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보내며

6시 20분 기차표를 예매했다. 근 한달을 서울땅을 밟지 못했었는데, 그래도 연말은 서울에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고작해야 3일정도고 신정도 끼어있어 집에도 들려 부모님께 인사도 드려야 하고, 애인님과 2010년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내년의 계획들을 잡아봐야 할 것이니 이래저래 분주한 주말이 될 듯 하다. 그래서 조금 이르게 남겨보는, 2010년의 마지막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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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일을 많이 한 한해였구나. 하하. 지난 한해를 돌아보는데 문득 저런 중얼거림이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걸 보니 정말 끔찍하게도 일에 매달렸던 한해임에는 분명하다. 연초부터 조짐이 이상했더랬지. 평화롭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펑크가 펑 펑 나면서 고어해지기 시작하더니, 딱 그 시점부터 미친듯이 일, 일, 일, 산 넘어 산, 또 산같은 일들이 밀어닥쳤다. 거의 해보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매번 부딪치는 상황마다 경험이 없음에 두배로 고생스러운 날들이었다. 3/4 분기를 들어설 쯤엔 출근 한 주말이 출근 하지 않은 주말보다 많아지는 끔찍한 상황도.

덕분에 일과 관련해서는 얻은 것이 적지가 않다는 것이 커다란 위로다. 한 해 농사 헛짓지 않았다는 유일한 자랑거리기도 하다. 불과 일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놓고 객관적으로 비교해볼적엔, 처리해낼 수 있는 업무의 범위나 영역이 비교도 할 수 없을만치 늘었다. 어떤 일을 할 적에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는 강한 자신감도 생겼고, 어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져도 혀나 한번 끌끌 차고 수습에 몰두할 수 있을 만한 여유도 생겼다. 롤 모델로 삼고 있는 C 차장님께 나름의 인정도 받았고, 결과와 무관하게(영어점수 덕분에 시트콤도 찍었지만) 일단 진급의 요건도 확실히 갖춰 놨고. 한 삼년치 일을 한해에 몰아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시도 때도 없이 투덜거린 한해였는데, 아쉬움보다는 후련함과 뿌듯함이 가득 찰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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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역시 라이프와 워크의 밸런스가 워크쪽으로 확연히 기울여지다 보니(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활에 있어선 많은 것들을 놓쳐버렸다는 것은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 데이트도 많이 못하고(-_-) 보고 싶은 사람들도 거의 얼굴 가물가물 할 적에 한번씩 보며 민망해하게 되고, 심지어 책도 먹고 사는 일 관련된 것 이외에는 정말 부끄러울 만치 읽지 못했다. 우연찮게 부산 출장을 오게 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긴 제법 하였지만 혼자서는 여행을 한번도 가지 못했고, 업무 외적인 공부같은것도 제대로 한게 하나도 없다. 아 이거 쓰다보니 우울해지네.

그래도 분명히 못한건 못한거니까 확실히 남겨둬야지. 문화생활도 끔찍하게 못 즐겼어! 영화 한편을 제대로 못봤네그려! 얼굴 보자고 날려놓은 공수표가 벌써 몇장이여! 아주 그냥 대인관계가 파탄나게 생... 음... 좀 진정하고. 게다가 올해 제일 중요한 목표 하나를 이루지 못했다는게 좀 뼈아픈 부분이다. 올 초에 예상보다 쉽게 높은 파도 하나를 폴짝 넘어서 순항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암초에 걸릴줄이야. 내년엔 쓰나미고 뭣이고 넘어야 할텐데.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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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지금도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고, 어찌되었건 온라인상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한 정리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글루를 떠난 것에 대해서는... 타이밍상으로도 굉장히 좋은 타이밍이었고 지금도 후회는 없다. 사실 지난 몇년간 좀 과도하게 스스로에게 여유를 부여했던 게 맞지 않나.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건 지금보다 엄청 더 여유로워지거나 하는 상황은 아마도 호호 할아버지가 될때까진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나 무수한 것들이 얽혀 있는 공간을 끝까지 유지해내긴 어려웠을거다. 언제라도 그만둘 수 밖에 없었고, 그 시점이 가장 바람직했던 것.

지금은 그저 원래 온라인 공간에 발을 들이며 스스로 원했던 만큼, 딱 그만큼의 안정된 온라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우선은 내년에도 이 정도로 만족이다. 글은 조금 더 부지런히 쓰려고 노력하겠지만 다시 이글루로 돌아가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부대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듯 하다. 언제나 말했듯, 바램은 그것뿐이다. 나와 소통의 의지가 있는 이들이 언제든 찾아와 마치 어제 얼굴 보고 얘기한 것 마냥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눠보고 하는 작은 소통의 공간,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들이 우연히 스쳐지나가며 한번씩 읽었을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정도. 그 정도면 바랄 것이 없겠다.

원래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벌여놓는걸 싫어하는지라 처음 이글루를 접을 때의 마음은 시간이 날때는 그쪽의 글들을 완전히 이쪽으로 옮겨오고 아예 폐문하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나중에 글이야 옮겨오더라도 그 공간 자체는 그냥 두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글루가 망하는 그 날까지(웃음) 그곳에 남겨져있는 글들이, 덧글들이 너무 고맙고 소중한 것들이 많아서 그렇게 날려버리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고나. 아, 나이먹고 끈적해지는건 딱 질색인데 말야. 하하. 아, 빼놓을 뻔 했는데 글과 연관된 개인적인, 작은 도전도 하나 있었구나. 그 정신없던 와중에. 그것 또한 나름의 소득이다. 내년은 더 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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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올해의 단어로 '악전고투' 라는 사자성어를 꼽을 수 밖에 없던 한해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 적어도 조금이라도 작년의 나보다 나아진 한해였다고 생각하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한해. 2010년이었다.

고요-한 이 공간에도 여전히 가끔씩 잊지 않았다며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 반갑기 짝이 없고, 여전히 부지런히 덧글 남겨주시는 분들도 있어 감사하기 짝이 없고, 그저 복받으실 거란 한마디도 전해보고 싶다 (__) 모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년도 잘해봐요 우리(응?)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다 잘 되시고, 솔로분들은 그저 달큼따끈한 봄바람 맞으시길, 커플분들은 그저 백년해로하시길 빌어드리겠습니다. 격하게 사... 사... 좋아합니다?(웃음)

올해 연말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거쳐, 내년의 캐치프라이즈(?) 를 정했지요. 내년은... No Fear! 두려워하지 말자! 우오아아 2011년도 모두 화이팅! 전력을 다해 행복해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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