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자유에 관하여

감정을 느끼는 것은 본능의 영역이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강제할 권리를, 또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왜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빽빽거려봐야 원하는 사랑을 얻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바퀴벌레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바퀴벌레도 우리 친구지예 하며 백날 떠들어봐야 바퀴벌레에 대한 극적인 호의를 얻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것은 자유 이상의 영역이다. 사회나 조직에서 그 구성원의 감정에 대한 어떤 강제적인 통제를 시도했던 경우, 인류의 역사에서 그러한 경우는 대부분 생각보다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다. 때문에 누구도 누군가의 감정을 스스로의 어떤 목적에 의해 강제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많은 경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대단히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게 마련이고, 그렇기에 어떤, 대단히 보편적 정서에서 벗어나는 감정의 표현들조차 자유의 영역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는 거리에서 대통령 개새끼라고 외칠 자유가 있으며(그것이 어떤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동물애호가를 앞에 두고 보신탕 예찬론을 펼 자유가 있다. 물론, 스스로의 감정이 외부로 표현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무수한 관계와 '사회'의 어떤 도덕률, 관습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감정의 표현이 그 자체만으로 어떤 법적인 제재같은 것을 받는 경우는 사실 반대의 경우에 비해 드문 편이다(물론, 여전히 이 사회는 그런 표현의 자유에 대해 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꽤나 인색하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때,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좋은 세상 아닌가.

하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에겐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귀중한, 침묵의 자유가 있음을.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때때로 천마디의 말보다 더 좋은,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은 이웃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참사 앞에서, 수천의 죽음과 수만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 우상이 이번 기회에 파괴되길 바란다거나, 과거에 잘못을 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는 거라거나, 다 모르겠고 쌤통이네 따위의 이야기를 물론 할.수.도.있.다. 그 자체만으로 당신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욕을 먹을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최소한 당신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고, 당신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개드립'이란 말 한마디로 규정지어져 어느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게 될 것이고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조롱과 개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다만 당신이 키보드 한번 두드릴 시간 정도의 침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당신은 이 모든 것들을 피할 수 있다. 어째서 그 짧은 침묵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욕을 먹기를 자청하는가?

놀랍도록 발전한 기술들은 우리가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표현들이 더 빠르고 널리 공유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 나라 정치인 한명의 개드립이 삽시간에 지구 반대편 국가에서 조롱거리가 되는건 더이상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는 무엇을 말할 자유도, 말하지 않을 자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죽음앞에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누가 당신을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압도적인 슬픔에 몸부림치고 있을 어떤 '사람들' 을 위해 당신은 최소한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척 쉬운, 빠른, 그리고 효과적이 애도다. 부디, 한마디 한마디에 더 신중을 기할 수 있길 바란다. 최소한, 스스로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또 '사람들'과 함께 공존해나가고 싶은 의지가 분명히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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