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2 - (60억의 사람, 60억의 사랑)


사랑, 아아 그래. 사랑

첫 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놓고 몇일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한숨이 나오는 메일을 읽고, 산더미같은 일거리들에 기가 질려오는 와중에 다시 메모장을 연건 어쩌면 현실 도피... 는 아니고 다만 찬바람 덕분이다. 분명 정확히 지난 주 금요일 퇴근할때까지만 하더라도 해가 저문 시점에서조차 후끈한 열기가 마치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한 여름같은 기분이었는데 주말을 보내고 나니 아침에 집을 나설때 소름이 돋는 찬바람이 불어닥친다. 이런 날이면 길고양이라 할지라도 서로 몸을 부대끼며 나른한 온기에 젖어들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던가. 뭐, 잠깐의 현실도피정도야 어떠랴. 어차피 일이야 끝도 없는것을.

지난 글에 이어 보자면 그렇게,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사랑을 뭐허러 하냐 - 라는 게 기본 전제로 깔려버린 인간이기에 소시적엔 참 오지랍도 많이 부렸더랬다. 물론 덕분에 적잖이 낭패도 보았더랬다. 스스로와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냐 여부에 따라, 심한 경우엔 좀 죽쑤고 있는 친구를 보고 니놈이 계속 그리 꼴같잖게 구는걸 보느니 차라리 네놈과 의절을 하리라 하며 길길이 날뛰기도 했었더랬다. 하하. 참 어렸더랬지. 과거의 그 좁디 좁디 좁았던 시절들은 우선 그저 부끄러움으로 남겨둔채 현재를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런 말,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싫다. 타인의 사랑에 대해 '그건 사랑이 아냐' 혹은 '그건 집착일 뿐이야' 와 같은 말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 이들 말이다. 설령 그것이 그 사람이 대상에게 갖는 애정에 기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건 사랑이 밥맥여주냐 하는 비아냥보다 더 나쁘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그것은 그래도 살아온 인생의 절반정도를 그 사랑이란 녀석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며 살았다는 스스로가, 생의 어떤 순간에서 나의 사랑이건 타인의 사랑이건 누군가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무언가를 접했을 적마다 매번 새삼스레 깨달았던것이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보편 타당한 사랑의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 정말로 억지에 억지를 부리고 쥐어짜고 뜯어보고 하면 어쩌면 60억 인류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것조차도 그것이 어떤 사랑의 확고한 정의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매 순간 이 사실을 실감할적마다 조금 기운이 빠진다. 결국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품어왔던 그 근원적 의문에 대한 어떤 명쾌한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는걸 매번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내가 생을 마칠때까지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 라는것을 대충 예상하고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더 허탈한 노릇인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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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다. 아니 그럼 스스로 답이 없다는걸 알면서 그걸 왜 남한테 물어보고 지랄이슈(...) 라고. 오해 말라. 정확히 내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것은 '60억 인구에게 보편 타당한 사랑이란 놈의 정의'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어쩌면 시간낭비지. 하지만 '당신이 가진 사랑이라는 것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장담하건데 꽤나 유익한 일이다. 떠돌이 약장수의 심정으로 조금 더 과대광고를 해보자면 아마 당신이 어느 시점에 당신의 어떤 사랑에 대해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건 이런것이구나 라는 진지한 고찰들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남은 생동안 꽤 능동적으로 사랑하고 사랑이란 녀석으로 인해 상처입고 다치게되는 일을 꽤 많이 줄일 수 있다. 물론 100%는 무리지. 오 형제여. 세상에 100%로 단언할 수 있는것들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간단히 말해 사람들이 가지는 다면성 만큼이나 그 개개인이 하는 사랑이라는 것에도 개인차야 있겠지만 어마무지하게 다른 면들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가장 스스로가 하는 사랑속에서 반복되게 등장하는 어떤 '메인화면'이 있다는 얘기다. 윈도우 XP 메인화면마냥. 그리고 그걸 발견해내는 작업이란건 많은 경우에 꽤나 유의미하고, 즐겁기도 하고, 여러모로 삶에 유익한 일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스스로의 사랑이란 녀석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단면들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가 넓어진다면 그건 더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 다양한 단면들 중에서 어떤 것이 '이것이 나 개똥이의 사랑이다'라고 당당히 누군가들에게 주장할 수 있게 그것들을 선택하고 밀어붙이게 될 수도 있다. 꽤나 근사한 일이 아닌가.

약장수같은 과대광고는 이쯤 해두고 여기서 한번 짖궂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이 지난 과거에 어떤 괴로운 사랑을 하고 치떨리는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치자. 또, 그런 사랑을 하고 난 이후에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 이런 말을 중얼거린 적이 있다고 치자. '돌아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으 사랑은 그러치 아나아아아아아아' 같은 말들을. 그렇다면 물어보자.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니었나? 정말 진심으로, 양심에 발을 얹고? 또 당신은 그것들에 대해 사랑 대신에 다른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을것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외로움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었지' 뭐 그런, 썩 긍정적으로 와닿지만은 않는 이름들 말이다. 정말 그랬나? 당신의 사랑은 무언가 킹왕짱 근사하고 달콤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환타스틱 어메이징 뷰티풀한 어떤것이고 그것은 단지 축축하고 끈적한 집착같은것일 뿐이었나? 정말로? 진짜진짜?

당신이 만약 '진짜로! 찍고! 진짜진짜진짜로!' 라고 대답한다면 내가 해줄 얘기는 없다. 아 그러셨구나 - 하는 수 밖에. 비꼬는 뜻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음... 사실 생각해보면, 좀 지나고 났을땐 아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애써 그걸 부정하려고 해봤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그 시절의 내 사랑이었던거죠 뭘' 이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런 이야기들을 이어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지금 사랑이라고 믿는것이, 당신의 사랑이 가지고 있는 어떤 단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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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말은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면 꽤나 위험하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지만 사람 뼈와 살을 분리할 기세의 공포를 심어주며 스토킹을 하는 놈들이 제일 먼저 대는 핑계가 이거 아니냐. '난 단지 사랑했을 뿐인데에! 왜 나에게 이런이리이이이이이' 항상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참 그렇다. 좋고, 멋지고, 예쁘고, 근사하고, 유용한 것으로 둘 수 있는 어떤것들을 꼭 이상한쪽으로 활용해서 오물을 뒤집어씌우지. 사람론을 얘기하려는건 아니니 일단 넘어가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상황 자체에서도 얼마든지 어? 하는 기분은 들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세미 스토킹을 들어보자. 왜 다들 그런거 하잖냐. 헤어진 연인 싸이, 블로그, 뭐 그런거 찾아내서 들여다보고 흐엌엌엌 하거나 메일 아이디 패스워드 한번 알아보고 너무나 우연찮게지만 사실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이 로그인 해서 메일 뒤져보고. 애정남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미 스토킹과 스토킹의 범주를 정확히 구분할수도 없을 뿐더러, 어떤건 사랑이고 어떤건 집착인지 구별할 방법도 없는거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애절한 심정에서 하는 소심한 미련이고 니가 하는건 범죄여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 적당한 이중잣대야 정신건강에 좋다지만 그렇다고 너무 뻔한 이중잣대를 타인에게 함부로 휘두르는건 사람이 할짓이 아닌게 아닌가. 결국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다보면 한가지는 확실한거다. 세상의 어떤것도 스스로 사랑이라 믿지 않으면 그게 사랑이 되는게 아이다. 뭐 헤어지고 나서 사랑인걸 알았네 어쩌네 해도 그건 어느 순간엔 그걸 믿게 되고 인정하게 된 거고.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란건 결국 스스로 무엇을 사랑이라 믿느냐에 달려있으니 아닌갑다 하면 쉴새없이 부정하라 그런 얘기가 아니다. 반대다. 그러니까, 당신이 과거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것들이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의 어떤 단면이라고 보고 진지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당신이 하는 사랑의 어떤 면은 집착의 형태를 띌 수도 있고, 헌신의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고, 연민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은 외로움과의 적극적 투쟁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면은 몰입, 어떤 면은 유희의 성격을 띌 것이다. 물론 시간에 따라, 마치 다면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제자리에서 돌고 돌듯 다른 면이 가장 앞으로 나와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몰입으로 시작했다 집착이 주가 되기도 하고 유희로 시작했다가 연민으로 변해갈 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스스로가 이런저런 사랑의 미로속을 헤메이고 있을적에 가장 두드러지게, 자주 등장하는 어떤것들이 있을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어떤 조건에 의해 그것들이 발동하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쯤에 당신에게 누군가 묻는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 있을것이다. '내 사랑은 이것이에요'라고. 물론, 그 역시도 남은 생동안 어떻게 변해갈지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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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로 하고 오늘의 약팔이는 여기까지 - 라고 하고 물러가려는데 문득 어디선가, 누군가 물어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뭔가 잘난척 실컷 떠들어놨는데 그럼 당신의 사랑은 뭐요? 라고. 떠돌이 약장수는 이렇게 대답할것이다. '내 사랑은, 내가 믿는, 나의 주된, 내가 앞으로 주욱 가져가고 싶은 사랑의 모습은 [공존]이외다' 라고. 그리고 흥얼거리며 약가방을 챙겨 떠나는거다. 낄낄. 어쩐지 진짜 가방 챙겨 어디론가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네.

함께 머무르고 싶었고, 함께 머무르고 싶다. 생의 끝까지라도. 그게 아무리 무리한 바램일지라도. 찬바람 부는 날이다. 모두 온기가 함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