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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7 강원도 이야기 (3) 2
  2. 2014.10.27 강원도 이야기 (2) 4
  3. 2014.08.20 강원도 이야기 (1) 6

강원도 이야기 (3)

세시까지 딱 55분 남았으니 오늘은 딱 그만큼만 글을 써 볼까 - 라고 생각을 하고 써야지만 뭐라도 쓸 수 있게 되는 하루하루다. 남들은 연말 연시 연휴다 뭐다 쉬고 있을 적에도 그냥 매일같은 하루처럼 출근했던지라 해가 바뀐 느낌이 실감도 나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어쨌든 겨울이 가기 전에 강원도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감흥이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 황급히 이어 써본다. 처음 쓰려고 마음 먹었을때는 그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 보려고 했었는데 그건 역시 쉽지 않을 듯. 용두사미격으로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생각을 해 보면서. 


강원도에서 함께 부대꼈던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Best & Worst 로 나눠 쓰려고 하다가 J선배 얘기로 글 하나를 통째로 할애했는데 사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 냥반의 비중이 그만치 크긴 했다. 그래서 오늘은 기억나는 순서대로 Best & Worst 였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쭉쭉 해보는걸로. 


Best 2. 친구 H


어쩌다가 다른 회사 다니고 있던 놈을 같은 팀으로 끌어들인 이후 벌써 7년째 같은 팀에서 서로 의지하기도, 아웅다웅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는 친구 H. 뭐 녀석이야 말할 나위 없는 개그캐... 니 일일이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다. 딱 강원도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만 얘기하고 넘어가는 걸로. 


나는 프로젝트 정식 멤버로 4개월동안 강원도에서 굴렀더랬고, 녀석은 중간에 한달 정도 팀에서 지원 나왔더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실연당하기 전에 와서 상태는 양호할 때였는데 제법 바쁠때라 뭐 거하게 놀진 못하고 다만 매일 술이나 마시고 그랬더랬다. 하지만 Best 2로 꼽을 수 있는건 단 하나의 에피소드와 몇마디의 빵빵 터지는 말들이었는데. 


프로젝트 중기, 주중엔 강원도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오던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일요일날 녀석과 나의 대학시절 같은 모임 선배가 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는 상가집에 갔다가 동서울 터미널 근처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내려가는 걸로 계획을 짰더랬다. 원래 녀석의 지원 계획은 1주였는데 그게 무려 한달로 늘어져버린 통에, 녀석은 처음 챙겨갔던 속옷을 2주째 입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상가집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터미널 근처에서 양말과 속옷을 샀었더랬다. 뭐 술도 신나게 퍼마셨더랬지. 그리고 근처 모텔에서 둘이 방을 잡고 한잔 더 마신 후 잠이 들고... 아침에 어이쿠야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준비해서 뛰쳐나와 버스에 오르고... 딱 버스에 오르고 10분 후에 녀석이 하는 말. 


'으... 빤쓰를 놓고 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놨던 양말과 속옷을 모텔방에 내팽개쳐두고 왔던 것. 결과로 녀석은 강원도에 가서 다시 눈물을 흘리며 양말과 속옷을 샀어야 했었다는 슬픈 전설. 그리고 아마, 바지도 단벌로 3주정도까지 버텼더랬지. 


기억에 또 남는거라면, 녀석은 지원이 끝나서 철수하고 나중에 내가 실연당해서 반폐인 되어 있다가 주말에 올라갔을 때였다. 그땐 뭐 눈만 뜨면 술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던지라 터미널 도착 시간에 맞춰 녀석보고 술먹자고 나와 있으라고 불러 놨었는데... 한 일주일 면도도 안하고 밥도 제대로 안먹고 올라온 나를 보더니 녀석이 흠칫 하더니 하는 말. 야 너 그러다 죽어 - 거기까진 그냥 우려섞인 말이었으나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는데, '야, 근데 너 팀에 복귀해서 팀장님 보러 갈 땐 꼭 그대로 그러고 가라 -_-' ㅠㅠ 그래 뭐.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랬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철수하자마자 휴가라도 받았을지 모르는 것을 - 뭐 아무튼, 녀석의 얘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문득 생각이 난 건데 나중에 녀석 관련 에피소드의 특집편이라도 써볼까. -_-a


Best 3. 무지막지 화끈했던 개발자 Y 씨


워낙 척박한 바닥인지라 프로젝트 한번 했다 하면 본격 남자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기 일쑤고(나만 그런가) 특히 여자 개발자는 상대적으로 귀한 바닥인데 놀랍게도 강원도에서 처음 만난 개발자 Y씨는 바로 그 귀하다는 여자 개발자 분이었다. 뭐 화끈하다고 표현해서 오해가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첫인상이 뭐 섹시 다이너마이트라거나 뭐 그런거 아니다. 첫 인상은 말할때 사투리가 좀 섞였구나 하는 느낌 말고는 그냥 어 그래 그렇구나 싶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인상이었는데. 


이... 이분, 볼수록 매력 포텐이 팍팍 터지더라. 


프로젝트 초반에 다들 모텔방 계약하고 그러고 있을 때 혼자 당당히 사무실 바로 맞은편 사북장 여관에 자리를 떡하니 잡고는 시종일관 여관 시설이 괜찮다면서 홍보하는 통에 거기에 혹한 나와 J 선배도 한달만에 여관으로 방을 옮겼더랬지. 뭐 둘다 별로 예민한 성격은 아닌지라 어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뭐 그리 추천할 정도는? 이라고 의문에 빠질 무렵 그녀가 여관 아주머니께 투숙객을 더 데려오면 방값 할인을 받는 모종의 거래를 (-_-;) 했다는 얘기를 듣고 오왕 님 생활력 강함요 했던 게 시작이었더랬고. 


좀 지나서 술도 몇잔 같이 먹고, 알고 보니 그녀는 시골에서 자란, 무려 7~9 남매 중에 다섯째랬나 여섯째랬나. 강인한 생활력이 이해가 가던 시점이었다. 아 근데 성격이 진짜 화끈 그 자체였다. 한번은 월요일에 주말에 뭐했냐고 물었더니 이번 주말엔 술도 안마시고 그냥 뭐 하고 그랬다는 거야. 근데 조금 더 얘기하다가 우연히 그러고보니 어제 동생이랑 창고 정리하다가 소주 한병 했는데~ 란 얘기를 하길래 아니 술 안마셨다면서요! 라고 추궁하니 오히려 나를 굉장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소주 한병이 술인가예!!!!!


우와 님 좀 짱인듯. 하긴 프로젝트 팀 회식을 하거나 해서 같이 술도 제법 먹은 적도 있었는데 오왕 엄청 잘 놀기만 하고 술버릇도 없이 겁나 깔끔하다. 아 또 그런 적도 있었지. 한번은 금요일에 버스 예매를 못해서 서울 올라오는 길에 다른 개발자 한분이랑 같이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올라오게 되었더랬다. 이래저래 일이 겹쳐서 출발시간이 늦어지다가 거의 야밤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흐미 뭐죠? 이 터프한 드리프트는? 이거 액션영화에서나 나오고 그런거 아니었나요? ㅋㅋㅋㅋ 강원도였으니 눈이 좀 많이 왔었겠나. 다행이 도로는 얼지 않았더래도 이래저래 눈들이 사방에 가득 덮여 있는 그 도로를 겁나게 밟아주시는거야. 난 뒤에서 철없이 오왕 이러고 있었고 앞에 같이 탄 개발자분은 슬슬 표정이 안좋아지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에 딱 터지는 그녀의 한마디. 


아 미안요 제가 야맹증이 좀 있어가지고 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에 같이 타고 있던 그냥반이 순간 손잡이를 꾸왁 잡는걸 나는 봤어. 아무튼 그 터프한 운전 덕분에 서울까지 즐겁게 올라왔으니 그걸로 된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Y씨를 '지인'의 바운더리까지 포함시킬 수가 없었던, 당시 넋 나가 있던 상황과 전국을 떠돌던 생활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연락은 끊겼지만 정말이지 일도 잘 하셨더랬고, 그정도면 척박한 강원도에서의 Best 3에는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게지. 


Best 4 (J선배가 늘상 말하길) 반경 10Km 이내에서 최고 미인. 투다리 아주머니.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Best others. 


스페셜 땡쓰 투 같은 느낌이지만 - 당시 일이야 그렇다치고 생활은 꽤나 제멋대로였던 나와 J 선배를 포용해 주시면서 프로젝트를 잘 끌고 나가신 L부장님, 협력사였는데 죽이 맞아서 PL 급들 회식 가고 그러면 따로 같이 술마시러 가곤 했던 L대리님, 반폐인 생활에 거의 매일같이 술병이 굴러다니던 방을 별다른 얘기도 없이 잘도 치워주셨던 사북장 여관 아주머니. 실연당하고 강원도에 내려와서 몇일 내내 밥을 입에도 안대고 술만 퍼마시다 사지가 떨려 기어가다시피 들어갔는데 인생의 육개장 맛을 보여주신 김밥천국 아주머니 외 참 좋았던 분들이 많았더랬지. 근데 더이상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급급하게 여기서 마무리. 문득 고민되네. Worst 는 다 지난 일인데 굳이 써야 되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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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이야기 (2)

어쩐지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돌아온 휴가였다. 덕분에 쌓인 일거리가 마음을 스물스물 짓눌러 오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어서 오랫만에 블로그를 열어보니 이어 써야지 하다가 그대로 남아있는 이야기만 떡 하니. 언제나 그랬듯이 무언가에 매듭을 짓지 않고서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는 불편한 성격의 인간인지라 어쨌든 이어가보자 하고 자판을 두드려본다. 


앞의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래없이 멘탈이 먼지가 되어 있던 시절의 강원도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건 첫번째가 풍경이요, 두번째가 사람이다. 사실은 둘 사이에 선후를 정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단지 그것은 내 운이 좋았다는 것을, 적어도 그날들까지는 내 운이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절묘하게 두가지가 마치 두 다리처럼 나를 지탱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 하나의 다리,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자. 물론 그 시기에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은 또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Worst 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 그 시기의 나에게는 어쩐지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 경험들이 이후의 내 일이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니, 어쩌면 그 또한 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항상 얘기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것만 인복이 아니다, 내게 어떤 경험들이 필요할때 그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것이 복이다. 


어쨌든 우선 Best에 들었던 사람들 얘기를 먼저 해보자. 그곳에서의 사람들 얘기를 하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역시, 강원도에서 나의 생활중 웃음의 8할을 담당했던 J 선배다. 지금은 소식도 끊겨 알 수 없지만, 정말 그냥반이 아니었으면 어찌 그 시기를 보냈을까 싶은. 진심으로 아직까지 감사해하고 있는 은인과도 같은, 그리고 내 평생 만난 사람중에 단연 탑에 꼽히는 괴인. J 선배. 


*

강원도에 가기 전에도 J선배를 만나고, 술을 마셨던 적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그는 재미있는, 유쾌한 선배중의 한명일 뿐이었다. 경력으로 이직해서 처음 대기업의 프로세스라는 것을 접하고, 뭔가 어리둥절 멍때릭 있던 내게 처음 술을 사준 선배이기도 하고 말이다. 생김새는 모 만화에 등장하는 무용해 대리(...자타 공인이다)와 흡사했으며 특별히 대단히 수다스럽지 않았음에도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들에 위트가 듬뿍 담겨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이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올릴때면 자동 빵 터짐을 재생하는 것을 볼때 실로 무시무시하리만치 재미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방법이 없다. 


이를테면 음담패설 같은 것을 놓고 얘기할때 말이다. 


그게 정말 뭐 알 수 없는 기준이긴 하지만 내겐 약간 그런 기준이 있다. 똑같은 욕을 하고 똑같이 음담패설을 해도 뭔가 어떤 사람이 하면 굉장히 눈쌀 찌푸러지고 적당히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 싶은 기분이 드는데 어떤 사람이 하면 그게 굉장히 천박하게 흐르지는 않으면서 미묘하게 '찰지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딘가의 식당에서 갑자기 주인이 쌍욕을 하면 멱살잡이를 하겠지만 욕쟁이 할머니 맛집에서는 괜히 빵빵 터지며 욕을 반찬삼아 배부르게 배를 채우고 나오는 그런 감정인게다. 단언컨데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중에 가장 욕을 찰지게 하는 사람이었고, 엄청나게 씨니컬한 음담패설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건 그가 했던 말들을 내가 옮겨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세상에서 그 사람의 그 표정과 그 말투로 해야 제대로 찰진 맛이 나오는 그런 말들인 것. 


워낙 척박한 프로젝트이기도 했었고, 당연히 야근과 스트레스는 숙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었으니 우리는 술을 마셨다. 어림잡아 생각해보면, 4개월, 얼추 120일. 주말을 제외하고 100여일이라고 본다면 그중 90일 정도는 함께 술을 마셨다. 또 그중 80여일은 둘만 술을 마셨다. 도착한 첫날부터 시작해서 쭈욱 말이다. 패턴도 매번 같았다. 일과시간에 일좀 하다 저녁먹으러 나가서 밥대신 맥주와 술. 먹고 들어와서 야근. 야근 후 밤중에 다시 술. 워낙 뭐 대단한 술집도 없던 동네였던지라 마시던 집은 항상 투다리. J선배의 말을 빌면 '반경 10키로 이내의 최고 미인'인 아주머니께서 운영하던 투다리에서 그렇게나 술을 마셨다. 아직도 그 투다리에서 팽이버섯말이 안주 천개를 먹으면 용이 될 수 있을거라던 그냥반의 말이 선하다. 그렇게 무수한 술자리들 속에서 알게 된 그는 단순히 술 좋아하고 재미있기만 한 그런 선배는 아니었다. 그는 나름 놀라운 스펙과 뚜렷한 주관.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의 재능과 놀랍도록 회전이 빠른 머리, 거기에 부러우리만치 너무도 뚜렷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막힌 구석이 없이 시원시원하고 분방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내가 그렇게나 그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존중'이었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던 내 습성을 처음에는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동참해서 둘이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였더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별 것 없었던 사랑 얘기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주었다. 프로젝트 오픈 시점과 거의 맞물려 실연당하는 통에 멘탈이 먼지가 되어버려서 사실은 일까지도 거의 손에서 놓는 지경이었는데 그 철딱서니 없는 후배의 만행을 군소리 하나 없이 대충 커버해 주었다. 멘탈 붕괴가 정점을 찍었던 시점, 술에 쩔어 거의 반폐인이 되어 있을 적에도 딱히 뭐 잔소리나 충고나 그런 것도 없었더랬다. 그저 옆에서 같이 술을 마셔주고, 씨니컬한 개그를 한마디씩 집어던져서 웃을 일 없었던 날들에 뜬금없이 빵빵 터지게 해줬더랬다. 프로젝트 철수하고 나서 장렬한 마지막 술자리 한번으로 정리할때까지 참 그렇게나 의지가 될 수 없었달까. 


그냥반이 회사 일을 정리하고 자기가 원했던 일을 하고자 떠날 적에도 나는 여전히 일련의 방황을 지속중이었고, 그 와중에 새로운 일들에 적응하고자 분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허나 그렇게, 회사 일을 정리하고 쿨하게, 미련없이 떠날 수 있던 것도 참으로 그 냥반답다 하는 생각에 정말로 마음속으로는 응원하였더랬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 형님,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언젠가 나중에 우연히라도 한번 만나게 되면 우리 강원도는 아니어도 어디 투다리나 한번 가요. 팽이버섯말이 천개까진 못먹겠지만, 그래도 또 그때 그 날들을 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이면 하룻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것 아니겠습니까. 


*


세상에, 워낙 지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냥반인지라 이만치를 이미 다 써버렸다. 이런게 분량 조절 실패라는 것이구나. 어쨌든 추억에 빠져들다 보니 또 시간이 후딱 지나서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밀린 일거리들이 더이상은 못 기다리겠다 아우성을 치고 있어서 오늘은 이쯤 마무리해본다. 

그래도 뭐랄까. 이렇게 하나 하나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보니, 기분이 묘하네. 하하. 뭔가 아련히 그립기도 하고. 그렇게 찐득했던 슬픔들까지도, 그렇게 격렬하고 뜨거웠던, 그 모든 감정들의 격랑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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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이야기 (1)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프로젝트 출장 때문에 사북에서 4개월 동안 머무르게 되었던 것이 말이다. 이후로 7년동안이나 그 4개월의 기억은, 술마시다 꿀적한 기억들을 떠올릴적에만 상징처럼 와락 일어나곤 했던, 우연찮은 회상씬까지도 그다지 달갑지는 않아 금새 머리를 휘휘 휘둘러 털어내 버리곤 했던 기억이었다. 처음의 2개월은 원치 않았던 롱디와 팡팡 터지는 일거리들 덕분에 힘들었더랬고, 나중의 2개월은 역시나 원치 않았던 실연으로 인해 멘탈이 먼지가 되어서 괴로워했던 때였으니 굳이 끄집어낼 이유가 없었던 기억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근데 작년 쯔음 부터였나, 한번은 그곳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써서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더랬다. 어쩌면 그 괴로웠던 기억들조차 이젠 그저 지난 일이라 하며 옅은 미소로 마주대할 수 있을만치의 시간이 흘러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위에 썼던 이유로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기도 했었지만, 외려 그 괴롭고 힘들었던 와중에도 정말 깨알같이 즐겁기도, 신기하기도, 다시는 없겠다 싶은 경험들도 존재했던 기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왠지 모르게 자꾸만 글이 쓰고 싶어지고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이제 와서 한번 그 이야기들을 남겨볼까 한다. 뭐 별다른 이야기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왠 아저씨가 집 떠나 눈이 펑펑 쏟아지던 강원도에서 인생에 있어서의 희노애락의 정점을 찍던 시절에 대한 회고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자 그럼 뭣부터 얘기해볼까. 한번 기억을 더듬어보자. 때는 바야흐로 2006년 11월. 입사 후 정식으로 투입된 프로젝트로는 첫 프로젝트. 한참 열애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던지라 정말 마뜩치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는 강원도행 버스에 탑승. 자, 그리고 어땠더랬지? 뭐가 좋았더랬지? 회상의 흐름을 방해하는 꿀꿀한 기억들의 틈바구니에서 자 떠올려보자구. 뭐가 그렇게 좋았더랬지? 뭐가 신기했더랬지? 뭐가 그렇게, 아마도 살아가며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그런 유니크한 기억들이었지?


그래, 첫번째는 역시 '풍경' 이었다. 4개월동안 머물렀던 사북읍의. 단지 작은 산골 마을의 풍경 뭐 이런게 아니라 겨울. 눈. 밤. 고요.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풍경들.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가끔씩 슬픔까지도 잊혀지게 만들던 풍경들 말이다. 


*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누가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겨울을 꼽는 사람이고, 왜 겨울이 좋아? 라고 묻는다면 역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눈이 오니까!' 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실 계절과 날씨는 무엇보다 너무도 좋았던거다. 왜, 사람마다 단어를 딱 말할때 연상되는 무언가들이 다 다르지 않은가. 내가 '눈'을 떠올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 시절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그 시절 이후로 눈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조건 반사적으로 그렇게나 눈이 많이 내리던 그 시절 그 어떤 날의 풍경이 떠오르는 것이다. 정말로 천지사방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던. 그렇게 세상을 하얗게 물들여놓고도 멈출 기색도 없이 쏟아져 내리더 눈송이들. 가만히 머리속에 띄워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다 두근거리는 그 풍경들. 물론 매년 폭설로 인한 피해도 있고, 강원도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눈때문에 정말 이가 갈릴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어찌되었거나 서울 촌놈으로써는 그렇게나 쏟아지던 함박눈들에 똥강아지마냥 신나서 껑충껑충 뛰어다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려, 출장 첫날부터 그랬더랬다. 


새로 연애, 그것도 열애를 시작한지 100일도 안된 시점에서 뜬금없이 지방 출장을 가게 된 참이었으니 기분이 좋았을리가 없다. 꿀꿀한 기분으로 짐을 챙겨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인상을 구기고 있는데, 마치 기분만치나 흐렸던 하늘에서 한두송이씩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 많이 내리는 눈은 아니었던지라 잠깐 창밖을 바라보다 눈을 붙였고, 세시간 반정도 지났을까 이내 도착을 알리는 기사님의 목소리에 눈을 떠서 짐을 챙겨 내렸더랬다. 낯선 풍경에 주위를 두리번거려 가면서 전화로 알려준대로 택시를 타고는 프로젝트 사무실에 도착. 그리고 D 선배를 만났다. 꿀꿀했던 강원도 생활 속에서 빅 재미의 8할 정도를 차지했던 D 선배를. 앞으로 4개월간 일어나게 될 버라이어티한 일들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채 D 선배의 환대를 받고, 프로젝트 PM 님께 인사를 드리고, 짐을 풀고, 이것저것 잡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환영을 겸한 첫날의 술자리를 갖게 되었더랬다. 뭐 워낙 술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D 선배와 함께였으니 늦은 밤까지 술자리가 이어진건 당연지사. 아마 3차까지 갔었더랬나. 시간은 얼추 새벽 두시쯤 된 것 같은데 기어코 한잔 더 하자는 말에 마지막 집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한시간인가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정말로 얼큰이 술이 올라 밖으로 나왔는데. 


정말로 딱 한시간만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눈이 쌓여 있었더랬지. 


진짜 그때의 기분은 무슨 마법이라도 본 기분이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앞으로 벌어지게 될 꿀꿀한 일들에 대해서 아직 전혀 예측도 못하고 있었지, 첫 날이고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기분도 업된데다 내가 또 사실 그렇게 새로운 환경같은걸 싫어하는 인간이 아니에요. 게다가 술까지 마실 만큼 마셨는데 한밤중의 시골 마을에 술집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온통 어둠뿐이었는데 딱 한시간 마시다 나오니 온통 순백으로 물들어 있어. 캬 이거 뭐 신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는거다. 야 이거 뭐여. 눈에 막 발이 퍽퍽 들어가네? 겅정겅정 어설프게 뛰어다니다가 몸개그도 저질렀다. 뒤로 벌렁 자빠져서 뒤통수를 제대로 박았는데... 안아프네? 이게 술의 탓이었는지 워낙 삽시간에 푹신하게 쌓였던 눈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러고도 좋다고 한참을 그 아무도 없는 거리를 쏘다니다 숙소로 들어갔더랬다. 아, 지금 생각해도 정말 근사한 겨울밤이었는데. 


어쨌거나, 이후에도 그렇게나 쏟아졌던 많은 눈들, 그리고 근사했던 많은 겨울밤들은 그 괴로웠던 시절에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더랬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서 장렬하게 채이고, 거의 이틀을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기차를 타고 내려온 날도 마찬가지였다. 청량리 역에서 막차를 탔었더랬나, 새벽 두어시쯤에 도착한 사북역의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늘상 버스를 타서 몰랐었는데 기차를 타고 내리니 그 작은 마을을 주욱 가로질러 걸어가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더랬지. 정말로 끔찍하게도 비참한 기분이었음에도 무릎까지 푹푹 파묻히는 눈의 감촉들이, 그리고 그 새벽에도 온통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며 퍼붓고 있던 함박눈들이 굉장히 극적인 풍경을 그려냈고, 그게 그렇게나 끔찍한 기분 속에서도 절반쯤은 허탈하게 웃음이 배어나오게 만들던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한번 눈을 감고 그려보시라. 사랑을 잃고 비참하게 도망친 패잔병, 밤기차에 몸을 싣고 도착한 작은 시골역. 정말로 눈앞을 가릴만치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 잔뜩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불빛 하나 없이 고요한, 그런데 천지사방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물들어 있는 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가는 반쯤 넋이 나가 보이는 듯한 남자. 뭐라 해도 뭔가 짜한 그림 아닌가. 아닌...가?


*


앞서 말한 괴로웠던 기억들 덕분에, 이후로 그곳, 사북을 찾은 적이 없다. 아, 다른 일 때문에 여름에 한번 갔었던 적은 있었더랬는데 그건 패스하고. 아마 그곳도 많이 바뀌었겠지. 내가 갔던 그 해가 K랜드 스키장이 오픈하던 해였으니 아마 지금쯤은 그 영향으로라도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사실 별로 더 가고 싶지 않은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묵었던 숙소의 위치나, 프로젝트를 했던 사무실의 위치도 절묘했더랬다. 읍내에서 살짝 떨어진, 터미널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사실 낮에도 오가는 차는 있어도 사람 구경은 좀처럼 할 일이 없었던(프로젝트 사람들 빼고). 돌이켜 보면 그 시절만큼 원하는 만치 얼마든지 절대고요, 절대고독을 접할 수 있었던 시절도 없었다. 


특히나 실연 후의 2개월은 더 그랬더랬지. 반 폐인 상태로 살면서 거의 매일 술독에 빠져 있었더랬는데, 거의 매일같이 함께 술을 마셔주던 D 선배가 숙소로 돌아간 후에도 사실 혼자서 많이도 헤매고 다녔었더랬다. 특히나 눈이 내리던 날은 어김없이. 어차피 술을 마셔도 잠도 잘 오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몇 시가 되었건 상관없이 숙소를 나와서, 입술을 꾹 다물고 내리는 눈을 그대로 맞아가며 천천히 걸었더랬다. 때로는 이리로, 때로는 저리로. 때로는 메마른 개울 위로 쌓이는 눈송이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때로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정처없이 걷기도 했었다. 누가 봤으면 어떤 미친놈 취급을 받았을지 모르는 일인데, 그래도 그것들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정신줄 잡고 있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얘기 운 띄우고 풍경 얘기 하나 했는데 이만치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만치 좋았던 것이리라 하면 될 것 같다. 만약 저런 비슷한 겨울밤의 풍경을 느껴 보지 못한 분이시라면 한번쯤은 꼭 권해주고 싶을 만치 말이다. 세상에 나 홀로 있는 듯한, 너무나 하얗고 너무나 검고 너무나 고요한, 이빨이 딱딱 부딪쳐올 만치, 입김까지 하얗게 얼어서 눈발에 섞이는 착각마저 들 마치 춥고 외롭지만, 그 모든것들이 너무다 멋지게 어우러져서 극적으로 행복해지는 괴이한 경험들을 느껴 보시라고 말이다. 아 물론 굳이 실연까지 당해가며 겪을 필요는 없다. 굳이 그렇게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우울함과 슬픔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누구나 사랑할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니 말이다. 일단 풍경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근데 정말 그것도 웃기는 노릇이지 뭐야.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풍경들을 대하던 날들에, 그 흔한 사진 한장을 안찍어뒀어. 어쩌면 그래서 충분히 더 기억 속에서만 미화되고 미화되어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사람 기억이란게 그렇게 간사하잖나. 어쨌든 다음에 또 이어서 써야지. 다음번엔 뭘 쓴다. 아 사람. 당연히 사람 얘기를 해야지. 사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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