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기술에 관하여


동기부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에게 거짓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거짓말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손해에 대해 그 거짓말이 간파되었을 경우에 일어날 상황, 거짓말이 간파될 위험성까지를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하고 있는 세세소소한 거짓말들 - 예를 들어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교통체증이라던가 - 이 들통나는 이유는 그것이 그만큼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은 많은 경우에 어렵고 불편하다. 친구와 밤새도록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이런저런 사람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중간에 흥을 깨기도 싫어 네 전화를 무시했다고 말한 후 화가 난 여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 보다 일찍 잠이 들어 진동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는 것을 당신은 이미 익숙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당신이 얻었던 이익이 작으면 작을수록, 당신은 곧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거짓말은 들통난다.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거짓말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과 거짓이 들통났을때 당신이 입게 될 손해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주지시켜라. 때로는 조금 부풀려 생각을 하는것도 좋다. 거짓말의 '성공'이 그것이 밝혀지지 않게 하는데 있다면, 성공의 가장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강력한 동기부여다. 비단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스스로에게 충분히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면 이제 말해야 할 거짓을 결정하라. 그리고 그 결정된 거짓에 디테일함을 구성해 보는거다. 야근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로 상가집 누구의 상가집에 몇시까지 누구와 만나 가기로 했으며 상가집에서 만나게될 사람들은 누구누구가 있고 고인의 사인은 무엇인지까지. 거짓의 디테일을 구성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디테일에 포함시키면 안된다는 것이다. 거짓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당신이 경험해본, 당신이 알고 있는, 익숙하게 술술 읊어댈 수 있는 범주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고인의 사인에 대해 교통사고라고 얘기하려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통사고에 관련된 보험, 교통사고 처리 전문 병원, 교통사고로 인해 죽은 사람의 사인... 등등의 지식들은 당신의 거짓말을 더 생동감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평소에 익숙치 않았던, 거짓말을 위해 '공부'한 것들을 거짓의 디테일을 꾸밀적에 사용한다면 정작 거짓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 기억이 안나서 더듬거리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스스로의 기억력을 과신하지 말라. 만약 이 과정에서 그 디테일을 구성하기 위해서 당신이 공부하거나, 미리 알아놔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된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거짓을 찾으라. 이를테면 부모님 생신과 같은 것은 일년에 두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디테일을 구성하기에 아주 편한 거짓이다. 최소한 당신은, 부모님이 뭐라시던데? 라는 질문에는 당신이 너무나 지겹도록 들어온, 랩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법한 일상의 부모님 잔소리를 좔좔 읊어댈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거짓을 말해야 할 지 정해지고, 그 거짓말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게끔 디테일한 수준까지 구성된 후라면 그 거짓말을 하기 전의 준비 단계를 거쳐야 한다. 스스로 준비해 놓은 거짓말의 완벽함에 우쭐해하며 들뜨는건 머저리나 하는 짓이다. 당신은 사기꾼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단 한번의 큼지막한 거짓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내기 위해 자잘한 수백가지의 거짓말들로 스스로의 행동을 꾸며낸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공이 들어간 거짓말일 수록 탄로날 확률이 적다. 오늘 저녁 상가집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면 아침엔 검정 넥타이를 매고 가는게 기본인거다. 평소에 바퀴벌레 기어가는 소리에 잠을 설쳤네 하는 사람이 유난히 그날만 진동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들었다고 말한다면 개가 웃을 일인 거다. 전설의 거짓말장이인 카이저 소제를 보라. 당신은 절룩거리며 걸어야 한다. 오늘 친구와 술약속이 있고 내일 오전에 출근하기 힘들 것으로 보여 내일 오전의 핑계거릴 찾아야 한다면 최소한 오늘 저녁 사람들이 야근을 위해 저녁을 먹으러 갈 적에 요새 속이 아프다 몸이 으슬으슬하다 하는 핑계로 저녁 한끼정도 걸러주는 것도 좋은 일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루를 더 준비해서, 이틀 전쯤 요즘 집에 보일러가 이상하다, 주말에 손좀 봐야겠다 하는 떡밥을 던져놓았다면 누구도 당신이 몸살에 걸려 뻗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명심하라, 거짓말의 승패는 그 준비단계에 얼마나 그 거짓말을 위한 자잘한 복선들을 깔아두었는가에서 이미 갈리는 법이다. 잠시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한번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세 가지 이상의 거짓말에 대해 고민해라. 끊임없이 머리속으로 거짓말을 했을 경우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예상 질문에 대한 QA를 준비하라. 지속적으로 거짓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복선을 깔고, 그 모든것들을 반드시 기억해라.

만약 준비과정까지의 그 기나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미 당신의 거짓말에 충분히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정말로 완벽한 거짓말을 원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마저 속이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정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태어날때부터, 일단 잠들면 옆에 155미리 곡사포탄이 떨어져도 잠이 깨지 않는 사람이다. 당신의 아버지 생신은 비록 두달 전이셨지만 바로 오늘이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스스로까지 속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차선책은 거짓말에 대한 정당화, 자기 합리화다. 많은 경우 대단히 완벽해보였던 거짓말이 들통나는 이유는, 거짓말의 실행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경우에 대한 공포나 긴장감, 그리고 거짓말로 인해 짊어지게 되는 죄책감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나 눈동자 때문이다. 스스로의 거짓말에 대해 거짓말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설득시켜라. 이 거짓말은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이것은 백색이다. 나는 오늘 비록 거짓말을 하고 칼퇴근을 하겠지만, 집에서 충분히 쉬고 난 이후, 내일 처리해낼 수 있는 업무량은 평소의 두배가 될것이다. 이것은 내가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아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을 다툼으로 흘려버릴까 우려했기에 하는 거짓말이다! 강력한 자기합리화는 주저함이나 망설임같은 완벽한 거짓말의 마지막 장애물들을 말끔히 제거해줄 것이다.

성공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다고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은 모니터링이다. 절대, 한순간 그 거짓말이 성공을 거뒀다고 방심하지 마라. 어떤 풋내기들은 거짓말의 성공에 도취해 자랑처럼 그 거짓에 대해 딴에 믿을만 하다고 생각되는 지인들에게 떠들어댔다가 다된 밥에 재를 뿌리고 만다. 하나의 귀라도 줄이는데 애써라. 당신의 거짓말을 듣게 된 귀가 하나라도 적을 수록, 당신의 거짓말이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지켜질 가능성은 그만치 증가할 것이다. 그러려면 그 거짓말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해 항상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또, 상대가 그 거짓말에 완벽히 속았는지,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인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대화를 나눌적이면 그 완벽했던 거짓말에 균열을 만들어낼 만한 소재가 등장하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그런 소재가 나올적이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잊지 마라, 설령 당신이 자신까지 속였다 하더라도,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당신이 죽고 나서도 변함이 없다. 때문에 사실 어떤 거짓말에 대해 '완벽한 성공'이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은 느리지만 얄밉게도 언제고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건 당신의 그 거짓말이 '실패하지 않도록' 관리해나가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아마도 추가로 하게 될 거짓말을 준비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 모든것이 거짓의 기술이다. 끝도 없고, 완벽한 성공도 없지만, 최소한 실패를 면할 수는 있는 거짓의 기술. 어떤가. 글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인다고? 오, 이런. 진실은 대단히 잘나거나, 대단히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거나, 대단히 돈이 많거나, 대단히 아는게 많거나 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간때문이 아닌 거짓에 쉽게 피로해하는 당신과 같은, 가장 보통의 존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은 그거다. 왠만하면 그냥 정직하게 살라. 진실은 짧은 순간 무척 불편하고 무겁지만, 거짓은 기나긴 피로를 끊임없이 누적해가는 것이다. 조금은 아쉽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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