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부러워하기에 관하여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키가 무척 크다. 이게 좀 도를 지나치게 큰 통에 느끼게 되는 물리적 불편함 이외에도 사실 제법 많은 고민거리가 되었더랬다. 아버지께선 굉장히 장난끼가 많으신 분이셨는데, 덕분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그런 농담들을 하시곤 하셨다. 공부를 못해도 키는 커다란놈이 - 운동을 못해도 키는 커다란놈이 - 와 같은. 간단히 말해 남들보다 무언가 못하거나 뒤쳐지는 것에 대해 원치 않게 자라버린 키로 인해 스트레스를 두배로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그렇게나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이유도 사실 그로 인한 영향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면 키와 무관할래야 무관할 수 없는, 농구와 같은 운동이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키는 큰데 별거 없다 - 는 시선을 받는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농구공은 손에 잡지도 않고 자랐더랬다. 물론 고2이후, 한참 슬램덩크며 뭣이며 열풍이 불때 재수 좋게 못해도 잘한다 잘한다 괜찮아 괜찮아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제법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여전히 회사에서 운동같은거라도 한번 할 참이면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가 될 수가 없다. 결국, 단순히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꽤나 커다란 트라우마를 껴안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키가 크다는게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랄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먹고 살기 편한 종족(?)은 무얼까 라고 묻는다면 제법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할거라 믿는다. '예쁜 여자'라고.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남들보다 우월한 외모라는건 생각 이상으로 막강한 권력이다. 남자도 그러할진데 여성은 더더욱 그렇다. 그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근데 그게 또,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더라. 실제로 나 역시 언젠가까지는 야 내세엔 예쁜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 수천명은 울리며, 군림하며 살아야지 낄낄낄 이란 시답잖은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게 어느 순간에 어우 야 싶은 생각이 들더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한참 연애상담을 하고 있었던 시절에, 몇몇의 '예쁜 여자'들로부터 그들의 색다른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너무 들이대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한명에게 들었던 멘트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지들은 한번 찍고 두번 찍고 찍어봐야 열번 찍지만 그게 열명이 되면 백번이 되고 백명이 되면 천번이 되는거 아니냐며. 이게 듣고 보니 정말 뭐라 말할 길이 없는거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아 완전 배부른소리네 난 열번이라도 찍혀봤음 소원이 없겠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되짚어 보라. 당신이 정말 싫어하는 이성 열명이 끈덕지게 당신에게 달라붙으며 찍고 찍고 또 찍는 상황을. 물론 스스로의 외모를 무기삼아 남들 잘 이용해먹고 배부르게 잘 사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게 무슨 곤욕이랴. 그건 뭐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는 것 아니던가. 단지 예쁘게 태어났다는 이유. 정말 단순한, 그 하나의 이유.

이것이 여전히 배부른 소리다 - 라고 들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조금이라도, 그것도 나름 고충일수는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사람의 모든것에는 유/무형의 세금이 따라붙는다. 남들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뭔가 태어날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인한 세금이 반드시 따라붙는다는 얘기다.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에게 부담을 지우게 되는. 그것은 예외없는 삶의 진리다. 그리고 그것을 상기하는 것은, 조금, 아주 조금 타인을 '덜' 부러워할 수 있는 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의 삶에서 빛나는 부분은 쉽게 발견하고, 쉽게 부러워하고, 그로 인해 쉽게 열등감에 사로잡히지만 정작 그 개개인의 고유한 삶들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감과 고달픔에 대해서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는 불만과 스스로 가진것들에 대한 가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러움을 거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러움도 때로는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는 법이다. 허나, 적어도,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의 근사함에만 시선을 뺏겨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가치를 외면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덜 타인을 부러워하며 사는것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의 자유에 관하여  (4) 2011.03.14
거짓의 기술에 관하여  (2) 2011.03.09
두려움에 관하여  (4) 2011.02.22
집단의 비이성에 관하여  (2) 2011.02.14
선물의 로망에 관하여  (6) 2010.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