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에 관하여

죄의식이란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불행하게도 그래서 우리는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 사람이라고 우기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제법 흔하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건 우선 논외로 치자. 수치심을 느끼는 것, 잘못을 저지르고 잘못했음을 깨닫고 죄의식을 가지는 것, 이것은 얼핏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너무나 당연하다고 해서 그 중요함이 조금도 희석되지 않는, '사람다움'의 기본 척도라고나 할까.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잘못 하나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것이고, 떠올려보면 부끄럽고 민망한 기억에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괜히 마음이 묵직해져버리는 죄의식 같은 것들을 크고 작고를 떠나서 하나도 가지지 않은 이들은 없을것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느끼는 그런 죄의식들을 어떻게 스스로의 삶에 반영할것인가, 어떻게 그것들을 관리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죄의식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와는 전혀 별개의, 삶을 더 바른 방향으로 끌고가기 위한 영양 만점의 고민이라는 것, 바로 그 부분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요점부터 말하자면, 항상 제일 어려운 것이지만 제일 진리에 가까운 것,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게 - 가 가장 바람직한 죄의식의 관리방안이랄까.

이를테면 죄의식이란것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버거운 일이다. 술에 취해 노상방뇨를 한 기억이라던지 하는 사소한 잘못들에 대한 죄의식이야 그냥 너털웃음 몇번으로 털어낼 수 있을만한 것이지만 스스로가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스스로의 커다란 과오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족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같은것을 떠올려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일수록 더 그런 부분에서 지나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용서라는 것에 목말라있고, 쉴 새 없이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 역시 일부는 그런 죄의식들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가 바로 종교라는 산물이고, 현대사회에서 거짓 선각자들이 신을 팔아가며 너무도 뻔한 거짓을 일삼음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교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기에 길게 얘기하진 않지만 특정 종교의 어떤 교리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편케 하는가. 절대자께서 나의 잘못을 용서하셨다! 나는 용서받았다! 그분께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한낱 미물에 불과한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비난하느냐! 와 같은,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을 우리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굉장히 편하게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편한 용서'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삐뚤어진 욕망 가운데서도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규모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큰 것이랄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의 잘못도 아닌데 이것도 내 잘못, 저것도 내 잘못, 난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하는, 죄의식에 금새라도 질식해버릴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이나 걱정스럽고 너무나 쉽고 편하게 용서를 구하려하고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이들을 볼적이면 무척이나 한심스럽다. 죄의식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죄인처럼 살아가는것도, 마땅히 자신의 것이어야 할 죄의식을 건성으로 한 반성 몇번에 집어던진채 희희낙락하는것도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길이 아니란 이야기다. 물론 그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잠깐씩 균형을 잃어버릴 적이면 순식간에 삶이 괴로움만 가득해지거나, 절대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지 못하게 되거나 한다는 것이랄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어찌되었건 살아내어야 하는 존재로써의 우리가, 스스로의 내면에 깃든 죄의식을 대할적에 가장 바람직한 마음가짐은 이런 것이 될것이다. 다만 비슷한 과오들을 반복하지 않기를, 내가 세상에 늘여놓은 상처보다,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기쁨과 희망들이 더 큰 것이 되기를.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여미고 나가는 것이 그 죄의식이란 녀석을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표지판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란 이야기다. 적어도 그 편이, 마비된 죄의식으로 인해 타인에게 위협이 되거나, 신을 사칭하여 나는 신에게 용서받았네 마네 하며 신을 모욕하는 것 보다 백번은 더 '인간다운'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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