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4 - (사랑의 성패를 가를 수 있나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듯한, 아니 알려야 할 듯한 빗방울이 조심스레 떨어진다. 창밖은 뿌-옇게 흐려있는데 사무실 유리창에 하나 둘씩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어쩐지 애처롭다. 어쩐지 누군가의 눈가에 매달렸던 눈물방울같은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야기를 이어본다. 

사랑, 아아 그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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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성공이란게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하면 어떤것이 그 사랑의 성공을 증거해주는 것일까? 간단한 예로 결혼. 결혼이란것이 어떤 사랑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가름해주는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아이를 갖는것이 더 분명하고 명확한 어떤 성패의 기준점인가?

대충 이렇게 명확한 질문을 던져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도리도리할 것이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나요 -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떤 순간 순간들에 어쩐지 막연하기만한 어떤 기준으로 인해 스스로의 사랑이 [실패]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달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고민에 빠진다. 사랑이 저물어간다는 기분에 사로잡힐때, 원치 않는 이별을 당했을때, 스스로 꿈꾸던 사랑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과의 갭이 어마무지하게 큰 것처럼 다가올때, 사람들은 그렇게 괴로워하며 외친다. 아 또 실패인가. 사랑따위 이제 정말 넌덜머리난다. 사랑에 실패하였으니 인생에서라도 성공해보자. 뭐 이런식의 몇해만 지나면 사실은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모르는 어떤 문구들을 어딘가의 노트에 끄적여가며 눈물로 밤을 지샌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공이나 실패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단어다. 그걸 알면서도 말이다. 

안그래요, 너만 그래요 - 라고 하면 뭐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아 그런가요 근데 난 그렇더라고 하겠지. 분명히 나는 지난 시간 속에서 그러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살아온 인생의 1/4정도를 연인이란 이름으로 함께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것은 슬픔과 미련, 혹은 외로움, 그런 것들보다 바로 저 [실패]라는 생각으로 인한 좌절감이었다(그렇다고 다른 것들이 힘들게 하지 않았다는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사랑에 실패했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사랑만은 자신 있었는데.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이지만 처음의 그 마음들 변치 않고 이어가는 것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들 말이다. 물론 그것이 [실패]로 생각될만한 외적인 어떤 불운들이 있다고는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어 하며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기억이다. 왜 그랬을까? 

시간이 꽤나 흐르고 나서 저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을때 내가 찾아낸 해답은 그렇다. 그게 소시적부터 쓸데없이 사랑이란놈은 뭘까란 어이없는 질문들을 대롱대롱 달고 살아가던 인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 역시 [나의 사랑]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내 사랑은 이런 모습이겠지, 나는 이렇게 사랑해야지 -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굉장히 뿌리깊게 가지고 있었기에 내 사랑이 그런 모습이 아니게 되었을때 그것이 [실패]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너무 큰 기대, 스스로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 그리고 지나친 환상. 그것들이 나를 실패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무언가에게 패배한듯한. 전혀 무언가를 이기고 무언가에게 지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랑이라는 녀석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패잔병의 기분에까지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참말, 돌아보면 놀라우리만치의 미숙한 생각 덕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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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이쯤에서 남 탓을 한번 해보자. 어린 시절의 바이블과 같은 동화책들에는 누구나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거다. 왕자와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는 사랑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하기사 왕자와 공주님은 3남 1녀를 낳고 살았지만 왕자님의 바람으로 공주님이 이혼소송을 내어 거액의 위자료를 물게된 왕자님은 그지꼴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매듭을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떤 굉장히 상징적인 결과물을 딱 내놓고, 그 이후에 대해서까진 얘기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게지. 어디 동화만 그런가. 위기를 극복한 남녀 주인공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나는 영화는 좀 많아. 뭐 어찌되었거나 그러저러요러한 이유로 인해 꼭 결혼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사랑의 성패에 대한 어떤 보편 타당한 선입견들을 가지게 된다는 얘기다. 요러저러해서 요러저러한 모습이 똭 나오면 사랑을 이룬거고, 성공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거다. 요런 더듬어보면 참 괴상한 이분법적 생각을 하게 되는게지. 

요약하자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는 뭔가 보편 타당한 어떤 [골]이 있는것이 아니라는것. [행복한 가정]이란건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서 얻고 싶은 중요한 가치로 꼽고 있지만 그 가치를 얻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성공하고 실패하고 하는게 아니란 얘기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되는거고. 왜냐고? 어떤 분명한 [골]을 가지고 거기에 도달하는 순간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것이 사랑이라면 그렇게나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외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이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니까. 물론, 그런 정도로 사랑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사람들 역시 있고 그들의 관점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 사랑? 종족유지본능으로 진화한 생물체의 유통기한있는 호르몬작용에 대해서 말하는가? 라고. 음, 어, 뭐, 그럼 무슨 할얘기가 있겠냐. 끽해야 우성인자를 보유한 후세를 남기소서 하고 덕담이나 하고 말겠지. 

아니 그리고 뭐, 따져보면 또 그렇다. 사랑을 누가 우아아앙 내일 오후 3:45분부터 사랑에 빠져주겠다? 이러면서 하나. 어느날 우연히 - 빠져들게된 사랑에 무슨 실천과제라는게 따라붙어있어서 사랑이 끝나면 아프고 괴로운것도 서러운데 달갑지않은 [실패]라는 딱지까지 붙이게 된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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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되는대로 떠들어댄 이 글은 행여라도 과거의 나와 같은, 으엌엌엌 난 사랑의 실패자다 나같은건 죽어야해 하고 있을법한 이들이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에. 

언젠가 과거의 블로그에 사랑을 [이룬다]라는 말에 대해 비슷한 맥락으로 얘기한적이 있다. 이뤄진 사랑은 뭐고 이뤄지지 않은 사랑은 뭐냐고. 사랑해서 연애하고, 연애하다가 결혼하고 이래야 그게 이뤄지는 사랑이고 나머진 그게 아닌거냐고. 사랑에 빠진 대상과 명명백백한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그게 이뤄지는거냐고. 그렇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런 말들로 그렇지 못한 사랑들에 달갑지 않은 무언가들을 달아주는 표현들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랑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이런저런 모습들로 변화해가고, 사람마다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어나가고 하는가가 다 다른데 뭔가 완결시키는 것처럼 아 내가 사랑을 이뤘다! 이러는 것도 우스운거다. 그런데, 굳이, 에이 그래도 그런거 없으면 좀 뭐랄까, 너무 극적이지도 않고 너무 뭐 노력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없고, 좀 너무 밋밋하고 뭐가 빠진것 같고. 그 좀 그렇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뭐랄까요. 60억의 인구중에 어떤 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그 사람을 위해 내 어떤 부분들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고,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바빠지고, 내 곁의 가장 가까운곳에 그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고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순간, 그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순간, 그 순간 자체가 오히려 가장 극적인 사랑의 [성공]이 아닐까요. 사랑의 [완결]이란 것 보다는 사랑의 [시작]이라는 그 순간이. 물론, 세상의 모든일이 그렇지만 무언가의 성공 그 이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오히려 성공보다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퀫퀫퀫퀫 - 이라고 말해주며 이야기를 마치겠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는 밤인데 달큰-한 사랑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