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酒道) 에 관하여

술이란 녀석을 처음 알게 된 후 대략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나름 애주가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지나온 세월들을 돌이켜보면 술로 인해 골치를 썩은 일이 하나 둘이 아니라서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곤 한다. 놀림감 50년어치는 적립해두었다고 진담 반 농담 반을 하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여전히 밤이 늦어지면 그 시절 그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상황들을 이야기하곤 할 적에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것이 스스로임을 돌아보면 놀림감 50년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실수하고 뉘우치고 스스로를 더 윽박질러도 보고 케세라 세라 하며 보내기도 해보고 했던 경험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이제는 거의 술자리에서 실수하는 일이 드물어졌고, 아 그간 내가 술이란 녀석을 잘못 대했었구나 하는 일련의 깨우침도 있어서 이쯤해서 이렇게 기록해두는 바다. 어쩌면 그것은 이제 세상을 떠날 날까지 얼마나 더 술잔을 기울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후로 이어질 술자리들에서 내가 가장 우선시 하는 주도(酒道)가 될것이니 혹여 스스로 술을 좋아라 하신다 하는 분들이라면 나의 주도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돌아보는 것도 가을 냄새가 물씬 나서 절로 흥이 일어나는 계절에 한번쯤 해봄직한 생각일 것이다.

흔히 주도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술자리에서의 어떤 예의와 같은 것들이다. 특히나 어른들과의 딱딱한 술자리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말이다. 술잔을 기울여 받는거라던가, 두 손으로 받는다거나, 고개를 돌려 마신다거나 하는. 하지만 그런거야 적당히 사회생활들을 하다보면 절로 알게되는 것이고 대충 남들 하는걸 보고 따라하면 썩 부족하거나 모자랄 이유가 없다. 이 자리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술자리에서건간에 항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어떤 마음가짐, 가장 핵심되는 생각이라고 봐도 좋을것이니 바로 다음과 같다.

술은 스스로 즐겁게 마셔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15년간 술을 마셔보고 내린 결론이다. 괴로운 마음으로, 어거지로 마시게 되는 술은 항상 스스로에게 독으로 남는다. 똑같은 양의 술을 먹었어도 즐겁고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흥에 올라 마신 술과 비탄에 젖어 부어넣듯이 속에 집어넣은 술은 그 뒤끝이 온전히 다르다. 괜스레 분위기에 취해 허겁지겁 사흘 굶은 사람이 밥본듯 집어넣는 술과도 또 다르다. 천천히 한잔 한잔을 기울여가며 알큰하게 올라오는 취기를 여유롭게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괜스레 사람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면서 술잔을 강권하여 타인을 괴롭게 하는 일 없이, 내가 술을 얼마나 마시고 얼마나 즐기고 있는가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 홀로 술에 취해 날뛰다가 술자리를 망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만 스스로 얼마나 그 술잔들을, 그 술자리의 모든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여유를 가지고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랄까.

물론 항상 즐겁고 흥겨운 술자리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매냥 똑같은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그때 그때 다른 것이 아니던가. 심지어는 혼자서 술을 마실 적에도 같다. 기분이 들뜨고 흥겨우면 그 상태 그대로를 즐기면 되는것이고, 행여 그렇게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묵혀둔 고민이나 비애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면 그 순간이 바로 술을 그만 마셔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애초에 즐길만할 것이 전무한 술자리에 어거지로 끌려가게 되었다면 처음부터 술잔 기울이는 일에 인색해지는 것도 바로 저 '즐겁게 마시기' 라는 도를 위해서다. 친구의 고민상담을 해주는 묵직한 술자리에서 어찌 즐거움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내가 그를 위해 그런 자리를 준비하고, 그 사람과 어떤 정서적 공감을 형성하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답할 것이다. 단순한 희희낙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내일 아침에 오늘의 자리를 돌아보아도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보람찬 시간이었다 할 수 있는, 그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한다는것. 그리 하기 힘들 것 같다면 술을 줄이든 그 자리에 붙어 있는 시간을 줄이든 모종의 조취를 취해야 한다는 것. 풀어 설명하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라는 것이다.

종종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지인들에게 '술을 모르면 인생의 절반을 모르는거야' 라고 농담을 던지곤 할 정도로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기울이게 될 술잔들에 즐거움과 기쁨들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참으로 다시 돌아보아도, 지금껏 겪어온 그 모든 괴로움과 슬픔들은, 그걸 잊어보겠노라고 미련스럽게 부어넣었던 술만큼이나 출렁거리며 스스로를 더욱 어지럽혔던 것이다. 다시는 그리 미련스럽게 몸과 마음을 함께 괴롭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의 그 모든 술잔들에도 항상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그리하여 참으로 스스로의 도를 잘만 찾아내면 인생에 그만큼 흥을 더해주는 것도 없는 술이란 녀석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길, 그렇게 빌어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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