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가에 관하여

사람들은 '나의 편'인 독설가에게 쉽게 열광하지만 그만치 '남의 편'인 독설가를 쉽게 증오한다. 정확한 수치로 통계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어떤 독설가의 말에 묻어있는 맹독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와 반대편 이들이 그 독설로 인해 입는 상처와 분노, 증오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한다. 그래서 독설가는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사실 사회에서 좀처럼 자리잡기 어렵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설가가 스스로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굉장히 편향된 시선과 더 반대편을 향한 더 극단적인 말을 함으로써 우군의 열광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정치판을 보라. 시정잡배만도 못한 독설을 날리는 이들이 얼마나 그들의 우군에게 확고한 우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또 재미있게도 그것이 독설가가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딜레마가 된다. 사람은 자극에 금새 적응한다는 걸 잊지 말자. 독설가가 자신의 말에서 독을 줄이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우군이었던 이들에게 '심심하다'거나 '말랑말랑 해졌다' 혹은 '사람이 변했네'와 같은 시선들을 받게 될 것이다. 대중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기 위해서는 더 치명적인 맹독을 품은 말들을 할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대단히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독설에 열광하는 것은 극히 찰나의 순간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독설로 인해 열광했던 사람들, 그 열광의 크기가 컸던 사람일수록 그 독설을 누가 했는지조차 기억 못할정도로 빠르게 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건 바로, 그 독설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독설로 인해 상처입은, 그 독설가의 '적'들이란 얘기다. 독을 버리는 순간 그는 우군에게서 잊혀질 것이고, 적들에게만 기억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세상엔 언제라도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독설가가 존재한다. 세상이 얼마나 독한 세상인가.

그렇기에 만약 당신이 어떤 집단에서, 조직에서, 사회에서 독설가로 사람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남들보다 조금 더 경계하고, 조금 더 스스로의 컨셉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사람들의 열광에 들떠 스스로의 말에 독을 바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건 최악의 어리석은 짓이다. 항상, 항상 스스로에게 주지시켜라. 사람들은 당신에게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들 대신에 누군가에게 험한 말을 해줄 누군가에게 열광할 뿐이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우둔하지 않다. 특히 집단 안의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무리를 이루었을때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쉽게 비열해지고, 죄책감을 쉽게 타인에게 전가한다. 당신의 독설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라. 그래야 언제고 나 홀로 벌판에서 바람 맞고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경우는 피할 수 있을 것인즉. 그리고 조금씩, 주위에서 뭐라건간에 스스로의 말에 담긴 독들을 조심스레 거둬들여봐라. 생각보다 독한 말이 아니고서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물론 쉽고 빠르진 않겠지만. 또 한번 품은 독을, 그렇게 쉽게 걷어내기도 어렵겠지만.

허나. 다 필요없고, 난 원래 생겨먹은게 이런 놈이니까 죽을때까지 독설을 퍼부어주마 한다면... 괜찮다. 죽을때까지 독하게 살아라. 어쨌든, 그것도 나름 세상에 기여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스스로의 삶을 희생시키는 길이 될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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