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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7 강원도 이야기 (2) 4
  2. 2011.11.17 부산에서

강원도 이야기 (2)

어쩐지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돌아온 휴가였다. 덕분에 쌓인 일거리가 마음을 스물스물 짓눌러 오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어서 오랫만에 블로그를 열어보니 이어 써야지 하다가 그대로 남아있는 이야기만 떡 하니. 언제나 그랬듯이 무언가에 매듭을 짓지 않고서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는 불편한 성격의 인간인지라 어쨌든 이어가보자 하고 자판을 두드려본다. 


앞의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래없이 멘탈이 먼지가 되어 있던 시절의 강원도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건 첫번째가 풍경이요, 두번째가 사람이다. 사실은 둘 사이에 선후를 정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단지 그것은 내 운이 좋았다는 것을, 적어도 그날들까지는 내 운이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절묘하게 두가지가 마치 두 다리처럼 나를 지탱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 하나의 다리,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자. 물론 그 시기에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은 또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Worst 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 그 시기의 나에게는 어쩐지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 경험들이 이후의 내 일이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니, 어쩌면 그 또한 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항상 얘기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것만 인복이 아니다, 내게 어떤 경험들이 필요할때 그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것이 복이다. 


어쨌든 우선 Best에 들었던 사람들 얘기를 먼저 해보자. 그곳에서의 사람들 얘기를 하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역시, 강원도에서 나의 생활중 웃음의 8할을 담당했던 J 선배다. 지금은 소식도 끊겨 알 수 없지만, 정말 그냥반이 아니었으면 어찌 그 시기를 보냈을까 싶은. 진심으로 아직까지 감사해하고 있는 은인과도 같은, 그리고 내 평생 만난 사람중에 단연 탑에 꼽히는 괴인. J 선배. 


*

강원도에 가기 전에도 J선배를 만나고, 술을 마셨던 적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그는 재미있는, 유쾌한 선배중의 한명일 뿐이었다. 경력으로 이직해서 처음 대기업의 프로세스라는 것을 접하고, 뭔가 어리둥절 멍때릭 있던 내게 처음 술을 사준 선배이기도 하고 말이다. 생김새는 모 만화에 등장하는 무용해 대리(...자타 공인이다)와 흡사했으며 특별히 대단히 수다스럽지 않았음에도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들에 위트가 듬뿍 담겨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이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올릴때면 자동 빵 터짐을 재생하는 것을 볼때 실로 무시무시하리만치 재미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방법이 없다. 


이를테면 음담패설 같은 것을 놓고 얘기할때 말이다. 


그게 정말 뭐 알 수 없는 기준이긴 하지만 내겐 약간 그런 기준이 있다. 똑같은 욕을 하고 똑같이 음담패설을 해도 뭔가 어떤 사람이 하면 굉장히 눈쌀 찌푸러지고 적당히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 싶은 기분이 드는데 어떤 사람이 하면 그게 굉장히 천박하게 흐르지는 않으면서 미묘하게 '찰지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딘가의 식당에서 갑자기 주인이 쌍욕을 하면 멱살잡이를 하겠지만 욕쟁이 할머니 맛집에서는 괜히 빵빵 터지며 욕을 반찬삼아 배부르게 배를 채우고 나오는 그런 감정인게다. 단언컨데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중에 가장 욕을 찰지게 하는 사람이었고, 엄청나게 씨니컬한 음담패설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건 그가 했던 말들을 내가 옮겨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세상에서 그 사람의 그 표정과 그 말투로 해야 제대로 찰진 맛이 나오는 그런 말들인 것. 


워낙 척박한 프로젝트이기도 했었고, 당연히 야근과 스트레스는 숙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었으니 우리는 술을 마셨다. 어림잡아 생각해보면, 4개월, 얼추 120일. 주말을 제외하고 100여일이라고 본다면 그중 90일 정도는 함께 술을 마셨다. 또 그중 80여일은 둘만 술을 마셨다. 도착한 첫날부터 시작해서 쭈욱 말이다. 패턴도 매번 같았다. 일과시간에 일좀 하다 저녁먹으러 나가서 밥대신 맥주와 술. 먹고 들어와서 야근. 야근 후 밤중에 다시 술. 워낙 뭐 대단한 술집도 없던 동네였던지라 마시던 집은 항상 투다리. J선배의 말을 빌면 '반경 10키로 이내의 최고 미인'인 아주머니께서 운영하던 투다리에서 그렇게나 술을 마셨다. 아직도 그 투다리에서 팽이버섯말이 안주 천개를 먹으면 용이 될 수 있을거라던 그냥반의 말이 선하다. 그렇게 무수한 술자리들 속에서 알게 된 그는 단순히 술 좋아하고 재미있기만 한 그런 선배는 아니었다. 그는 나름 놀라운 스펙과 뚜렷한 주관.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의 재능과 놀랍도록 회전이 빠른 머리, 거기에 부러우리만치 너무도 뚜렷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막힌 구석이 없이 시원시원하고 분방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내가 그렇게나 그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존중'이었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던 내 습성을 처음에는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동참해서 둘이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였더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별 것 없었던 사랑 얘기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주었다. 프로젝트 오픈 시점과 거의 맞물려 실연당하는 통에 멘탈이 먼지가 되어버려서 사실은 일까지도 거의 손에서 놓는 지경이었는데 그 철딱서니 없는 후배의 만행을 군소리 하나 없이 대충 커버해 주었다. 멘탈 붕괴가 정점을 찍었던 시점, 술에 쩔어 거의 반폐인이 되어 있을 적에도 딱히 뭐 잔소리나 충고나 그런 것도 없었더랬다. 그저 옆에서 같이 술을 마셔주고, 씨니컬한 개그를 한마디씩 집어던져서 웃을 일 없었던 날들에 뜬금없이 빵빵 터지게 해줬더랬다. 프로젝트 철수하고 나서 장렬한 마지막 술자리 한번으로 정리할때까지 참 그렇게나 의지가 될 수 없었달까. 


그냥반이 회사 일을 정리하고 자기가 원했던 일을 하고자 떠날 적에도 나는 여전히 일련의 방황을 지속중이었고, 그 와중에 새로운 일들에 적응하고자 분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허나 그렇게, 회사 일을 정리하고 쿨하게, 미련없이 떠날 수 있던 것도 참으로 그 냥반답다 하는 생각에 정말로 마음속으로는 응원하였더랬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 형님,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언젠가 나중에 우연히라도 한번 만나게 되면 우리 강원도는 아니어도 어디 투다리나 한번 가요. 팽이버섯말이 천개까진 못먹겠지만, 그래도 또 그때 그 날들을 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이면 하룻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것 아니겠습니까. 


*


세상에, 워낙 지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냥반인지라 이만치를 이미 다 써버렸다. 이런게 분량 조절 실패라는 것이구나. 어쨌든 추억에 빠져들다 보니 또 시간이 후딱 지나서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밀린 일거리들이 더이상은 못 기다리겠다 아우성을 치고 있어서 오늘은 이쯤 마무리해본다. 

그래도 뭐랄까. 이렇게 하나 하나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보니, 기분이 묘하네. 하하. 뭔가 아련히 그립기도 하고. 그렇게 찐득했던 슬픔들까지도, 그렇게 격렬하고 뜨거웠던, 그 모든 감정들의 격랑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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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어쨌든 언제나처럼 급작스럽게 툭 하니 던져진 출장이다. 이게 사실 콜롬비아를 가네 마네 하며 한달 내내 속앓이를 한게 아니었으면 이또한 썩 달갑지만은 않았을텐데, 자극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외려 가벼운 기분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 또 아이러니하다. 우야튼둥 월요일에 얘기 듣고 자비없이 화요일에 내려올 뻔 하다가 하루를 어떻게 겨우 빼서 조금 쉬고, 이래저래 서울에서 준비할것들을 준비해서 내려온것이 어제. 그래도 지난 겨울을 부산에서 보낸게 도움이 되었던지 오자마자 우왕좌왕하는 일 없이 숙소도 잡고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준비는 끝냈다... 만 왜 IP를 할당받는데 하루가 넘게 걸리는건데! 무슨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IP가 아니야? 장인이 숫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골라서 주는 IP야? 아오... -_-;

진즉에 내가 준비할것들은 다 준비하고 일만 요이 땅 하면 된다 했는데 바로 저 IP할당 문제로 하루는 그냥 별 수 없이 사무실에서 휴대폰만 쳐다보며 보내버렸더랬다. 흙. 그럴거면 퇴근해서 짐이나 정리하게 해주지. 뭐 어쨌든 그 천년같던 사무실에서의 휴대폰가지고 놀기 타임을 보내고 저녁엔 먼저 내려와 있던 같은 팀 분들과 간단히 소주 한잔. 매주 화요일마다 미친 폭풍회식(-_-;)이 있어서 상태들이 다 안좋다고 하시기에 말 그대로 저녁먹으며 반주하는 정도로 마무리.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김없이 출장 전이라 밤을 거의 지새다시피 악몽에 시달렸던 여파가 밀려와서 그대로 침대로 직행. 막상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한게 잠이 들것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어거지로 눈을 감고 있자니 역시 피로앞에 장사 없다고 잠이 들긴 하더라. 어쨌든 꾸역꾸역 잤지만...

오랫만의 출장 여파인지 꼭두새벽에 기상을 -_-; 아 후쌡 무려 네시 반부터 깨기 시작해서 그냥 다시 잠들기를 체념하고 집을 나섰다. 주말 기차표도 예매해야 하는데 아직 IP도 못받았잖아? 별 수 없이 피씨방행. 뭐, 그리하여 아침부터 오랫만에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다는 것.

*

사실 29-32의 3년, 내 인생의 폭풍의 시절.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좀처럼 하지 않게 된다. 어디서 가볍게 얘기가 나와도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였지 - 정도, 혹은 개별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슬쩍 꺼내거나 하게 되는 것. 아마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들을 오프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어버리고, 몇해간 일에 치여 사느라 인간관계의 축이 회사사람들쪽으로 옮겨간 덕분도 있을것인데 그런 외적인 요인을 제외하고라도 그렇다. 지금에라고 퍽이나 철이 많이 든 인간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이건 뭐... 만약 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러고 다닌다 그러면 동구밖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싶을 정도로 좌충우돌 우왕좌왕 찌질찌질했던 것이었으니. 정확히 그 시기에 압축해서 집중된 이런저런 불운들을 아무리 얘기해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이 찌질했다고 해도 무방. 그러니 그 시절은 내게 있어 정말 애증의 집약체같은 어떤 기억들로 남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어릴적부터 잘못한 일의 리스트를 주기적으로 펼쳐보면서 야 이눔쉐키 언제 사람될라고(...) 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짓을 굳이 무지 자주 하고 싶을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또 참 그게 어떻게 방법이 읍네... 하게 되는것이, 어쩌면 이제는 조금은 꽤나 뭔가 어떤 형태를 갖춘 나란 사람을 얘기하는데 있어 그 시절을 빼고는 이야기할 방법이 읍다. 그 시절을 통해 내가 배운것, 내가 깨친것, 내가 뉘우친것, 내가 느낀것, 내가 겪은것들을 빼고서는 말이다. 그러니 또 어떤 이야기들의 끄트머리에선 반드시 그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또 내가 참 그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 나에 대해서 저 사람이 이제 어느정도 알겠구나 하는 정도로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겉으로 티는 안나도 막상 좀 어색어색. 그런데다 뭐 좋아하는 사람한테일수록 미주알 고주알 다 털어놓지 않으면 뭔가 그 사람이 날 내 실제보다 크게 생각하거나 괜한 기대를 걸었다 실망할까 두려워 더 그렇게 되는 경향까지 있어. 그러니 그 이야기들을 하긴 해야하는데 또 뭐 지난일 끄집어내다보면 참 입맛 쓴 부분도 툭툭 튀어나오고, 으어어엌 하며 딜레마에 빠져서 말을 줄이게 되어버리고... 그래서 점점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어진다는 거다. 자동적으로 스스로에게건 타인에게건 적당히 가드가 형성되어버린다는것.

근데 그게, 정말 오랫만에 가드 없이 한참을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우와아앙 하며 신나게 떠들고 나니 이게 정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막 속이 다 후련해. 이번 가을에 받은 이런저런 심리적 데미지들이 말끔히 씻겨나가는듯, 정신건강에 좋은 약 한첩 처방받은 것처럼 좋더라. 아 정말. 느무 긴 수다가 되어버린 것 같아 사실 들어주시는 분께 민폐가 아닐까 걱정도 하였더랬는데 다행히 아니었다고 해주셔서 그저 감사 감사. 이 자릴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이 반.

어쩌면 그 시절에 확실하게 깨달은, 가장 크고 묵직한 깨달음은 저것이었을 것이다. 죽어라 별의별 짓을 다 해봐도 어쩐지 그렇게 되어버리도록 되어있었던 것 마냥 되어버리는 인연이 있고, 아-무 생각없이 물 흐르는대로 두었는데 그게 참 정말 의외로 질기고 질기게 남는 인연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연을 위해서 그 연을 잇길 원하는 만큼 반드시 노력은 하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연에 대해 지나치게 매달리고 전전긍긍해봤자 소용이 없도다. 으헣헣헣.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외다 중생아 네 어디를 방황하고 있느...

근데 그게 그래. 아무리 좋은 깨달음도, 아니 이미 머리론 다 알고 있는 것들도 어느 시점에 필요할때 그런 깨달음들과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이 탁탁 튀어나와서 행동을 탁탁 교정해주는게 아니란것. 결국 그러니 이런것들은 항상 짬이 날때마다 떠올려보고 상기해보고, 스스로의 삶을 통해 얻은 좋은 깨우침들이 스스로의 행동에 은연중에 배어나도록 자꾸 곱씹고 상기하고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게 또 사람이 그렇잖은가. 모르고서 뭔가 하면 몰랐는데! 라고 말이나 할 수가 있지. 알면서도 그런건 그냥 스스로 데꿀멍데꿀멍. 이불속에서 하이킥하는 일이나 늘어나는게지. 그러니, 그래도 삶을 아예 뻘로 살지 않으면 누구나 어떤 삶의 귀한 깨우침들을 얻을 수는 있는데 그걸 얼마나 체화하는가는 또 사람마다 다르다는것.

어찌되었건 참말로 오랫만에, 묵은 깨우침을 꺼내어 들며 중얼거려본다.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의 반. 사람의 몫은 다하되, 하늘의 몫에 대해 원을 품지 말자.

*

숙소에선 인터넷을 쓸 수가 없는데, 외려 다행인듯도 하다. 주말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건데 넷북이며 뭣뭣들을 좀 챙겨 와야지. 밤에 뭐 일찍 잠들거나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정말 게을러졌던 글쓰기를 좀 바지런히 하고 시간이 날적마다 올려보곤 해야지. 음휏휏.

아 근데 사람들이 출장와서는 거의 저녁마다 꼭 반주 한잔씩을 걸친다잖아? 안될거야 아마.. -_-; 가 아니라 그럼 차라리 일찍 쳐자고 오늘처럼 새벽에 일어나서라도! 아 좀 출장만 가면 술독에 빠뜨리는 이런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하긴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 두고 지방에 와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 생각하면 뭐 이해가 가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

오후엔 세미나땜시 해운대로! 야 바다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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