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6 - (사랑해서 떠난다는 그 말)


몇 해 전의 일이었나. 이글루에서 어느 날 어떤 글 하나를 올렸다가 올라가자마자 비공개로 남겨지는 몇몇개의 항의 덧글에 아 생각이 짧았구나 뉘우치며 글을 내렸던 적이 있었더랬다. 사실 지금처럼 조용하게 혼자 깨작대고 있는 이 공간에서라면 그럴 일도 없겠지마는 당시야 어쨌든 뭐 하나 쓰기만 하면 그게 이래저래 스스로 예상치도 못했던 반응들을 이끌어내고 덕분에 당황하게 되고 하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랬던것이 너덧번은 있었더랬나. 근데 사실, 워낙 반성은 아낌없이 잘 하는 인간인지라 그때마다 그냥 맘 불편하다 하시는 분들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뭐 별 글이라고 하며 글 내리고도 적당히 툭툭 털어내기도 하곤 했는데, 유난히 그중에 위에 이야기했던 그 한번은 그게 꽤나 억울하고 답답해서 마음을 꽤나 괴롭게 하였더랬다. 그리고 그런 답답함들이 쌓인것도 내가 그곳을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하였더랬고.

그 글의 내용이 뭣이었냐 하면 그런 거였다. 간단히만 요약해보자. 사랑해서 떠난다는 그 말, 그거 말은 이쁘게 곱게 멋지게 간지나게 들린다 해도 따져 보면 변명 아니냐. 아니 그리고 정말 그래, 사랑해서 떠난다고 간지나게 등 돌렸으면 어찌되었거나 등 돌린 주제에 집착하고 매달리고 사람 헷갈리게 들었다 놨다 하는건 예의가 아닌거 아니냐. 결과적으로 내 힘으로 그 사람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서 등 떠밀어 밀어보낸거면, 그거 꼬리 내린 개꼴인거 아니냐. 꼬리 말고 도망친 개는 짖지 않는게 예의 아니냐. 뭐 그런 내용. 그게 얼마전에 모종의 이유로 이글루의 내 글들을 다시 정주행 할 일이 생겨서 우연찮게 다시 읽어보았는데 그 당시로써는 사실 꽤나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날이 시퍼렇게 서있고 냉소가 만연한 글이었던지라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 읽었을적엔 울컥 하고 화가 날만도 했었더랬다. 꼬리 내린 개라는 표현을 보면 알법 하지 않은가. 헌데 그게 그렇게, 오래 억울함으로 남았던 이유는.

그게 얼마나, 서글픈 자조였는데.

뭐 그러니까 그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정말로 악용하는 어떤 놈팽이에 대한 사연을 듣고 나 또한 울컥해서 쓴 것이었는데 글을 쓰면서는 한없이 스스로 자조적인 심정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날이 서고 냉소적인 글이 나오게 되었더란 얘기다. 결국 그 글에서의 꼬리 말고 도망친 개자식(;;)은 바로 다른 누구를 가리키는게 아닌 '나' 였던것. 그렇게 스스로 무한 자조에 허우적대고 있는데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난리를 치지요 아무튼 그래서 꽤나 억울했었다는 그런 얘기다. 그래서 그냥, 이제는 뭐 지난 일이니까 다시 한번은 얘기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 쓰는 글이다. 꼬리 말고 도망친 개 특집... 은 아니고 다만,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누군가들로 인해 오래오래 가슴 시려하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또 사랑해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안쓰러운 누군가들에게 조금의 위로나마 전해보고자 하는. 그런.

사랑, 그 망할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

근데 사실, 여전히 네놈이 반성을 못했구나 해도 할 말은 없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되게 막 뭐가 있어보이고, 막 가슴아프고 애절하고 절절하고 그런 사연들에만 얽혀서 주로 등장하는 대사니까 막 그런건데 현실을 보면 물론 정말로,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혹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피치 못할 어떤 이유들로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외려 저 있어보이는 멘트를 악용하는 경우도 엄청 많더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거 되게 흔하잖은가. 막 사랑해 좋아해 너 없인 살 수 없어 생 난리를 치다가 어느날 뜬금없이 으엌엌 아냐 난 물벼룩만도 못한 인간이야 널 사랑할 자격이 없어 널 위해 떠나줄끄어야 으엌엌엌 하며 일방적으로 이별 선언하더니 금새 딴 놈년 끼고 나타나는 것도 부족해서 가뜩이나 속이 말이 아닌데 어느날은 술처먹고 전화하더니 사실 여전히 널 사랑하고 있는데 있는데 있는데 이지랄. 이게 무슨 말이야 망아지야. 날 사랑하면 나랑 있으라는데 왜 설렁탕을 사와도 쳐먹질 못하니... 아 아무튼 이런 상황. 그런 상황에서 뻔질나게 악용되는 멘트가 저런 멘트 아닌가. 이게 다 짐이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해. 사람 막 혼돈의 카오스로 집어쳐넣는 그런.

아마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때야 또 한참 연애상담 받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어딘가에서 저런 비슷한 상황에 대한 상담을 받고 처음에 울컥 했던 것 같은데 정말 뭐 저런 상황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단 하나다. 언젠가 친한 처자가 저런 비슷한 멘트로 사람 헷갈리게 하는 놈팽이한테 걸려서 괴로워할적에 굉장히 직설적으로 날려줬던 기억도 있는데 이런 말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 하나 행복하게 해 줄 자신도 없는 모지리를 뭘 믿고 만날라고 그르냐. 아서라. 지금 당장 자신이 없더라도 나만 믿으라고 가슴 탕탕 두들겨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어금니 꽉 깨물고 살믄 되는거 아니냐. 근데 자신이 없어 헤어지자고 할정도면 언제라도 그정도 부하가 걸리면 같은 얘기 나온다. 뭐 대충 이런 얘기였던듯. 그리고 사실 정말로 상대를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거나 하는 상황과 말만 그럴싸하게 개폼잡는 그런 상황은 딱 대충 주변사람이 보면 견적이 나오는 법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 말부터 꺼내는건데, 뭐 이 혼자 깨작대는 글들을 별로 읽는 사람도 없겠지만 행여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 하면,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막 뭔가 비련의 주인공, 드라마속 슬픈 사랑의 주인공이 된 것도 같고, 막 안된다고 하니까 괜히 더 애틋하고, 더 매달리고 싶고, 막 다신 안볼것같이 그러다가 술만 쳐먹음 다시 연락오고 그러는것도 얼마나 저도 마음이 안좋으면 그렇겠니 으엌엌 하다보면 더 냉정함을 찾을수가 없고 그런거다. 그런 상황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정말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를 주의깊게 바라봐야 한다. 진심은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히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더 나은 어떤 행복을 얻길 바라고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되길 바라며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괴롭고 힘들어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미워도 그저 혼자 묵묵히 그런 마음들을 삭여내는 경우가 더 많다. 정말로.

그리고 정말, 나쁜 마음으로 드라마를 조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야 이놈들아 삼대가 재수가 없어라.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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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더 시원하게 지르지 못해서 답답했던 이야기는 했으니, 이제는 조금, 정말로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먼저,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부터.

모든 사람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으니, 아마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 해도 그때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생각을, 당신의 결정을 모두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의 결정에 대한 몰이해로 더 괴롭고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결정으로 인해 당신은 오해를 받거나,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으로 남겨질런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생각하면 할 수록 괴롭고 또 괴로운 일이겠지요. 백번도 넘게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로 인해 여전히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이 사랑했던 그 누군가들이 당신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만한 그런 빛나는 존재들이었다면, 삶의 어떤 순간에서는 당신의 그 진심을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지금 당장 그 모든것들로 인해 괴롭고 힘들지라도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릅니다. 삶도, 사랑도 그렇게 계속해서 흐를 거랍니다. 너무 스스로를 많이 다치게 하지 않길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았던 기억은 평생에 걸쳐 알게 모르게 엄청난 자산으로 남게 마련입니다. 아마 당신이 사랑한 그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남겨지겠지요. 좋지 못한 상상으로 스스로를 더 괴롭히지 않기를. 인연이란 건 묘한 것이지 않습니까. 괴로워할 시간에 스스로의 삶에 더 집중한다면, 어쩌면 운이 좋아 또 기막힌 타이밍에 그때는 조금 더 자신있는 모습으로 상대를 마주하게 될 수도, 적어도 다시 또 사랑하기에 떠나야만 한다는 개같은 상황이 생길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의 누군가를 향한 뜨거운 진심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전해질거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조금쯤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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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들에게.

만약... 당신이 사랑하기에 그 사람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무조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길 권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고스란히 다. 그리고 주의깊게 당신의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그와 그녀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무언지,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가지고 있는 꿈은 어떤것이고, 서로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들이 있는지. 무조건입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내리는 것은 사랑에 있어서는 피해야 할 첫번째입니다. 우리는 혼자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잠도 자고 심지어 자위도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하는게 아니잖아요.

또 만약, 당신이 가진 어떤것들이 상대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작아보여서 쉴 틈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언젠가 찾아올 지 모르는 이별들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롭히는 것보다는 이렇게 가슴 쫙 펴고 외쳐보는 겁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란 사람의 손을 잡고 당신이 걷고 있는 것 자체가 당신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당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는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아요. 당신이 하루하루 어떻게 바뀌어갈지는 당신의 노력여하에 달려있지만, 아마도 당신이 그런 각오들을 다진다면 적어도 오늘의 당신보다는 내일의 당신이 나을 테니까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적어도 정말로 사랑하기에 선택한 이별이,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좋은 선택으로 남기 위해서는, 성급한 결정은 죽어도 금물이랍니다. 물론,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 우유부단해도 괜찮다는 말과 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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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묵은 이야기들을 좀 밀어내고 나니 스스로도 좀 개운해졌나. 이것으로 부산에서의 철수 전날 띄워보는 오늘의 사랑 이야기는 마무리.

뭐라 해도, 나 또한 믿고 있다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들은, 그것이 아무리 멀리 돌고 돌고 돌더라도, 반드시 그 마음이 닿아야 할 자리에 닿게 되어있다고. 어느날의 꼬리 말고 도망친 똥강아지 한마리라 하더라도, 꼬리를 내려야만 했던 마음만큼은, 언젠가는 전해질 거라고. 사랑, 그러니까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