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늘상 꿈의 나이라고 말해오던 서른 다섯이 되었다. 사실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서른 다섯의 첫날을 맞이하는 연말치고는 조금 싱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은 12월 말부터 헬로 끌려들어오면서 미칠듯한 일 러쉬에 시달렸더랬고, 따뜻한 한반도의 남쪽 부산땅에 있다가 정세도 흉흉한데 휴전선이 가까운 파주까지 올라오면서, 날씨에 적응을 못한탓인지 덜컥 감기에 걸려버린 탓도 있다. 지난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모르겠으니 말 다했지. 그나마 마지막날에 본 박정현&성시경 콘서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해가 바뀌는줄도 몰랐을거다. 뭐 나이먹음에 딱히 연연해하는 성격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렇게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서른 다섯이 되는 순간이었는데. 함께 서른 다섯이란 타이틀을 달게 될 친구놈들과 격하게 웃고 떠들며 야 내가 너 첫사랑한테 채이고 찌질대던 눈물 콧물 닦아주던게 어제같은데 하며 조금은 소란스럽게 맞이하고 싶기도 했었고, 연말의 떠들썩한 분위기속에서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격하게 술잔을 부딪치며 한해를 넘겨보고 싶기도 했었고, 그냥 고요하게 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어릴적부터 그렇게나 그려온 서른 다섯의 모습과 얼마나 스스로 괴리가 있는가를 가만히 재어보며 명상의 시간과 함께 맞이하고 싶기도 했었고, 부산행이다 뭐다 이래저래 미뤄온 약속들을 바쁘게 처리해내면서 또 한해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싶기도 했었고... 뭐랄까, 언제부터인가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일 폭풍에 휘둘리며 보냈던 것이 정상같긴 한데 올해만큼은 - 이란 마음이 있었더라는 얘기다. 서른 다섯이니까. 그렇게나 막연한 기대를 품고 기다렸던. 

뭐, 그렇다해도.

그래 뭐, 서른 다섯이니까 말이다. 나쁘지 않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나 싫고 또 싫던 풋내가 아주 조금쯤은 걷힌 것 같기도 하고, 어설프고 모자란 부분도 얼기설기 꾸역꾸역 조금은 메꿔나가고 있는 듯 하고, 여전히 철은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 날들에 비해서 조금은 단단하게, 조금은 철분 함유량이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대책 없음을 대책으로 삼고 있지요 으하하하 하는 허세도 그래도 조금쯤의 근거는 마련해두는 허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서른 다섯, 꿈꿔왔던 서른 다섯살의 내 모습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되는건 올해를 보내고 나서 다시 이맘때쯤의 일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무수한 일들, 하나같이 쉽지 않을 듯한 일들, 생각만해도 괄약근이 움칠거리는 일들이 무수하게 산적해있는 한 해가 되겠지만 이 한 해를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내 꿈의 나이 서른 다섯이 과연 - 이 될지, 역시 - 가 될지 결정되겠지. 그러니까 올해는 더 바짝 정신차리고, 어떤 일들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이를 꽉 깨물고, 쓸데없는 감상따위에 젖어서 찌질거렸던 작년과 같은 경우는 반복하지 않도록. 기합을 빡 넣고 가자. 근성으로 팍팍! 가자! 싸나이 매듭 삼십 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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