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관하여


인연은 사람이 반, 하늘이 반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한때는 그렇게나 사람에 목숨을 걸고 살다가 이제 적당히 사람을 놓기도, 잡기도 하며 적어도 스스로를 해칠만큼 무리한 인연에 대한 욕심은 내지 않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다. 정확히는 그렇게 기를 쓰고 이어가고 싶었던 인연을 끝내 놓치고 나서, 그 허망함과 괴로움의 끝에서 겨우겨우 얻어낸 소중한 깨달음이 있고 나서다. 이 이야기를 스면서도 참으로 헛헛해서 다시 웃는다. 삶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진흙탕 속을 뒹굴어도 바닥을 긁어보면 얻을 진주알갱이 하나정도는 있는것이고, 한없이 어두운 길을 걸어도 멀리 반짝이는 불빛 하나정도는 있는법이다.

어찌되었건 이제는 어떤 인연의 잇고 끊어짐 앞에서도 조금은 스스로 마음을 편케 하는 길을 깨쳤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진작 저런 마음가짐으로 흘러간 인연들을 대했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인연으로 남게 되었을 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럴 적이면 또 아쉬움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되는것이 사실이지만 지나간 일이야 어쩌겠는가. 그저 내가 그 흘러간 인연들을 떠올리며 생각하는것은 단 하나를 위함이다. 그때는 참으로 하늘이 나를 많이 도왔는가, 하늘의 반을 넘치게도 채워주었는가를 돌아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과연 사람의 반을 충분히 해왔는가, 내가 반 이상으로 대했던 이들은 누구고 반의 반절도 못했던 이들은 누구고 어째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가, 그런 점들을 곰곰히 돌아보며 뉘우치기도, 지금 내 곁에 머무르는 인연들에게는 어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기도 하려는 것이랄까.

살아가며 얻는 깨달음이 모두 그러한것처럼, 어떤 하나의 깨달음이 절대적인, 어떠한 순간이라도 조금도 틀림없이 들어맞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인연에 대한 그런 깨달음도 마찬가지리라. 그렇게 조금은 사람들을 놓을 수 있겠다 하여 이제는 되었다 하며 지내던 어떤 날에 갑자기 그런 불안함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늘이 반 사람이 반, 나는 그리하여 또 하늘의 반에 너무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 깨달음이란것이 사실은 스스로의 어쩔 수 없는 체념을 온순히 받아들이기 위한 거짓 깨달음은 아닐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연인과 이별하여 눈물흘리는 지인들에게 우리가 가장 자주 건네는 위로의 말이 어떤것이던가.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네가 부족함은 없었으되, 하늘이 그 반을 제대로 돕지 아니했나보다 하는 말로 그저 순간의 다독임을 전하고자 하지 않던가.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참으로 그것이, 균형을 잡기 힘든 말이더라. 내가 잘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내가 못해도 하늘이 그 이상 해주면 어찌 저찌 잘 풀려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내가 굳이 지금 이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겠나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될 수도,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반에 반도 아니하여놓고는 스스로 난 이만하면 반은 하였으니 되었다 할 수도 있는 법 아니던가.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기본적인 생각이야 저리 한다 하더라도 마음먹음의 자세가 중요하더라.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선후를 따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랄까.

간단히 말해 이렇다. 어떤 사람을 대할적에, 어떤 인연을 대할적에 하늘이 반이라는걸 먼저 생각하고 뜬금없이 정화수 떠놓고 기도부터 드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이야 어찌 되건 말건간에, 나는 항상 나의 몫을 다하고 있는가, 이 인연을 지켜나가기 위한 사람의 반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혹은 반 이상을 하고 있는가, 끝내 모진놈의 하늘이 그 인연을 허락치 않아 놓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눈물 머금고 등을 돌리면서도 스스로 나는 나의 몫을 다했노라고, 그러니 그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만큼 공을 들였는지, 가슴이라도 떳떳이 펴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만큼의 노력은 하였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몫을 다 한 다음에야 나머지를 하늘에 맡기건, 기적을 바라건 하는것이지 스스로 할 몫을 다 하지도 않은채 감나무 아래서 입벌리고 있는 것 같은 어리석은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랄까.

만약 어떤 인연을 떠나보내려 하는, 혹은 붙들려 하는 이들이라면 항상 먼저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과연, 얼마나 마음을 다하였는지. 만약 아직 더 할 수 있다면, 더 남겨진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뻔한 속담이지만 사실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 있지 않던가.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스스로 마음을 다하였다면, 그 공들인 인연을 어찌 하늘이 나몰라라 하겠는가. 물론 모든 순간에 그런 기대들이 기대했던대로 이루어지진 않더라도 최소한 마음에 후회 한점이나마 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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