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하게란 가치에 관하여


만약 당신이 삶에서 부딪치는 어떤 선택의 순간에 그 선택을 위한 여러가지 가치판단의 기준들 중에서 '그것은 얼마나 쉽고 편한 것인가?' 라는 기준을 다른 기준보다 뒤로 미뤄둘 수 있다면 확실하게 당신의 삶은 더 다양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매 순간 그런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들의 수도 종류도 다를 것이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말이다.

이것은 단지 누구나 수행자처럼, 고행하는 것처럼 살아야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얻을 수 있다와 같은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다. 늘상 주변인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누구나 지저스, 석가, 소크라테스처럼 살 이유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산속에 움집을 짓고 목탁을 두드리며 살 필요도 없고,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리며 스스로의 몸을 채찍질할 필요도 없다.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쉽고 편한' 이란 가치를 완전히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보다 '조금만 뒤로' 미룰 수 있다면 좋다는 것이랄까.

실제로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는것은, 그 '쉽고 편한' 이란 가치가 우리네 인생에서의 그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에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사람은 쉽고 편한쪽을 선호하게 되어있는 것 아니던가.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생존을 위한 인간의 활동 이외의 나머지 활동들에는 모조리 저 쉽고 편한이라는 가치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되어있다. 어떤 선택을 할 적에 스스로는 전혀 쉽고 편한 어떤것을 찾으려는 생각같은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뒤돌아보면 그 순간에 그것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되는것.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사람의 생리다.

직업을 선택할때, 사람을 만날때, 공부를 할때, 더 작게는 밥을 먹으러 갈때, 잠을 잘때,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쉽고 편한' 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는가. 한번쯤 스스로의 지난 선택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것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라. 분명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쉽고 편하게'에 의해 결정된 것들이 있을것이다. 그러면 또 생각해보라. 과연 그 순간에, 조금 불편하거나 어렵더라도 - 를 선택했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모든 가정은 가정일 뿐이겠지만, 다른 결과들, 어쩌면 더 나을수도 있는 결과물들을 분명히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다른 선택들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다른 가치들이, 당신에게 더 나은 가치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쉽고 편한이란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는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우선 쉽고 편한에는 절대만족이란것이 없다. 한번 쉽고 편한 것을 위한 선택을 하는것은 바로 다음의, 더 쉽고 더 편한것에 대한 욕구를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더 쉽고 더 편한것, 그보다 더 쉽고 더 편한것... 과장된 예일지도 모르겠지만 몇해전 나왔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에서 그려졌던 미래를 보라. 자리에 앉아서 모든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덕분에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게 되는. 그게 꼭 과장이라거나 비약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더 중요한 문제는 쉽고 편하게가 가치판단의 우선순위에 오를 경우에 우리는 참 '다양한' 가치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애초에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움직일 적이면 그만큼의 거리를 걷는 동안 만나게 되는 무수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들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일 수도 없고 길냥이의 조심스런 움직임따윈 애초에 의식할 수 조차 없어진다. 과연 그것들은 우리가 그렇게 손쉽게 포기해도 좋을 만한 가치들인가?

한가지 스스로 겪은 이야기를 더 해보자. 언젠가 한번 긴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갈 때였다. 한 커플이 비슷한 곳에서 지하철에 타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손을 잡고 다정하게 자리에 앉은 후에, 각자 노트북과 PMP(로 보이는 것을) 꺼내더니 각자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이어폰까지 낀채로 각자의 세계에 몰입하던 두 사람은 한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 다시 자리를 일어나 열린 문을 향해 손을 잡고 걸어갔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론 참 낯선 광경이었다. 사랑스러운 연인이 아니던가. 물론 그 최신 IT 기기속에도 각자가 즐길 수 있는 무언가들이 있었겠지만 그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동안 왜 서로의 눈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걸까, 더 다정하게 속삭이고, 함께 있음을 만끽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과연 그 순간에 그들이 서로를 향하지 않은 만큼, 더 나은 가치를 그들은 얻은것일까. 그런 의문이 생겼던 것이랄까.

물론 타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쉽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만큼은 꼭 얘기하고 싶은것이다. 인생이라는 길기도 짧기도 한 한정된 시간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가치를 얻고, 어떤 가치는 내려놓으면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폭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좋고 이것만 최고다 이것만 있으면 장땡이다 하는 생각들은 종종 삶에서 '그것'을 얻었을때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삶을 가볍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긴 이야기의 끝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본다. 만약 지금 당신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건 좋다.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꼭 쉽고 편해야만 좋은것은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해보는건 어떨까. 그것은 분명 당신에게 지금껏 당신이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가치들로 눈을 돌리게 해줄 것이다. 인생은 길다. 쉽고 편하게가 어쩔 수 없이 최우선 가치로 작용되게 되는 날들도 언젠간 올것이다. 그때까지 조금 뒤로 미뤄둔들, 인생이 뭐 그리 유별나게 어렵고 불편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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