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비이성에 관하여


매우 이성적인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외부로부터의 어떤 공격 앞에서는 쉽게 비이성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이 모여 만든 집단의 특성이다. 때로 그것은 개개인에 대한 공격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인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집단이라는 것은 분노의 가열과 비애감의 부풀림, 어느 방향으로도 홀로 있는 개인보다 훨씬 더 용이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집단 내 어떤 특정인의 분노에 쉽게 동참하고, 어떤 개인이 품고 있는 비애감에 대해 공감함으로써 그것을 더 극적인 비애감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집단 내 개인을 향한 어떤 것이 아닌 집단을 향한 공격에 대해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런 공동체 의식, 집단에 대한 소속감, 그런것들이 긍정적으로 발현이 될 때에야 그 자체가 집단이 가지는 장점이고 강점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집단에 소속된 개개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훨씬 더 클 수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집단의 비이성은 집단의 폐쇄성이 강화될수록 자주 드러나게 되는 경향이 있고, 그렇게 집단의 폐쇄성에 의해 돌출되기 시작한 집단의 비이성으로 인해 어떤 견고해보였던 집단이 와해되거나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집단의 폐쇄성에 대한 진단은 복잡한 진단 절차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도 간단히 들여다볼 수 있는데, 가장 좋은 것은 집단 내부의 소수 의견이 그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특정인의 주도나 특정 사람들의 이익 수호라는 어떤 뚜렷한 목적에 의해서 처음부터 제도와 체계를 갖추고 형성된 집단이 아니라면, 즉 자연스럽게 형성된 어떤 집단이라면(특히나 친목단체와 같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서는 어떤 소수의 의견도 나름의 존중을 받고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집단 내부에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아싸(아웃사이더)의 선이 그어지는 순간부터 소수의 의견은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갭이 커져감에 따라 소수 의견에 대한 배척과 더 나아가 공격성을 띄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그 쯔음이 되면 그러한 집단의 비이성적인 행동은 이미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정없이 비어져나오게 되게 마련이다. 이는 결국 집단 내 어떤 다양한 의견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가 그 집단의 수명을 결정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 아닐까, 외부로부터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그것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 그것은 평소 그 집단이 어떻게 다른 의견들을 다뤄 왔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집단에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가해질때, 그리고 그 공격에 반응하는 주류의 정서가 '분노'일때 집단 내부의 개인들은 쉽게 그 분노에 이끌려간다. 혹은 외면하거나 방관한다. 집단 내에서 특정한 위치나 권력을 차지하는 이들일 수록 어떤 다른 의견을 내거나 주류의 정서와는 다른 반응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게 된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 그런 맹목적 동조나 외면, 방관들은 그 어느 것도 집단의 진화나 집단 내 개개인의 성장에 마이너스가 된다. 어떤 집단이건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라면, 그 집단에 가지고 있는 애정만큼이나 뚜렷한 자신의 의사를 내비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스스로의 집단이 외부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주류가 아닌 목소리들을 어떻게 취급하는 지에 대해 개개인이 항시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의 제안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지금 당장 눈앞에 떨어진 어떤 이슈와 사건에 대해서 즉흥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거시적으로 집단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현명한 개인이 집단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현명한 개인들이 모여 여럿이 될 경우 그것이 집단의 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주 부질없는 기대만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였다고 생각했음에도 그 집단의 폐쇄성의 가속화를 막을 수 없다면, 그리고 그런 집단의 비이성적인 모습이 그대를 향한 공격성까지 띄게 된다면.

아쉽지만 가급적이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그 집단을 이탈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한번 소속되었던 집단을 벗어나는 데 주저하게 되는 것은 그 집단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그 집단 내부에 남아있는 스스로의 네트워크, 인맥, 기타 여러가지의 사유가 있지만, 또 그렇게 집단에서 이탈함으로써 그 자체로 인해 부당한 괴롭힘이나 공격을 당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뜨뜨미지근하게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집단에 소속되어 눈과 귀가 가려진채 스스로의 사고의 폭을 한없이 좁혀가게 되는 것에 비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해당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이 백배는 이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집단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점에 대해 지나친 결벽성을 띄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어찌되었건간에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살게 되고,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간에 어떤 집단에건 소속되기 마련이고, 사람의 모임인 어떤 집단이란 것은 어떤 측면에선 비슷한 문제점들을 끌어안고도 굴러가고 있게 마련이니까. 선택은 그대의 몫이다. 집단의 그 어떤 비이성을 개선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외면하거나 묵인하고 넘어가는 것이 그대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에 대한 판단 말이다. 물론 나는 반대한다는 것 뿐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스스로 더 나은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금 덜 부러워하기에 관하여  (6) 2011.03.07
두려움에 관하여  (4) 2011.02.22
선물의 로망에 관하여  (6) 2010.12.27
기억에 대한 불가항력에 관하여  (4) 2010.12.22
좋은 나라에 관하여  (4) 201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