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야 할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를


사회 생활 초반에 일했던 회사에서 대표님이 얘기해주셨던 일화다. 신혼때의 일이셨단다. 맞벌이를 하셨던 중이었던지라 아침에 와이프분께서 먼저 출근을 하고 자신은 좀 늦게 집을 나서곤 했었더란다. 하루는 둘다 늦잠을 자는 통에 와이프는 눈뜨자마자 허둥지둥 준비해서 집을 나서고 자신은 그제야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변기를 열었는데 크고 아름다운 그것 (-_-;) 이 둥둥 떠다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경황없이 나서다가 화장실 물을 내리고 가는걸 깜빡하고 갔더라는 것. 사실 뭐 새신부라고 응가를 안하는것도 아니고 자신도 딱히 뭐 굉장히 놀라거나 한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신혼이 신혼이었고 처음 보았던 것이었던지라 좀 당황스럽긴 했었다고.

이게 근데 그냥 혼자서 보고 놀래고 어헣허헣 웃고 넘어갔으면 그뿐인 건데 그게 또 그게 아니었던지라. 아침에 경황없이 출근한 와이프분께서 이게 이게 (-_-;) 내가 물을 안내린것 같은데... 설마 설마? 를 하루종일 반복하고 계셨더라는 거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와서 TV를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하루 일을 마친 와이프가 들어오는데 이게 들어오면서부터 왠지 자기 눈치를 보는 것 같고(...)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고 그렇더라는 것이다. 속으로는 쿡쿡 웃음이 나오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자리를 물리고 둘이 쇼파에 앉아있는데 그제야 참지 못하고 슬쩍 물어보더란다. '저... 음... 그러니까... 그... 아침에 화장실에서... 음... 혹시.. 아니 그러니까 내가...' , '아니 왜? 뭘 그리 뜸을 들여?' , '아니 그러니까... 내가... 혹시... 물 안내리고 갔나 해서...' 사실 그때쯤에야 거의 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여기서 웃어버리면 몇날 몇일 와이프 얼굴 보기 힘들것 같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응? 아냐 물 내리고 갔었는데 뭘' 하고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추궁을 해도 끝까지 부인을 하셨다는 훈훈한 미담(?) 이었달까. 

우리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라도,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을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을 감아야 할 때 눈을 감을 수 있는 지혜다. 물론 우리는 관계 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때, 눈을 감기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조율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 그런, 조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많은 경우에 좋은 방법이라고 권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떤 것들은 분명히, 끊임없이 부딪치고 다투며 그 모습들을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보다 그저 한번 웃으며 슬그머니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본인의 황금변을 확인시켜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정도야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에피소드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려면 반드시 우리는 눈을 감는 것이 좋은 상황에서 눈을 감는 방법에 대해 깨우쳐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어느정도 배변훈련은 시키더라도 가끔 엉뚱한곳에 똥오줌을 갈긴다고 해서 몽둥이 찜질부터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굉장히 애지중지하던, 선물받은 낡은 책상에 생긴 자그마한 흠집정도는 그저 세월의 훈장인 셈 치며 너그럽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속적인 열정을 유지하려면 대머리 박부장의 괜한 생트집 정도야 안들려 안보여 하며 시크하게 넘어가는 법부터 깨쳐야 하는 것이고 단골 가게의 반찬에 나온 한올쯤의 머리카락은 에이 아주머니~ 혹은 조용히 휴지에 감싸 구석으로 밀어놓는 정도도 괜찮다는 것이다. 즐거운 피서를 즐기고 싶으면 물보다 많은 인파야 적당히 부대낄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애인이 예쁘고 곱게 입고 다니길 원한다면 좀 짧다 생각이 드는 미니스커트에도 요쏘쎅시 하며 쿨하게 넘어가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어떤 것들에 대한 애정이 빠르게 반감되는 원인 중 하나는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굳이 보고싶어하는 사람의 속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애정을 품는다면, 그것들에서 스스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시선 조절을 할것인가에 따라 그 애정의 유통기한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슬프게도, 어떤것들은 거기에서 죽어도 눈을 돌리고 싶다 해도 반드시 보아야 하거나, 보게 되거나 하는 것들이 있겠지마는 말이다.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후엔 달달한 까페모카를 마실테야요  (10) 2011.08.04
사람이 고파요, 사람이  (6) 2011.07.12
연애, 그 둘만의 역사  (4) 2011.05.31
독한 세상이다, 참.  (0) 2011.05.25
나는 블로거다(...)  (10) 2011.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