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의 생일


생일이었다. 애인님과 즐겁게 술 한잔 걸치고, 또 한잔 걸치며 12시가 넘기를 기다렸다. 12시가 넘자마자 생일이었음에도 연락 한 통 없는 무심한 친구놈들을 카카오톡에 몰아 넣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한마디 날렸다. '우리가 남이냐아 -o-' 오랜 전통이다. 대학교 다닐 때쯤인가에 한 녀석이 생일날 연락 없었다고 다른 녀석에게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우리가 남이냐고 떠들어댄 이후로, 생일날이 다가올 쯤이면 더, 숨죽여 생일을 기다리곤 했다. 연락이 없길 바랬다. 바로 저 한마디, 우리가 남이냐를 날리기 위해서다. 하하.

열두시가 넘은 시각이었음에도 이내 다다다 말들이 올라온다. 어이쿠야 하며 까먹었다고 자수하는 놈, 너 빼고 네 생일축하 하고 있다고, 튀어나오라고 밉지 않은 구라를 치는 놈, 우리는 남이다(...)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놈 등 반응도 가지가지다. 애인님과 함께 대화창에 올라오는 말들을 보며 킥킥거리다가 얼큰이 취기가 올라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작은 스탠드에 조명만 낮게 밝혀두고 침대에 누워 따끈한 온기를 느끼며 새벽녁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온기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따뜻한 밤이었다. 34살의 생일이었다. 따뜻했던, 사랑스러웠던, 유쾌했던 34살의 생일.

남자는 서른 다섯부터지 - 라고 항상 말해왔었다. 언제나, 어설픈 스스로의 모습에 민망해할 적마다 빨리 서른 다섯이 되고 싶었다. 매년 생일이면 서른 다섯이 되고 싶다고, 그때쯤이면 그래도 조금은 이 어설픔과 풋내가 사라져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였더랬다. 그게 이제 벌써 내년이다. 꿈의 나이(웃음) 서른다섯. 사실은 서른 넷의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꿈의 서른 다섯이 될텐데, 기대했던 것 만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아서다.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풋내가 풀풀 풍기는데다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어려운 것들이 넘쳐 흐른다. 매일매일, 어제보다 개미 눈물만큼씩만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적어도 삶의 끝까지 그럴 수 있다면 - 이라고 허세를 부렸지만 그게 정말 허세였나, 개미 눈물만큼씩으로는 부족한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길정도로 아직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서른 다섯이 뭐 어쨌다는 거냐. 서른 다섯이 되면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뭔가 만화 주인공의 레벨업이나 변신마냥 매듭 MK-Ⅱ 따위라도 될 줄 알았던거야? 란 쓴웃음이 벌써부터 일어날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투덜투덜, 틀렸어, 말도 안돼, 엉망진창이야, 내세엔 개똥벌레로 태어나는게 낫겠어 라고 중얼중얼 거리면서도, 삶의 굴곡에서 휘청일때마다 그렇게 궁시렁거리면서도 여전히 발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칠 적마다 나를 보듬어주는 온기가 있고, 저마다의 길에서 저마다의 방향으로 걸어가며, 가끔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쉴 적마다 그놈 잘 가고 있으려나, 여기가 아닌개벼 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진 않으려나 슬몃 걱정도 하고, 헹 - 놈보다 이백배는 빨리 가서, 저 앞에서 마음껏 비웃어줄테다 라고 괜히 키득거리며 웃어볼 수도 있는 친구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저 만큼은 가야지 의욕을 다지게 만드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있고, 아직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들에게 애송이 놈들아, 내 등을 보고 따라와라 하며 자신있게 외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침부터 목욕탕 바닥에 슬라이딩해서 꼬리뼈가 욱씬대는 오늘같은 날에도, 단단히 넥타이를 졸라매고 활짝 웃으며 '좋은 아침입니다'를 외치면서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음을.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것. 오늘도 터벅터벅. 두 다리에 힘을 빠짝 주고 가보자고. 서른 넷, 어느덧 삼촌을 넘어 아저씨란 단어가 슬슬 가까워지고 있는 스스로에게 전하는 글. 인생은 짧아, 걸어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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