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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9 센치함 쩌네요

센치함 쩌네요


뭐 미주알 고주알 떠들만한 일은 아니라 그저 이렇게 덤덤히 몇마디 끄적이고 넘어가지만 근 3주정도를 일 외적인 문제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아가며 큰 일을 치뤘더랬다. 정말 귀찮고, 정말 도망치고 싶고, 그냥 몰라몰라 안해안해 하며 드러눕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아가며,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괴감들에 쓴웃음을 질질 흘려가며, 정말 에지간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아니면 꾸지 않던 유형의 악몽까지 꿔가면서 말이다. 우여곡절끝에 좋은 선택이었을런지는 솔직히 아직도 100%확신은 없지만 일단 주사위는 던져놨고 조금은 큰 한숨을 쓸어내렸다. 게다가 이게 좋은 흐름을 탄건진 모르겠지만 우야튼둥 한달 넘게 상상치 못한 압박의 요인으로 작용한 콜롬비아 출장건도 일단 없던일로. 아 깨알같은 발빼기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 야 진짜 스트레스요인이 훅 사라져서 그런지 지난주는 내내 속도 뒤집어지더니만 이번주는 심지어 똥도 잘눈다. 으하하하. 

이게 그러고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날씨가 확 하고 차가워진게 겨울이 눈앞이다. 야 또 어느새 이렇게 한번의 가을이 가는구나 하고 돌아보는데 갑자기 좋았던 기분이 푹 하고 가라앉을 만큼 요 가을은 마-이 부끄럽고 민망스럽고 돌아보기 괴로운 가을이었다. 부질없이 흔들렸고, 실수가 있었고, 덕분에 비싼 세금을 끌어안게 되었고, 생산적인 일은 요만큼도 해내지 못했고... 아무리 이런저런, 너무나 급작스레 벌어진 일들과 복합 스트레스 탓으로 돌려봐도 온전히 내가 부족한 탓이다. 해묵은 교훈들을 다시 되뇌이며 마음을 다져봐도 어찌되었건 일어나버린 일들은 돌이킬 수 없다. 참 멀었다. 정말로 말이다. 참말,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즉도 멀고도 멀었다. 그게 딱히 기준이 어마하게 높은것이 아님에도. 

*

원치 않는 이별은 언제나 질색이다.

지금에야 나이를 드시고 하셔서 어쨌거나 벌써 사람 나이로 치면 할머니급의 반려동물을 그래도 내치지 않고 키우시고는 계시지만 내가 어릴 적 겪었던 다사다난한 반려동물사를 떠올려보면 참 여전히 한켠으로 서운하고 아쉽고 슬프고 화도 날만치 아버지의 변덕이란것은 특히나 반려동물에 관한 쪽으로는 유별나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동물을 싫어하시는 편은 아닌지라 어디서 술을 한잔 하시건 혹은 사람들과 부대끼시건 하다가 뜬금없이 강아지 한마리를 얻어오신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귀엽다 귀엽다 하시고 동물이라면(특히 강아지라면) 환장하게 좋아하는 자식들이 열광하는걸 보며 흡족해하시곤 하시다가 정말 오래 지나지 않아 이런저런 불만들을 쉴 새 없이 끄집어내시는 거다. 털이 많이 빠지네, 시끄럽네, 똥오줌 냄새가 나네... 애초에 그럴 것을 모르고 데려오신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그러다간 끝내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강아지와 놀 생각으로 신나게 집에 돌아와보면 어디로 보냈는지 온데간데 없다. 아버지께서 심기가 불편하시면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머니께 울상이 되어 물어보곤 했는데 그럴 적마다 한숨을 푹푹 쉬시며 또 그놈의 변덕때문에 누구네로 보냈다, 어디 가져다 주었다 하시는 게다. 

정말로 그럴적마다 펑펑 울면서 다시 데려오자고 읍소를 해보기도 하고, 한번은 시장쪽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나오던 개장수에게 넘겨줬다는 이야기에 한달음에 달려가 개장수 아저씨에게 사정사정하여 되찾아와서 몰래 키우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참 그 반려동물들 때문에 얼마나 눈물을 쏟아내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조금 나이를 먹고서는 또 뜬금없이 어디선가 강아지를 데려오거나 해도 이제 다시는 정붙이지 않으리라 이를 바득바득 갈기도 하였더랬다. 허나 그게 어디 맘처럼 되던가. 어느날 뜬금없이 집을 돌아다니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또 금새 어디 보내버릴거 왜 가져오냐고 왈칵 성질을 내었다가도 꼬물꼬물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면 또 마냥 정을 쏟아붓게 되고 그러면 또 어느날 그렇게 마음 괴롭게도 사라져버리고. 아 진짜 갑자기 생각해보다보니 잊고 있던 미움이 울컥 튀어오른다. 사람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여. 물론 애들은 모르는 어른의 사정, 이사며 뭣이며 다양한 사정이 있기도 했었겠지만 그런걸 감안해봐도 심했던거다. 정말로, 심했다구요 아버지. 

사실 그래서 이별에 대한 어떤 근원적인 공포, 버리거나 버려지거나, 타의에 의해 이별을 강요당하거나, 외면당하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근원적인 공포의 원인을 따지자면 바로 저런 경험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집안의 기대주가 아니어서 찬밥취급을 당하며 생긴 트라우마 덕분도 있지만 이별에 대한 부분만 따지자면 확실히 저 어린시절의 잦은 상실의 경험, 그 영향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는것이다. 어느날 사라진 소중했던 내 어린날의 친구들.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책임질 수 있을만큼 성장했었다면 절대 그렇게 쉽게 그 친구들을 보내지 않았을텐데. 그저 돌아서서 눈이 퉁퉁 부을만치 울어버리는 것 외엔 무엇도 할 수 없었던 괴로운 어린날의 기억.

하기사 뭐, 누군들 이별이 좋기만 하겠냐마는(긁적긁적)

*

잠깐 감상에 빠졌더랬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가장 좋은 예는 시험이지만 시험 외에도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언제나 항상 커트라인에 걸쳐 있는 인간이었다. 물론 운이 좋아서 항상 그 어떤 선을 살짝살짝 필요한만큼 상회하였다. 급한 시험을 볼때면 언제나 필요한 점수보다 5-10점 정도만 살짝 넘어서는 점수를 얻었더랬고 뭔가 인생에 있어 여기서 까딱 잘못되었으면 어마어마하게 비틀렸을수도 있었더랬겠다 했던 라인은 살짝살짝 안쪽으로 발을 용케도 집어넣은채 의식한 것도 아니면서 피해다니곤 했었더랬다. 대-단히 큰 성공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단히 어마어마한 실패같은것 역시 없었고 정말 줄타기를 하는 듯 하는 상황들을 꿀렁꿀렁 잘도 거쳐 지금껏 왔다. 

내년에 벌어질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면 일, 개인사면 개인사를 통털어 벌어지게 될 버라이어티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벌써 간이 아파올정도로 긴장이 된다. 근데 그게 또 생각하다보면 근거없이 그런 낙천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거다. 어쩌면 또, 커트라인인가. 딱 그쯔음에서 그쯔음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그쯔음의 삶은 무리 - 일텐데 또 그쯔음에 나도 모르게 슬쩍 발을 들이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다면 뭐 어쩌겠나. 싫건 좋건 그냥 다리를 움직여야지. 언제나처럼. 하기사 의도하지 않아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마는. 비틀비틀, 휘청휘청, 오락가락하면서도 그냥 언제나처럼 꼬물꼬물 발을 앞으로. 느려터졌어도, 남들 보기엔 속이 터져나가도 스스로의 규정속도를 어기지 않고 다리를 질질. 

정말로, 어쩌면 이렇게나 모지라고 부족한, 결함이 많은 이 사람이 그래도 가장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마지막 커트라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듯한 기분. 

*

날씨가 날씨인지라 감상에서 빠져나올수가 없구나. 

모드 전환을 살짝 해보자면 야 아주 그냥 앓던 이가 빠져 시원한탓에 명동 한복판에서 엉덩이로 이름쓰며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다!!!!! 망할놈의 콜롬비아인지 개럼비아인지때문에 얼매나 압박을 받았던고. 또 막 그 뭐 그, 거시기 그 뭐때문에 얼마나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며 담배만 뻑뻑 피워대었던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YNMS(...) 생각해보면 치가 떨리네그려. 얼마나 좋냐. 생각해보면 달랑 고거 두개 풀렸는데 아주 그냥 올해는 이걸로 쫑이다 생각이 들고. 정말 오랫동안 책도 손에 못잡고 있었는데 월요일부터는 미칠듯한 열독모드. 그러니까 사람이 맴이 편해야혀. 스스로 정신상태 안좋다고 판단될때는 진즉에 사람이고 뭣이고 다 끊고 어디 동굴에나 기어들어가서 벽보고 참선이나 했어야 하는건디. 그럼 지금 좀 더 기분이 개운-할건디. 쓰읍. 어찌되었건 야 좋다. 올해도 겨울에 눈 구경 한번 못하고 땡볕에 시달리게 되는거 아니냐 생각도 이제 없어. 으하하하. 겨울에 눈이나 팡팡 퍼부어라. 음캴캴캴. 

아, 잠깐 읽고 있는 책 얘기를 하면 거의 모든 IT의 역사란 책인데, 요거 읽으며 참 이생각 저생각을 하긴 하는데 씁쓸한 대목도 군데군데 많기도 하다. 예를 들면 막 닷컴기업 초기 얘기를 보면 꼭 패기만 가진 청년 둘쯤이서 이거 되는 장사요 하며 이미 거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 찾아가 투자해달라고 하고, 그럼 또 그 가치를 미리 알아본 그 냥반이 선뜻 그렇게 돈을 턱턱 내놓고 하는 장면들이 보이는데 이게 그렇게 좀 씁쓰름하네. 우리나라에서 누가 뭐 들고 뭐 거니(...)씨나 기타 대기업 회장쯤 찾아가서 그렇게 했다고 쳐봐라. 대뜸 '그래 해보게나 내 팍팍 지원해줌세'할 사람이 어디있겠누. 안된다고 돌려보내고 나서 밑에 애들한테 '야 저거 될거같은데 애들 갈궈서 좀 알아봐라. 우리가 먹자'이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으억, 감상에 빠지는통에 예상 잡담시간을 오버해부렀네. 여기서 급하게 마무리. 
모두 감기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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