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랑


누군가, 내게
그것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짧은 망각의 축복을 누리고자
텅빈 속에, 술을 부어넣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쯤에나란 몸부림으로 삶을 허비하지도
흉몽으로 괴로웠던 아침들도 없었을 것이다
긁어내도 자꾸 자라는 암세포 덩어리마냥
매일같이 깊어지는 기억의 각인에
전력을 다해 저항하다 탈진해버리는
지리한 전쟁 또한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일찌감치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려 마음먹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래는 기억의 알갱이 하나 하나까지
소중히 그러모아 가슴에 품으려고 하였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게
그것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2010.10.09 - 옛 사랑 -

누구나 잊고 싶은 괴로운 기억 하나쯤은 있다. 하지만 망각이란 신의 선물은, 말 그대로 선물같이 어느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라 손벌리고 보챈다고 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옛 사랑에 좋고 행복하기만 한 추억만을 가진 사람은 또 드물 것이다. 어쩐지 쓸쓸한 어느 가을날에, 퍼뜩 떠오른 옛 사랑의 생각에 괜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혹은 미움과 원망으로 뒤범벅이 되어 행복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한 날씨를 즐기지도 못하고 멍하니 흘려버린 하루를 보내보지 않은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어찌되었건 꽤나 나이를 먹어버린 후에야 깨닫게 된것은, 어떠한 기억이건간에 우리는 그것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정말로 어느날 변덕쟁이 신이 선물처럼 내던진 망각의 화살을 맞고 까맣게 잊어버리기 전까지는. 괴로운 기억이건 슬픈 기억이건간에, 언제나 우리는 그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반드시 슬픈 체념만은 아니다. 반드시 기억하고 싶은것들도 시간의 흐름에 거부하지 못하고 잊게 되는 날들도 있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는, 어떤 유형의 기억이건간에 그것들을 그저 기억의 한 조각으로 아끼고 돌보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 잘라내고 베어내려고, 부수고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굉장히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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