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에게


Dear. C

오랫만에 남기는 글이구나. 지난주 통화했듯 나는 부산에 내려와 있다. 확실히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타지생활이 예전만큼 신나고 즐거운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술부림에 이래저래 맞춰주는것도 썩 달갑지만은 않고, 한달짜리 짧은 일이라 일이 아주 없이 널럴한 것도 아닌데다가 역시나 조금 외롭구나. 건강한 고독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언제나 사람은 외로움을 느껴야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연들의 소중함을 상기하기 마련이지 않던. 그래서 부산 내려와서, 친구중 제일 먼저 떠올랐던건 역시 너였다. 그러니 또 굉장히 오랫만에, 취한 밤에 전화를 하였더랬겠지. 2주차가 다 지나가는데 아직 바다 한번 못간건 좀 분통터지는 일이긴 한데, 오늘쯤은 추워도 한번 살랑살랑 가볼까 생각중이다. 안부는 이정도로 하고. 

이래저래 취기가 오른 밤이긴 했는데, 그래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밝게 들려서 다행이었다. 어떨런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에 너를 괴롭혔던 이런저런 번뇌들은 좀 가셨을런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다행스러운 일 아니냐. 어떻게 보아도 겨울은 풀리지 않는 번뇌들을 붙잡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기엔 좋은 계절이 아니다. 밤은 길고, 공기는 싸늘하고, 부쩍 시리고 아픈 계절이지. 그래서, 그런저런 번뇌들이 조금은 가라앉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하며, 지난 번 보았을때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저 못하고 남은 말들을 이곳에 남겨본다. 아마도 언젠가 네가 이 글을 보면, 또 그땐 그러했었나 하며 서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바르게 살고자 한다는 것, 가급적 누구도 상처주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 그 마음이 나쁠리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며 생각하는 그 무수한 모든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생각들에 너무 매어 있으면 그만치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과거의 나란 인간이 얼마나 무수한 강박들에 시달려왔는지는 잘 알겠지만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내가 그것들을 조금씩 놓을 수 있게 된 후 내가 네게 우려했던 것은 항상 그 부분이었다. 나야 과거의 그 시간들 속에서도 그런 강박들에 짓눌리고 짓눌리다가 어느 한순간 펑 하니 터지고 와르르 무너지고 하는, 어떻게 보면 일련의 해소에 해당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네게는 그런 모습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강한 것은 부러질터인데, 저리 강하다 부러지면 또 얼마나 그 꺾인 부분이 아프고 괴로울까. 그래서 매번 잔소리라는건 잘 알고 있지만 적당히 놓고 적당히 풀어주라고 얘기하지 않았더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인지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두고 스스로를 너무 괴롭게 만드는 네 모습을 보며, 좀처럼 스스로를 풀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참 오지랖 넓게 걱정도 많이 하였더랬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번 보았을때 네가 했던 이야기와 네 표정들, 네 모습들은 외려 참 다행스러웠다. 그래도 너도 나이를 먹는구나. 그래도 시간이란게 조금씩 조금씩은 사람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놓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였더랬지. 그래서 조금은 안도하며 편하게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웃으며 넘어가긴 했지만, 그래서 이 말들이 조금 남았다. 어쩌면 이제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세상의 모든 미운 것들을 용서하는 것은 성자의 몫이다. 그것은 타인을 향해서건 스스로를 향해서건 마찬가지다. 타인은 그렇다치고 나같은 경우는, 스스로의 어떤것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제법 많이도 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 한해에 저지른 잘못 역시 아마 실물로 드러난다면 몇 권짜리 너덜너덜한 노트에 기록되어 있을 법한 내 인생의 과오 노트의 새 페이지에 기록되겠지. 그리고 매번 그것들을 들춰볼 적마다 부끄럽고 괴롭고 미울 것이다. 네가 알듯 그런 연유로, 과거의 나는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참 많이 다치게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그렇게 스스로를 해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게는 되지 않는다. 어쩌면 적당한 타협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그보다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에는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것도 있다고. 

타인을 향한 미움을 오랫동안 유지하는건 사실 그 자체로 스스로에게 꽤나 마이너스다. 오히려 그런것들은 빨리 잊고 지우는게 영양가가 있지. 하지만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스스로의 과오나 잘못같은 것들을 대할적에, 나는 어느순간 그것들에 대해 저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잘못들을 스스로 용서하진 않으나, 그것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그것이 또 굉장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데 꽤나 효과적이란 것을. 이해라는 것은 그렇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알고 있는 모든것들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내면의 괴물이라 부르는 나의 어떤 이기심, 욕망과 같은 것들에 직면하는 순간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 자체를 깨닫게 되는, 그리고 나아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출발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는 거다. 아직도 너를 괴롭히고 있는 어떤 무거운 마음들이 있다면, 네 스스로의 부족함에 스스로 절망하거나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쉽게 용서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것이 너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바로 너라는 존재 전체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면 되는거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하면 할 수록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재앙이 되고 어떤 상처가 되는 경우는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물론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무수한 관계들을 맺을것이고, 상처 하나 없이 기쁨만이 존재하는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지만 최소한 스스로도, 상대에게도 오랫동안 아물지 않을 상처 남기는 일들은 피할 수 있을게다. 분명히. 

잘난 듯 떠들어댔지만 네가 잘 알듯 나 역시 멀고도 멀었다. 올해의 나는 완전히 낙제점이다. 바쁘게 지냈지만 실속이 부족했고, 조금 숨 고를 적이 되었을땐 부질없는 감정들에 질질 끌려다녔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들이 어떻게 내게 남겨질지가 달라지겠지. 함께 노력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해가자꾸나. 언젠가는, 언젠가는 살게 되는 방향이 아닌 우리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그런 작은 노력들이 하나 둘 모여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오랫만에 네게 남기는 글이라 쓸데없이 길어졌구나. 삼주 남짓 남은 부산생활이다. 잘 마무리하고 올라갈테니 서울에서 보자꾸나. 그러고보니 네 생일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일은 지나서야 볼 수 있겠지만 미리 생일 축하해둔다. 곧 보자꾸나. 

- 부족한 친구, 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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