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1.17 부산에서
  2. 2010.09.27 인연에 관하여 2

부산에서


어쨌든 언제나처럼 급작스럽게 툭 하니 던져진 출장이다. 이게 사실 콜롬비아를 가네 마네 하며 한달 내내 속앓이를 한게 아니었으면 이또한 썩 달갑지만은 않았을텐데, 자극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외려 가벼운 기분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 또 아이러니하다. 우야튼둥 월요일에 얘기 듣고 자비없이 화요일에 내려올 뻔 하다가 하루를 어떻게 겨우 빼서 조금 쉬고, 이래저래 서울에서 준비할것들을 준비해서 내려온것이 어제. 그래도 지난 겨울을 부산에서 보낸게 도움이 되었던지 오자마자 우왕좌왕하는 일 없이 숙소도 잡고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준비는 끝냈다... 만 왜 IP를 할당받는데 하루가 넘게 걸리는건데! 무슨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IP가 아니야? 장인이 숫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골라서 주는 IP야? 아오... -_-;

진즉에 내가 준비할것들은 다 준비하고 일만 요이 땅 하면 된다 했는데 바로 저 IP할당 문제로 하루는 그냥 별 수 없이 사무실에서 휴대폰만 쳐다보며 보내버렸더랬다. 흙. 그럴거면 퇴근해서 짐이나 정리하게 해주지. 뭐 어쨌든 그 천년같던 사무실에서의 휴대폰가지고 놀기 타임을 보내고 저녁엔 먼저 내려와 있던 같은 팀 분들과 간단히 소주 한잔. 매주 화요일마다 미친 폭풍회식(-_-;)이 있어서 상태들이 다 안좋다고 하시기에 말 그대로 저녁먹으며 반주하는 정도로 마무리.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김없이 출장 전이라 밤을 거의 지새다시피 악몽에 시달렸던 여파가 밀려와서 그대로 침대로 직행. 막상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한게 잠이 들것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어거지로 눈을 감고 있자니 역시 피로앞에 장사 없다고 잠이 들긴 하더라. 어쨌든 꾸역꾸역 잤지만...

오랫만의 출장 여파인지 꼭두새벽에 기상을 -_-; 아 후쌡 무려 네시 반부터 깨기 시작해서 그냥 다시 잠들기를 체념하고 집을 나섰다. 주말 기차표도 예매해야 하는데 아직 IP도 못받았잖아? 별 수 없이 피씨방행. 뭐, 그리하여 아침부터 오랫만에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다는 것.

*

사실 29-32의 3년, 내 인생의 폭풍의 시절.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좀처럼 하지 않게 된다. 어디서 가볍게 얘기가 나와도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였지 - 정도, 혹은 개별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슬쩍 꺼내거나 하게 되는 것. 아마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들을 오프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어버리고, 몇해간 일에 치여 사느라 인간관계의 축이 회사사람들쪽으로 옮겨간 덕분도 있을것인데 그런 외적인 요인을 제외하고라도 그렇다. 지금에라고 퍽이나 철이 많이 든 인간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이건 뭐... 만약 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러고 다닌다 그러면 동구밖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싶을 정도로 좌충우돌 우왕좌왕 찌질찌질했던 것이었으니. 정확히 그 시기에 압축해서 집중된 이런저런 불운들을 아무리 얘기해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이 찌질했다고 해도 무방. 그러니 그 시절은 내게 있어 정말 애증의 집약체같은 어떤 기억들로 남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어릴적부터 잘못한 일의 리스트를 주기적으로 펼쳐보면서 야 이눔쉐키 언제 사람될라고(...) 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짓을 굳이 무지 자주 하고 싶을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또 참 그게 어떻게 방법이 읍네... 하게 되는것이, 어쩌면 이제는 조금은 꽤나 뭔가 어떤 형태를 갖춘 나란 사람을 얘기하는데 있어 그 시절을 빼고는 이야기할 방법이 읍다. 그 시절을 통해 내가 배운것, 내가 깨친것, 내가 뉘우친것, 내가 느낀것, 내가 겪은것들을 빼고서는 말이다. 그러니 또 어떤 이야기들의 끄트머리에선 반드시 그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또 내가 참 그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 나에 대해서 저 사람이 이제 어느정도 알겠구나 하는 정도로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겉으로 티는 안나도 막상 좀 어색어색. 그런데다 뭐 좋아하는 사람한테일수록 미주알 고주알 다 털어놓지 않으면 뭔가 그 사람이 날 내 실제보다 크게 생각하거나 괜한 기대를 걸었다 실망할까 두려워 더 그렇게 되는 경향까지 있어. 그러니 그 이야기들을 하긴 해야하는데 또 뭐 지난일 끄집어내다보면 참 입맛 쓴 부분도 툭툭 튀어나오고, 으어어엌 하며 딜레마에 빠져서 말을 줄이게 되어버리고... 그래서 점점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어진다는 거다. 자동적으로 스스로에게건 타인에게건 적당히 가드가 형성되어버린다는것.

근데 그게, 정말 오랫만에 가드 없이 한참을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우와아앙 하며 신나게 떠들고 나니 이게 정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막 속이 다 후련해. 이번 가을에 받은 이런저런 심리적 데미지들이 말끔히 씻겨나가는듯, 정신건강에 좋은 약 한첩 처방받은 것처럼 좋더라. 아 정말. 느무 긴 수다가 되어버린 것 같아 사실 들어주시는 분께 민폐가 아닐까 걱정도 하였더랬는데 다행히 아니었다고 해주셔서 그저 감사 감사. 이 자릴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이 반.

어쩌면 그 시절에 확실하게 깨달은, 가장 크고 묵직한 깨달음은 저것이었을 것이다. 죽어라 별의별 짓을 다 해봐도 어쩐지 그렇게 되어버리도록 되어있었던 것 마냥 되어버리는 인연이 있고, 아-무 생각없이 물 흐르는대로 두었는데 그게 참 정말 의외로 질기고 질기게 남는 인연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연을 위해서 그 연을 잇길 원하는 만큼 반드시 노력은 하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연에 대해 지나치게 매달리고 전전긍긍해봤자 소용이 없도다. 으헣헣헣.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외다 중생아 네 어디를 방황하고 있느...

근데 그게 그래. 아무리 좋은 깨달음도, 아니 이미 머리론 다 알고 있는 것들도 어느 시점에 필요할때 그런 깨달음들과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이 탁탁 튀어나와서 행동을 탁탁 교정해주는게 아니란것. 결국 그러니 이런것들은 항상 짬이 날때마다 떠올려보고 상기해보고, 스스로의 삶을 통해 얻은 좋은 깨우침들이 스스로의 행동에 은연중에 배어나도록 자꾸 곱씹고 상기하고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게 또 사람이 그렇잖은가. 모르고서 뭔가 하면 몰랐는데! 라고 말이나 할 수가 있지. 알면서도 그런건 그냥 스스로 데꿀멍데꿀멍. 이불속에서 하이킥하는 일이나 늘어나는게지. 그러니, 그래도 삶을 아예 뻘로 살지 않으면 누구나 어떤 삶의 귀한 깨우침들을 얻을 수는 있는데 그걸 얼마나 체화하는가는 또 사람마다 다르다는것.

어찌되었건 참말로 오랫만에, 묵은 깨우침을 꺼내어 들며 중얼거려본다.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의 반. 사람의 몫은 다하되, 하늘의 몫에 대해 원을 품지 말자.

*

숙소에선 인터넷을 쓸 수가 없는데, 외려 다행인듯도 하다. 주말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건데 넷북이며 뭣뭣들을 좀 챙겨 와야지. 밤에 뭐 일찍 잠들거나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정말 게을러졌던 글쓰기를 좀 바지런히 하고 시간이 날적마다 올려보곤 해야지. 음휏휏.

아 근데 사람들이 출장와서는 거의 저녁마다 꼭 반주 한잔씩을 걸친다잖아? 안될거야 아마.. -_-; 가 아니라 그럼 차라리 일찍 쳐자고 오늘처럼 새벽에 일어나서라도! 아 좀 출장만 가면 술독에 빠뜨리는 이런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하긴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 두고 지방에 와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 생각하면 뭐 이해가 가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

오후엔 세미나땜시 해운대로! 야 바다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연에 관하여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이 반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한때는 그렇게나 사람에 목숨을 걸고 살다가 이제 적당히 사람을 놓기도, 잡기도 하며 적어도 스스로를 해칠만큼 무리한 인연에 대한 욕심은 내지 않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다. 정확히는 그렇게 기를 쓰고 이어가고 싶었던 인연을 끝내 놓치고 나서, 그 허망함과 괴로움의 끝에서 겨우겨우 얻어낸 소중한 깨달음이 있고 나서다. 이 이야기를 스면서도 참으로 헛헛해서 다시 웃는다. 삶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진흙탕 속을 뒹굴어도 바닥을 긁어보면 얻을 진주알갱이 하나정도는 있는것이고, 한없이 어두운 길을 걸어도 멀리 반짝이는 불빛 하나정도는 있는법이다.

어찌되었건 이제는 어떤 인연의 잇고 끊어짐 앞에서도 조금은 스스로 마음을 편케 하는 길을 깨쳤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진작 저런 마음가짐으로 흘러간 인연들을 대했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인연으로 남게 되었을 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럴 적이면 또 아쉬움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되는것이 사실이지만 지나간 일이야 어쩌겠는가. 그저 내가 그 흘러간 인연들을 떠올리며 생각하는것은 단 하나를 위함이다. 그때는 참으로 하늘이 나를 많이 도왔는가, 하늘의 반을 넘치게도 채워주었는가를 돌아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과연 사람의 반을 충분히 해왔는가, 내가 반 이상으로 대했던 이들은 누구고 반의 반절도 못했던 이들은 누구고 어째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가, 그런 점들을 곰곰히 돌아보며 뉘우치기도, 지금 내 곁에 머무르는 인연들에게는 어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기도 하려는 것이랄까.

살아가며 얻는 깨달음이 모두 그러한것처럼, 어떤 하나의 깨달음이 절대적인, 어떠한 순간이라도 조금도 틀림없이 들어맞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인연에 대한 그런 깨달음도 마찬가지리라. 그렇게 조금은 사람들을 놓을 수 있겠다 하여 이제는 되었다 하며 지내던 어떤 날에 갑자기 그런 불안함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늘이 반 사람이 반, 나는 그리하여 또 하늘의 반에 너무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 깨달음이란것이 사실은 스스로의 어쩔 수 없는 체념을 온순히 받아들이기 위한 거짓 깨달음은 아닐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연인과 이별하여 눈물흘리는 지인들에게 우리가 가장 자주 건네는 위로의 말이 어떤것이던가.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네가 부족함은 없었으되, 하늘이 그 반을 제대로 돕지 아니했나보다 하는 말로 그저 순간의 다독임을 전하고자 하지 않던가.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참으로 그것이, 균형을 잡기 힘든 말이더라. 내가 잘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내가 못해도 하늘이 그 이상 해주면 어찌 저찌 잘 풀려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내가 굳이 지금 이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겠나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될 수도,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반에 반도 아니하여놓고는 스스로 난 이만하면 반은 하였으니 되었다 할 수도 있는 법 아니던가.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기본적인 생각이야 저리 한다 하더라도 마음먹음의 자세가 중요하더라.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선후를 따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랄까.

간단히 말해 이렇다. 어떤 사람을 대할적에, 어떤 인연을 대할적에 하늘이 반이라는걸 먼저 생각하고 뜬금없이 정화수 떠놓고 기도부터 드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이야 어찌 되건 말건간에, 나는 항상 나의 몫을 다하고 있는가, 이 인연을 지켜나가기 위한 사람의 반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혹은 반 이상을 하고 있는가, 끝내 모진놈의 하늘이 그 인연을 허락치 않아 놓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눈물 머금고 등을 돌리면서도 스스로 나는 나의 몫을 다했노라고, 그러니 그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만큼 공을 들였는지, 가슴이라도 떳떳이 펴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만큼의 노력은 하였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몫을 다 한 다음에야 나머지를 하늘에 맡기건, 기적을 바라건 하는것이지 스스로 할 몫을 다 하지도 않은채 감나무 아래서 입벌리고 있는 것 같은 어리석은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랄까.

만약 어떤 인연을 떠나보내려 하는, 혹은 붙들려 하는 이들이라면 항상 먼저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과연, 얼마나 마음을 다하였는지. 만약 아직 더 할 수 있다면, 더 남겨진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뻔한 속담이지만 사실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 있지 않던가.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스스로 마음을 다하였다면, 그 공들인 인연을 어찌 하늘이 나몰라라 하겠는가. 물론 모든 순간에 그런 기대들이 기대했던대로 이루어지진 않더라도 최소한 마음에 후회 한점이나마 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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