납할 수 없다 우아아앙? 같은 극단적인 비논리성으로 상대를 피말리게 하다가 결국 알리바바와 30인의 교회도둑(?)중 21번째 도둑으로 환승하기도 한다.
오해는 곤란하다. 나는 이 모든것들이 연애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어떤 형태의 연애건간에 '에이, 그건 연애도 아냐~ 사랑도 아냐~'같은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것들은 또 그 나름대로 누군가가 이름붙인 누군가의 연애다. 흔히 부르는 막장연애라고 마냥 가치없는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것들을 '어른의 연애' 좀 더 정확히는 '어른스러운 연애'라고는 부르지 못하겠다는 거다. 마치 어른이라는 것이 나이만 먹는다고 그냥 어른이 되는게 아니듯이, 연애도 나이 든 사람들끼리 연애한다고 그냥 어른의 연애라는게 아니라는 거다. 몸뚱이만 어른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를 그만치 처먹고도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상대에 대한, 인간으로써의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굳이 어설프게 '어른의 연애'를 흉내내고 싶어하지 말고.
싱거운 결론이지만 결국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스스로가 '진짜 어른'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면. 삶이라는 것의 무게감도, 인연이라는 것의 귀함도 깨달은 어른이 된다면. 당신의 연인이 당신의 연인으로써만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 하나의 사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것. 아쉽기도 하겠지만 당신과 운명의 붉은 실로 엮이기 위해 독고다이로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나름의 관계들 속에서 얽히고 설키며 살아왔고 그 관계들까지 포함한 전부가 그 사람 하나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연인으로써의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조금 옅어지는 순간들이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써의 매력들을 바라보고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인내심과 진지함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평생 연애는 즐거운 것만 보고 살래/즐겁지 않은 연애를 할 바에야 고자(?)로 살래/풋풋함과 설렘 빼면 그게 연애야? 그런걸 왜해? 이런다 할지라도 스스로의 성장에 따라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새 '어른의 연애'를 하게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이야기다. 오랫동안 오물거렸던 이야기들은 무언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일단은 금요일 저녁이니. 어른의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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