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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1.10.19 센치함 쩌네요
  9. 2011.09.30 센치 돋는 금요 만담 4
  10. 2011.09.05 거창한 운명애같은것은 아니더라도 4

가족의 탄생 - 2 -

첫 글을 쓰고 꽤 지나버린지라 호흡이 뚝 끊어졌지만, 어찌되었거나 마무리는 해야 하는 글 같아서 오랫만에 조금 짬이 생긴 휴일 오후,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고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하며 지금 생각하면 꽤 충격이었던 그 사건을 겪고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이전 글에서 말했듯 그때는 정말 그게 내게 있어 어떤 의미였는지 뭐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었더랬다. 원인이야 뭐 다름이 아닌 대학에 입학하고나서부터 접하기 시작한 모든 새로운 것들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매일매일이 경이로웠던 시절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생활 패턴을 가져가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집단에 몸을 담고... 하다못해 봄볕 따스한 노천극장에서 아무데나 널브러져 자는것만으로도 늘 신기하고, 즐거웠던 시절. 따져보면 그 좋은 시절에 우중충한 상처를 부여잡고 찌질대고 있었더라면 지금에 와서 얼마나 더 아쉬워 하고 있었겠는가 싶으리만치 말이다. 


그러니 뭐 상처야 그렇다치고 사람들과 만나가는 패턴은 그 시절에도 똑같을 수 밖에 없었다. OT를 가기 전에 갔던 자리에서부터 노래패 공연 연습을 보고 뻑이 가서 대뜸 아무 생각없이 하겠다고 지르고, 덕분에 무수한 사람들의 와중으로 또 내발로 뛰어들어가게 되었더랬다. 노래패를 떠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동기들중에서 꽤 골때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면서 지금까지 내 가장 친한 벗이라 부르는 녀석들과 딱 3월 한달만에 연일 술을 마시고 밤을 지새우며 친해졌었더랬다(물론 먼저, 그리고 나중 이런 순서차이는 있지만). 새롭게 배우게된 역사와 철학,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인해 이런저런 소소한, 말 그대로 청춘이었기에 벌어짐직한 충돌은 있었지만 그건 또 언제 그랬냐는듯 잊혀질만한 것들이었고, 그런 과정속에서 또 나름의 집단, 무리를 이뤄갔다. 


그리고 또 에...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서는 가장 오래 연인이란 이름으로 함께했던 사람과 1학년 말미쯤부터 연애를 시작하였더랬고... 어찌되었거나 종합적으로 군대 시절 이전,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보면 군대시절까지 포함해서는 뭔가 사람, 무리, 공동체, 그런 것들에 대해 아쉬움도 커다란 고민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는 거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시절에도 무언가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한 적은 당연히 있었으나 이제와서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미미한 것들이었던. 어쩌면 굉장히 평화로웠던 순간순간들. 물론, 당연히, 이것도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범위를 넓혀 군시절까지라고 했는데 그게 정말 정확했다. 그래도 남자들 중에서는 정말 군대 얘길 어디가서 많이 안하는편에 속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내 군생활은 정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볼때 꽤 운이 좋았고, 편했더랬다. 작은 부대에서도 작은 분대에 속해서 꽤나 명랑하고 즐거운 위/아래 사람들과 명랑하고 평화로운 군생활을 보냈던거다. (물론 다시 가라고 하면 안간다) 전역하고 나서 누군가가 군생활이 어땠냐고 물었을때 딱 첫마디가 "재미있었지 뭘" 이었을 정도로. 당연히 군대에서 볼 수 있는 희안한, 성격 괴팍한, 허 참 소리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던것은 아니지만 딱히 그 사람들에게 굉장히 괴롭힘을 당해서 사람에 대한 증오를 품거나 하는 일이 있을리 만무한 그런 군대생활 - 말 그대로 쏘쏘 - 한 정도. 그정도였다고 하면 딱 그정도인 것이랄까. 


문제는 전역 후,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 전역 후 3학년을 나름의 사회적응도, 딴에는 열심히 공부도 하면서 보내고 딱 4학년이 되자마자 일어난 일들이, 그야말로 나쁜 일들은 패거리로 한꺼번에 온다는걸 실감하게 해주겠다는 듯이 일어나는 매일같은 사건사고들이 그 시점부터의 엄청난 고민들과 그만치의 생각의 성장을 이뤄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돌이켜 보면 그 시절에 감사라도 해야하는건가 - 라고는 하지만, 당시를 떠올려보면 여전히 슬면 쓴웃음이 머금어질 정도로 하루하루 막막하고 우울했던 시절의 기억들이다. 


*


뭐 집안문제를 시시콜콜 떠들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4학년 무렵에 내게 있어 꽤나 존경의 대상이었던 가족 구성원중 한 분의 실수로 인해, 가세가 꽤 극적으로 기울었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재산의 규모를 보며 '야, 그래도 우리집 꽤 양호하게 살던 집이었구나' 라고 느낄만치 한순간에 훅 말이다. 물론 그리 되었으니 가족이라고 어디 멀쩡하겠는가. 당시에는 정말 그게 절대로 치유될 것이라 기대조차 할 수 없을만치의 거대한 상처, 그리고 균열이 남겨졌더랬다. 때마침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족의 기둥에 가까웠던 어머니께서는 그 긴 세월의 무리가 마침내 탈을 내서 일을 놓으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가... 하고 스스로도 넋이 반쯤은 나갈 지경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워낙 또 계획이 없으면 뭘 하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결혼이며 뭣이며 차곡차곡 세워놓고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겠다 싶었던 계획들은 바로 그날로 쓰레기통에 쳐넣고 새로운 계획을 짜야만 했었더랬다. 


그리고 어찌저찌 급조한 계획들로 꾸역꾸역 사회생활의 시작 무렵에 겪게 되었던 별의별 희안한 일들과, 눈만 뜨면 훤히 보이는 가족의 균열로 인해 하루하루를 속에 뜨거운 불덩이라도 품고 사는 듯한 기분으로 몇날 몇일을 살아내다 한번씩 홀로 뻥뻥 터져 망가지곤 했던 시절에, 어찌되었거나 또 한번의 커다란 상처가 다가왔더랬다. 역시 지금에 와서야, 그 상황에서 노부모의 마음이 어땠으랴, 그저 지금껏 잘 견뎌내시고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요것도 요약하면, 어찌되었거나 그당시까지 살아왔던 세월의 1/3을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사람과 나름의 의리를 지키고 싶었고,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도 어찌 저찌 꾸역꾸역 계획을 짜내어 조심스레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 굉장히 당황스러운 반응을 얻었더랬다. 집에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부모님을 뫼시지 못하겠다 한것도 아니었다. 헌데 상상이나 했으랴. 27~8년을 살아가며 단 한번도 집안의 기대주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들인 네가 집안을 일으켜야지 장가갈 궁리만 하는게냐 - 라는. 물론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상황도 상황이었고 당시 그 사람이 마뜩치 않으셨을 이유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게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억울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부모에게 남겨진 그 상처들을 뻔히 보고 있는 와중에 거기서 나까지 날뛸만큼 개념이 부족했던것도 아니었더랬고. 


그래서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마치 방아쇠와 같은 작용을 하였더랬고, 그리고 그 어려웠던 시간들에 축적된 문제들이 더해져 나는 이별을 선택하였더랬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이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순간이었다. 더이상 잃을 것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분노할 수도 없었고,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누구와 함께 무엇을 나눌 수도 없었다. 의무는 다하되, 그정도로 해두자. 이별 후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파도에 흠뻑 젖어가면서도 멍하니 바닷가에 주저앉아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지만, 그건 꽤 비참한 패주였다. 도망쳤더랬다. 스스로의 상처도 추스르기 힘들어, 가족의 상처와 균열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음조차 먹을 수 없었더랬다. 모든것이 혼란스러웠더랬다. 가족은 엉망이 되었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1~2년간 삶이 워낙 엉망진창이었던지라 어딜 봐도 그 무수했던 무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다시금 과거에 이뤄놓은 어떤 무리들에 다가선다는것 자체가 염증이 느껴졌더랬다. 사랑에는 실패했고(그 시절의 생각으로는), 뭔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믿었던 가치들이 뿌리에서부터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더랬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아니 어쩌면 그런 상황이었기에 더 간절해졌던 것은


갈증. 사람에 대한 갈증. '새로운' 사람과 무리에 대한 갈증. 피가 섞이지 않아도, 무언가 기다긴 세월을 함께 축적해온게 아니었더래도 마치 당연히 그 자리가 내 자리였던 것처럼 스스로 안주할 수 있는 무리, 애정, 사람에 대한 끝없는 갈증.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더, 모든것을 악화시켰더랬다. 물론 그 갈증으로 인해 얻었던 무수한 것들 역시,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 갈증은 꽤나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정말로 말이다. 


*


조금 숨을 고르고 이어보자면. 


뭐 썩 대단한 일처럼 써놓았지만 사실 저런거, 별로 특별한 거 아니다. 뭐 집 한번 안망해 본 사람 있나? 너무나 당연스러운 연애를 하다가 헤어져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나? 저런건 그냥 보통 사람들이면 그저 보통으로 겪는 일이다. 이걸 깨닫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니, 스스로의 아둔함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저 보통의 그런 일들에 대단히 쇼크를 먹고 난 이후의 몇해는 쉽사리 글로 옮길 수 없다. 그 시절의 어떤 기억들은 놀라우리만치 아직도 쓰라리고 어떤 기억들은 얼굴이 벌개질정도로 부끄럽다. 어떤 기억들은 떠올리는 순간 한쪽 입꼬리가 치켜올라가며 쓴웃음이 픽 하고 새어나오고, 어떤 기억들은 더듬어볼 수록 행복하고, 어떤 기억들은 지금도 정말로 즐겁게 웃고 떠들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한다. 그 시절에 깨달은것들이 평화로웠던 20대 초중반에 깨달은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치 거대한 크기이기에, 그 잔인할정도로 쏟아냈던 감정의 홍수가 그만치 컸기에 문득 문득 가슴을 입을 비집고 올라와서 내 지인이라 하는 사람들이면 한번쯤은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었겠지만, 여전히 그것을 어딘가에 글로 남겨두고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에지간한 사람들은 알지 않는가. 어떤 것들은, 스스로의 기억에만 묻어두는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걸. 


그래서 그 시절의 경험들은 슬몃 접어두고, 그 시절에 내가 집중했던 생각들에 대해서만 짧고 굵게 남겨본다. 어찌되었거나 마무리는 해야하니(웃음). 그 시절에 내 모든 사고의, 행동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안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간에 주고받을 수 있는 이해와, 그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가장 안정적인 네트워크' 실제로 지금 생각해보면 또 막 굉장히 지랄맞게 바쁜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떻게 그렇게나 한거지? 란 의문이 생길정도로 낯선 이들을 많이 만났던 시절이었다. 빠르게 색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가, 이게 아닌데 싶으면 굉장히 칼같이 네트워크고 나발랭이고 끊고 나왔던 시절이었다. 쉴 새 없이 사람을 찾았고, 애정을 갈구했고, '이해받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관계를 이었다가 조각조각내고, 누군가의 가슴을 찢거나 스스로 찢기거나 하는 극단 속을 오갔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몇해를 보냈을까, 20대 말부터 30대 초반을 그렇게 뭐 노망도 아니고 질풍노도도 아닌 괴상한 폭풍속에서 보내다가 어 이제 좀 잔잔해졌나...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정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지극히 안정적인 애정의 공급이 있었고, 정말로 적절한 거리에서 적절한 포지션에 자리잡은 관계들이 있었고, 치유될 것 같지 않았던 가족의 상흔은 어느정도 아물어가고 있었으며, 나를 괴롭히던 관계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느새 정리되어 버렸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들 중 어떤 하루에 생각에 골몰했다. 사람과, 관계와,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해서. 대충 다음과 같은 생각의 흐름이었다. 사람은 많이 모여 살면 안돼. 그 다양한 욕망의 충돌을 어떻게 감당하냐. 혼자서 섬처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외로움은 앞으로 걸어가려는 발목을 붙잡지. 안정적인 애정의 공급, 그리고 적절한 간격, 어느정도 꾸준한 시간을 두고 축적된 어떤 공통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이해, 어떤 단위로써 어느 한 방향을 보고 Go~를 외칠때 발맞추어 걸어갈 수 있는, 나름의 호흡, 서로의 삶을 존중하되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서로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작은 규모의 이상적인 공동체라는건...


뭐야. 가족이었나. 


정말로, 순간 배를 잡고 움켜지고 웃어버리고 싶은 어떤 날의 기억이다. 그렇게나 어린 시절부터 내게 있어서는 무거웠던 '가족'이라는 것이, 한때는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었고, 벗어나고도 싶었던 그 가족이라는 것이, 무려 30하고도 몇해를 더 살고 나서 그간의 그 모든 경험들과 생각들을 정리해 나갈때 마지막으로 마치 해답과 같이 떠오른 것이라니. 물론, 단순히 모든 가족이 그런 이상적 공동체라는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여전히 지옥과 같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것. 그래도 혼자서가 아닌 누군가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때, 어떻게 구성하느냐,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행복과 가까운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것.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공동체라는것.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말이다. 이 얘길 하고 싶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너도 언젠가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꺼야 -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건 또 재미가 없겠지. 각자의 정답을 찾아가길. 각자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네트워크를 이루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길.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해서. 


*


4월 7일이면, 나는 내 손으로, 새로운 '가족'이란 공동체를 구성한다. 그 안에 얼마나 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나의 가족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나 먼 길을 돌아서. 


남들 다 하는 결혼에 별나게도 의미를 부여한다 - 라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뭐 요즘은 인터넷과 담을 쌓고 살아서 글 하나 올리는데 한달씩 걸리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면, 축하해달라고 감히 부탁드리고 싶다. 좋은 거잖나. 남한테 좋은 말 많이 해야, 자신도 좋은 말 많이 듣고 그러는게지. 어헣허헣. 가만있어보자... 텍스트만 좌악 도배를 하기엔 좀 거시기하니께...(뒤적뒤적)



자! 설마 여기까지 다 읽어주신 분들(...) 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마무리할랍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축하해주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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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 1 -


오래 전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를 보았더랬다.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내게 저 가족의 탄생이란 제목이 어째서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가슴 깊숙히 날아와 꽂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로, 저 말이 어느 날엔가 불쑥불쑥 떠오를 때면 항상 잠시잠깐이라도 그 말 주변으로 떠오르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끈덕지게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늘어졌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몇 해나 지났을까, 문득 나는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만에 일찍 눈을 뜬 휴가 중 마지막 주말의 아침에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본다. 바라건데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들을 잘 밀어낼 수 있기를.

그래, 이건 단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냥 35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한 남자가 생각했던, 고민했던, 가족과 가족 이상, 사람과 사람의 네트워킹, 그리고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

*

가족이란 것이, 가정이란 것이 어린 시절의 내게 있어서는 그렇게 편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물론 스스로의 가족에 대해, 가정에 대해 불만 하나 없이 안온함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은 어찌되었건 그러했던 것이다. 그것들에 대해 여전히 아쉬움과 미련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이미 그 시절로부터는 꽤나 멀어져왔고, 나는 지금의 내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에서 보여준 나름대로의 책임감과 괴롭게도 포기해야만 했던 어떤 선택들에 대해 충분히 존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는 것이다.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꽤나 많은 이런저런 성품상의 장점을 지니고 계셨음에도 정작 가족의 생계나 가족이란 공동체의 어떤 생활 부분에는 안정감이 확실히 부족하셨고, 자식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시기만 하셨던 아버지,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도맡다시피 하시며 헌신과 희생으로 가족을 지탱해나가셨던 어머니.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 해서 나름대로 집안의 기대주, 우량주였던 누나. 사실 또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유별나거나 대단히 부족하거나 했던 가정환경은 아니었음에도(그 시절을 기준으로) 어린 시절의 내게 있어 그 모든것들이 그렇게 썩 편하게, 쉽게, 가정은, 가족은 내가 쉬는 곳 - 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만은 사실이란 얘기랄까. 

엄하디 엄한 아버지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하지 못했고, 어머니를 바라볼 적이면 언제나 빨리 자라서,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드려야겠다는 압박에 시달렸으며 어찌되었건 상대적으로 잘난 형제에게 위축되어 있었으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거야 당연한 노릇이다. 그래서, 그리하여 그 결과로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를 지나며 나는 가족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법을 조금씩 잊어갔다. 거품 물고 실신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에지간히 아프거나 한 건 어머니를 걱정시키면 안돼 - 라는 생각으로 좀처럼 말도 꺼내지 않았고, 청소년기에 부딪칠 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에 아버지는 너무 버거운 존재였다. 다행스럽게 누나와의 사이는 꽤나 좋은 편이었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 겪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이성의 형제에게 쉽게 이야기한다거나 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렇게, 어떻게 보면 꽤나 자연스럽게도 나는 가족들에게 마음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 가족이란건 내가 일련의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부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공동체,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내게 있어 어떤 '숙제'와 같은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딱히 풀어낼 가망이 보이지 않는 어떤 묵직한.

그리고 대단히 재미있게도, 그것이 바로 내가 자꾸만 내가 편안하게 무언가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어떤 네트워크를 가족의 외부에서 찾는 데 적극적이 된 이유다.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보상심리다. 가족에게서 채울 수 없었던 어떤 부족한 평온을 외부의 어떤 네트워크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 이를테면 애정결핍같은 것의 원인은 그런거란 얘기다. 내게 있어 필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없으면 당연히 다른 어딘가에서 그것을 얻으려 한다는 것. 그게 애정이건, 우정이건, 그래서 내 청소년기는 그렇게 자꾸만 밖을, 밖을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그건 또 그렇게 막연한 기대심리였다. '세상 어딘가에는, 가족이 아니어도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행복하게, 기쁘고 즐겁게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는 어떤 무리가 있을거야.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떤 집단이라면, 가족 이상의 어떤 굉장히 이상적인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거야' 라는 것. 물론 그 시절에 이런 생각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그 시절의 내 모습, 그리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장면들을 보면 바로 그게 내가 자꾸 사람들을 향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었다는 것이다. 조금은 안타깝게도. 

*

당연스럽게도, 청소년기, 그리고 대학시절까지 이어지는 삶에서, 나는 항상 가득한 무리 속에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언제나 무리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근원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어떤 유전들,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간 속에서 내 안에 은근하게 배어들었던 어떤 것들로 인한 것이었다는 거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나는 영리한 편이었고, 또래보다 훨씬 키가 컸다. 워낙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며 자라서인지는 몰라도 타인의 어떤 감정변화들에 굉장히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어떤 성향에 맞춰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짓는 일에 능숙했다. 감수성이 예민했고,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내 희,애,락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하곤 했다(화는 에지간하면 내지 않았으니... 어쩌면 못했으니) 사실 또래 무리들과 어울리는데 저정도면 충분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학업 성적은 에지간히 나왔고, 큰 키 덕분에 일단 또래 무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서 그들로 하여금 먼저 손을 내밀게 하는데 꽤나 유리했다. 눈치가 빨랐으니 딱히 누군가들과 격하게 부딪칠 일이 없었고(학창시절에 싸운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솔직한 감정표현 덕분에 속내를 모르겠다, 뒤가 구리다 뭐 그런 취급 받을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가족 외의 어떤 네트워크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그 시절에는 나름의 적극성까지도 있었으니, 어디 가서 친구를 만들고 어떤 무리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달까. 

어울리는 범위 또한 보통을 기준으로 볼때는 상당히 광범위한 편이었다. 학업 성적 덕분에 공부 잘하는 수재형 친구들과 부대끼는데 별 문제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공부는 더럽게 안하는 통에 적당히 노는 무리들과도 즐겁게 어울렸다(사실, 어딜 가나 가장 친했던 무리들은 바로 그 '적당히 노는' 무리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막 나가는' 무리들과도 아주 친해져서 막 같이 어울린다기보다는 한발정도 걸쳐놓고 부대끼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게 꽤나 정확했다. 아주 친하게 부대끼는 무리 8-10명 정도, 그리고 가끔씩 만나 이래저래 즐거운 무리 10명 정도. 나머지 그냥 학교에서 같이 부대끼고 놀고 하는 무리들. 웃기는건 묘한 팔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학년이 올라가며,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년도에 친했던 이들과 또 같은 반이 되거나, 또 같이 부대끼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거의 매년, 새로운 애들만 그득한곳에 혼자 던져지는 수준) 그 와중에도 그렇게 빠르게 또 새로운 무리 속에 섞이고, 함께 부대끼며 비슷한 수준의 그런 무리들과 함께 해 나갔다는 것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다. 황당하리만치의 적응력은 그때부터 형성이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웃고 떠들며, 소란을 떨며 보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것이 평생 지속될 어떤 안정적인 네트워크라고 느꼈고, 그것이 가족보다 내게 안겨주는 행복들이 더 크다고 느꼈더랬다. 그리고 그 어떤 일련의 평온함들에 어떤 균열들을 느끼기 시작한건 정확히 내가 대입을 눈앞에 두고 있을 쯔음에 겪은 일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냥 피식 피식 웃으면서, 으아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하면서 던지는 농담들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그게 나름대로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어떤 '나의 세계'를 심각하게 흔들어놨던 사건. 첫사랑, 그리고 공동체의 균열.

*

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 실낱같아 부질없다 - 좋아하는 김윤아씨의 노래 가사중 한 소절이다. 이걸 처음 느꼈던 순간.

생각해보면 이별은 내게 있어 그때까진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워낙에 사람 욕심을 부려대던 시절이었던지라 그렇게나 넓게 친해지고, 만나고 하였지만 위에 말한 그 묘한 팔자때문에 연락하기 힘들어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느샌가 잊혀지고 하는 관계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그 와중에도 정말 오래오래 남기고 싶었던 인연들은 여전히 머물러 있기도 했고(그저께 함께 술을 마신 내 20년 지기와 같은), 어느 정도의 인연들과 특별히 이별이랄 것도 없이 멀어지고 하는 것은 그저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그런 자연스러운 어떤 인연의 흐름이 아닌 굉장히 사소한 일에서 빚어진, 어떤 신뢰하던 공동체의 균열이라는 것은 꽤나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게 그것으로 인한 것인지 제대로 감도 잡을 수 없었던, 돌이켜보면 그게 그때 그렇게 컸던 것이었구나 - 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그건 바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 첫사랑이 계기가 되었더랬다. 옛 얘기고, 가끔씩 블로그에 이야기를 한적도 있었으니 간단히만 요약하면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단에서 어떤 친구로 인해 어떤 처자를 알게되고, 첫사랑이란걸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풋내나는 첫사랑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대상이 그 친구 집단 중의 한명과 바람이 났고, 그래서 소주 9병을 퍼마시고 떡이 되었다가 새벽 알바를 하던 설렁탕집에서 손으로 선지국을 퍼먹고는 거 사랑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 봐야 되는거네 하는 웃기지도 않는 교훈을 남긴 채 마무리했더랬다. 뭐 다양한 이유가 있었는데, 정말 사실 그건 놀라우리만치 쿨하게 정리가 되었더랬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게지. 지금 생각하면 참 손발이 오그라드는 얘기긴 한데 당시의 나는 그 안정적이었던, 내가 아꼈던 그 무리가 그 일로 인해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더 걱정했었더랬다. 그래서 헤어진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크리스마스 파티 장소에 그 첫사랑과 그 친구놈도 함께 참여하는 것에 쿨하게 오케이를 날리는 관대함의 과잉을 보였던 것이다.

근데 그게 결국은 불씨가 되었더랬다. 즐거워야 할 자리가 순식간에 냉각되고, 친구들 사이에 네편 니편 하며 좌악 갈라져서 으르렁대게 되고... 나는 그 순간이 지금도 안타깝다. 그 당시의 나는 순전히 피해자의 입장이었으나, 나의 행동에 따라 적어도 그 집단에서 발생한 그 균열을 메꿀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허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입은 상처도 상처였거니와, 대입으로 인해 또 순식간에 다른 환경과 다른 생각, 다른 삶속에 파묻혀버리느라 굳이 그 괴로움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할 경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때 그렇게나 굳건히 신뢰했던 그 무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두어해가 지나, 기억하건데 야간에 보초를 서고 있던 부대의 초소에서 나는 내가 그 일로 인해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꽤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견고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리 완벽한, 흠잡을 곳 없어 보이는 어떤 관계일지라도 아주 작은 부주의, 혹은 아주 작은 실수, 혹은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 혹은 아주 작은 균열 정도만으로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라고. 그것은 어쩌면, 피로 맺어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가장 큰 차이일수도 있다고. 내가 멀어지려 하고, 등을 돌리고 싶어하고, 외면하려 그렇게 애를 써도 당신들께서 내 부모요 내가 당신의 자식임은, 내가 당신의 동생이고 당신이 내 형제임은 변함이 없으나 그렇지 않은 관계들은 어느 한순간의 어떤 선택이나 판단들로 순식간에 남보다도 더 먼 사이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참 슬픈 깨달음이지만, 살다 보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어떤 관문. 그게 그 시절에 내게 남겨졌던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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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늘상 꿈의 나이라고 말해오던 서른 다섯이 되었다. 사실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서른 다섯의 첫날을 맞이하는 연말치고는 조금 싱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은 12월 말부터 헬로 끌려들어오면서 미칠듯한 일 러쉬에 시달렸더랬고, 따뜻한 한반도의 남쪽 부산땅에 있다가 정세도 흉흉한데 휴전선이 가까운 파주까지 올라오면서, 날씨에 적응을 못한탓인지 덜컥 감기에 걸려버린 탓도 있다. 지난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모르겠으니 말 다했지. 그나마 마지막날에 본 박정현&성시경 콘서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해가 바뀌는줄도 몰랐을거다. 뭐 나이먹음에 딱히 연연해하는 성격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렇게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서른 다섯이 되는 순간이었는데. 함께 서른 다섯이란 타이틀을 달게 될 친구놈들과 격하게 웃고 떠들며 야 내가 너 첫사랑한테 채이고 찌질대던 눈물 콧물 닦아주던게 어제같은데 하며 조금은 소란스럽게 맞이하고 싶기도 했었고, 연말의 떠들썩한 분위기속에서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격하게 술잔을 부딪치며 한해를 넘겨보고 싶기도 했었고, 그냥 고요하게 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어릴적부터 그렇게나 그려온 서른 다섯의 모습과 얼마나 스스로 괴리가 있는가를 가만히 재어보며 명상의 시간과 함께 맞이하고 싶기도 했었고, 부산행이다 뭐다 이래저래 미뤄온 약속들을 바쁘게 처리해내면서 또 한해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싶기도 했었고... 뭐랄까, 언제부터인가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일 폭풍에 휘둘리며 보냈던 것이 정상같긴 한데 올해만큼은 - 이란 마음이 있었더라는 얘기다. 서른 다섯이니까. 그렇게나 막연한 기대를 품고 기다렸던. 

뭐, 그렇다해도.

그래 뭐, 서른 다섯이니까 말이다. 나쁘지 않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나 싫고 또 싫던 풋내가 아주 조금쯤은 걷힌 것 같기도 하고, 어설프고 모자란 부분도 얼기설기 꾸역꾸역 조금은 메꿔나가고 있는 듯 하고, 여전히 철은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 날들에 비해서 조금은 단단하게, 조금은 철분 함유량이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대책 없음을 대책으로 삼고 있지요 으하하하 하는 허세도 그래도 조금쯤의 근거는 마련해두는 허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서른 다섯, 꿈꿔왔던 서른 다섯살의 내 모습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되는건 올해를 보내고 나서 다시 이맘때쯤의 일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무수한 일들, 하나같이 쉽지 않을 듯한 일들, 생각만해도 괄약근이 움칠거리는 일들이 무수하게 산적해있는 한 해가 되겠지만 이 한 해를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내 꿈의 나이 서른 다섯이 과연 - 이 될지, 역시 - 가 될지 결정되겠지. 그러니까 올해는 더 바짝 정신차리고, 어떤 일들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이를 꽉 깨물고, 쓸데없는 감상따위에 젖어서 찌질거렸던 작년과 같은 경우는 반복하지 않도록. 기합을 빡 넣고 가자. 근성으로 팍팍! 가자! 싸나이 매듭 삼십 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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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쏘울


서울 복귀!

우여곡절끝에 지난주 금요일 무사히 철수해서 서울로 복귀했다. 철수하는 날 아침까지 고객 리뷰가 밀려버리는 통에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철수 전야의 술부림과 다음날로 이어지는 혀 꼬임에도 꿋꿋이 리뷰를 진행하신 K과장님과 함께 무사 귀환. 아침에 폭풍처럼 챙겨나온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한낮에 부산역으로 가서 KTX에 올랐다. 팀 송년회 관계로 일찍 출발할 수 있었던것도 완전 뭔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기분. 떠나기 전 메신저로 L과장님께 리뷰 잘 끝났다고, 차표 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노래 부르며 올라가겠다고 한 것처럼 역시 들뜨더라. 항상 프로젝트 철수할때의 그 짜릿함은 거의 중독에 가까운 건데 그게 또 지방에서 철수를 하니 뭔가 정말 더 짜릿하고,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한달여의 생활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고. 전날의 여파와 오전의 긴장으로 인해 올라오는 KTX에선 떡실신된채로 잠이 들었더랬지만 정말 기분좋게 올라왔다구. 팀에 복귀해서 사람들과 인사 하면서도 막 그냥 괜히 기분좋고, 마냥 들뜨고, 신나고. 확 추운 공기조차 반갑고. 그런데. 

지... 지옥의 송년회였어... oTL

이게 처음엔 계획대로였다니까. 대충 보니까 송년회고, 올해 중간중간 입사하신 분들도 많은데다가 이런 저런 프로젝트가 딱 끝나는 타이밍이랑 맞아떨어져서 프로젝트 복귀자도 많지, 뭐랄까 딱, 곱게 끝날 자리는 아니다 싶은게야. 근데 피곤하긴 미치도록 피곤했거던. KTX에서 자는게 그게 자는건가 어디. 아 이거 어설프게 잡혀있다간 죽도록 마시고 내일 거의 시체가 되어 기어다니겠구나 차라리 1차에서 그냥 좀 취한 액션 좀 하다가 집으로 튀자 딱 그런 계획이었지. 그래서 뭐 이 자리 저 자리 간만에 뵙는 분들이랑 정담도 나누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필름이 훅. 으아 정말 피로 앞에 장사 없다는 얘기가 그렇게 실감날수가. 아니 그냥 몇잔 먹도 않고 어허허헣 좀 나른하네 이러던데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냥 그 뒤론 사정없이, 정말 매끈하게 필름이 뚝. 정신차려보니 집. 므어? 여긴 어디 난 누구? 어찌되었거나 1차 끝나고 도망치는건 성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피로와 숙취에 겔겔겔겔 좀비모드. 아 증말. 

다행히 토욜로 예정된 친구놈들 망년회가 소식 없이 캔슬되어 망정이지 정말 간을 하얗게 불태울 뻔 했네. 어찌되었거나 서울로 왔다.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였지만 어쨌거나 왔다. 휴. 역시 나이를 먹었나. 돌아오니 참 좋은데, 증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음네. 집떠나면 고생이여. 컴백홈. 휴. 

*

근데 어찌되었거나, 참 귀한 한달이었다는 말이지. 

일단 주말을 요양모드로 보내고 나서, 월요일 꼭두새벽부터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오늘 BGM이 많이 깔리네) 떠나진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출근해서 제일 먼저 느낀게 그런거였다. 와 이거, 진짜로 좀 충전이 되었구나. 정말 에너지가 차 있구나 하는 기분. 이게 딱 다르다. 똑같이 한치앞도 모르는, 예상 프로젝트마다 헬오브지옥급들만 기다리고 있는 그런 상황은 10월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완전 느낌이 달라. 부산행의 여독이 주말동안으로 말끔히 털어낼만한 것은 아닌지라 여전히 몸은 좀 피곤하긴 하니 HP는 그저 그런데 SP나 MP가 가득 차 있는 느낌. 헬이면 뭐 어쩔것이여. 어차피 내가 있던곳이 헬이 아니었던게 별로 없어. 익숙해. 그까이꺼. 그런 여유만만한 마인드가 넘쳐흐른달까. 스스로도 정말 놀라울정도로. 

일하느라 바쁘고, 술먹느라 바쁘고 했던 한달동안의 출장이었지만 정말로 혼자서, 고독감을 마음껏 자근자근 씹어가면서, 낯선 동네의 포장마차며 낯선 동네의 바닷가며 낯선 동네의 골목 어귀어귀를 돌아다니며 보낸 시간이 정말로 정신건강에는 무지막지하게 영양만점이었구나 하는 생각. 그래, 나란 인간은 그게 참 필요한 인간이었지 하는걸 새삼 절감하게 되었달까. 물론 같은 이유로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이 되긴 한다.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온전히 혼자서 오롯이 혼자만의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은 줄어갈텐데 그때는 우째쓰까잉 뭐 그런 걱정들. 

그래도 뭐,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언제나 거기서 생각이 멈추곤 하지. 어떻게든 되겠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잘 이해해주고 있는 당신이 있는걸. 이라는 대목에서. 

*

이게 사실 개인적으로 애인님께 미안하기도 한 부분인데, 내가 사실 뭐 목표는 로맨스 그레이! 라고 외치고 다니는 인간이긴 한데 은근히 이벤트에 약하다. 그러니까 음, 그런거 있잖아. 써프라이즈! 뭐 그런거. 아 음, 그게 진짜 뭐랄까, 예전부터도 그런거엔 좀 약했다니까. 아니 뭐 그러니까 굉장히 즉흥적으로 그럼 고! 라고 외치고 폭풍처럼 어딜 간다거나 그런 것도 그냥 '같이'하는 그런거니까 음, 그래 뭐 그러니까 왠지 좀 손발이 오그리토그리 광속퇴갤할것 같은 그런 이벤트, 아 그런거 진짜 좀, 음, 사실 내가 그런걸 받는다 해도 그냥 좋은건 좋은건데 그것때문에 더 놀랍거나 더 좋거나 그렇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애인님께 물어봤을땐 아 나는 영화 결말 다 알아도 영화 재미있게 잘 보는 사람이라 그런건 - 이라고 말해주셔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혹시 그게 좀 아쉽지 않으실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이번 연말은 좀 미리 알차게 준비해보자 하는 마음에 신경을 좀 썼다. 우야튼둥 한달이지만 주말커플하며 이래저래 맘고생도 하셨을게고 해서. 크리스마스때 하나 연말에 콘서트 한번. 개인적으로 콘서트는 완전 기대중. 무려 정현느님이야! 시경씨야 뭐 그렇다치고라도. 정현느님 콘서트 간게 벌써 한 6년은 된것같은데! 나 정현느님 짱 좋은데!(...) 근데 이래저래 일정을 짜놓고 보니 이게 또 일정도 맞춰야하고 해서 이미 애인님께 다 공개해버렸...; 아 음, 뭐, 어헣허헣 역시 써프라이즈는 내 취향이 아닌갑다. 아니 뭐 꼭 놀라야 좋은건가. 뭐 그냥 좋은게 좋은거 아니게쓰어요?

*

부산서 올라오자마자 어김없이 드래그 미 투 헬... -_-;;;; 이 될뻔 했는데 L과장님의 귀신같은 구원으로 일단 당분간은 좀 평화로울듯. 물론 평화는 그렇다치고 술자리는 널려있다. 친구들이랑 망년회 한번, 다음주는 멘토링 모임 망년회도 있고. 아으어으어 연말은 직장인의 간 근성 테스트 타임이야 무슨. 아 그래서 사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가득인데 좀처럼 연락을 잡질 못하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무려 18년 친구 S녀석에겐 콜롬비아 갈 지 모른다! 라고 한 후에 연락을 못했으니, 게다가 저번에 연락온걸 바쁘다고 한번 씹었으니 콜롬비아 간 줄 알고 있으려나 -_-;;;;; 그... 그냥 내년에 보자 친구;;;;;

아마도 내년도, 점점 더 바빠지고, 올해 벌여놓은 일과 내년에 일어날 일로 인해 점점 통장에 퍼가요~♡는 늘어나고(...) 오늘도 통장에 급여가 스치운다 하며 여유는 점점 줄어들고, 할 건 무궁무진하게 늘어나고 하고 싶은 건 무지막지하게 많은데 채 몇개 손도 대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 늘어가겠지. 그렇지 않아도 얼굴보기 힘든 사람들과 얼굴 마주보고 웃으며 으쌰으쌰 술이라도 한잔씩 걸치고 그러는 날들도 줄어갈테고, 이런저런 책임은 늘어나고 부담도 늘어나고... 하겠지만

힘 내자. 좀 더 빡시게 살면 되지. 그까이꺼. 낄낄낄. 근성이 부족하다!!!!!!!!!!!!! 
 
*

그게 벌써 5년이나 지났다니. 시간 참. 

*

나이먹으며 얻은 약간의 뻔뻔함도, 때론 유용할때가 있는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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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 전까지 첫눈은 첫눈이 아니여. 그런거여.


회사 연말 평가기간이다.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은근히 골치를 썩는게 사실이다. 사실 평가 자체야 뭐 어헣허헣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뿌린대로 거두리니, 낭중지추로세, 도리불언 하자성혜니 이러면서 그냥 넘어가는 편인데 스스로 한해의 성과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을 등록해야 하는게 영 곤욕인게다. 워낙 잘난체는 질색팔색하는 덕분에 나 올 한해 킹왕짱 잘했소이다 하며 포장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그냥 실제 한 일 위주로만 딱딱 잘라 써버리고 말게 된달까. 헌데 또 그게 사람 맘이 묘한게 그렇게 쓰고 나면 어째 뭔가 허전한듯도 싶고. 야 내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써놓은건 요만큼이지만 올 한해 사경을 헤맨게 몇번인데... 내가 맘만 먹으면 블로그에 글 쓰듯 본인평가를 파샤샤샤 쓸 수도 있는데 앙! 막 이런 기분도 들고... 그러다보니 뭐 이래 저래 입력하기 전까진 은근히 고민스럽고, 입력하고 나서도 제법 찝찝하고, 그런것.

그게 또 그리고, 어찌되었건 입사 6년차, 연말의 이런 프로세스에 익숙해지다보니 거의 요맘때쯤에 한해가 저물어간다는게 실감나기 시작하는게다. 그러다 보면 회사 일 말고,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막 참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게지. 그런 관계로 요맘때쯤이면 겨울이고,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눈도 볼 수 있겠고, 뭐 그래서 들뜬 마음이 절반이고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무자비한 자아비판(?)으로 가라앉는 마음이 혼재한다는 거다. 아니 근데 또 조용히 그렇게 동굴속에서 가만가만 이런저런 생각을 보듬기엔 연말이 바쁘지 않았던적이 없었엌 다음주 목금토는 플젝 송년회-팀 송년회-친구들 송년회 로 이어지는 퐁당퐁당 음주기간이고 제길 한달짜리 컨설팅때문에 꼴랑 2주 좀 여유좀 부렸다고 뼈와 살을 분리해줄 기세로 일들은 쳐들어오지 덕분에 출장은 연기되게 생겼지 아오 빡...

뭐, 근데 생각해보면 또 그런 모든것들이, 어떤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연말다운 연말같기도 하고(웃음)

*

어찌되었거나 그런고로 업무 평가야 평가고, 부산에서의 이번 주 한주는 밤마다 늦게까지 꽤 오랜 자아비판시간을 가져보았는데.

낙제군, 완전 낙제야. 점수를 매기자면 D+ 정도.

연초엔 그래도 이런저런 호재도 있었고, 작년부터 연초까지 이어진 하드고어한 업무러쉬덕에 기합도 잔뜩 들어있었고, 개인적으로 좀처럼 풀리지 않던 문제도 어찌 저찌 스윽 풀려버리고, 야 뭔가 올 한해만 잘 메이드하면 내년엔 좀 눈에 보이는 많은 성과들이 있겠구나 그런 기대감마저 품을 수 있음직한 스타트였는데. 그래, 연초에 부산서 올라온 후 생애 첫 해외여행도 다녀왔구나. 그러던것이 팀에서 한참을 돌던 러시안 룰렛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탕 -_-; 하며 맞아버리고 생명단축의 꿈을 꾸며 4개월간을 광화문에서 헬오브지옥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찍는 순간부터 어 어... 그리고 나서 가을의 센치멘등신(...)짓과 콜롬비안지 나발인지 덕분으로 사지가 오그라드는 불안정함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 낭비. 아 정말 oTL. 딱 3개월. 딱 8,9,10 3개월만 정신줄 붙잡고 있었으면 그래도 B는 매길 수 있는 한해였을텐데. 에효.

그나마 이사 같은, 급작스럽게 압박으로 다가온 개인적인 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그 불안정함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겨우겨우 처리해냈다는 것만 아니었으면 F를 때려도 할 말이 없는 한해였을 듯 하다. 사실은 그 또한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나중에 가 봐서야 알게 되겠지만 어찌되었건간에 무언가 기반을 마련했다는 건 나쁘지만은 않았을거라 믿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 예전보다는 훨-씬, 훠얼~씬 이미 지나버린 어떤것들에 대해 반성은 하되 미련과 아쉬움은 잘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올 한해의 시간, 공간, 만남, 성취... 그 모든것들에는 꽤나 아쉬움과 미련이 많이 남는다. 물론 몇 해 전의 그 시간들만치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올해의 실기들도 과거의 어떤 것들처럼 앞으로 꽤 오랜 기간동안 문득문득 떠오를적에 마음을 괴롭게 하겠다는 것이 예상될 정도로. 

뭐, 어쩌면 이것도, 대망의 나이 35를 눈앞에 두고, 어금니 꽉 깨물라는 하늘의 계시인가(긁적긁적)

*

팀에서 또!(-_-;) 러시안 룰렛이 돌고 있다. 지옥 등급으로 매겨보면 6성급 지옥(...) 프로젝트인 H모 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원래 투입되어계신 차장님 한분에 대해 고객측에서 성격이 너무 유하시다고, 좀 '강한'리딩이 가능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교체 요청이 왔는데 그 분야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팀에 거의 없는지라. 팀장님께서 모 과장님, 모 차장님 이렇게 의사를 타진해보긴 하셨는데 워낙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 모두 고사했다고. 근데 그러던 와중에... 나한테까지 또 돌아왔어!!!!! 으엌ㅋㅋㅋㅋㅋㅋ 아니 팀장님 무슨 생각이신가요. 차장급을 대체해달라고 했는데 왜 날 ㅋㅋㅋㅋㅋㅋ 너무 절 과신하시는거 아닌가욬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전화받고 의식이 혼미해지는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쪽 플젝은 경험도 없고, 출퇴근만 하루에 4시간씩 할 수도 없고,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도저히 무리인지라 정중히 고사했다. 아니 내가 먼저 고사한 것도 아니고, 의식이 혼미해져서 음.. 어.. 이러고 있었더니 팀장님이 먼저 그러셨어. 아무래도 좀 힘들라나? 그치? 사람 불러야지?(-_-;) 근데 그러시다가...

너 장가 내년에 가냐?
아 뭐 생각은...
언제쯤 가냐?
가게 되면 봄에 가야 하지 않을런지요(...)
그래? 그럼 안되겠네. 대신 장가 가라, 두번 가라(...는 아니고) 이번엔 꼭 가라!

......지옥에 들어가거나 장가를 가거나 2지선다인가. 아니 아무리 지가 매듭입니다 팀에서 지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잖숨까. 이제 장가 못가면 어디 오지체험 극과극 하는데로 보내버리실지도 몰랔 으앜 살렼

*

시간 참 빠르지. 한달이구나.... 했는데 벌써 다음주면 철수다. 물론 한주정도 더 연장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 해도 크리스마스엔 올라가겠지. 계획대로라면 마지막 한주의 주말은 애인님 뫼시고 부산 투어나 하면서 못다한 먹부림을 하려고 했는데 어제 최종 컨설팅 산출물 리뷰에서 비오듯 수정사항이 쏟아지는통에 FAIL. 하기사 아직 이사하며 새로 지른 가구들도 주말에 들어온다고 하니 집정리도 더 해야 하고... 주말엔 얌전히 집에서 일도 하고 좀 쉬면서 부산에서의 마지막 한주 준비를 해야겠다.

사실 산출물때문에 어제 한바탕 하는 통에 저녁엔 퀵하게 코로 쏘주를 뿜어주고 잠들었는데... 뭐... 굳이 따지자면... 계획대로야(...) 도무지 머리를 쥐어 짜내도 스스로 전공분야가 아닌 쪽 파트가 영 걱정되긴 했는데 일부러 자신있는 쪽으로 헛점을 노출했다 -_- 역시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는통에 자신없었던 파트는 일단 통과. 우후후후후후후후후. 사람 가만히 있다고 가마니로 보지 말라구? 내가 짬을 딱히 괄약근으로 먹은게 아니지말입니다? 이제 주말에 수정사항 나왔던 부분들만 착실히 채워서 다음주에 '이건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산출물이 아냐! 이탈리아 장인이 폰트 한글자 한글자(...)' 하며 통과하면 끗끗끗. 죽어도 성공해야한다 -_-; 정말 재수없으면 크리스마스를 부산에서 맞이하게 될 수 있어. ㅎㄷㄷ

그러고보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2주 앞이네. 휘유~ 점심먹고 간 까페베네에서 들려오는 캐롤송에 마음이 설레설레. 크리스마스에 원하는건 당신뿐이죠!

*

서울은 첫눈 왔다는데 부산은 폭풍바람만 불고 화창 -_- 아 눈보고 싶어.
날씨가 급 추워졌는데 모두 감기 조심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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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생활 1주차


부산생활 일주일째다. 사실 이래저래 가볍게 다녀오자, 한달이니 그냥 가서 작년의 먹부림이나 재현하고 오자 하며 내려온 부산행인데 일주일을 보내고 나서의 소감은... 으읔 -_-; 이거야 원. 예상은 했지만서도 한달짜리 컨설팅이다보니 의외로 일정이 촘촘하다. 물론 같은 팀 분들이 3분이나 더 계셔서 일이 빵꾸날 걱정은 없는데 그래도 음, 또 워낙 일 다른사람한테 밀어놓고 딩가딩가 놀고 그러는 성격은 아니라서. 우야튼둥 이게 참, 제법 일이 있다니까. 게다가 차라리 혼자 슥삭슥삭 해버리고 치우면 좋을 것 같은데 과장님과 같이 일을 나눠 해야하다보니 이런저런 협의할 일도 생기고... 암턴 그러하다. 쓰읍. 

근데 사실 골치아픈건 일보다는 다른 문제. 위에 말했듯 같은팀 분들이 3분이나 계시다보니... 그리고 그 음, 뭐 지방 출장이란게 그렇지. 나처럼 혼자놀기를 유난히 즐기는 인간이 아니면 이게 숙소 가서 횡한 방에 혼자 떡 하고 들어가면 심심한게지. 그러다보니 곱게 들어가질 않아요. 어쨌든 저녁도 먹어야하니 저녁 먹으러 가죠 - 하고 반주나 한잔 하자 그러다보면 어김없이 반주는 소주 2병쯤은 먹어야되는게지!!!!! 이러면서 폭풍러쉬 -_-; 아흙. 그야말로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술자리만 겨우 8일동안 몇번이나 있었는지. 내려오는날 사람들의 얼굴에 피로가 역력해보였던게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난 혼자 놀래요 이러고 쏙 빠져버리는것도 어불성설이고 말이다. 

아니 그러니까! 8일이나 있었는데, 부산까지 왔는데 혼자 바다 한번 보러가지 못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 이 내가!!!!! 세미나 참석하러 해운대까지 갔었는데 바다는 멀-찌감치서 한번 슥 보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니! 술을 먹어도 그냥 바닷가에서 먹고 일찌감치 해산~하면 얼마나 좋아. 주말은 또 이사준비때문에 꾸역꾸역 올라가야되니 이번주는 바다보긴 글렀구나. 에잉. 다음주엔 없는 친구를 팔아서라도 칼퇴근 한번 해서 혼자 바다나 가야지. 해운대, 광안리 이런데는 프로젝트 유관자들 몰려올 수 있으니 어디가 좋을라나. 송도해변이나 가볼까나. 아무튼 다음주엔 반드시! 한주에 한번은 바다를 봐 줘야~ 그래야 충전이 되지. 

*

그러니까 그런 불편함의 일환으로 이런것도 있는게다. 뭐 둘이서 할 수 있는 놀이는 언제든 혼자서라도 할 수 있다 - 는 주의로 영화도 혼자 잘 보고 술도 혼자 잘 먹고 돌아다니기도 혼자 잘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그런 중에서도 좀 묘하게도 이건 좀 혼자 하긴 거시기한데 하는게 있다는 거다. 나의 경우엔 노래방. 아 이상하게 노래방엔 혼자 못가겠더라. 워낙 노래야 뭐 부르는것도 듣는것도 좋아하니 충분히 혼자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만 주욱 골라서 부르고 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이상하게 그렇게 안되네. 이것도 한번만 가면 그 뒤로부터야 쉽겠지만, 음, 쓰다보니까 막 혼자 가볼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긴 하는데 -_-;

그래서 어쨌든 이게 사람들이랑 놀다가 노래방이라도 가자고 해볼까 하면... 아 왜 그런거 있잖아. 회사사람들이랑 노래방가면 막 그냥 좀 들떠서 잘 노는 그런 노래들 위주로 가야 할 것 같은 기분. 그것도 먼저 내려오신 모 대리님이 내가 오기 전 한번 노래방 가서 무려 피흘리며 탬버린을 쳐서 -_-; 막 진짜 잘 논다고 그러는데... 아니 그렇게 맞춰주려면 맞춰줄수도 있긴 한데 그게 요즘은 점점 더 귀찮다니까. 그러다보니 이게 그런저런 이유로 인해 점점 노래방을 가는 횟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구나. 따져보면 애인님도 노래방은 좋아하시는데 그런 어떤 흥겨움쪽을 좀 선호하시는 편이고. 

어제는 나름 흙돼지구이집에 갔었는데 완전히 먹부림 실패. 고기는 쏘쏘했는데 이게 멜젓이 FAIL. 그리고 장정 넷인데 어딜 가서건 고기집게는 먼저 잡고 굽는지라 굽다보니 많이 먹지도 못했네. 2차 집은 말그대로 배를 채울만한 아이템은 아니었고. 이게 되게 어설프게 취기는 오른 상태에서 해산하고 나니 괜히 배는 고프지. 그렇다고 더 먹자고 붙잡기도 뭐하다 싶어 그냥 혼자 숙소 근처 포장마차에 들렀더랬다. 닭갈비를 시켜놓고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나서 집에 가는데 이게 막 이상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은거야. 흥얼거리는 정도로는 성에 안차고. 그러고보니 가을쯔음이면 한번씩 노래방 가서 김광석스페샬 - 을 주우우욱 부르고 오곤 했는데 올 가을은 이래저래 그럴 기회도 없었네. 한 사흘 어떤 덧글을 찾고싶어서 이글루의 내 블로그를 정주행한 덕분도 있고, 객지에서 혼자 걷는 밤거리 덕분도 있었고, 딱 좋은만큼 센치해져서 어제쯤 노래방 갔으면 제대로 소울 뿜었을텐데(-_-;;). 결국 아쉬운 마음을 접고 들어가 누워서 흥얼흥얼거리가다 잠이 들었더랬네. 에잉. 

회사사람들하고 친하고 안친하고를 떠나서 그냥 마음 맞는 친구랑 노래방가서, 서로 신경 안쓰고 부르고 싶은 노래만 주욱 부르고 나왔었으면 - 했던 밤이었는데. 요런게 또 딱딱 그 타이밍에 하지 못하면 다른때 가도 그만치의 어떤 충만함이 없어요. 에음. 아쉽고만. 

*

내가 쓴 글이 제일 재미있어.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순간 얼마나 빵 터졌는지. 혼자 있던 포장마차에서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라실정도로 순간 뿜어버렸다. 아 정말 그래. 내가 쓴 글이 제일 재미있어. 그래서 부지런히 더 많이 쓰고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해봐도 예전만큼이야 쓰진 못하겠지만 조금은 더 부지런해지자.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는게지 결국. 

공감의 형성이,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존재라는것이 사람을 얼마나 즐겁게, 유쾌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새삼 절감했던 밤. 

*

그렇다고 뭐 썩 잘 못지내고만 있는건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대박 발견은 R모님의 재발견. 이분, 올해 경력으로 팀에 입사하신 분인데 처음 이미지는 완전히 교회오빠였다. 얼굴도 뽀-얗고 동안이신데다 수줍 수줍하시면서 평소엔 굉장히 예의바르고... 모든 면에서 교회오빠. 막 초반 회식땐 사람들이 그런 충고까지 했어. 너무 교회오빠이미지가 굳어지면 좋지 않다. 나름 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 뭐 그런 충고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완-전, 완-전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나보다 한달 먼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내려와보니 막 슈퍼스타가 되어있는거야. 어리둥절했지. 그리고 이번 주 두어번 술자리를 가져보고 아 - 하는 심정에 사로잡혔다. 이분, 나와 같은 류였어. 평소엔 조심 정중 깍듯 막 이런 이미지인데, 술이 어느 한계 이상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미친듯한 애교 작렬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왕대박이다. 저정도까지 극단적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 찾기도 쉽지 않은데. 

이게 나로써는 외려 다행인데 사실 한달밖에 안되는 기간이고 혼자 좀 즐기겠다는 마음이 강했었기에 일단 조용-히,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을 컨셉으로 해야겠다, 클로킹 실력을 자랑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왔는데 이미 술자리의 슈퍼스타가 되어계셔서 회식만 하면 시선을 모두모으시니 내가 뭐 이러저러해야겠다 할 필요가 없어. 특히나 프로젝트 회식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여자분들에게 완전히 타겟으로 잡혀계셔 ㅋㅋㅋㅋㅋㅋ 하긴 그렇게 어마어마한 애교가 쏟아져나오는데 ㅋㅋㅋㅋㅋㅋ 맨정신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당혹스러워하시는걸 보는데 이게 진짜 아 내가 그맘 알겠다 싶고 ㅋㅋㅋㅋ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도 좀 바뀌기도 했다. 예전엔 그게 좀처럼 컨트롤이 안되어서 애를 먹었었는데, 요즘도 스스로 상태 안좋을땐 여전히 문제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지긴 했어. 자동 변신보단 수동 변신으로. 음음. 이런것도 진화의 일환인가. 

*

이러저러해도, 객지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법이지. 아 금요일쯤 되니까 좀 지치긴 한다. 주말에도 이사때문에 이래저래 바쁘겠지만, 애인님한테 어리광좀 부려야지. 한 두시간만 아무 말 없이 안아달라고 졸라야겠다. 온기가 필요해. 날씨도 춥고 말야.  

*

어차피 한달 이상 있고픈 생각은 없긴 한데... 투입기간 연장 얘기가 나왔단다. 근데 팀장님께서 '매듭이는 꼭 한달만에 올려보내라'를 강조하셨다고. 이게... 그렇게 강조하셨다니 왠지 두려워진다 ㅎㄷㄷㄷㄷㄷㄷㄷ 팀장님이 나를 그렇게 찾는건 누군가 들어가기 굉장히 어려워하는 지옥 프로젝트가 나왔다는 소리같은데 ㅎㄷㄷㄷㄷㄷㄷㄷ 안녕하세요 매듭입니다. 팀에서 지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_-;;;;; 이래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래도 뭐,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가득이니. 바쁜 연말일정에 원하는 약속을 딱딱 빼서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진 모르지만 우선 서울로 가야지! 올해 크리스마스는 서울에서 보내야!

*

모두 감기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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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어쨌든 언제나처럼 급작스럽게 툭 하니 던져진 출장이다. 이게 사실 콜롬비아를 가네 마네 하며 한달 내내 속앓이를 한게 아니었으면 이또한 썩 달갑지만은 않았을텐데, 자극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외려 가벼운 기분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 또 아이러니하다. 우야튼둥 월요일에 얘기 듣고 자비없이 화요일에 내려올 뻔 하다가 하루를 어떻게 겨우 빼서 조금 쉬고, 이래저래 서울에서 준비할것들을 준비해서 내려온것이 어제. 그래도 지난 겨울을 부산에서 보낸게 도움이 되었던지 오자마자 우왕좌왕하는 일 없이 숙소도 잡고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준비는 끝냈다... 만 왜 IP를 할당받는데 하루가 넘게 걸리는건데! 무슨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IP가 아니야? 장인이 숫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골라서 주는 IP야? 아오... -_-;

진즉에 내가 준비할것들은 다 준비하고 일만 요이 땅 하면 된다 했는데 바로 저 IP할당 문제로 하루는 그냥 별 수 없이 사무실에서 휴대폰만 쳐다보며 보내버렸더랬다. 흙. 그럴거면 퇴근해서 짐이나 정리하게 해주지. 뭐 어쨌든 그 천년같던 사무실에서의 휴대폰가지고 놀기 타임을 보내고 저녁엔 먼저 내려와 있던 같은 팀 분들과 간단히 소주 한잔. 매주 화요일마다 미친 폭풍회식(-_-;)이 있어서 상태들이 다 안좋다고 하시기에 말 그대로 저녁먹으며 반주하는 정도로 마무리.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김없이 출장 전이라 밤을 거의 지새다시피 악몽에 시달렸던 여파가 밀려와서 그대로 침대로 직행. 막상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한게 잠이 들것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어거지로 눈을 감고 있자니 역시 피로앞에 장사 없다고 잠이 들긴 하더라. 어쨌든 꾸역꾸역 잤지만...

오랫만의 출장 여파인지 꼭두새벽에 기상을 -_-; 아 후쌡 무려 네시 반부터 깨기 시작해서 그냥 다시 잠들기를 체념하고 집을 나섰다. 주말 기차표도 예매해야 하는데 아직 IP도 못받았잖아? 별 수 없이 피씨방행. 뭐, 그리하여 아침부터 오랫만에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다는 것.

*

사실 29-32의 3년, 내 인생의 폭풍의 시절.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좀처럼 하지 않게 된다. 어디서 가볍게 얘기가 나와도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였지 - 정도, 혹은 개별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슬쩍 꺼내거나 하게 되는 것. 아마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들을 오프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어버리고, 몇해간 일에 치여 사느라 인간관계의 축이 회사사람들쪽으로 옮겨간 덕분도 있을것인데 그런 외적인 요인을 제외하고라도 그렇다. 지금에라고 퍽이나 철이 많이 든 인간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이건 뭐... 만약 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러고 다닌다 그러면 동구밖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싶을 정도로 좌충우돌 우왕좌왕 찌질찌질했던 것이었으니. 정확히 그 시기에 압축해서 집중된 이런저런 불운들을 아무리 얘기해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이 찌질했다고 해도 무방. 그러니 그 시절은 내게 있어 정말 애증의 집약체같은 어떤 기억들로 남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어릴적부터 잘못한 일의 리스트를 주기적으로 펼쳐보면서 야 이눔쉐키 언제 사람될라고(...) 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짓을 굳이 무지 자주 하고 싶을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또 참 그게 어떻게 방법이 읍네... 하게 되는것이, 어쩌면 이제는 조금은 꽤나 뭔가 어떤 형태를 갖춘 나란 사람을 얘기하는데 있어 그 시절을 빼고는 이야기할 방법이 읍다. 그 시절을 통해 내가 배운것, 내가 깨친것, 내가 뉘우친것, 내가 느낀것, 내가 겪은것들을 빼고서는 말이다. 그러니 또 어떤 이야기들의 끄트머리에선 반드시 그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또 내가 참 그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 나에 대해서 저 사람이 이제 어느정도 알겠구나 하는 정도로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겉으로 티는 안나도 막상 좀 어색어색. 그런데다 뭐 좋아하는 사람한테일수록 미주알 고주알 다 털어놓지 않으면 뭔가 그 사람이 날 내 실제보다 크게 생각하거나 괜한 기대를 걸었다 실망할까 두려워 더 그렇게 되는 경향까지 있어. 그러니 그 이야기들을 하긴 해야하는데 또 뭐 지난일 끄집어내다보면 참 입맛 쓴 부분도 툭툭 튀어나오고, 으어어엌 하며 딜레마에 빠져서 말을 줄이게 되어버리고... 그래서 점점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어진다는 거다. 자동적으로 스스로에게건 타인에게건 적당히 가드가 형성되어버린다는것.

근데 그게, 정말 오랫만에 가드 없이 한참을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우와아앙 하며 신나게 떠들고 나니 이게 정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막 속이 다 후련해. 이번 가을에 받은 이런저런 심리적 데미지들이 말끔히 씻겨나가는듯, 정신건강에 좋은 약 한첩 처방받은 것처럼 좋더라. 아 정말. 느무 긴 수다가 되어버린 것 같아 사실 들어주시는 분께 민폐가 아닐까 걱정도 하였더랬는데 다행히 아니었다고 해주셔서 그저 감사 감사. 이 자릴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이 반.

어쩌면 그 시절에 확실하게 깨달은, 가장 크고 묵직한 깨달음은 저것이었을 것이다. 죽어라 별의별 짓을 다 해봐도 어쩐지 그렇게 되어버리도록 되어있었던 것 마냥 되어버리는 인연이 있고, 아-무 생각없이 물 흐르는대로 두었는데 그게 참 정말 의외로 질기고 질기게 남는 인연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연을 위해서 그 연을 잇길 원하는 만큼 반드시 노력은 하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연에 대해 지나치게 매달리고 전전긍긍해봤자 소용이 없도다. 으헣헣헣.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외다 중생아 네 어디를 방황하고 있느...

근데 그게 그래. 아무리 좋은 깨달음도, 아니 이미 머리론 다 알고 있는 것들도 어느 시점에 필요할때 그런 깨달음들과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이 탁탁 튀어나와서 행동을 탁탁 교정해주는게 아니란것. 결국 그러니 이런것들은 항상 짬이 날때마다 떠올려보고 상기해보고, 스스로의 삶을 통해 얻은 좋은 깨우침들이 스스로의 행동에 은연중에 배어나도록 자꾸 곱씹고 상기하고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게 또 사람이 그렇잖은가. 모르고서 뭔가 하면 몰랐는데! 라고 말이나 할 수가 있지. 알면서도 그런건 그냥 스스로 데꿀멍데꿀멍. 이불속에서 하이킥하는 일이나 늘어나는게지. 그러니, 그래도 삶을 아예 뻘로 살지 않으면 누구나 어떤 삶의 귀한 깨우침들을 얻을 수는 있는데 그걸 얼마나 체화하는가는 또 사람마다 다르다는것.

어찌되었건 참말로 오랫만에, 묵은 깨우침을 꺼내어 들며 중얼거려본다.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의 반. 사람의 몫은 다하되, 하늘의 몫에 대해 원을 품지 말자.

*

숙소에선 인터넷을 쓸 수가 없는데, 외려 다행인듯도 하다. 주말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건데 넷북이며 뭣뭣들을 좀 챙겨 와야지. 밤에 뭐 일찍 잠들거나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정말 게을러졌던 글쓰기를 좀 바지런히 하고 시간이 날적마다 올려보곤 해야지. 음휏휏.

아 근데 사람들이 출장와서는 거의 저녁마다 꼭 반주 한잔씩을 걸친다잖아? 안될거야 아마.. -_-; 가 아니라 그럼 차라리 일찍 쳐자고 오늘처럼 새벽에 일어나서라도! 아 좀 출장만 가면 술독에 빠뜨리는 이런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하긴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 두고 지방에 와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 생각하면 뭐 이해가 가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

오후엔 세미나땜시 해운대로! 야 바다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센치함 쩌네요


뭐 미주알 고주알 떠들만한 일은 아니라 그저 이렇게 덤덤히 몇마디 끄적이고 넘어가지만 근 3주정도를 일 외적인 문제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아가며 큰 일을 치뤘더랬다. 정말 귀찮고, 정말 도망치고 싶고, 그냥 몰라몰라 안해안해 하며 드러눕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아가며,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괴감들에 쓴웃음을 질질 흘려가며, 정말 에지간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아니면 꾸지 않던 유형의 악몽까지 꿔가면서 말이다. 우여곡절끝에 좋은 선택이었을런지는 솔직히 아직도 100%확신은 없지만 일단 주사위는 던져놨고 조금은 큰 한숨을 쓸어내렸다. 게다가 이게 좋은 흐름을 탄건진 모르겠지만 우야튼둥 한달 넘게 상상치 못한 압박의 요인으로 작용한 콜롬비아 출장건도 일단 없던일로. 아 깨알같은 발빼기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 야 진짜 스트레스요인이 훅 사라져서 그런지 지난주는 내내 속도 뒤집어지더니만 이번주는 심지어 똥도 잘눈다. 으하하하. 

이게 그러고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날씨가 확 하고 차가워진게 겨울이 눈앞이다. 야 또 어느새 이렇게 한번의 가을이 가는구나 하고 돌아보는데 갑자기 좋았던 기분이 푹 하고 가라앉을 만큼 요 가을은 마-이 부끄럽고 민망스럽고 돌아보기 괴로운 가을이었다. 부질없이 흔들렸고, 실수가 있었고, 덕분에 비싼 세금을 끌어안게 되었고, 생산적인 일은 요만큼도 해내지 못했고... 아무리 이런저런, 너무나 급작스레 벌어진 일들과 복합 스트레스 탓으로 돌려봐도 온전히 내가 부족한 탓이다. 해묵은 교훈들을 다시 되뇌이며 마음을 다져봐도 어찌되었건 일어나버린 일들은 돌이킬 수 없다. 참 멀었다. 정말로 말이다. 참말,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즉도 멀고도 멀었다. 그게 딱히 기준이 어마하게 높은것이 아님에도. 

*

원치 않는 이별은 언제나 질색이다.

지금에야 나이를 드시고 하셔서 어쨌거나 벌써 사람 나이로 치면 할머니급의 반려동물을 그래도 내치지 않고 키우시고는 계시지만 내가 어릴 적 겪었던 다사다난한 반려동물사를 떠올려보면 참 여전히 한켠으로 서운하고 아쉽고 슬프고 화도 날만치 아버지의 변덕이란것은 특히나 반려동물에 관한 쪽으로는 유별나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동물을 싫어하시는 편은 아닌지라 어디서 술을 한잔 하시건 혹은 사람들과 부대끼시건 하다가 뜬금없이 강아지 한마리를 얻어오신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귀엽다 귀엽다 하시고 동물이라면(특히 강아지라면) 환장하게 좋아하는 자식들이 열광하는걸 보며 흡족해하시곤 하시다가 정말 오래 지나지 않아 이런저런 불만들을 쉴 새 없이 끄집어내시는 거다. 털이 많이 빠지네, 시끄럽네, 똥오줌 냄새가 나네... 애초에 그럴 것을 모르고 데려오신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그러다간 끝내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강아지와 놀 생각으로 신나게 집에 돌아와보면 어디로 보냈는지 온데간데 없다. 아버지께서 심기가 불편하시면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머니께 울상이 되어 물어보곤 했는데 그럴 적마다 한숨을 푹푹 쉬시며 또 그놈의 변덕때문에 누구네로 보냈다, 어디 가져다 주었다 하시는 게다. 

정말로 그럴적마다 펑펑 울면서 다시 데려오자고 읍소를 해보기도 하고, 한번은 시장쪽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나오던 개장수에게 넘겨줬다는 이야기에 한달음에 달려가 개장수 아저씨에게 사정사정하여 되찾아와서 몰래 키우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참 그 반려동물들 때문에 얼마나 눈물을 쏟아내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조금 나이를 먹고서는 또 뜬금없이 어디선가 강아지를 데려오거나 해도 이제 다시는 정붙이지 않으리라 이를 바득바득 갈기도 하였더랬다. 허나 그게 어디 맘처럼 되던가. 어느날 뜬금없이 집을 돌아다니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또 금새 어디 보내버릴거 왜 가져오냐고 왈칵 성질을 내었다가도 꼬물꼬물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면 또 마냥 정을 쏟아붓게 되고 그러면 또 어느날 그렇게 마음 괴롭게도 사라져버리고. 아 진짜 갑자기 생각해보다보니 잊고 있던 미움이 울컥 튀어오른다. 사람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여. 물론 애들은 모르는 어른의 사정, 이사며 뭣이며 다양한 사정이 있기도 했었겠지만 그런걸 감안해봐도 심했던거다. 정말로, 심했다구요 아버지. 

사실 그래서 이별에 대한 어떤 근원적인 공포, 버리거나 버려지거나, 타의에 의해 이별을 강요당하거나, 외면당하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근원적인 공포의 원인을 따지자면 바로 저런 경험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집안의 기대주가 아니어서 찬밥취급을 당하며 생긴 트라우마 덕분도 있지만 이별에 대한 부분만 따지자면 확실히 저 어린시절의 잦은 상실의 경험, 그 영향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는것이다. 어느날 사라진 소중했던 내 어린날의 친구들.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책임질 수 있을만큼 성장했었다면 절대 그렇게 쉽게 그 친구들을 보내지 않았을텐데. 그저 돌아서서 눈이 퉁퉁 부을만치 울어버리는 것 외엔 무엇도 할 수 없었던 괴로운 어린날의 기억.

하기사 뭐, 누군들 이별이 좋기만 하겠냐마는(긁적긁적)

*

잠깐 감상에 빠졌더랬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가장 좋은 예는 시험이지만 시험 외에도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언제나 항상 커트라인에 걸쳐 있는 인간이었다. 물론 운이 좋아서 항상 그 어떤 선을 살짝살짝 필요한만큼 상회하였다. 급한 시험을 볼때면 언제나 필요한 점수보다 5-10점 정도만 살짝 넘어서는 점수를 얻었더랬고 뭔가 인생에 있어 여기서 까딱 잘못되었으면 어마어마하게 비틀렸을수도 있었더랬겠다 했던 라인은 살짝살짝 안쪽으로 발을 용케도 집어넣은채 의식한 것도 아니면서 피해다니곤 했었더랬다. 대-단히 큰 성공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단히 어마어마한 실패같은것 역시 없었고 정말 줄타기를 하는 듯 하는 상황들을 꿀렁꿀렁 잘도 거쳐 지금껏 왔다. 

내년에 벌어질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면 일, 개인사면 개인사를 통털어 벌어지게 될 버라이어티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벌써 간이 아파올정도로 긴장이 된다. 근데 그게 또 생각하다보면 근거없이 그런 낙천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거다. 어쩌면 또, 커트라인인가. 딱 그쯔음에서 그쯔음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그쯔음의 삶은 무리 - 일텐데 또 그쯔음에 나도 모르게 슬쩍 발을 들이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다면 뭐 어쩌겠나. 싫건 좋건 그냥 다리를 움직여야지. 언제나처럼. 하기사 의도하지 않아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마는. 비틀비틀, 휘청휘청, 오락가락하면서도 그냥 언제나처럼 꼬물꼬물 발을 앞으로. 느려터졌어도, 남들 보기엔 속이 터져나가도 스스로의 규정속도를 어기지 않고 다리를 질질. 

정말로, 어쩌면 이렇게나 모지라고 부족한, 결함이 많은 이 사람이 그래도 가장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마지막 커트라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듯한 기분. 

*

날씨가 날씨인지라 감상에서 빠져나올수가 없구나. 

모드 전환을 살짝 해보자면 야 아주 그냥 앓던 이가 빠져 시원한탓에 명동 한복판에서 엉덩이로 이름쓰며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다!!!!! 망할놈의 콜롬비아인지 개럼비아인지때문에 얼매나 압박을 받았던고. 또 막 그 뭐 그, 거시기 그 뭐때문에 얼마나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며 담배만 뻑뻑 피워대었던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YNMS(...) 생각해보면 치가 떨리네그려. 얼마나 좋냐. 생각해보면 달랑 고거 두개 풀렸는데 아주 그냥 올해는 이걸로 쫑이다 생각이 들고. 정말 오랫동안 책도 손에 못잡고 있었는데 월요일부터는 미칠듯한 열독모드. 그러니까 사람이 맴이 편해야혀. 스스로 정신상태 안좋다고 판단될때는 진즉에 사람이고 뭣이고 다 끊고 어디 동굴에나 기어들어가서 벽보고 참선이나 했어야 하는건디. 그럼 지금 좀 더 기분이 개운-할건디. 쓰읍. 어찌되었건 야 좋다. 올해도 겨울에 눈 구경 한번 못하고 땡볕에 시달리게 되는거 아니냐 생각도 이제 없어. 으하하하. 겨울에 눈이나 팡팡 퍼부어라. 음캴캴캴. 

아, 잠깐 읽고 있는 책 얘기를 하면 거의 모든 IT의 역사란 책인데, 요거 읽으며 참 이생각 저생각을 하긴 하는데 씁쓸한 대목도 군데군데 많기도 하다. 예를 들면 막 닷컴기업 초기 얘기를 보면 꼭 패기만 가진 청년 둘쯤이서 이거 되는 장사요 하며 이미 거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 찾아가 투자해달라고 하고, 그럼 또 그 가치를 미리 알아본 그 냥반이 선뜻 그렇게 돈을 턱턱 내놓고 하는 장면들이 보이는데 이게 그렇게 좀 씁쓰름하네. 우리나라에서 누가 뭐 들고 뭐 거니(...)씨나 기타 대기업 회장쯤 찾아가서 그렇게 했다고 쳐봐라. 대뜸 '그래 해보게나 내 팍팍 지원해줌세'할 사람이 어디있겠누. 안된다고 돌려보내고 나서 밑에 애들한테 '야 저거 될거같은데 애들 갈궈서 좀 알아봐라. 우리가 먹자'이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으억, 감상에 빠지는통에 예상 잡담시간을 오버해부렀네. 여기서 급하게 마무리. 
모두 감기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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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치 돋는 금요 만담


바람이 차다.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들인지라 오후쯤에 건물을 나와 명동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숍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뜻한걸 마실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올해도 어느새 흘러갔구나 하는 아쉬움에 주문한 얼음 동동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서 말이다. 가만히 담배를 피워 무는데 창밖에서 밀려든 바람에 소름이 쭈뼛 돋는다. 어쩐지 말도 안되었던 이 묘한 가을도 슬슬 지나가는건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물끄러미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어느 해 빛을 끌어안고 있었던 버스 정류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끔은 슬픔보다 눈물이 먼저 나는 날이 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날 말이다. 늙으면 죽어야해 하며 괜히 키득키득 웃어본다. 뭐, 이런 날들에만 느낄 수 있는 센치함이니. 귀하게 여겨야지 이 또한. 

*

5일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업무상 필요한 메일을 주고 받는 것 이외에는.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이렇게 뭔가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 - 이란게 나같은 계획형 인간한테는 꽤나 쥐약이다. 마음의 준비를 다지고 들어왔던 프로젝트가 뭔가 붕 - 떠있는 분위기인데다가 이것저것 뭐 하나 좋은 상황인것같지 않아 맥이 탁 풀린것도 풀린것이고, 영 내키지 않던 콜롬비아행을 드랍하겠다고 팀장님께 컨펌을 받은 다음 날 바로 비자 준비하라는 메일이 날아와 곤혹스러운 상황도 그렇고, 내년에 일어날 대격변에 대한 생각들로 무지하게 생각들만 늘어난 덕분도 있고, 개인적으로 아쉽고 속상한 일도 있었더랬고, 나만 가을 타는건 아닌 모양인지 이래저래 술먹자는 사내들이 많은 덕분이기도 하다. 충격과 공포의 건강검진 후 당분간은 자제해야겠다는 건 안드로메다로. 하악. 속이 시끄러우니 잠자리도 영 편치 못하고, 꿈자리도 사납고. 

어찌되었건 내일부터는 짧은 연휴인데 이게 꽤 다행이다 싶어 한숨을 내쉬어본다. 이번주는 쉬어야해. 주말에 다음달 결혼하는 친구놈이 청첩장 돌린다고 술먹자는 문자도 왔었더랬는데 과감히 씹어주었다. 친구야 미안 -_- 나도 좀 살자. 뭐 물론 일정 생각도 안하고 대책없이 놀았던건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이번주에 푸-욱 놀아버린 연유로 다음주는 좀 손으로 일도 해야 하고 하니 이번주는 충전이 필요해. 가급적 조용히, 푸욱, 차분히 쉬자. 흐트러졌던 계획들도 정리하고, 머리속에 밀어내야 할 것들도 좀 쭉쭉 밀어내 가면서. 아, 혼자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그건 좀 애매하고나. 아까비. 

*

회사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있다. 

이게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는데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그런 괜한 고집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사적으로 가까워지게 되면 아무래도 일에 이런저런 영향이 가기도 할 것이고, 또 그렇게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면 생활의 축이 너무 회사 중심으로 이동할 것 같아서 말이다. 어차피 나이 들면 그러기 싫어도 그렇게 될텐데 - 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있는 시간 외에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력했는데 이게 어느순간이 되니 자연스레 기울더라. 물론 회사에 묶여있는 시간이 그만치 더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런 문제만은 아닌거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 이 사람은 어떤 사람 확실히 파악이 되기도 하고, 내가 많은 것들을 받고 있다보니 그만치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아랫사람도 늘고 뭐 아무튼 종합적인. 

그리고 관계라는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조금 열면 저도 조금 열고, 그러면서 또 조금 더 끈끈해지고. 그런게지. 어제는 L과장님이 그냥 술먹자 - 는 한마디를 날렸는데 이분이 또 그냥 그렇게 아무 이유없이 술먹자 그러는 분은 아니에요. 그냥 닥치고 옛썰 하고 나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참 안좋은 일들이 한방에 휘몰아치는 그런 날이셨던거란. 그냥 이런저런 얘기 들어드리며 한잔 두잔 하다보니 스을쩍 취기도 오르고. 그러다보니 깊은 속내도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니까 참 쿨함을 넘어 뭐랄까 좀 쌔- 하게도 느껴지셨던 분인데 또 뜨끈한 부분도 있고나 이사람의 이런부분은 이리하여 이렇게 된 것이로구나 어허 그렇구나 하며 웃게되기도 하고. 

언제나, 이런 순간이면 느끼는거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참 별 거 없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가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가는가. 그게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가 그런 문제지. 타이밍과 인내와 용기. 그게 결국 관계의 전부인거지. 

*

어쨌든 스스로를 판단하는데 있어선 굉장히 냉정하고 정확하다는게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덕분에 사실 포기가 빠르기도 하다. 어떤 것을 두고, 그것이 내것이 될것이 아니로세, 내 분수에는 넘치는 것이로세 하는 판단이 서버리면 주저없이 마음을 비우지. 어린 시절엔 그래도 그 몹쓸 아쉬움과 욕심에 진즉에 포기했어야 하는것을 포기하지 못해 전전긍긍해하던 날들도 있었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성향은 더욱 극대화되어서. 사실 그냥 보통의 성향은 전혀 쿨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데 그런 어떤 가치판단의 신속함 덕분에 굉장히 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시원시원함으로 작용될때는 참말 좋은것인데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고. 

어쨌든 사랑에 대한 두서없는 주절거림 - 을 조금씩 조금씩 떠오를때마다 쓰고 있자니 지난 사랑들을 어쩔 수 없이 복기해보게 되는데 사실 그부분은 굉장히 쓰린 부분이다. 언제나, 내가 이별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했을때는 저 가치판단이 명확히 섰을 때였지. 그때만큼은 주저함이 없었어. 내가 그 사람의 삶에 기여할 수 없다는 가치판단이 설때면 굉장히 포기가 빨랐더랬지. 다 지난 일이고 그게 정말 현명한 포기였는지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와서 다시 그걸 더듬으며 신중하게 다시 판단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역시 잘했더랬어 혹은 왜그랬을까 그런걸 지금 생각해서 뭐할것이여. 죽은 자식 쌍방울 더듬기지. 

그래도 그저, 그런 의문이 가끔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이기적이고 조금 더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욕심을 부렸더라면'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더 좋을 수 있었을까 - 라고. 그리고 물론 그 의문의 뒤엔 언제나 또 이게 따라붙지. 아서라. 얼마나 지금으로써도 극락왕생은 무리지 않간. 무간지옥은 피해야지. 끌끌. 

*

콜롬비아. 보고타. 

뭐 역시 내키지 않는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언제건간에 한번 가기는 가게 될 모양. 근데 사실 처음 얘기가 나오고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때만큼 압박을 받고 있지는 않다. 아니 접때 팀장님과 C차장님과 술한잔 하는데 그러시더라고. 내년 팀 목표중에 해외 프로젝트 3개 수주가 있다고. 그중 하나는 네가 해야제 이러시는데 뭐 콜롬비아에 안가도 언젠가 어디론가는 또 갈것이고 앞으로는 (물론 사업이 잘 풀려간다는 전제하에) 그럴 상황이 점점 늘어날 것인데 일일이 스트레스받다가는 괜히 명이나 줄것다 하는 생각에 그냥 예끼 모르겠... 하고 그냥 탁 마음을 비워버렸다. 말했잖나 포기할건 빨리 포기해버리는 성격이라고 -_-; 

사실 또 그건 역시나 C차장님의 영향 덕분이기도 한데 이분이야 뭐 회사의 전략인재셔서 이미 많이 돌아다니시는데... 다녀오실때마다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아름 가져오셔서 참 재미있게도 해주신다. 그리고 꼭 한마디씩 덧붙이시지. 너도 기회되면 꼭 가라. 어디건간에 가라. 그렇게 얘길 듣고 있자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나도, 뭔가 저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거리들을 싸들고 와서 저분과 신나게 이야기하고싶다. 그런것. 음, 역시 생각보다 나한테 영향을 무지 많이 끼치고 계시는 분. 

아 근데 플젝 자료들 보다가 단순 콜롬비아 관련 자료가 있어서 보는데... 보다가 뿜어버렸. 지도에 특정 부분 색깔별로 칠해놓고, 지역별로 특산품이니 뭐니 소개가 있어서 호오 이런 나라로구나 하고 보고 있는데... 특정 지역에 빨간색으로 칠해져있고 소개 문구로 '미인의 도시'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지역 출신 모델 사진도 붙어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누가 설마 만든 자료는 아니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엌 미인의 도시가 2군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레알 뿜어버렸. 

*

내년은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정말로 전력을 다해야할. 올해도 남은 기간동안 많은 일을 해야하고. 어쩌면 이 묘한 가을은, 어쩌면 그 어떤것들과 확실히 작별하고 새 페이지를 열라는 계시와도 같은 걸까. 언제나 그랬듯 또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간에 그게 나에게 필요한 어떤 것이었기에, 그렇게 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일까'

제대로 걷고 있는지는 언제나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건 하나. 계속 걸어야 한다는것 뿐. 

*

어머니 생신이시다. 
어마무지하게,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어머니. 건강히 오래오래 머물러주세요. 

*

겨우, 삼청동에 갈 수 있을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가을이 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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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운명애같은것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내재형 인간이다. 스트레스를 외부로 좀처럼 발산하질 못하고 속으로 꾹꾹 눌러 쌓는다는 얘기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내구력이 강해지긴 했는데 이게 장점이 되기도,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에지간히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는 여간 가깝거나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좀처럼 저인간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아닌지 짐작하지도 못한다는 거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과거, 그렇게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쌓다가 어느순간 빵 터질적에 스스로 얼마나 바닥을 치는가를 반복 학습한 결과로 이제 적당히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방법을 하나 둘씩 터득해가고 있다는 거다. 거의 90도 수직낙하급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곤 했던 예전을 돌아보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런것도 나이를 먹어가며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간에 습득하게 되는 패시브 스킬인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어쨌건 타의 80%이상으로 콜롬비아발 프로젝트에 몸을 담그게 되었고, 본격적 시작은 추석 지나고나서부터가 되게 되었더랬다. 근데 이게 장냔이 아니네. 대체 뭔 일인지 얘기 듣기 전까지는 그냥 뭐 콜롬비아 그까이꺼 갔다오면 되는게지 뭐 그런 정도였는데 부딪칠 '일'을 얼추 듣고 나니 기가 질린다. 말 그대로 새하얀 백지에 제멋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 책임도 그냥 끝까지 져야 하는. 가드도 커버도 백업도 없다. 이쯤되니 워크샵 전후로 해서 머리속에 가득차는건 온통 관련된 일 뿐이다. 하룻밤 자는데 네다섯번을 깨고, 다시 잠들때마다 새로운 장르의 꿈을 꾸고 출근하니 언제는 안그랬냐 그냥 맨땅에 헤딩해보자, 맘 단디 먹고 가보자 생각했음에도 이게 압박이 장난이 아니네. 차라리 당장 해당 플젝 사무실로 뛰쳐들어갈 수 있으면 좀 나을듯도 한데 그럴 상황도 아니고. 으아아아 사지가 오그라든다. 사무실에서 이래저래 프로젝트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째 뭔 정신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징징징 -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또 그러지 못할 거란건 뻔히 잘 알지. 

결국, 스트레스 내재형 인간의 비애 - 라는 거겠지. 쓰읍. 아니 오죽했으면 한국씨리즈에서 역전패를 당해서 빡치는 꿈을 꾸냐고. 

*

거기다 또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란것도 이럴땐 쥐약. 

속으론 으아아아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아 하고 있음에도 주말 워크샵에 가서는 또 개그를 치며 허세를 부렸더랬다. 돈모아서 총(...) 공동구매 해주신다는 얘기에 총 말고 방탄쪼끼요 하질 않나, 이 모든 상황의 발단이 된 손목 덜렁덜렁 친구놈한테 네놈 손목때문에 내 인생이 말렸다고 개드립을 치질 않나. 근데 그 와중에 먼저 걱정을 해주셨던 분들이 계셨더랬다. 자비없는 팀장님(...) 은 그렇다치고 K차장님, C차장님 모두 '야 너 장가는 가야제, 정 안되면 못한다고 그랴', '진짜 괜찮겠냐? 너 그거 안한다고 너한테 뭐라고 할 사람 없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해주시고 그러는데 아 이게 제길 그런 얘길 들으면 들을수록 못한다고 얘길 못하겠다고!!!!! 노린건가!!!!!(...) 이 이용당하기 쉬운 성격이라니!!!! 뭐 결국 어떻게든 되겠죠 -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하고 말아버린. 돌아오고 나서야 좀 더 징징거려서 지원이라도 더 받아낼껄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으아아악 아쉬운 소릴 못하겠어!!!!!!!!!!!! 즈에기일!!!!

워크샵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원래 계획은 3호녀석한테 서울까지 실어다 달라고 할 작정이었는데 그래도 한마디 해주고 싶으셨던지 C차장님이 같이 가자고, 데려다 준다고 그러셔서 또 간만에 둘이 음악 빵빵 틀어놓고 신나게 돌아왔더랬다. 중간중간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는데 아 그게 참 고맙고 좋아서. 그러니까 더 엄살을 못부리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C차장님 앞에선 죽어도 징징거릴수 없쓰어어어어어!!!!!!!!!!!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고. 누가 뭐래도. 내 롤 모델, 앞으로 십수년을 더 따라가도 동일한 레벨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말까 걱정되는 사람 앞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절대. 네버.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 성격중 최악의 단점일수도 있는 부분이다. 애정도에 따라서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힘들다는 얘기, 그런걸 점점 더 못한다는것. 괜찮아요 - 가 디폴트모드로 탑재되어 있다는것. 아 진짜 불편한 성격. 

뭐 어쩌겠어. 그렇게 생겨먹었는걸(체념). 맨정신으론 좀처럼 아쉬운 티도 못내고, 그렇게 괜찮아요 - 를 남발해 두었으니 이제 괜찮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몰아대는걸. 뭐, 어쩌겠어. 

*

답답함이 넘쳐흘러 쓰는 글인지라 확실히 징징댐이 넘쳐흐르고는 있는데, 사실 조금씩 전투모드로 변환이 되어가고 있긴 하다. '제...제길 간이 탱탱해지는 기분이 드는군?!?!?!' 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머리속에 일렬종대로 헤쳐모여가 되어가고 있는 기분. 

무엇보다 언제나 이런 막막한, 혹은 생뚱맞은 일로 인해 긴장 반 두근거림 반 하면서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상황이 되면 항상 언젠가 스스로 얻은 깨우침들을 주문처럼 반복하게 된다. 그러니까 삶에 한참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던 몇 해 전의 기억들을 더듬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 폭풍들의 끄트머리쯤에서 어느날 그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리며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거였다. 신의 존재도 믿지 않고, 딱히 정해진 운명이란것도 믿지 않지만 그저 뭐랄까, 스스로에게 어떤 경험들이 필요한 어떤 순간에 그러한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절하게 주어졌고 그로 인해 내 삶을 지금껏 잘 끌고 올 수 있었다는, 굴곡쯤이야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되었건 종합적으로 따져볼때 운 좋은 삶이었구나. 앞으로 어떤 갑작스러운 일들이 내게 들이닥쳐도 적어도 그렇게 호들갑만 떨지는 않으며, 이제는 그러한 일들이 내게 필요해진 시점인가보다 -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 어쩌면 고차원적 정신승리의 최종단계?(;;;) 

사실 7월까지 미친 업무의 소용돌이에 혼이 다 빠져서 8월을 너무 맥아리없이 흘려보내기도 했었더랬고, 어쩐지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밀려오니 오만 잡념들과 딱히 떠올리지 않아도 좋을 기억들이 들끓어 마음이 시큰새큰한 덕분에 감정선이 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기도 했었더랬고,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슬슬 압박을 가해옴에 따라 답답한 마음에 어딘가 동굴로 좀 기어들어가고싶다 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도 했었더랬고. 여러모로 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발판에 살짝 딛고 올라서 공중부양하는 심정이었는데 단숨에 염통이 쫄깃해질 일이 들이닥치는걸 보니 뭐, 이런게 또 팔자구나. 어헣허헣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니, 만약 이것이 어떤,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흐름에 따라 내게 주어진 어떤 기회요 시간이다 하는 생각을 하니 그렇다면 그런 경험들을 함에 있어 썩 나쁜것들만 남았던 적은 없었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 급작스러운 일들이 내가 원하는 삶에 기여해 왔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자자, 힘 딱 주고 가보자 하며 기분좋게 날이 서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게, 딱히 거창한 운명애 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가까운걸지도 모르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신뢰, 모든것이 그냥 우연찮게 일어나서 삶을 갑자기 망가뜨리는 일은 없을거라는 일련의 믿음. 그런것. 

*

여름이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한풀 꺾인듯한 날씨다. 주말의 소요도 지나가고, 날씨가 너무 예뻐서 일이 손에 안잡힐 지경이지만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달아올랐던 뇌세포들을 안정시켜주고 있는 기분. 

어찌되었건, 최종 목표는 '나'로써 세상의 끝까지 살아가기. 잊지 말아야지. 다만 '나'로 끝까지 머무를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그러니까 기합을 빡 넣고 가보자고. 이매듭 34세!

*

꼬리 : 환절기 감기들 조심하서유. 일교차가 범상치 안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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