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8 - (열정과 사랑의 지속)


파주의 겨울은, 제법 차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딛었던건 6년전의 일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다 보면 그때보다는 이런저런 상점들도 많이 들어섰고, 못보던 공장들도 몇 군데 더 생겨났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무언가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에지간한 공장지대가 그렇듯 여기도 여전히 풍경은 '황량하다'라는 말이 아직은 근사하게 어울린다. 구내식당의 짠밥에 지쳐 가끔 나가서 점심이라도 먹으려고 차를 타고 조금만 나서면 펼쳐지는 논과 밭, 늦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별빛들이 또 따져보면 서울에서 그렇게 거리가 먼 것만은 아님에도 뭔가 굉장히 먼 시골동네에 와서 있는 듯한 느낌을 더해주는 것이다. 

한참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기대와 설렘의 술잔을 부딪쳐야 하는 연말 연시에 그것도 빵꾸난 사이트 오픈 지원을 온 데다가 셔틀버스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있고 그걸 놓치면 출근시간이 두시간을 육박해버리는 통에 이래저래 최근 많이 궁시렁대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파주는 그런 달갑지못한 상황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썩 반가워하기만 할 수 있는 동네는 아니다. 그건 바로 이곳에 처음 발을 딛었던 2006년의 가을에, 어느 노래가사처럼 겁이 날만큼 미쳤었던 사랑의 기억이 그대로 머물러있기 때문인게다. 언제나 뜨거운것은 그렇다. 두고 두고 그 열기를 떠올리면 후끈후끈 달아오르다가도, 이제는 멀어진 열기다 하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던가. 한 겨울 차가운 방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자면 그렇게나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더 힘이 든 것 처럼. 그래서 야근 중에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뭉클 떠올라오는 기억들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이렇게 또 자판을 도닥인다. 

그렇게나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던 것 같던 그 사랑. 그 열정과, 사랑의 지속에 대한 이야기. 

*

겪어본 사람은 알거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파주라는 이 동네에 와서 그 뜨겁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는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과 여기 파주에 왔던 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을적에 이 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은 그 기억만으로 가득한 장소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괴로운 마음에 보드카와 데킬라를 하룻밤에 혼자 모조리 마시고 다음날 출근해 좀비가 되어 구석에 짱박혀 찌질대던 공장 옥상,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가 뭐라건간에 일은 해야지 - 라고 하며 매달리던 워킹 머신이 앞뒤 안가리고 눈치고 나발이고 다 팽개치고 매일같이 미친듯이 칼퇴근해서 달려갔던 경의선 철도역이며 열차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길가에서 항상 하늘거리고 있던 들꽃들이며 등등.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이 들때까지 전신의 신경이 다 그 사람만을 향해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함께 있을때는 단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 심장이 터져나갈듯 뛰어대서 스스로의 귓가에 북을 치는듯한 심장소리가 들려와 그 소리가 상대에게 전해질까 두렵기까지 한 그런 기분. 모든 판단과 모든 행동의 기준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상대의 감정선을 따라 똑같이 감정선이 일렁이고, 작은 말,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심한 감정의 소모를 경험하고, 끝없는 애착으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에 시달리고,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달콤함과 사지가 뜯겨나가는듯한 괴로움이 순간순간 교차하는. 무슨 약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만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심까지 되는 한계점까지의 감정의 고공비행. 그런 상태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 모든것이 과거가 된 어느 날에는, 다시 하라 그러면 도저히 못하겠네 -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 

어찌되었거나 나야 뭐 살아가며 한번쯤은 그런 것도 경험해 보는게 인생이 더 재미있어지는것 아니겠냐 - 는 입장이고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그 행복감만큼 느껴지는 괴로움을 호소할때 그저 '즐겨요 그 기분. 낄낄낄' 이라고, 어깨에 힘 빼고 그저 즐겨보라고 말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당사자에게 있어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건 분명히 안다. 힘이 빠져야 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게 마음대로 되나. 겨우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차분히 뭔가 생각이라도 좀 해보려 한다 해도 언제 그랬냐는듯 또 정말 아주 사소한 일 하나만으로 꿀렁꿀렁 밀어닥치는 감정의 파도가 머리를 가득 메우는데 그게 쉽겠냐말이다. 그러니 뭐, 즐겨요 그 기분 - 이라고 할 수 밖에. 스스로는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그렇게 해야 하는걸 모르겠나. 그게 안되니까 못하는 거지. 근데 굳이 옆에서 잔소리해봤자 그게 먹히겠냐 - 그런 생각이랄까. 

하지만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적어도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이렇다. 그런 어떤 극단적인 도취상태 - 는 말 그대로 사랑의 어떤 일면이고, 강도의 차이야 있어도 사랑하고, 사랑해서 연애하고, 뭐 그런 관계의 시작단계에서는 대부분 빠지지 않고, 선물처럼 다가오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게 사랑의 '지속'에는 그렇게 썩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거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것의 최대 딜레마는 밥을 먹여줄 수가 없다는거다. 사랑한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그런거다. 근데 이게 그런 고양감속에서는 마치 밥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고(정확히 말하면 밥이고 뭐고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고), 덕분에 이래저래 현실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써의 '생활'에는 어떤 삐걱대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거다. 그럼 뭐 어떻게 해야되. 일단 삶에 무리수가 생기면 그래도 좀 머리속에서 열기가 빠지게 마련이지. 근데 그게, 운 없게도 정말 많은 경우에 그러한데. 

타이밍이 달라. 그렇게나 함께 날아올랐던 두 사람인데, 한명은 연료가 바닥이라 비상 착륙이라도 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한명은 무슨 대기권을 뚫을 기세야. 이러면 이거 심각한 상황이 오는게다. 그러다보면 뭐 그런 얘기 나오게 마련이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흐엉엉엉. 아니 그게 사랑이 변했다기보다, 사랑도 쉼표가 필요하다, 충전이 필요하다 뭐 그런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건데 그게 또 쉽나. 아직 머리에서 열기가 덜 빠져나간 사람 입장에선 막 두렵고 공포스럽기만 한거지. 그러다보면 또 서로 무리수 반복. 그리고 정말 그런 부분들이 어떻게 조율되거나 수습되지 않으면, 정말 운 없는 경우라면 그저 그렇게, 사랑했지만 서로 등을 돌려야 하고 그런 상황도 오게 되는거지. 

*

이게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 그런가.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막 뽜이아 하고 있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 아무래도 좀 걱정이 앞선다. 아니 뭐 에지간히 좋고 샤방샤방하고 그런건 여전히 그냥 보면 좋고. 으헣허헣 청춘이로세 하며 멋진 비행 되길 - 이라고 빌어주고 마는건데 이게 좀 뭐랄까, 어 어 어, 그... 음... 어... 캄 다운 캄 다운 - 하며 이마에 얼음주머니라도 얹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보이면 그게 좀 걱정된다는 거다. 무슨 관제탑의 심정으로 레드 얼럿이라도 날려주고 싶은 기분. 고도 제한입니다 고도 제한입니다(웃음). 지금 파트너는 추락 직전이에요! 고도를 낮춰요! 착륙 준비하세요! 이런 거. 나중에 애 낳아서 첫 연애할때는 진짜 관제탑처럼 저러고 있을 수도 있어(푸풉;) 

정리하자면 이런거다. 사랑? 좋지. 좋은거지.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맺는 '관계'는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거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사랑만큼 쉬운게 어디 있냐. 당신이 좋고 좋고 좋고 좋아서 좋아 죽겠네요 - 이게 뭐 어려워. 근데 너와 내가 어떤 관계로 그런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며 얼마나 오래 서로 원하는 간격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공존할 수 있는가는 좀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서로의 삶, 서로의 인생, 서로가 맺고 있는 다른 관계들, 서로의 미래,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고민을 해야 하는데 뇌세포가 다 탔어?!?!? 이런 상황이면 좀 낭패다 이거지. 사랑에 빠졌다? 감정은 즐기되, 관계의 형성과 지속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는 것. 이게 요지란 거다. 

뭐 고대 벽화에도 요즘 것들은(...)이라는 낙서가 되어있다고 우스개소릴 하지만 모르겠다. 요즘 젊은 아가들을 보면 많이 영리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는 좀 많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한 부분이 있으니 오히려 그렇게 인생은 봐닝 럽!!!!!!!! 을 외치며 활활 불타오르기만 하는 경우가 더 드물어졌을지도. 그래도 청춘엔 불태웠어 새하얗게를 외쳐보는것도 좋은건데(웃음). 나이들어 타면 정말 재가 되요. 재생이 안될 수도 있어?!?! 어찌되었거나 지금 타고 있는 사람은 조금 열기를 가라앉히고 서로 수신호를 날리면서 어디쯤 날고 있는지를 잘 확인해가는 안정적 비행 하시길 바라고, 또 너무 소심하게 지상 3미터 이상 날면 추락할때 사지가 분쇄되지 않을까 하시는 분들은 좀 시원스럽게 날아보시길 바라고, 아직 활주로에 대기하고 계신 분들은 올해 반드시 함께 멋진 비행을 할 짝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사랑타령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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