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보통의일상'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11.08.26 날씨만으로도 싱나는 주말 2
  2. 2011.08.22 무변화 인간 4
  3. 2011.08.09 이별 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 4
  4. 2011.08.05 단상 정리 2
  5. 2011.08.04 오후엔 달달한 까페모카를 마실테야요 10
  6. 2011.07.12 사람이 고파요, 사람이 6
  7. 2011.06.13 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8
  8. 2011.05.31 연애, 그 둘만의 역사 4
  9. 2011.05.25 독한 세상이다, 참.
  10. 2011.05.16 나는 블로거다(...) 10

날씨만으로도 싱나는 주말


그러니까, 사랑니. 

그제, 그간 주기적으로 조금씩 자라나며 입돌아가는 괴로움을 선사해주던 사랑니를 드디어 뽑아부렀더랬다. 마취를 하고도 무슨 혼을 잡아뽑는 느낌에 고생고생하며 뽑아냈고, 이게 무슨 진화가 덜된건지 뭣인지는 모르겠지만 뽑고 나서는 의사쌤조차 '헉' 하고 놀랄만큼 커다란 이빨이 쑥 하고 나왔더랬다. 출근했다가 조퇴한지가 대체 언제인지, 아니 사회 나와서 그랬던적이 한두번이나 있었을까 가물가물한데 사랑니에 눌려있던 신경들이 있어서 하루정도는 한쪽 얼굴이 좀 이상한 기분일거라고 했던 의사쌤 말대로 얼굴 반쪽이 무슨 아수라백작처럼 지잉 - 하고 울리는데다가 피 한뚝배기 하실레예(...) 하듯 쉴새없이 꿀꺽꿀꺽 넘어가는 피를 견디지 못하고 GG. 

겨우겨우 집에 휘청대며 들어와서 여전히 피를 쳐묵쳐묵하며 침대에 누워 있는데 참 거 말 그대로 사랑니로구나 생각이 들더라. 많은 이들이 사랑니 뽑을 적이면 항상 그런 생각들은 했었더랬겠지만. 곱게 자라면 다행이지만 좀 삐뚤게 자라면 뽑아내야 하고, 뽑아내긴 더럽게 힘들고, 아프고 힘들고. 있던 자릴 혀로 더듬어보니 찝찔한 피맛만 느껴지고 뭔가 허-하니 비어있고. 햐 참 거. 그나마 다른게 있다면 사랑니는 기껏해야 네개란것 뿐인가. 앍. 그러고보니 나 오른쪽 아래에 그제 뽑은 녀석이랑 비슷한 녀석이 하나 또 있었더랬지. 흐미 제기랄. 아 이건 또 언제 뽑아야혀. 

*

날씨만으로도 그냥 마냥 싱난다! 라고 외칠 수 있는 날들이다. 해가 저물고 옥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느낄적에, 아침 출근길에 집을 나서는데 후끈한 온기가 아닌 서늘-한 기분이 들때, 점심 먹고 잠깐 거리를 걷는데 짱짱한 햇살에서 살짝 비켜 나무 그늘 아래 서면 시원-한것이 그냥 돗자리 깔고 싶은 기분이 막 들때. 아 너무 좋아. 최고다 정말 으허허허헣 ㅠㅠ 미친 우기(;) 때문에 덥지는 않았지만 아주 그냥 끈적축축후덥한 나날들에 사람이 막 그냥 시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날씨가 급 사랑스러워질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뭐 태풍이 두어개 더 온다는 얘긴 있지만서도. 

또 요렇게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니 엉덩이가 들썩거리는게 어딘가 여행이라도 가고싶다. 가을엔 역시 섬이제. 어디 인적 드문 섬같은데 들어가서 콧노래를 부르며, 땀이 등골에 송글송글 맺힐때까지 걷다가 또 길가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잠깐 쉬다가. 늦은 밤이면 바닷가 가서 조개구이라도 먹은 후에 조용-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에 벌렁 누워 별보고 있기. 아 생각만해도 너무 좋은데 추석연휴까지 어떻게 떠날만한 여유가 없다. 주말마다 이런저런 일정들이 있기도 하고, 다음주엔 워크샵도 있는데다가 추석연휴엔 애인님이랑 떨어져서 가족들이랑 온천이라도 가기로 했고. 기왕이면 다음 프로젝트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떻게 좀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오고 싶은데. 그러고보니 혼자 어디 간지도 이젠 정말 오래되었구나 ㅠㅠ

*

물론 그러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랑을 빨리 접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방법을 가르쳐달라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집착하고, 집착하고, 또 집착하라고. 

*

아 뭔가 더 쓰고 싶은데 오후에 교육 있어서 나가야 할듯. 날씨 조오은데 바람쐬듯 다녀와야겠다. 저녁엔 홍대 약속! 간만에 홍대 마실 나가것구나 어헣허헣. 

모두 날씨만큼이나 쌍-콤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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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화 인간


어쩐지 어색한 저녁의 바람이었다. 싱거운 여름이었다. 마치 끝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심지가 젖어버리기라도 한듯, 한여름의 무더위는 단 한번 맹렬하게 폭발하지도 못한채 스물스물 사라져가는 모양새다. 불면의 밤도, 만물이 타들어갈 듯 내리쬐던 햇살도 없었다. 이쯤되면 정말 '싱거운' 여름이었다 할만 하다. 더위에 약한 탓에 여름이 사계중 가장 못마땅한 계절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어쩐지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여름은 달갑지 아니하다. 그것은 온전한 성격의 문제다. 나는 어쩐지 제자리에서 제모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뻔질나게 들리던 단골 가게들이 사라질 때마다, 즐겨 먹던 군것질거리들이 단종이란 최후를 맞이할 때마다 그 왠지 모를 허전함에 매번 그것들을 되새길 적마다 씁쓸한 입맛을 쩝쩝 다시는 인간인 것이다. 

이쯤되면 인터넷에서 어느날 찾아낸 나의 탄생화인 아스파라거스 - 사실 채소따위가 탄생화란 말이냐! 라고 꽤나 투덜거렸었지만 - 가 가진 꽃말인 '무변화, 불변'이 나만치 어울리는 인간도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3월 18일 생들이 그런 성격을 가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허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또, 그렇게 변화 없음을 일련의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것이 고민이다. 눈알이 휙휙 돌아갈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그중에서도 더더욱 미칠듯한 스피드의 변화가 일어나는 IT업계라는게 과연 나한테 어울리는 바닥인가 하는 고민. 사실 기계치 공돌이란 아이러니를 품고 이바닥에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어떨때는 제법 신기하기도 한. 

*

조금 더 이런 성품이 가진 고약스러운 부분에 대해 짚어본다면 이런 것이다. 가끔 애인님과 밥을 먹을적이면 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최초의 상차림에 손을 대질 않는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적에도 그렇고 가끔 애인님이 상을 차려주실 적에도 그렇다. 뭔가 처음에 상이 내 손으로 셋팅된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 셋팅이 되어 있으면 그 차림새를 스스로에 맞게, 편하게 바꾸려고 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국그릇이 왼쪽에 가있거나 술잔이 멀찌감치 있거나, 반찬이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자리에 있거나 물통이 반찬 앞을 가로막고 있거나 말거나 고대로 둔다. 이게 혼자서 먹거나 친구들과 먹거나 할 적에는 의식조차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가끔 그렇게 굉장히 불편스러워 보이는 모양새로 수저를 놀리고 있는 나를 보고서는 애인님께서 이래저래 그릇 자리들을 조정해주고는 한다. 가끔은 이게 애가 된 기분인지라 부끄럽고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또 그만치 항상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니 그저 허허 웃으며 고마워하고는 한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느정도야 스스로도 그냥 에이 별로 불편치도 않은데 - 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스스로 생각해도 야 이 미련 곰탱아... 라고 생각할정도로 괴악한 포메이션의 상차림에서도 위화감없이 잘도 집어먹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끄적대며 생각해보면 내 주된 성격의 대부분의 것들이 모조리 그렇게 딱히 변화하는데는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를테면 또 권태에는 남달리 강하다. 같은 것을 반복함에도 쉬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낡고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번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으면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거다. 이를테면 순두부찌개를 두달 내리 먹고 나서도 좀 지나고 나면 다시 먹을 수 있고, 계란 후라이 하나에 양념장만 있으면 천년만년이고 맛있게 밥을 먹을 자신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번 좋아라하며 마음 준 이들에게 먼저 마음을 홱 돌리는 경우가 '거의'없다. 정말 제대로 이건 정말로 아닌듯하다 하며 홱 돌아선 이들에게는 다시 눈돌린 적이 없으면서도 또 종국에 가서는 그냥 저냥 좋았던 기억들만을 가지고 있으려 노력하고 그래도 덕분에 이런것들은 배웠더랬지 하며 말고는 한다. 이래저래 삶에 치여 잊고 살던 이에게 연락이라도 한번 오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오랫만에 만난 이에게서 이전과 같은 익숙함이 느껴지면 그게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다른 이에게서 가장 듣고싶지 않아하는 말로 '변했네'를 꼽고 심지어 좀처럼 외향도 변함이 없다!!!!! 지난주에도 우연히 올라탄 택시에서 '아직 학생이죠?' 란 말을 들었다고! 와하하하하!?!?(...묘하게 기뻐하는 듯 한 이유는 뭐냐)

*

그게 조금은 두렵고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특히나 권태로움 같은것이 굉장히 독이 되는 관계 - 연인관계 - 라거나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사실 가끔 걱정이다. 나는 당신이 여전히 좋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주 섹시한데 당신은 그렇지 않으면 어쩌지와 같은 고민이다. 천만다행스럽게도 애인님 역시 나 못지 않게 권태에 강한 성격이신지라 전혀 그런게 없다고 하시니 그저 가끔 가슴을 쓸어내릴 따름이지만 그래도 말이다. 사실 예전에 한번 그 '변하지 않음'에 상처받은 기억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게 또 이해가 가는 것이, 가끔은 나도 타인의 어떤 좋지 못한 부분이 변하지 않음에, 혹은 답이 없는 고민들을 여전히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보습에 갑갑스러움을 느끼곤 하니 말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스스로의 삶에 대한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변화 없음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꾸준한 계획들이 있고, 느릿하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어찌되었건간에 '앞으로' 걸어나가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니 말이다. 늘상 입에 달고 살지 않던가. 미래지향적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 느릿한 속도가 타인의 시선으로는 아예 제자리걸음 - 으로 비춰져서 고루하고 지루하고 답답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질까봐 걱정이 되곤 한다. 딱히 그런것은 아님에도. 

이를테면, 사실 스스로의 바램으로는 그렇게 썩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나는 타인이 변하는것에는 굳이 이래저래 토를 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그랬더랬다. 괜히 스스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어떤 틀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서 어긋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변했네 혼자 실망하고 혼자 가슴앓이하고. 뭐 소시적엔 누구나 다 그런것 아니겠는가. 허나 나이를 먹어가니 그게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것이다. 좋게 좋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그게 보기 좋고 가끔 부럽기도 하고. 특히나 어린 이들의 놀라운 성정같은것을 볼때면 - 사족을 더하면, 아가씨들은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곤 하더라 - 그게 막 무슨 삶의 오묘함을 관찰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스스로가 조금 이건 아닌데 - 싶은 방향으로 변한 모습을 봐도 그래도 그것도 그 사람이 그렇게 되어야만 할 까닭이 있나보다 하며 적당히 수긍하게 되고. 나이를 먹어가며 둥글어진다는건 이런 부분까지도 포함하게 되는거다. 나의, 타인의, 세상의 변화도 같이 뒹굴뒹굴 굴러가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쓸데없이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일을 무의식중에라도 피하게 되는것. 

아 근데, 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더라. 

*

그런 생각이 어느날 들었더랬다. 삶이 요동치던 날들에서 멀어진지 몇 해가 지났다. 결국 나는 가장 스스로다운 모습이라 생각하는 모습을 선택했고,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얼마전 탱자탱자 놀다가 이글루 블로그의 글을 역주행하고 있었더랬다. 몇 번이나 그럴 적이면 대부분은 그 덧글들에 눈이 가고 그 마음들을 느끼고 느끼며 즐거워하는데 그쳤었는데 그날은 우연히 스스로가 남겨놓은 어떤 말이 눈에 확 들어와 박히더라. 아직 아무것도 잊지 못하였습니다 라는 말.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본다. 여전히 그대로다. 물론 어떤 과거들과는 빠르게 멀어져왔다. 그것이 의미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앞으로 걸어가는데 장애가 될만한 것들과는 가끔은 좀 놀랍게도 말끔하게 안녕을 고하고 멀어져온것들도 있다. 헌데 어떠한 것들은 그냥 그렇게 둘러매고 간다. 그게 괴롭고 힘든 날들도 있는데 그렇다고 그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없다. 덕분에 조금 느릿하게 걷게 되더라도 뭐 어떠랴. 어찌되었건 내 두 다리로 끝까지 걸어내기만 하면 되는것인데.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의 완성인데. 

얼마 전의 어떤 밤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들을 했었더랬다. 만약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더 힘있게 포옹하고, 그 작은 손으로 가슴을 투닥투닥 두드려 맞는 한이 있더라도, 어거지로라도 입맞춤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뜨겁게, 뜨겁게 안녕하고 싶지 않았더랬을까. 그리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나는 그럴 그릇이 아니었더랬지. 하하. 그냥 이 마음들은 또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었더랬다. 가을바람이 불지 않나. 응. 가을바람 때문이다. 난데없는 가을바람 때문에, 괜히 머리속에 바람이 들어와서 괜히 쎼-한 기분이 드는거지. 어젯밤 나가수 재방송을 보다가 자우림이 부르는 뜨거운 안녕에 지잉-하고 울린 덕분이기도 하고. 다시 또 좀, 변화가 필요해진 시기이기도 하고. 

한량짓도 한 2주 남았나. 얼른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한량짓은 체질이 아냐 역시. 

*

바람이 불어오는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보자고. 넌덜머리날만치 미련하고, 당최 변하질 않는 아저씨야. 

이별 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


이별 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그동안 주고받은 편지나 선물같은 것이 아니다. 휴대폰이며 메일이며 어디며에 등록되어있는 그의 연락처와 주소들을 휴지통으로 이동시키는건 맘 내킬때 단순한 손가락 놀림 몇번으로 끝이 나는 일이다. 그보다 더, 이별 후 가장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기대다. 헤어졌지만... 그래도... 로 시작되는 모든 기대들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당신을 좀 더 큰 상처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아직, 이별 후에도 어떤 일련의 기대감들을 품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기대건간에 그것을 내려놓길 바란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서도. 

사랑을 하고, 연인이란 이름으로 어떤 시간들을 함께 공유했던 관계였다면 그것이 아무리 쿨하고 시원하기만 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끈적함들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절대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내듯 한순간에 모든것들을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거다. 그렇게 남겨진 것들을 들춰보면 바로 그 기대감들이란것도 어느 정도, 따져보면 제법 큰 정도로 자리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헤어진 그 사람이 빠른 시일 안에 새로운 연인을 찾지는 않을거란 기대감,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더 슬퍼하고 괴로워할거라는 기대감, 반대로 구질구질해지지 않게, 쿨하고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해줄거라는 기대감, 헤어져도 친구로 지내자던, 연애를 하고 있을 적에 했던 이런저런 약속들을 지켜줄거라는 기대감 등등 말이다. 지난 사랑을 돌이켜보는 것도 좋겠다. 당신은 과거 어떤 이별 후에 어떤 기대감들을 품었더랬나? 그리고 그 기대감들은 얼마나 충족되었더랬나?

우리는 안다. 자타가 공인할 만큼, 참 어디 모자란데 없이 멀쩡한 사람이더라도 아픈 이별 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당혹감을 선사할 만큼 망가져버리곤 하는 경우가 있다는것을. 어떤 이별들은 그렇게나 아프다는 것을. 당신도 어쩌면, 어떤 날들에는 이별 후 내가 왜이러지 내가 미쳤지 머리를 쥐어뜯고 이불속에서 하이킥을 날리면서도 그 아픔에, 슬픔에 그냥 몸부림치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이별 후에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는 누구도 감히 단언할 수 없다. 그 사람을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정말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그야말로 식스센스급의 반전을 보이며 초진상 엽기남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오히려 연애할적엔 그다지 좋은 기억들을 남겨주지 못한 이였지만 의외로 이별 후에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이별 후, 당신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그 일련의 행동들이 반드시 그 아픔때문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슬프게도 어쩌면 그/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연애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진 모든 면들을 완전히 다 안다고 매번 자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결국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유를 찾을 수도, 찾을 필요도 없다. 백날 저 사람이 왜 저러지 머리를 쥐어뜯고, 실망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태워봐도 이미 되돌릴 길은 없다. 이러저러해서 그럴거야 - 라고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켜 보려고 해도 제대로 될리가 없다. 결국 실망과, 배신감과, 풀어낼 길 없는 의문과 지난 연애에 대한 회의감들이 당신이 느끼고 있을 이별 후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나날이 더해가는 고통속에 괴로워하다가 어쩌면 더 나은 관계로 머물 수 있었던 관계는 종료된다. 바로 이것이 당신이 이별 후에 가장 먼저 '기대감'을 버려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별을 당했건, 스스로 이별을 선택했건간에 이 사실 하나만큼은 인지하였으면 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을, 그리고 당신의 그 지난 사랑이 가급적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이별 후에는 그 어떤 기대감이라도 내려놓으시라. 살아가며 모든 경우에, 기대했던 만큼 커다란 실망만이 돌아오는 삶은 없겠지만 적어도 그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당신의 기대는 무너져내리고 당신은 기대했던 만큼의 아픔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만약 과거의 사랑과 이별에서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거다. 당신이 매번 운좋은 사랑과 운좋은 연애만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별 후엔 그저 조용히 스스로에게 집중하시라. 상대가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주겠지라고 기대하지 마시라. 그저 조용히 아픔을 달래고 스스로를 돌보라.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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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정리


오랫만에 여름의 맨얼굴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씨다. 하기사 지겹게도 내린 비였다. 태풍의 영향인지 어제 내린 비의 영향인지 여전히 느껴지는 찐득한 습기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여름다운 날씨라 할만하다. 생각해보면 여름은 청춘을 쏙 빼닮았다. 양동이로 쏟아붓는듯한 빗줄기가 쏟아지는 장마도 그렇고, 장마 후의 자비없는 폭염이 또한 그렇다. 적당함을 모른다는 것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또 나는 항시, 내 주변의 청춘들에게 여름다움을 바라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겉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거나, 장마철의 강바닥마냥 깊게 잠기거나, 그런 굴곡들 자체가 청춘이어서 그렇다는 것을, 또 청춘을 떠나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어쩌면 괴로울지도 모르는 그 시간들을 가급적 유쾌하게 겪어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올해의 지루한 우울과 가슴이 다 타는 듯한 뜨거움을 견디어낸 나무들이야말로 한해 한해 거듭해갈수록 더 생생한 푸르름을 자랑하게 될 거라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이다.

*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이들일수록 타인의 호의를 쉽게 감지하게 된다. 굶주린 사람이 음식냄새를 가장 빨리 맡는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그것도 항상 장점일 수는 없다. 이를테면 누군가로부터의 호의를 빨리 감지해내기는 하지만 그 호의의 유형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 마땅히 내쳤어야만 하는 호의를 덥썩 받아들여 여러모로 낭패를 보게 되기 십상이다. 허나 그런 부분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며 경험을 쌓음으로 보완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기본적으로 그런 것 - 사람과 사람사이에 느끼는 좋은 감정이나 나쁜 감정 - 들에 감이 좋은 것은 역시 많은 경우에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그, '빈 것'을 참 견디어내지 못한다. 남한테는 있고 나한테는 없는것, 나한테 모자란것, 나한테도 제법 있으나 더 가지고 싶은것. 하지만 그렇게, 어떤 것들은 스스로에게 부족하고 모자란것이 멀리 보아 스스로에게 나쁘다고만은 죽어도 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거다. 조금 덜 사랑받았던 것, 조금 덜 가지고 자랐던것, 그런것들이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경우는 오히려 스스로 그런것들이 부족하고 모자라니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쫓길수록 오히려 더 그 빈 것들이 더 크게 느껴져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모자라고 부족한 것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모자라고 부족한 것들을 채우는데 지나친 조급증을 부리면 정작 그 비어있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까지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스스로를 모조리 비워낸 듯한 느낌조차도 멀리 보아서는 좋은 것들을 남길 수가 있다는 얘기다.

*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빛만큼 감추기 어려운 것도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 깊이 알고 싶거든 가능한 똑바로 눈빛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여라. 눈빛에 써있는 메세지들을 가만가만 읽어보라. '관찰'하듯 바라보란 얘기가 아니다. 당장 그 눈빛에 담겨있는 무언가들을 스스로 읽어내지 못한다고 답답해하며 가슴 칠 필요도 없다. 눈맞춤이란것은 꽤나 놀라운 효과가 있어서,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시간이 평온하고 안정적일수록 서로에게 서로의 눈빛에 담겨있는 암호를 해독하는 코드가 저절로 입력되고는 하는 법이다. 상대가 허락하는 만큼 상대와 눈을 맞추면 되는거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당신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야를 옮기려는 상대의 멱살을 붙잡고 고개를 돌릴 생각같은 것은 하지도 마라. 물론, 당신이 어떤 마음을 담아 상대를 바라볼적에 상대 역시 당신의 눈을 통해 그 마음을 충분히 읽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아직 상대에게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예를 들어 세상의 무수한 누군가의 '오빠'들은 이런 질문을 들을 때도 있을 것이다. '오빠는 가슴 큰 여자가 좋아 다리 예쁜 여자가 좋아?' 그런 순간에 그냥 되는대로, 입에서 튀어나오는대로 얘기하기 전에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 정답이 적혀있을 것이다. '나야 당연히 네가 좋지' 라고. 

*

이보게 자네, 매력있는 나쁜남자와 그냥 진상 찌질이와의 차이를 아는가?
뭔데?
니가 좋아하면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나쁜남자. 니가 싫어하면 그냥 진상 찌질이.
천잰데?

*

간만에 광합성을 한듯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어쩐지 오늘은 '모두 섹시한 금요일 밤 보내세요' 라고 인사하고 싶은 기분.

오후엔 달달한 까페모카를 마실테야요



회식 패턴이 바뀌었다. -_-;

워낙 누가 어디에 가서 뭐하고 붙어있는지 모를만치 사방천지 제각각의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는 팀이어서 회식이 적긴 하지만, 분기별 한번정도 하게 되는 회식이라거나 뭔가 이벤트가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회식자리에서 항상 느끼는건, 으아아아 증말 어마어마하게도 마신다(...) 는 거였다. 주량이 엄청 많다거나 한건 아니지만서도 그래도 애주가라 자신있게 얘기하는 스스로로써도 이게 흠좀무 할정도. 정말 한 3~4년 전쯤까진 회식 한번 했다 하면 어마어마 했었던 것 같아. 일이차는 기본이고, 중간에 술깰겸 당구 한게임 정도 치고 삼사차까지 다이렉트로 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더랬지. 근데, 그랬던 회식패턴이 변화가 생긴것이. 

이게 팀장님 포함 으르신들께서 슬슬 체력이 달려 그러시는지 퀵하게 먹고 쫑내고 귀가해서 얌전히 쳐 자고 내일 출근하자! 는 형태로 바뀐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마시는 술의 양이 별로 줄어들지 않은채 속도만 미친듯이 빨라졌어! 으아아악 뭔가 잘못됐어 난 여기서 나갈거야... 가 아니라 나갈 수가 없잖아! 뭔가 술자리 시작부터 폭풍처럼 술잔이 채워지고 빙글빙글 돌고 마시자 마시자 마셔버리자 으하하하하 이런식으로 대략 두시간정도를 쉴새없이 달린 후에 자 이제 맛이 간 분들은 택시에 실어 보내고 나머지는 맥주 한잔으로 정리하고 집에 갑시다 으헣허헣 - 이 패턴이 되어버린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날 그냘 초장부터 전사자 한둘은 그날의 핵심 타겟이 된 사람이라거나 해서 나오게 마련이고. 술은 빨리 마시는게 제일 빨리 취하는 지름길이지 않은가. 여하튼, 그래서. 

기세좋게 휴가 복귀하고 나서 첫날부터 휴가 잘 다녀왔냐 야 고생했다 이러면서 모질게 폭풍러쉬를 당하고 정말 무라마사로 정신줄을 잘린듯 매끈하게 필름이 잘림 -_-;; 그리고 한 이틀동안 지옥을 보고(...) 이제서야 정신이 좀 돌아와서 수다를 떨어본다. 사실 계획과는 반대로 휴가때조차 분주하게 보냈던지라 쉬지 못하는통에 이래저래 블로그에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못해서 밀린 수다가 많았었는데. 어쨌든 뒤늦은 수다를 떨어보면서. 

*

이글루를 떠난 후부터 어쨌건 서서히 연애상담과는 거리가 멀어졌는데 우습게도 애인님을 통해 가끔 애인님 지인들에게 연애상담 아닌 연애상담 '의뢰'를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정말 간혹 발생하는 이벤트다보니 나름 그때마다 신경써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럴때면 간혹 예전 이글루에 썼던 글들을 되짚어보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그때마다 또 나름 재미있고 웃겨서 피식피식 웃는다. 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순수하게 연애 관련된 이야기들을 그냥 입에서 되는대로 지껄였던건 그때가 최고였구나 하는 생각. 거리낌없이, 되는대로, 그러면서도 나름 스스로 포인트라고 믿고 있었던 핵심들에 대해서는 빼놓지 않고 얘기했었던. 

근데 사실 이게, 또 이런 경우엔 애인님 지인분이라는 관계 때문이기도 하고 해서 그때 그렇게 얘기했던대로 시원스럽게 얘기는 못하겠더라는 것이 좀 안타깝기도 하다. 스스로 말을 좀 아끼게 된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이를테면, 예전같으면 딱 얘기를 듣고 대충 견적이 나온다 하면 에라이 똥물에 튀길... 그냥 차버리세요(물론 이렇게까지 얘기한 적은 없다 -_-;) 했던것도 좀 더 신중히, 조심스럽게, 그러다보니 또 정작 핵심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르게 좀 두루뭉수리 - 하게 넘어가버리게 된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뭐 좋은 얘기 잘 들었다고 얘기를 들어도 좀 아쉬운 마음도 생기고. 쩝쩝. 

아쉬운 마음에 여기 좀 남은 이야기를 풀어보는건데, 나야 항상 얘기하는 거고 주변인들은 다 아는 거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 존중받는다고 느껴지지 않는 연애는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어린 나이에는 더.더.더. 이를테면 이런건데 어린 시절에 사랑 많이 받고 자라는게 정신건강에 좋다는건 다 알지 않나. 그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연애연령을 따져본다고 할때 (요즘에야 뭐 빨라지기도 했지만)10대말~20대초 이정도라면 연애연령으로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절이라고 보는데 그 시절에 너무 하드고어한 연애를 하게 되는건 향후의 연애에도 썩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게지. 물론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어릴때 고생을 해봐야 한다거나 하는 견해. 그래도 그, 음, 내 생각은 좀 그게 아니라는거. 그 시절이면 정말 뭐랄까, 딱 빛나는 시기 아닌가. 특히나 그 나이때의 아가씨들이라면 말 그댈 반짝반짝 빛나는, 딱히 꾸미지 않아도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짝반짝하는. 그런 시기에 헬오브무간지옥을 헤매며 고생스러운 연애를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나. 조금만 시야를 넓히고, 조금만 테두리를 넓히면 얼마든지 더 나은 연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난 반댈세! 를 외칠 수 밖에 없는 노릇. 

부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에게 정말 좋은 길을 선택하기를 바래요, 충분히 그런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으니까요. 귀여운 꼬마 아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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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보니 이것도 지지난주쯤 써보고 싶었던건데. 

이주 전쯤 헬오브지옥의 끝물 무렵에 완소 조카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더랬는데 그날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꽤 머리속을 빙글빙글 맴돌더라. 너무 오랫만에 사람을 보기도 했고 -,.- 이런저런 이유로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던지라 남긴것들이 많았었는데 그중에 이런 대화가. 어찌되었건 고2이후로 연애 휴식기가 1년이 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그 긴 연애의 역사중 7년짜리 한번, 그리고 지금 5년짜리 한번이 있다 - 는 얘기에 삼촌은 연애를 '잘'하나보다 - 라는 이야기를.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더랬다. 내가 과연 연애를 '잘' 한다고 말할 수 있나. 내 연애 방식의 장점은 뭔가. 뭐 그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연애를 하게되면 '성실하게' 한다는 점은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장점이었는데 이래저래 생각해보다보니 그래도 이런것들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표현이 많다(-가끔은 보는 사람의 손발을 퇴갤시킬 정도로), 이야기를 '잘' 듣는다, 근성있다(-_-;;), 권태에 강하다(전반적으로 뭘 하나 좋아하게 되면 좀처럼 질리는 법이 없음) 정도. 단점은 꼽다보면 갑자기 자괴감이 찾아올 것 같아서 패스(-_-;;) 아, 근데 사실 장단점을 이래저래 따져보다보면 그렇게 썩 내세울만한 장점같은것은 특별히 없는 것 같은디... 라고 생각을 더듬어가다가 결국 정리되는건 바로. 

역시 운이 좋았군. 음. 그래.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운이 좋았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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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상담이나 신장개업해볼까. 청춘의 연애담을 오랫만에 들으니 어쩐지 파릇하니 조쿤?
아 하지만 블로그가 거의 유령블로그가 되어가고 있잖아... 안될거야 아마... oTL

*

종종 하는 불평이지만, 스스로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는것도 가끔은 꽤 불편해. 어딘가쯤에 어찌해서 무엇이 부족해서 결핍상태로구나 - 라는게 뻔히 보이는데도 현재 상태에선 이걸 딱히 채울 방법이 없으니. 쯧. 차라리 몰라서 답답했던 시절이 낫기도 한 것 같지만, 또 돌아보면 그 시절엔 그 답답함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었으니 음. 답이 안나오는군. 
 
오후에는 완전 달달한 까페모카에 휘핑크림을 듬뿍 얹어 마셔줄테다! 아무래도 요즘 좀 당분이 부족한듯해. 당분이. 

*

비 후쌭... 우기에 스콜이라니 이건 뭐 완전 동남아냐.. -_-; 축축한 날들이지만 모두 마음만은 뽀송뽀송한 하루 되시길!

사람이 고파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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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일... 그야말로 해일처럼 밀려오는 일들을 꾸역꾸역 밀어내며 지내고 있다. 언제부터 월화수목금금금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정말, 정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뭐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한방에 시원하게 풀리는 문제라곤 없었던 프로젝트였던지라 일하는 시간보다 구글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말할정도로,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문제들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풀어내가며  지금까지 흘러왔더랬다. 서비스 오픈을 앞둔 이제야 그 끔찍했던 이슈들은 에지간이 해결되고 이런저런 자질구래한 문제들만 보이곤 한다. 정말 고난의 행군이었구나. 사실 그래서, 오픈까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는데 어느정도 이제 풀려간다 싶으니 긴장감이 풀리려고 해서 그런지 사지가 오그라드는 피로감과 더불어 그간 무리를 강요해왔던 몸이 여기저기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줄 놓지 말아야지. 이상태면 딱 정신줄 놓는 순간 그냥 뻗어버릴게다. 탁 치니 억 했다. 그런. 

이런 순간들이면 언제나 조금 신기한것이, 몸과 마음은 역시 하나다. 이를테면 그런거다. 긴장감이 풀리는 순간 밀린 피로나 몸의 이상증후들이 확 하고 드러난다 한다면 마음 역시 마찬가지란 거다. 긴장감을 가지고, 몰입하고, 집중하고 있었던 순간들에는 전혀 의식할 수 없었던 마음의 허기, 공백들이 그런 긴장상태를 벗어나는 순간에 몰려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말로 민망하리만치 오랫만에 이렇게 키보드를 도닥도닥 해보고 있는 중이다. 배가 고프다. 사람이 고프다. 이야기가 고프다. 하기사, 회사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서, 신나는 무리에 섞여서, 일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며 신나게 웃고 떠든 기억이 꽤나 가물가물하지 않던가. 아 이런 된장.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 아, 뭐 비가 내려서 그냥 사-알짝 센치해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마는. 음켈켈. 

*

입사한지 딱 일년밖에 안된 신입사원이 난데없이 퇴사한다고 했다. 올해 우르르 다섯명이나 신입을 받고 나름 멘토로 지정되었는지라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도 신경쓰려고 애를 쓰고 있는 와중에 소식을 듣게 되어 처음엔 기분이 참 씁쓰레 했더랬다. 미안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어쩔수 없었잖나. 돌이켜보면 작년도 올해보다는 아니었지만 참말로 쉽지 않은 하루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던데다가 갸가 입사하고 나서 겨울엔 바로 부산으로 떠났더랬었다고. 챙기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더랬지. 그래도 아쉽고 미안하고 그런 마음에 퇴사를 2주 앞두고 프로젝트 지원을 나왔길래 붙잡고 이유를 물었더랬다. 왜요, 적성에 안맞아요? 힘들었던거에요? 어디 옮길 회사는 알아보고 떠나는건가? 그리고 돌아온 의외의 답변. 아뇨, 전에 되게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사귀기도 했었구요. 그때도 좋아서 결혼하자고 그러고 했는데 채였더랬어요. 근데 이번에 다시 만나기로 해서. 여자친구가 호주에서 영주권 받으려고 하니, 거기 가서 다른 일이라도 하면서 같이 살려구요. 

이... 이자식. 남잔데? -_-!!?!?!?!?!?!?!?!?!?!?!?

허를 찔린 기분으로 껄껄껄 웃으면서 이야아 간지나네. 멋지다. 고고씽을 외쳐주고, 폭풍야근이 거듭되고 있던 지난주임에도 야근을 마치고 꾸역꾸역 팀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송별회를 해주었다. 역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사람들의 반응의 대세는 기대 < 우려 였는데 나만 옆에서 그냥 왜요 멋있는데. 간지 나잖아요 하고 있었다는건 자랑 혹은 안자랑? 팀장님께선 역시 어른이신지라 그런 얘기도 하셨더랬다. 청춘의 객기가 아니길 빈다고. 뭐 팀장님 말씀이신지라, 또 우려하시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지라 거기에 토를 달진 않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그 와중에도 외쳐주고 싶었다고. 로망이잖나 청춘. 청춘엔 객기도 부려봐야지. 멋있어. 사랑밖에 난몰라 하며 물론 지옥 노동에 시달리긴 하지만 안정된 직장과 그간 쌓은 이런저런 모든것들을 내던치고 새로운 삶으로 뛰어든다고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는것. 그런게 진정한 청춘의 로망 아니겠어. 난 그런게 좋다니까. 하하. 하하. 

이제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연락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외쳐주고 싶다. 자네의 청춘에 건배. 쩔어주는 기백을 보여주라구!!!!!!!!!!!!!!!!!!!!

*

어떤, 순간의 강렬한 기억은 다른 기억들을 잠식하는 효과가 있는듯하다. 언젠가까지는 이렇게 비가 바가지로 퍼붓듯이 내리는 날이면 이런저런, 꽤나 많은 기억들이 병렬로 떠올랐었는데 언젠가 이후부터는 이런 날이면 쏜살같이 기억의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기억이 있다. 쏟아지는 빗소리, 검은 방, 그리고 세상의 무엇보다 따뜻했던 온기, 아주 가느다란 숨소리. 물론 그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에게 그 기억이 어떻게 적혀 있을지는 이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기사, 그런 의문을 띄워보는게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었던가. 답이 없는 질문이라면 고민하지 않는것도 인생을 편하게 살기 위한 패시브스킬중의 하나인것을. 

더 센치해질까봐 당분따윈 허용되지 않는 요즘의 삶에서 그래도 달달한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역시 애인님이고나. 요즘의 피로는 뭐랄까, 정말 퇴근후에는 그야말로 꿈틀이(...)가 된듯한, 특히나 집에 들어가서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 꼼지락할 수도 없을만한 피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옆에 김태희가 누워있다 하더라도 손도 못댈지경(;;;;;) 뭐 그정도라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느즈막히 애인님과 만나 술잔 한잔 기울인다고 해도 술보다는 피로에 못이겨 먼저 떡이 되는 그런 상황인데 그런 상황이면 참 꼬옥 끌어안고 토닥토닥하며 잘도 재워주신다. 뭐랄까, 거의 품에 안기자마자 잠이 들긴 하는데 잠이 드는 와중에도 야 이게 천국이 따로 없구나(...) 뭐 이러면서 잠이 든달까. 천국이 별 거 있간듸. 사람이 사람에게 천국도 지옥도 되는게지. 당신은 내 천국. 내 썬샤인. 아 조금 부끄럽지만. 

플러스 원. 야근은 처 시켜놓고 퇴근시간 이후엔 에어컨 끄는 갑님의 자비없음에 아주 그냥 퇴근시간 이후, 혹은 휴일에는 사무실에서 익어가고 있는 요즘인데 그 얘길 했더니 어느날 불쑥 퇴근길에 USB선풍기를 사서 안겨주고 가신다. 햐, 참. 난 도대체 전생에 뭘 구한걸까. 햐, 참. 

*

근데, 정말 사람이 고파. 격하게 술을 마실 필요도 없고, 그냥 사알짝 취기가 오를 정도의 술, 음, 사케 좋겠다. 사케 아님 와인, 아니면 보드카 잔술로 시켜놓고 달각달각 돌려가며 사알짝식 마시면서 이런저런 세상이야기, 사는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생각하고 있는 모든것들을 주욱주욱 꺼내놓으면서, 눈을 맞추면서, 그렇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구나, 사람이 사람이랑 부대끼며 살아야제 하는 그런 밤들이 고파. 회사사람 말고! 하루에 열네시간씩 얼굴 보는 사람들 말고오오오오오오!!!!!!!!!!!!!!!!!!!!! 밀먀ㅓㄹ'ㅣㅓㅇㄻ읾'ㅓㅇㄹ 아 -_-;; 역시 정신줄을 살짝 풀어놓으니 과잉 스트렛흐가 밀려오는고나. 오후엔 다시 닥치고 일모드로 돌아가야지. 일단 이것만 끝내자. 일단 이것만. 이것만. 

하아, 또 그러면서 혼자 여행도 좀 가고 싶고 그런걸 보면 뭔가 단단히 속에 뭐가 비었어.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것. 그대에여 나머지 써루움은 나으 빈자안에 채워어 줘어어어어어어. 

두서없는 오늘의 밀어내기 끗끗끗. 그래도 조금 개운하고나. 히히. 장마철이라고 너무 늘어지지 마시고 모두 촉촉한 하루 되시와요 :) 

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사회 생활 초반에 일했던 회사에서 대표님이 얘기해주셨던 일화다. 신혼때의 일이셨단다. 맞벌이를 하셨던 중이었던지라 아침에 와이프분께서 먼저 출근을 하고 자신은 좀 늦게 집을 나서곤 했었더란다. 하루는 둘다 늦잠을 자는 통에 와이프는 눈뜨자마자 허둥지둥 준비해서 집을 나서고 자신은 그제야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변기를 열었는데 크고 아름다운 그것 (-_-;) 이 둥둥 떠다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경황없이 나서다가 화장실 물을 내리고 가는걸 깜빡하고 갔더라는 것. 사실 뭐 새신부라고 응가를 안하는것도 아니고 자신도 딱히 뭐 굉장히 놀라거나 한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신혼이 신혼이었고 처음 보았던 것이었던지라 좀 당황스럽긴 했었다고.

이게 근데 그냥 혼자서 보고 놀래고 어헣허헣 웃고 넘어갔으면 그뿐인 건데 그게 또 그게 아니었던지라. 아침에 경황없이 출근한 와이프분께서 이게 이게 (-_-;) 내가 물을 안내린것 같은데... 설마 설마? 를 하루종일 반복하고 계셨더라는 거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와서 TV를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하루 일을 마친 와이프가 들어오는데 이게 들어오면서부터 왠지 자기 눈치를 보는 것 같고(...)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고 그렇더라는 것이다. 속으로는 쿡쿡 웃음이 나오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자리를 물리고 둘이 쇼파에 앉아있는데 그제야 참지 못하고 슬쩍 물어보더란다. '저... 음... 그러니까... 그... 아침에 화장실에서... 음... 혹시.. 아니 그러니까 내가...' , '아니 왜? 뭘 그리 뜸을 들여?' , '아니 그러니까... 내가... 혹시... 물 안내리고 갔나 해서...' 사실 그때쯤에야 거의 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여기서 웃어버리면 몇날 몇일 와이프 얼굴 보기 힘들것 같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응? 아냐 물 내리고 갔었는데 뭘' 하고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추궁을 해도 끝까지 부인을 하셨다는 훈훈한 미담(?) 이었달까. 

우리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라도,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을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을 감아야 할 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다. 물론 우리는 관계 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때, 눈을 감기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조율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 그런, 조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많은 경우에 좋은 방법이라고 권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떤 것들은 분명히, 끊임없이 부딪치고 다투며 그 모습들을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보다 그저 한번 웃으며 슬그머니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본인의 황금변을 확인시켜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정도야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에피소드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려면 반드시 우리는 눈을 감는 것이 좋은 상황에서 눈을 감는 방법에 대해 깨우쳐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어느정도 배변훈련은 시키더라도 가끔 엉뚱한곳에 똥오줌을 갈긴다고 해서 몽둥이 찜질부터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굉장히 애지중지하던, 선물받은 낡은 책상에 생긴 자그마한 흠집정도는 그저 세월의 훈장인 셈 치며 너그럽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속적인 열정을 유지하려면 대머리 박부장의 괜한 생트집 정도야 안들려 안보여 하며 시크하게 넘어가는 법부터 깨쳐야 하는 것이고 단골 가게의 반찬에 나온 한올쯤의 머리카락은 에이 아주머니~ 혹은 조용히 휴지에 감싸 구석으로 밀어놓는 정도도 괜찮다는 것이다. 즐거운 피서를 즐기고 싶으면 물보다 많은 인파야 적당히 부대낄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애인이 예쁘고 곱게 입고 다니길 원한다면 좀 짧다 생각이 드는 미니스커트에도 요쏘쎅시 하며 쿨하게 넘어가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이 빠르게 반감되는 원인 중 하나는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굳이 보고싶어하는 사람의 속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애정을 품는다면, 그것들에서 스스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시선 조절을 할것인가에 따라 그 애정의 유통기한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슬프게도, 어떤것들은 거기에서 죽어도 눈을 돌리고 싶다 해도 반드시 보아야 하거나, 보게 되거나 하는 것들이 있겠지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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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 둘만의 역사

연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연애의 과정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오롯이 둘만의 역사로 남는다. 이것은 그 연애가 어떤 성격을 띈 것이었냐와도 무관한 것이고, 연애라는 것의 기본 정의와도 관계 없는 이야기다. 단 하루밤의 뜨거운 연애였건 수년에 걸친 잔잔하고 고요한 연애였건 어찌되었건간에 서로간에 그 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그 과정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둘만의 것이란 이야기다. 물론 우리 개개인의, 개인의 역사가 그러하듯 연애의 끝맺음에 따라 그 역사들은 일부 사람들에게,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지기도 하고 그 역사를 듣고 보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들 또한 무한의 가지수를 가진다. 물론, 대단히 서글프게도,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어떤 가슴 시린 가사처럼 둘이 함께 공유한 역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에 대한 감정은 시간이 흐른 뒤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반사다. 한 사람에겐 지우고 감추고 싶은 흑역사가 되지만 어떤 이에겐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지기도 하는거다. 하지만, 어찌되었건간에 중요한것은, 연애가 끝나고 나서 그 역사의 한페이지를 들춰볼적에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것과 무관하게 그 시간들에 그 사람과 함께했던 모든것들은 둘이 함께 공유한다는 거다. 그것이 설령 지나고 나서 미치도록 짜증나고, 아예 시간을 온전히 삭제하고 싶은 감정에까지 들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할 수는 있지만 서로가 함께했던 시간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나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배려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둘만의 역사를 둘만의 역사 그대로 남겨두는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약하고 약한 사람이기에 가슴 아픈 이별을 겪었다거나 그도 아니고 아예 황당하고 기가 차기 짝이 없는 이별을 당했다거나 하는 경우에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위로를 구할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거다. 당장 내가 죽겠는데 상대에 대한 예의부터 따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겠나. 물론 그 순간에도 정말 에라이 개개끼야 (혹은 솽뇬아) 너 한번 어디 엿먹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상대와 알지 못하는, 알 가능성이 가급적 희박한, 혹은 비밀유지가 잘 될 수 있는 지인들 정도에게 이야기를 하고 털어버리는 것이 매너라고 생각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당장 내가 죽겠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짚신벌레라도 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에 그런 저런 둘만의 이야기를 하는것 정도야 사실 원치 않게 스스로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건너간것을 알게 된 그 상대라 하더라도, 그것이 최소한 어느정도 애정을 담보로 한 연애과정 후의 일이었다면 납득할 만 하지 않겠나. 좋아하고 아꼈던 사람인데 힘들고 괴로워 뒷다마좀 깠다는데 그걸 또 이해조차 못해주면 그건 그것대로 거시기한 일일 테고.

하지만 이거야 뭐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것이지 이게 무슨 어디 연애 법전같은데 기록되어 있는 것도, 이별 매너 가이드 Ver1.0 파일에 수록되어 있는 것도 아닌게다. 게다가 둘만의 역사를 참을 수 없이 어디 오픈하고 싶을때마다 구남친 구여친한테 전화 걸어 야 나 이 이야기 해도 되냐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할 적에, 행여라도 서로가 알게 된 후에 느끼게 될 감정들도 사람마다 다 다를것이다. 혹자는 에효 찌질하게 뭐 그런걸 떠들고 다니냐 걔는 하고 넘어갈거고 혹자는 어딘가에서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가슴 짠-한 그 시절의 다시 떠올려볼 수도 있겠지. 고로 이건,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이게 옳다고 주장하거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될 수가 없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실명도 아닌 익명으로 온라인 상에서 구남친 구여친 혹은 하룻밤 연애 상대들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 팍팍 써제낀다고 해도 그 사람이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것이며(물론, 세상은 좁기에 정말 대단히 극히 드문 확률로 알게되는 경우도 있겠지마는) 그게 무슨 대단한 문제가 되겠는가. 욱 하는 마음에 실명 까고 사진 까고 동영상 까고(;;) 그랬다가 쇠고랑 차는 사람들이 까먹을만하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쉽사리 그렇게 하지도 않지. 적어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누구한테 이런거 충고하거나 할 마음도 없고, 그냥 이건 오늘 우연히 이글루에 갔다가 굉장히 해묵은, 하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걸 보고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쓰는건데. 

난 그냥, 그게 안타깝고 안되었더라고.

가끔 온라인상의 어떤 글들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1,2,3으로 등장하는 그네들이. 물론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앞으로도 평생 알리가 없는 누군가들이지만 말이다. 그네들은 그렇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자기 가슴을 물어 삼키던 어떤 남자가 온라인상에서 자신과의 역사를 한 단어로 -잤다- 요약해서 까놓고 키득대고 있을거란걸 상상이나 할까. 그들은 그렇게나 사랑하네 좋아하네 너 없인 못사네 했던 그네들이 돌이켜 보면 참 개쌍놈이었죠 ㅋㄷㅋㄷ 하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까. 어찌되었건 어떤 이들에겐 어떤 무게감으로,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 어떤 기억들이 한낱 술안주감, 아니 그것도 아니고 그냥 온라인에 찍 싸고 마는 똥글 하나 정도로 나뒹굴고 있을거라는 걸 감히 짐작이나 할까. 그걸 안다면 혹시 그네들은 충격을 받을까. 아니면 그네들에게도 똑같이 그정도의 무게감으로 남은 그런 이야기들일 뿐인걸까. 이런건 그냥 어느 고리타분한 아저씨의 쓸데없는 생각과잉일 뿐인걸까 진행형이 아닌 과거로 돌아간 어떤 관계들은 어떻게 그걸 굴려대거나 팔아먹거나 한다고 해도 전혀 거리낄것이 없는걸까. 그렇다면 타인에게 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소설로 써서 누군가 대박을 쳐도 그 타인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면 그 소설가는 스스로에게도 한점 거리낌 없을 수 있는걸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정신작용일까 혹은 다만 이기적인걸까. 만날 적에 이 놈년이 헤어지고 나서 나랑 떡친 얘길 사방에 떠들고 다니지 않을만한 위인인가를 먼저 검증한 후에 연애라는 프로세스를 밟는것이 정상적인걸까 아니 그것은 검증이 가능한 것일까 기타 등등. 을 떠올리다보면.

그저, 누군가들의 상상속에서 제멋대로 각색된채로 둥둥 떠돌아다니고 있을 익명의 그대들에게. 유감이라는.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의 인생에서의 연애들은 더 멋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행여라도 또 이별을 경험한 후에라도, 행여라도 산뜻하고 쿨하게 돌아서고 난 후에라도 뒤통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기를. 건투를 빈다. 고 말할 도리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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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세상이다, 참.

*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속이 편치가 못하다. 괜히 마음이 우울하고 쓰리다. 사실 즐거운 주말 마무리였고 즐거운 한주 시작이었고, 사지가 오그라들게 바쁘긴 하지만 일도 꾸역꾸역 잘 밀어내고 있는 상황인지라 개인적으로야 충분히 업 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스스로도 놀라우리만치 여파가 크다. 사실 이틀간 포탈 사이트만 띄워도 사방에 보이는 잡놈들 덕분에 인터넷 자체를 꼴도 보기 싫었고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이게 도저히 안되겠더라. 조금이라도 풀어놓아야 이 묵직한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려나 하는 마음에 이야기를 한다. 해당 이슈에 대해 더는 어떤 이야기도 보고싶지 않다 하시는 분들은 미리 패스하시라.

*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야구팬이기야 하지만 데일리 야구 소식은 아이러브베이스볼쪽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편이고, 그냥 스쳐가듯 몇번인가 TV에서 보았다 하더라도 워낙 안면인식이 안되는 인간인지라 기억을 할리 만무하다. 또 워낙 연예인이건 누구건 스캔들이네 어쩌네에 대해 별 관심도 없기에 처음 사건이 터졌을때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트위터에서 언뜻 이야기만 들었더랬다. 디테일한것까진 모르고 그냥 둘이 썸씽이 났는데 임태훈이 발뺌하는건가 정도로 이해하고 흘려보냈다. 관련해서 트위터에 나쁜놈은 물구나무를 서도 나쁜놈이라고 썼던게 전부. 그런데 이렇게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뭔가 일이 커지면서부터 대체 무슨일이야 싶어 찾아봤다가, 인터넷상에 넘쳐흐르는 왠갖 패러디와 조롱들을 보고, 그리고 좀처럼 수습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거에서 어 어 하다가 임태훈 1군 올라왔던날 두산 구단이랑 임태훈 인터뷰하는거 보고 정말 사실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더랬다. '야야, 이거 큰일 나는거 아냐 이러다?' 솔직히 그런 생각 왠만큼 사태 돌아가는거 보고 있던 사람이었으면 한번쯤 다 들지 않았겠나. 아니 진짜 입장바꿔 생각해봐. 예를 들어 내가 회사에서 누구랑 썸씽이 났어, 내가 맘 주고 좋아했어, 근데 그게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참 듣기 더러운 형태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상대 여자랑 회사에서 두 사람은 아무 관계가 없었다고 발표하고 일에만 전념한대. 난데없이 난 뇌내망상연애를 시전한 스토커가 된거야. 와 참. 죽지는 않더라도 죽고싶을 정도일테고, 최소한 회사는 더 못다니겠지. 근데 야구팬을 천만 잡고 국민중에 천만이 아는, 얼굴 다 팔린, 나이도 적당히 먹은 여성의 입장에서 그런 꼴을 당한다? 이쯤되면 위험한거 아냐? 라는 생각, 누구라도 한번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근데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하나. 야, 야, 이거 큰일나는거 아냐? 그냥 이러고 또 내 할일 해야지. 네이버 관련 기사 하나만 까도 덧글란에 미친놈들이 수두룩한데 내가 그거 다 쫓아다니며 신고를 할것이여 뭘할것이여. 이글루라도 열심히 쓰고 있었을적엔 최소한 거기다라가도 좀 적당히 해라 이것들이 한마디라도 갈겼겠지. 그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그거였다. 누군가 죽을 것 같아. 그리고 분명히 굉장히 많은 다수가 고의건 고의가 아니건 그걸 부추기고 있었어. 근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까, 이 사회는 이미 제법 많이, 그렇게 누구에게 딱히 살해당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 누군가들이 아주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찝찝한 죽음을 많이 경험했단 말이야. 근데 또 그렇다는 거. 그리고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굉장히 리얼하게 생중계되고 있었다는거. 딱 죽는 순간만 빼고. 이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와, 내가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은 세상인데 참 사람 별거 아닌걸로 그냥 훅 보내버리는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그, '흉기'가 된게 그래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고 살고 있는 넷이라는 것이. 오버 조금 보태서, 정말 소름이 끼쳤더랬지. 정말 소름이.

*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책임을 말하면 이게 물타기네 잘못한놈은 따로 있는데 애궂은 네티즌 잡네 뭐 이런 얘기들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많은 이들이 칼꽂은 범인으로 꼽고 있는 '그'에 대해 말해본다면.

사실 얘에 대해선 길게 말하기도 싫다. 솔직히 말하면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꺼려져. 근데 내가 항상 생각하는 삶의 기본 원칙이란게 있어서 그걸 적용시켜보면 그래 그렇다. 난 얘가 계속 야구를 하건 말건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아. 사람이 한번 잘못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되거나 하는거에 난 언제나 반대해왔으니까. 그래 뭐,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그러면 뭐 또 공던지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분명한건 난 다신 얘가 마운드에 서서 공던지는걸 내 눈으로 보진 않을거야. 기아랑 두산이랑 경기하는데 얘가 올라온다 그러면 티비 채널을 돌리던가 야구장에 있으면 담배를 피우러 나가던가 하겠지. 이건 그냥 개인적인 감정이다. 꼴도 뵈기 싫어. 내가 오죽했으면, 화요일엔 하도 열이 뻗쳐서 얘 미니홈피 찾아볼까 생각이 다 들더라. 태어나서 두번째로 악플 달뻔했다. 물론 아서라 말아라 하고 말았지만. 왜 그렇게 싫은거냐고? 불특정 다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말하면서도 얜 왜 그렇게 싫은거냐고?

그래 뭐, 얘 인터뷰가 마지막 한방이 되었다는 얘기도 사실 아주 틀린말은 아니고, 떠돌아다녔던 루머가 사실이라면 이건 뭐 그냥 존나 찌질해서 싫기도 하긴 한건데 제일 큰 이유는 그게 아니다. 나같이, 아무 연관도 관심도 없는 그냥 일반 야구팬 한명조차 야, 이러다 큰일나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내몰리고 있었는데 그걸 방치했다는게 제일 싫어. 사실 온갖 루머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다들 괜히 니탓이오만 하고 있는 이 상황이지만 분명한건 하나 있지. 설령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게 '모두'라 하더라도, 그녀를 '살릴' 수 있었던건 걔 하나 뿐이었지.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지.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그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어. 어려서? 운동만 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피식. 암튼 그래서 싫다. 야구를 계속 하건 뭘 하건, 메이저리거가 되건 만년 2군에서 썩건 20승 투수가 되건 뭘하건, 그냥 난 더이상 볼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 그냥 그뿐.

*

아주 오래전부터 입이 닳도록 얘기해 온거지만.

그러니까 넷에서 표현의 자유 나부랭이가 어쩌구 저쩌구 나대는것도 좋고, 설치는것도 좋고, 뭐 그래 적당히 서로 놀려먹기도 하고 갈구기도 하고, 그렇게 아웅다웅 사는것도 좋지. 근데 좀, 진짜, 누군가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때엔 적당히좀 해라. 씹히고 뜯기고 하는 사람 맘좀 이해하라고. 연예인 스캔들 가지고 신나게 웃고 떠들고 할라면 그냥 니 친구들하고 술이나 처먹는 자리에서나 해. 넷에 찌질찌질 써갈기지 말고 쫌. 하기사, 이런 얘기를 알아먹을만한 애들이면 그렇게나 개 생지랄을 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이건 뭐 정말 한 한시간 웹서핑만 해도 싸이코패스같은 애들이 한타스는 나와. 참, 거, 정말 세상 참.

그리고 왠만하면, 정말 힘들고 괴로울때에 인터넷에 기대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누굴 까지 못해 안달난 눈알이 시뻘건 들개새끼들이 넘치는 곳이랍니다. 정말로 말이지요.

*

어제 야구도 안보려다가 퇴근하고 딱 들어가니까 베이스볼 투나잇 야가 하는데. 마무리 멘트 들으며 증말 짠하더라. 에효. 참.

진심으로 고인이 편히 쉴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진심으로.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없기를. 정말 다시는.

P.S : 마지막으로, 여전히 정신못차리고 있는 놈들은 몽창 고자나 되어부러라. 에라이.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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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로거다(...)

* 꽃피는 봄이 오면

지난주까지만 해도 춘래불사춘이로세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날씨였는데 주말을 전후하여 화끈하게 개었다. 5월 초에는 사실 이런저런 악재들로 고난의 행군이다 싶은 징검다리 연휴를 보내었는데 연휴를 보내고 나서는 그도 좀 정리되어 차분해졌으니 그저 다행이다 싶어 헛헛하게 웃는다. 맑아진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머리도 맑아 간만에 출근하자마자 분주하게 일을 처리하고 잠깐 블로그를 열었다. 마지막 글을 쓴지 20여일이 지난 걸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다. 맙소사. 무슨놈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는가. 어쩐지 허전-한 공간이 안쓰러워 사실 주절주절 떠들만한 뭐 대단한 여유가 생긴건 아닌데 키보드를 도닥여본다. 미안. 꽃피는 봄이 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또 신나게 떠들어봐야지 했었는데. 이젠 봄을 넘어 어느새 후끈 달아오르는 날씨라니. 미안. 게을러서 미안해. 미안.

...과는 별개로, 요즘 나는 가수다의 음원들에 아주 그냥 푹 쩔어 산다. 방송만도 몇번을 봤는지 모르겠고 사무실에서도 매일같이 고 노래들을 무한반복 하고 있는데 매일같이, 그날그날 꽂히는 노래들이 다르다. 방송에서 처음 들었을때 음... 이건 좀, 이라고 했던 노래들조차 나중에 귀로만 즐기다보면 그게 그렇게 좋아서 듣고 돌리고 듣고 돌리고. 사실 오늘 아침부터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박정현의 '미아' 인데 지난주에 거의 사흘 이상을 꽂혀있던 꽃피는 봄이오면 이었던지라 첫 타이틀로 꼽고 써본다. 날씨도 딱이지 않은가. 꽃피는 봄은 왔다. 그리고 당신이 있어 나의 봄은 언제나 찬란하다. 이정도면 좋지 아니한가. 하하.

* 미아

길을 잃어 버린 나, 쉬운 길은 없어서 - 캬, 참 가사 참. 굉장히 간만에 쓰는 글인데 사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심정이 그런거다. 미아가 된 기분. 어쩌면 새해 들어 지금까지 뭔가 좀 길을 잃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 뭐랄까, 지난 4개월의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리둥절' 이란 단어가 딱 떠오르는듯. 해가 바뀌고 새로 다가오기 시작한 고민들이, 일어나는 생각들이, 해내야 할 일의 양이 예상치를 훨씬 오버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심각했던건 일의 오버지만;; 5월초 징검다리 연휴에 사실 4월의 무리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통에 아직까지 피로가 덜 풀렸다 싶게 골골거리며 보낼 정도로 가혹하게 일이 많이 밀어닥쳤더랬다. 간간히 트윗같은걸 날렸지만 딱 그런 심정. 아, 작년에 젠장할 한 삼년 일할거 일년만에 다하는구나 하며 엄살을 떨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그럴 때가 된 거로구나. 나이를 먹고, 책임은 커지고, 이제 그정도가 그냥 일상적인 업무 강도가 되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 적응이 늦었던거지. 끌끌.

아, 뭐 그렇다고 굉장히 지쳐버렸다거나, 굉장히 일에 염증이 생기거나;; 한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스스로의 일에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되기 시작했고 덕분에 워커홀릭 증상이 살짝 심화되어가기도 하지만 의욕적으로, 많은 일에 욕심을 부려가며 하고 있다. 그러니까 핵심은, 음, 그래, 일만 했다. 이게 좀 낭패. 사실 그동안에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요즘은 일 이외의 생각을 진득-하게 오래 붙들고 늘어지질 못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일 말고 해야 할 고민들도 사실 한번 물고 늘어지면 끝이 나지 않는, 좀처럼 답이 없는 심각해야만 할 고민들만 물고 있는지라. 그래서 이래 막히고 저래 막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긴 글을 멀리하게 되고 트윗만 슬쩍슬쩍. 근데 이게 답답하더라고. 주저리주저리 좔좔좔 풀어야 할 얘기들은 분명히 있는건데.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뭘 쉽게 쓰질 못했더니 꼭 해야만 했던 생각들, 느껴야만 했던 무언가들도 우왕좌왕하다가 지나쳐서 미아가 되어버리더라고. 중간중간 이것때문에 답답하긴 했었는데 그때마다 또 이노무 일이;; 아 쓰다보니 나름 고생했구나 이매듭 34세. 토닥토닥. 수고했어.

...쨌든 그런 관계로. 길을 잃어버린 생각들의 끄트머리를 붙잡기 위해 시작한 긴 잡문이라는 얘기. 그런 얘기. 아 근데 박정현씨 너무 좋아. 사지가 오그라들도록 좋아! 마이크를 거꾸로 잡고 불러도 잘 부를것 같아! (...확실히 길을 잃은 듯 보여 자네 - )

*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글루에서 뜨며 이제 잡다한 일상글은 자제해야겠다 생각을 했던게, 워낙 이글루에서야 방문자도 많고 그래서 잡다한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퍼 알리는것도 좀 껄끄러웠고 했던 이유도 있었고, 나이 먹고 좀 점잖아져야지 했던 이유도 있었는데 이렇게 좀 지나다보니 그걸 간과했더라. 기록이 안남아. 요즘 블로그를 보거나 가끔 이글루 들어가서 과거 글을 보며 흠칫 하게 되는게, 기록이 안남아. 이글루를 떠나고 나서 지금까지도 참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무수하게 많은 생각과 고민과 기타 등등들을 했음에도 기억나는건 제기랄 일한 기억밖에 없고(...) 아 어쩌다 삶이 이렇게 각박해졌나 하는 기분에 좀 흠칫했다. 그래서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는 건데 어차피 여기야 정말 가끔씩 들러주는 분들 외에는 극소수 분들만 오시니 다시 슬슬 일상에 대한 기록, 일기처럼 이런저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써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거. 힘 좀 빼고. 편하게, 쉽게, 그렇게. 아주 예전처럼 - 은 아니어도 좀 진득하고 꾸준하게.

그리고 그게 또,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란 인간은 아무리 바쁜 와중에서라도, 글을 꾸준히 썼을적에 뭔가 더 활기차고 뭔가 더 알차게 삶을 꾸려나갔던듯한 기분인지라. 아 물론 쳐 놀기도 많이 했지만;; 뭐랄까 그 에너지란거 있잖수. 에너지. 그게 달랐어. 목적도 없이, 이유도 없이, 그냥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글을 써야겠다. 뭐라도 다시, 꾸준하게 습관처럼 남겨버릇하다보면 그게 또 쌓이고 쌓여 훗날 돌아보며 그래 이때 이런 생각들을 했었더랬지 하는 밑천이라도 되게. 이게 기록이 남지 않으니 스스로 열심히 살았는지 쳐 놀았는지(;;)도 알 수가 없어. 또,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해온. 그냥 두서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써볼 생각. 그냥 태어나서 지금까지 느꼈던 사랑의 모든것들에 대해서. 이제 좀, 그런 이야기를 써도 스스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다가 더 나이먹고 더 인생 팍팍해지기 전에 꼭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였던지라. 그래, 힘을 빼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꾸역꾸역 써야겠다. 정말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 너를 위해

그건 그렇고, 확실히 다 죽어가던 감수성이 좀 살아나기 시작한건 아무래도 나가수 덕분인데 아흐으으 어쩜 노래들이 다. 근데 이게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하더라고. 요즘 주말 데이트는 거의 토요일에 하고 일요일엔 애인님이랑 같이 나는 가수다 본방사수가 메인 이벤트인데(;;) 왜 그, 재범형님이 너를 위해 부르기 전에 나와서 했던 인터뷰 있잖냐. 왜 이 노래 부르냐 그 질문에 답한거. 그냥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고, 살다보면 그런 사랑 한번쯤 누구나 하게 되지 않더냐, 너를 위해 떠나주고도 잊지 못하는 한사람쯤 있는거 아니냐. 그런 얘기. 근데 워낙 내 지난 연애사를 다 알고 계신 애인님인지라 막 장난을 치는게야. 그래서, 잊지 못하는 한사람 쯤은 있지? 막 그러면서. 아 이게 장난이란건 알고 있는데 순간 난감시러서 막. 아니 재범형님은 왜 쓸데없는 소릴 해서(...)

뭐 그런 거 왜에도 사실 또 나왔던 노래들이 워낙 헐트 뷁끼(;;) 하는 노래들이 많은지라 기분 좀 다운되고 좀 쳐지고 하는 날에 무한반복하고 있으면 막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 까진 아니지만 아무턴간에 그런 후유증도 있더라고. 지금 이걸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귓가에 이소라의 너에게로 또다시가 흘러나오는데 와 이 화창한날 들으니 갑자기 막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야. 과연 마교 교주(?!) 접때 언제냐, 연휴 마지막을 찌뿌드드하게 보내고 다음날 출근해서 꿀쩍-한 기분으로 앉아있는데 바람이 분다가 나오데그려. 아 진짜 막 마음 한구석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아서 쓰러지는 줄 알았네. 나는 가수다 청중 평가단들이 그렇게 울어제끼는 이유가 다 있어요. 거기 그 노래들이 그런 노래들이라니까. 아주 그냥 심장을 제대로 강타해버리는. 이별한사람들 들으면 단체로 한강가고 싶어지는 그런 노래들.

아 뭐, 너를 위해로 시작했으니 너를 위해로 마무리하자면, 나 예전에도 블로그에 비슷한 얘기 썼다가 욕을 쌔려먹었었는데(;;) 난 여전히 그런 생각이야. 너를 위해 떠난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아니 그게 모조리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게 아니라, 그냥, 적어도 나는, 다시는, 앞으로의 생에서도 행여 다음 생에 태어나게 되어도, 저런 이유로 이별하진 않을거야. 막 저게 그냥 언뜻 보면 되게 멋있고, 간지나고, 막 쓰라린 슬픔의 로망스가 어쩌구 저쩌구 비련의 주인공이 어쩌구 저쩌구 아무튼 애들이 잘못 이해하면 쩔어주는 허세 간지가 풀풀 풍기는 뭐 그런건데 그거 그래봐야 남는거 하나 없다. 아무튼 그렇다고. 적어도 내 취향은 아냐. 저런건. 네버. 물론 그게, 내가 그래서 취향이 아니라 저런거 안해봤다는 얘기와는 전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또 꼭 맞다고만은 볼 수 없는 김수한무 두루미에 삼천갑자 동방ㅅ....(...자아 붕괴인가)

그러고보니 정말로 그 후로 삼청동을 한번도 안갔네. 나 좀 쓸데없는데 독한 남자인듯. 히히.

* 비밀

요건 나가수 노래는 아니지만 지난달 가장 오-래 꽂혀있었던 노래. 다른거 다 모르겠고 그냥 '비밀처럼 계절이 흘러 상처들이 아물어가면' 이 대목에 완전 꽂혀서. 젠장 비밀처럼 계절은 잘도 흘러 벌써 땀방울 솟아나는 여름이네.

더 횡설수설 하고 싶었는데 회의가 있어서 오늘 잡담은 이정도로 마무리. 아 간만에 주절주절 떠들었더니 속이 다 시원하네. 히히. 행여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모두 날씨만큼 상콤한 하루 되시길. 아 젠장 그러고보니 야구 얘기를 못썼네. 내가 아오 열이 뻗...(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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