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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1 서른 넷의 생일 14
  2. 2010.07.20 행복의 딜레마에 관하여 10

서른 넷의 생일


생일이었다. 애인님과 즐겁게 술 한잔 걸치고, 또 한잔 걸치며 12시가 넘기를 기다렸다. 12시가 넘자마자 생일이었음에도 연락 한 통 없는 무심한 친구놈들을 카카오톡에 몰아 넣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한마디 날렸다. '우리가 남이냐아 -o-' 오랜 전통이다. 대학교 다닐 때쯤인가에 한 녀석이 생일날 연락 없었다고 다른 녀석에게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우리가 남이냐고 떠들어댄 이후로, 생일날이 다가올 쯤이면 더, 숨죽여 생일을 기다리곤 했다. 연락이 없길 바랬다. 바로 저 한마디, 우리가 남이냐를 날리기 위해서다. 하하.

열두시가 넘은 시각이었음에도 이내 다다다 말들이 올라온다. 어이쿠야 하며 까먹었다고 자수하는 놈, 너 빼고 네 생일축하 하고 있다고, 튀어나오라고 밉지 않은 구라를 치는 놈, 우리는 남이다(...)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놈 등 반응도 가지가지다. 애인님과 함께 대화창에 올라오는 말들을 보며 킥킥거리다가 얼큰이 취기가 올라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작은 스탠드에 조명만 낮게 밝혀두고 침대에 누워 따끈한 온기를 느끼며 새벽녁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온기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따뜻한 밤이었다. 34살의 생일이었다. 따뜻했던, 사랑스러웠던, 유쾌했던 34살의 생일.

남자는 서른 다섯부터지 - 라고 항상 말해왔었다. 언제나, 어설픈 스스로의 모습에 민망해할 적마다 빨리 서른 다섯이 되고 싶었다. 매년 생일이면 서른 다섯이 되고 싶다고, 그때쯤이면 그래도 조금은 이 어설픔과 풋내가 사라져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였더랬다. 그게 이제 벌써 내년이다. 꿈의 나이(웃음) 서른다섯. 사실은 서른 넷의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꿈의 서른 다섯이 될텐데, 기대했던 것 만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아서다.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풋내가 풀풀 풍기는데다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어려운 것들이 넘쳐 흐른다. 매일매일, 어제보다 개미 눈물만큼씩만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적어도 삶의 끝까지 그럴 수 있다면 - 이라고 허세를 부렸지만 그게 정말 허세였나, 개미 눈물만큼씩으로는 부족한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길정도로 아직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서른 다섯이 뭐 어쨌다는 거냐. 서른 다섯이 되면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뭔가 만화 주인공의 레벨업이나 변신마냥 매듭 MK-Ⅱ 따위라도 될 줄 알았던거야? 란 쓴웃음이 벌써부터 일어날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투덜투덜, 틀렸어, 말도 안돼, 엉망진창이야, 내세엔 개똥벌레로 태어나는게 낫겠어 라고 중얼중얼 거리면서도, 삶의 굴곡에서 휘청일때마다 그렇게 궁시렁거리면서도 여전히 발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칠 적마다 나를 보듬어주는 온기가 있고, 저마다의 길에서 저마다의 방향으로 걸어가며, 가끔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쉴 적마다 그놈 잘 가고 있으려나, 여기가 아닌개벼 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진 않으려나 슬몃 걱정도 하고, 헹 - 놈보다 이백배는 빨리 가서, 저 앞에서 마음껏 비웃어줄테다 라고 괜히 키득거리며 웃어볼 수도 있는 친구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저 만큼은 가야지 의욕을 다지게 만드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있고, 아직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들에게 애송이 놈들아, 내 등을 보고 따라와라 하며 자신있게 외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침부터 목욕탕 바닥에 슬라이딩해서 꼬리뼈가 욱씬대는 오늘같은 날에도, 단단히 넥타이를 졸라매고 활짝 웃으며 '좋은 아침입니다'를 외치면서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음을.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것. 오늘도 터벅터벅. 두 다리에 힘을 빠짝 주고 가보자고. 서른 넷, 어느덧 삼촌을 넘어 아저씨란 단어가 슬슬 가까워지고 있는 스스로에게 전하는 글. 인생은 짧아, 걸어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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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딜레마에 관하여

삶은 행복과 불행이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의 딜레마다. 우리가 어떠한 행복을 느끼건, 그것이 크건 작건 질적으로 훌륭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그것을 느끼는 순간, 그 찰나가 지나고 나면 그것은 곧장 과거형으로 바뀐다. 행복해야 할 순간에 다가올 불행을 걱정하느라 그것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 역시 썩 권장해주고싶은 삶의 태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감이 이대로 쭈욱, 앞으로 영원까지도 이어질거란 망상을 한다거나 그러기만을 바라는것도 우스운 일인 것이다. 물론 사람의 욕심이란건 끝이 없고,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이란 것엔 어떤 영구적인 포만감같은것이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상 행복을 갈구하고, 때로는 그것이 행복한 순간에 더 큰 행복감을 원하느라 스스로 느껴야 하는,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행복이란 것의 찰나성은 그래서 결국 다음과 같은,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유익한 몇몇가지 깨달음을 남겨주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우선, 우리는 누군가가 행복해보인다고 해서, 누군가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내가 안고 있는 그것보다 커보인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그는 그가 누린, 누리고 있는 행복감과 정확하게 같은 무게의 고난과 어려움을 앞으로 남은 생동안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보유하고 있는 부의 크기와도,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의 수와도, 그가 가진 남들보다 세상살이에 유리한 어떤 장점과도 완벽히 무관하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인과다. 높이 나는 새도 반드시 날개를 쉬어야 하는 때가 있고 밀려온 파도는 반드시 물러가야 하는 때가 있는 것과 같은. 물론 스스로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그런 불행이나 어려움들을 혹자는 수월하게 받아들이거나 감내하고 혹자는 실제보다 더 부풀려 크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누구건간에 그런 행복과 불행의 교차에서 벗어날 도리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평범하고도 단순한, 하지만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한다면.

큰 행복을 느낀 사람일수록, 그것도 삶이라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들 중 유난히 두드러지는, 마치 저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별처럼 반짝이는 행복을 느낀 사람이라면, 지금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생으로 내딛는 걸음은 조금 더 단단히, 굳세게 내딛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 느끼고 있는 그 행복감들은, 앞으로 내딛는 그 걸음들을 자꾸만 뒤로 잡아끄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들어 삶을 정체시키는, 썩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삶을 소모하는 어떤 무거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앞으로만 흐름을, 그리고 사람 또한 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계속 앞으로 앞으로 이어나가야 함을 분명히 깨닫고 더 힘차게, 굳세게 앞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 느끼고 있는 그 행복들의 소중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 에너지를 두 다리에 가득 모아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제 아무리 떠나고 싶지 않은 행복이라 한들, 어느 순간엔 그것을 등뒤로 하고 걸어가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는것. 그것이 참으로 달갑지 않은 행복의 딜레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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