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농담

이제와, 누군가 내게
무엇으로 살고 싶냐고, 아니
무엇으로 남고 싶냐고 묻는다면
오래된 농담으로 남고 싶다고

아는 놈만 알아먹는 최신 개그 프로
어거지로 쥐어짜는 유행 시트콤 아닌
늘근 친구들 술상 위, 안주거리 떨어질적
이놈아 네놈이 그랬더랬지 하며 올라와
날이 새도록 씹어대는 찰진 안주마냥
이제는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로다가

혹은, 성미 느긋한 친구들이며
잰 걸음으로 뒤를 따라 걷는 이들이
화투장 척척 후려치고, 술잔을 따르며
거 사람 참, 농담처럼 살았더랬지
눈물보단 몇마디 낄낄거림으로
웃으며 안녕 고할 수 있는

낡았으되 결코 남루하지 않은
묵었으되 결코 지리하지 않은
오래 지나, 두고 두고 떠올릴 적 마다
그리움보다 앞선 가벼운 미소로 남는
오래된 농담으로 남고 싶다고

2010.11.24 - 오래된 농담 -

부끄러운 말이지만, 소시적엔 참 사고도 많이 쳤더랬다. 그래도 그 시절의 사고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대단히 피해를 주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다만 스스로를 낮게 여기고 괜한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렸던 시절의 일이어서 그런지 스스로 다치고 울고 깨지고 했던 사고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허나 분명히 친구들에게는 민폐도 많이 주었더랬다. 폭음을 하고 친구들에게 엉겨 붙어서 개민폐를 끼치고는, 다음날 깨었을적엔 속으로는 이미 스스로를 그렇게나 구박하고 있으면서도 친구들 앞에서는 괜한 허세를 부리곤 했었다. 어쨌든 즐겁긴 했잖아? 킬킬킬 하면서 말이다.

그게 그런데 또 우스운 것이, 그렇게나 많이 쳐놨던 과거의 사고들이 이제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에서면 어김없이 찰진 안주감이다. 놀림감을 오십년치는 쌓아두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과장이 아닌게다. 이제는 사회에 다들 치여 사느라 예전처럼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가끔 모여 안부를 나누다가도 술자리가 깊어지곤 하면 어김없이 그 시절의 그 이야기들이 흘러간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얘기마냥 안주감으로 오르게 마련이다. 그럴 적이면 아 또 그얘기야 하며 적당히 민망해하기도, 아니면 여전히 뻔뻔스럽게 어쨌든 즐거웠잖아? 라고 말하며 킬킬대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런 저런 이야기들로 밤이 늦은 시간까지 웃고 떠들게 된다.

이제는 나이를 먹고 그나마 좀 점잖게 살고 있자니 야 네놈이 사고를 안치니까 왠지 심심하다 뭐 한건 해봐라 하는 농도 난 예전에 많이 했으니 이제 네놈들 차례다 하며 받아치는 정도다. 분명한것은, 어찌되었건간에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추억이란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았고, 어설프고 모자르고 마구잡이였고 참 대책 없었지만, 그 혼돈의 시간들조차 이제는 아주 오래된 농담처럼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때로는 종종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시간의 마법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죽을 날이 되어 무엇을 남기게 될까 하고 생각을 하곤 하였더랬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 생각은 같다. 난 그렇게 썩 무겁고 진지하게 세상을 살고,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것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 그저 생의 모든것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누군가들이 나를 떠올릴적에, 막연한 슬픔이나 괴로움, 혹은 뭔가 묵직한 채무감이나 진지한 깨달음, 그리움에 서늘한 가슴, 그런것 보다는 그저 가벼운 미소가 먼저 떠올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말 그대로, 허, 거 사람 참, 재미있게 살았더랬지, 그놈 참 즐겁게 살았더랬지. 그런 기억으로 남겨지고 싶다. 마치 오래된 농담처럼. 수년,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 문득 떠올리더라도 그저 웃음이 먼저 튀어나오는 오래된 농담처럼.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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