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3 - (꼰대의 딜레마)


가끔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만약 언젠가 결혼이란 것을 하고, 요행히 그럭저럭 어여쁜 딸네미 하나를 얻어 그럭저럭 키워내고, 어느새 그 아이가 말만한 처자가 되어 햐 어느새 이만치 자랐구나 하는 시점에 그 아이가 아빠 제가 사랑하는 남자에요 - 라고 하며 왠 놈팽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상상 말이다. 그런거 다 한번쯤 해보는거 아닌가? 나만 그런가?(웃음) 그것도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성향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아이의 팔짱을 끼고 등장한 사내녀석이 징 박힌 가죽자켓에 스킨헤드에 혀찌 귀찌를 뚫은 띠동갑 무직(...) 사내일때라거나 하는것. 물론, 언제나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금새 쓸데없는 생각이 종료되는 효과는 있다. 아 제길.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겠어. 

물론, 아마도 그런 상황을 내가 겪을 가능성이란건 극히 희박한 확률일 거다. 또, 직접 그 상황이 되어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내가 만에 하나라도 정작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미리 넘겨짚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철이 덜 들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마음,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솔직히 양심에 발을 얹고 지금 네 선택을 응원해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너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라고. 하지만 만약에라도 네가 어느 순간에 스스로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땐 괜한 자존심이나 오기들로 그 그릇된 선택이 네 삶을 망치게 두지 말고 언제라도 다른 선택을 하라고. 그리고 어떤 사랑을 하게 되건간에 그 안에서 네 삶을 더 나은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노력하라고. 캬 말은 잘한다. 정작 그 상황이 되면 몽둥이를 휘두다가 신문 1면에 날지도 모르겠다만. 

그것은 물론 네 삶은 네것, 내 삶은 내것이라는 어떤 기본적인 마인드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게 그렇게 싸늘하고 이기적인 이유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학습효과고, 지금껏 경험을 통해 도출한 어떤 결론들이 꽤 스스로 한순간에 풀어내기 힘든 어떤 딜레마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것은 방치와 존중의 미묘한 경계다.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어떤, 내 관점에서 보면 좋지 못한 선택을 할때 그것을 그래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존중할때, 이게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얼마든지 방치일 수도 있는거다. 심지어 그 선택을 한 그 사람마저도 후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거다. '왜 그때 안말렸냐' 이런 멘트에 담겨있는 거 말이다. 이건 물론 비단 사랑이라는 것을 떠나서도 충분히 골때리는 고민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엔 이런저런 연애에 관련된 것들이 가장 그런것을 많이 고민하게 했던 순간이니 이렇게 써 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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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트윗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 같은데 그건 바로 '꼰대의 딜레마'다. 이쯤해서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리라 믿고 절대 답이 안나오는 문제 하나를 또 이 재미없는 글을 읽고 계실 어떤 분들께 던져본다. 아, 그 전에 우선 기본적인 생각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러니 대략 청소년기 이후의 삶에서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이라는 것은 결국 고통, 슬픔, 괴로움 등의 어떤 '고난'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행복한, 기쁜, 즐거운 어떤것들이 아예 도움이 안된다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성장의 측면만을 바라보자면 그런 고난과 극복의 과정만큼 정신적인 성장에 현격히 기여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아끼는 어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적에, 물론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것이 굉장히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 적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첫번째 의문은 내가 그 사람을 어디까지 고통에서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과연 그렇게, 그 사람을 예상되는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에서 보호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삶에 정말로 '기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사랑에 대한 예를 들자면.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본인 말고 다른 사람은 모두 인정하는 천하에 개늠/뇬이랑 사랑에 빠졌다 그말이다. 사실 불행히도 빠져버리고 나선 견적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빠질랑말랑 하고 있다고 치자. 막 내가 길길이 날뛰면서,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나를 밟고 만나라 하며 길길이 날뛰어서 결국 그 선택을 취소하게 만들었다고 치자 말이다. 생각만해도 진이 다 빠지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 상황에서 바로 우리에게 남겨지는건 너때문에 내 인생을 구했네 땡쓰얼랏이 아니라 바로 저 답 안나오는 두가지 의문이다. 이노무 새키가 다음번에 또 어디서 이상한 놈년한테 꼬여 흔들흔들하면 어쩌지. 대체 언제까지 내가 그걸 막아줄 수 있을것인가. 아무리 내가 옳지 못한 사랑이 니 인생에 끼치는 48325가지의 해악에 대해 스티브 잡스 PT 하듯 네게 떠들어줘도 결국 니 스스로 겪어보기 전까진 어마 이게 그런것이었구나 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또 앞으로 언제 그런 일이 터질지 모르지. 그럴때마다 이래야 한다고? 이게 딸자식이면 내가 평생 지고 살 각오로 그러기라도 하지. 그렇지 않다면?

누구나 과잉보호가 애들을 망치는건 알지만 과잉보호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장 애가 불에 타거나 물에 빠지거나 할 것 같으면 당연히 보호해야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사랑이나 연애같은것에 대해서는 애매 - 하다 그얘기다. 애정남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이게 내가 어느날 사로잡힌 딜레마고, 내가 점점 타인들에게 어떤 충고 혹은 오지랖을 부리지 못하게 되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그런것. 내 삶도 녹록치 않고 이미 짊어지고 가는 것들도 많은데, 아무리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그렇게 내가 적극적인 보호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고 그게 오히려 그 사람의 삶에는 마이너스가 되는게 아닐까란 걱정마저 된다는 거다. 사실 또 따져보면 그렇잖나. 좋지 못한, 실패, 괴로움과 고통, 그런것들은 그래도 청소년기만 지나고 나면 빨리 겪어두는게 좋은거다. 그게 나이 먹고서 어마 뜨거라 하는것 보다야 백배 낫지. 그땐 일단 뭐든지 싱싱해서 회복도 빠르잖나. 

라고 해봐도, 언제나 그런 상황이 닥치면 비겁한 어른이 되어가는건가... 란 씁쓸함이 먼저 일어나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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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그런저런 연유로, 내가 타인의 사랑에, 연애에 간섭하게 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건 내가 그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모자라서,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끔은 그런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저 사랑을 졸업하면, 저 사람은 또 많이 성장하겠구나 라는. 스스로 인지하건, 인지하지 못하건간에. 하지만 분명히, 지금 그렇게 괴롭고 괴롭고 괴롭고 괴로운 사랑의 미로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딱 하나 이 얘기만큼은 해주고 싶다. 역시 이것도, 사랑을 떠나서도 어떤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지금 그렇게나 괴로운 순간들도 어느 날이면 과거가 되겠지만, 어쩌면 왜 그렇게 괴롭고 힘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아픔들이 가라앉을 시기가 되면 반드시 그것들을 복기해보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괴로움을 겪었고, 그 괴로움들을 겪을 적에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해 왔으며 그 괴로움들을 불러온 근원이 된 것은 본인의 어떤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괴롭고 아플적에 그걸 떠올리며 또 스스로를 괴롭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무슨 M도 아니고. 다만 그 모든것들이 흘러지나갈 무렵, 진지하게 그것들과 대면해 보기를. 사람이란게 그렇다. 똑같은 Input 이 있다고 똑같은 Output 이 나오질 않아요. 어떤 Input 을 어떤 Output 으로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다른거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삶들을 어떻게 꾸려나가는가 - 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거고. 

언젠가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마지막으로 남기며 줄여본다. 그렇게나 더럽게 아팠는데, 남긴거 하나 없으면 그만치 억울한일이 또 있겠냐말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억울한 일인게지. 그런게지. 

꼬리 : 어쩐지 월요병에 시달릴때만 글을 이어가는 듯한 느낌은... 기분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