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에 관하여

가끔 떠올리곤 하는, 지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적에 종종 꺼내는 이야기다. 언젠가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바에서 한 청년을 만난적이 있다. 나보다 다섯살인가 어렸더랬나. 우연찮게 이야기를 섞게 되었는데 사람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긍정적일 수 있는가, 밝을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밝은 사람인게다. 무엇이든지 잘 될거라는 생각,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멋진 연애와 멋진 사랑에 대한 기대감,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이상, 그 모든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그에게 무척이나 흥미가 생겨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그 끝을 모를 밝음과 긍정성의 근원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달까.

그리고 새벽녘쯤까지 이어진 이야기에서 그의 가정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이야기들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그의 부모님 이야기였다. 아버지께선 저학력 노동자였고 어머니께선 전업주부셨기에 평생을 부지런히 일하셨지만 3남매를 키우면서 집은 항상 가난한 상태였다고. 건강이 안좋아서 이제는 학교 수위 일을 하시면서 계시는데 자신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부모님께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힘들게 살림을 꾸리면서도 항상 어머니께선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노력하고 있음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시곤 하셨고, 아버지께선 어머니께 큰 소리 한번 안내시고 자식들 다 키워낸 지금은 두분이서 얼마나 금슬이 좋으신지 모르겠다고. 그 얘길 듣고는 그저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그렇구나, 그런 가정에서 자라났으니 저렇게 밝을 수 밖에 없지. 당연한거지, 암, 그런거지. 하며 그저 웃으며 술잔을 건네는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 대충 3년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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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읽을적이면, 요즘 아이들은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아이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시대가 시대고 사회가 사회인데 어느정도야 당연히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를 책하거나 할만큼 오지랖이 넓거나 훈장병에 걸린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씁쓸하지만 굉장히 현명한 판단이기도 하다. 또 내 주변의 누군가들이 그런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나 역시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줄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이야기 하나를 읽고는 반론을 달고 싶어졌더랬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가난해도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로망같은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거다. 뭐 그런 얘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던것. 아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실현해내는 게 로망인데, 현실적으로 로망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무어냐고. 현실적으로 쉬운, 당연한 것들이면 그게 로망의 영역에 속할리가 없잖나. 그건 그냥 현실 그 자체지. 하하.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그렇다. 나는 썩 부유하게 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처자식 밥 굶길만큼 무능하게 살기도 싫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함께 할 사람이라면, 당신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좋아요 - 라는, 그렇게 함께 로망을 펼쳐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야기. 현실적으로 밋밋하게 살아가기보다야, 바보같아도 마음껏 꿈을 꾸며 사는 편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