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에 관하여


안타깝게도,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 -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행동 등을 포함한 모든 것 - 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그렇게, 나 아닌 다른 개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오늘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비극들은 절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나의 사람은 그 자체로 온전히 하나의 우주와도 같다. 어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의 신비를 밝혀낸다는 것과 동급으로 둘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굉장히 자주, 타인들과의 어떤 관계속에서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좀처럼 잘 이해해낼 수 없다. 분명히도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작 스스로가 이해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타인에게 '당신을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접하곤 한다. 그것은 또 누구나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무척이나 달콤한 위로의 말이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이해받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 말은 설령 그 말을 100%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적인 위로가 될 수 있다. 또 많은 경우에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위로다. 몰이해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아쉬우면 니가 날 이해시켜 보시던가'하는 말따위를 내뱉는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허나 그러한 순간에조차 나는 당신이 쉽게 누군가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데 조심스러워 할 수 있기를 권한다. 그 이유는 그런 어설픈, 섣부른 판단들이, 타인을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의 그 판단들이 불러올 수 있는 해악들이 생각보다 더 크기 때문이랄까. 

예를 들어 A와 B가 비슷한 연애를 하고 비슷한 실연을 경험했다. 과연 A는 B가 느끼고 있는 슬픔의 크기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어떤, 굉장히 유사한 상황에 직면한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황의, 그리고 개개인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그 상황을 대처해나가는 방식, 그 경험을 통해 얻는 것들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하지만 종종 우리는 쉽게 어떤 슬픔에 대해 나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으니 나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게다가 놀랍게도 그런 순간에, 어떤 사람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확신'을 갖는 순간에 많은 이들은 굳이 발휘할 필요가 없는 오지랍을 발휘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너를 이해해, 그러니 너는 내 말대로 하면 될거야'와 같은 요상한 논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그것은 이해의 탈을 쓴 폭력이지 이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그런, 이해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에 굉장히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누군가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려든다. 

그리고 그런 식의 어설픈, 반토막도 되지 않는 이해들은 오히려 사람과 사람을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들고 서로를 더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런저런 푸념을 하는 연인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처럼 딱딱한 말투로 훈계를 늘어놓은 남자는 분명히 상대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겠지만 사실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어설픈 이해가 만들어낸 어떤 틀 속에서 상대를 가둬두고 그 틀에 맞춰 상대를 해석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이해란 오히려 무지만 못하다. 아예 모르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려고 노력하게 마련이지만, 내가 그래도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이있게 알아가려고 좀처럼 노력하지 않는다. 터무니없게도 말이다. 

결론은 이런 것이다. 타인이 느끼는 어떤 감정들에 대해 동조하지 말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건간에 어떤 사람이 느끼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오케이, 이해했다고 스스로 단정짓는 것을 피하라는 이야기다. 당신의 그 믿음이 크면 클수록 당신은 그 이해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어떤것들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인하려고 들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진 어떤 생각이나 감정들에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 대상에 대한 스스로의 호감 때문이라면 당신은 오히려 '쉬운 이해'들을 경계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공을 들여가며 하나씩 둘씩 상대의 그 모든것들에 대해 이해하고, 수용하고, 상대의 변화에 발맞춰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것들을 수정하고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란것은 결코 한순간에, 단박에 완전히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당신이 독심술을 쓸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덧붙이자면,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인류 공통의 소망이겠지만 너무 그 이해에 목매달지 않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좀 더 유리할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이해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을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당신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거듭해갈 수록 당신 역시도 누군가들에게 이해받을 가능성들이 열려갈 것이란 얘기다. 세상의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등가교환의 법칙 아래서 동작하고 있다면 이해 역시 그러하다. 언젠간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이해를 얻게 되길 빌며 비오는 화요일에 적는다. 나 또한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누군가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입장에서. 

 

'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념에 관하여  (0) 2013.07.29
소문에 관하여  (2) 2011.10.04
독설가에 관하여  (2) 2011.03.15
침묵의 자유에 관하여  (4) 2011.03.14
거짓의 기술에 관하여  (2) 201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