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관하여

두려움이라고 해서 마냥 떨쳐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그 무수한 감정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말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두려움이란 것이, 공포라는 것이 사람을 위축시키는, 어렵게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그런 위축됨 또한 나름의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경우 또한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불에 대한 두려움을 배우지 못했다면 사람의 손으로 일구어놓은 그 무수한 것들이 벌써 언제쯤 잿더미로 돌아가 버렸을지 모르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가끔 마음속에 두려움이 일어난다 하면, 그것이 대단히 급박한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어떤 순간이 아니라면(예를 들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데 도끼를 든 괴한이 뒤에서 고함을 지르며 따라온다와 같은) 스스로 느끼는 그 두려움이란 것에 대해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그것은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를 명확하게 해줌으로써 두려움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두려움을 더 크게 자극하는 것은 대부분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흐릿하게 안개에 가리워진 듯한, 어둠의 뒤편에 몸을 숨기고 있는듯한, 예를 들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올때는 등골이 쭈뼛해지더라도, 그것이 단순히 밤늦은 길을 걸어 퇴근하는 누군가의 모습이었음을 확인할때만큼은 그런 두려움들이 확연하게 반감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렇게 스스로 느끼고 있는 두려움들과 눈을 맞춰보는 것이 가져다줄 수 있는 잇점은 또 이런 것이 있다. 공포 - 라고 하면 떠오르는, 귀신이나 핵전쟁이나 하는 것보다 가장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바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간에. 사랑하는 연인이 존재하는 사람이면 그가 내 곁을 떠나지는 않을까가 두려울 것이고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라면 부모가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까 두려워할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식이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던 시간에서 삼십분만 넘어가도 왈칵 밀려드는 두려움을 느낄것이고, 1등이란 칭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언제 그 1등이라는 타이틀을 잃게 될지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릴까봐 그렇게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명확히 해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금 더, 지금 그렇게 내게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어떤 것들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흔히 사람들은 막연히 불안해하면서도 그 불안함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갈팡질팡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막연한 불안함만으로 우왕좌왕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얘기지마는.

가끔은 내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을 가정해볼 필요도 있다. 그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의 가치에 대한 가장 정직한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을 단순히 지우거나 잊으려고 애쓰지 말기를. 가끔 그 시커먼 그림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기를. 그렇게 바라며, 우연찮게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날, 가만히 마음을 더듬어보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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