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에 관하여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바쁜 인간인지라 마음처럼 여행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볼 참이면 또 그 시간들을 할애해야 하는 관계들이 있는지라 더더욱 힘들다. 소시적의 모든 일들에 대해서 뭐, 그땐 그것으로 좋았지 하며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유일하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것은 충분히 시간이 많이 남을적에 충분히 많이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앞으로 살아가며 점점 더, 그렇게 마음 내키는대로 여행을 다니기가 수월치는 않을 것이란게 너무 뻔히 내다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럿이 가는 여행이건 혼자 가는 여행이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고 맛이 있다고 하겠지만 굳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망설이다가 혼자 다니는 여행이 더 좋다고 답변할 것이다. 물론 친구들 여럿이 모여 여전히 함께 있을때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하며(이제는 좀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란을 피우고 다니는 것도, 연인과 함께 구름위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알큰달큰한 여행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굳이' 따지자면 말이다. 그것은 단지 혼자 떠나는 여행이 누구나 예측 가능한 몇몇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스케쥴을 맞추느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거나, 함께 다니는 이들과의 의견차이로 좀처럼 시원시원하게 움직일 수 없다거나 하는 단점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장점들 외에도, 혼자 가는 여행은 혼자 가는 여행만의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랄까.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른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온전한 자기대면의 시간' 이 혼자 가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할 것이다. 온전한 자기대면이란 것은 우리네,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것이다. 흔히 자기대면이라고 하면 방안에 틀어박혀 명상하고 있는 수행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런것은 자기대면의 어떤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일 뿐이지 그것만이 자기대면의 유일한 방법이거나 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히려 방구석이나 산중에 홀로 틀어박히는 것 보다 홀로 자유롭게 새로운 세상과 만나가면서, 그 경험의 와중에 스스로의 내면과 만나는 것이 더 삶에 유용한 자기대면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혼자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는 이유이기도, 스스로가 그렇게나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해 보면 이렇다. 실제로 혼자 여행을 다니는데 익숙치 않은 사람들의 경우, 우연치 않게 혼자 여행을 가게 되는 경험을 하더라도 뭐 속 편하고 괜찮긴 했는데 - 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아직 그런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하는 데 익숙치 않아서다. 간단히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보다 몇 배는 많은 선택을 직접 내려야 한다. 그 선택의 순간들에, 나는 왜 그런 선택들을 하였는가? 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딘가의 술집이나 식당에서 혼자 밥이나 술을 먹을때 나는 왜 그 장소를 선택하였고 왜 그 음식, 그 술을 선택하였는가? 누군가가 우연히 말을 걸어올때 나는 적당히 대꾸하고 자리를 피했는가 혹은 함께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가? 어떤 이유로 그런 자리를 피하거나 좋아하게 만들었는가? 저기 앉아 있는 저 사람도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 혼자 있는 것일까? 나는 저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은가 혹은 걸고 싶은데 용기가 없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런것이다. 삶이란것이 어차피 선택으로 가득차 있다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것은 그런 순간 순간의 선택들을 압축이라도 한듯 더 타이트하게, 짧은 시간 내에, 오로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도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없을 만한 찰나의 시간에 그 무수한 선택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의 선택들에 '왜?', '무엇을 위해서?' 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볼만한 여유도 충분히 존재한다. 혼자 여행을 떠나서 10시에 잠들고 7시에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처럼 생활하는 사람이 있던가? 무수한 경험과 그 경험들 속에서 스스로의 무수한 선택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때쯤엔 낮동안의 그 무수한것들을 스스로 돌아보고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는 점에서 그 시간들을 어떻게 스스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랄까.

여행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오래된 화두로 이런 것이 있다. 버리려고 떠나는지, 얻으려고 떠나는지 말이다.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나'와 만나고 돌아온 여행길이라면 그 모두를 다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스스로가 진심으로 바라는것이, 향하는 길이, 내리는 선택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알고 나면 앞으로 걸어나가는 걸음은 한결 가볍고, 무언가 가득 채워진 마음으로 신나게 한걸음 한걸음을 다시 옮겨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렇게 권하곤 한다. 떠나라고, 다녀오라고, 멀리 떠나서, 스스로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어느 공간에서, 자신과 실컷 이야기를 나누다 오라고. 그건, 무조건 남는 장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