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오랫만이지.
무언가를 밀어내려고 블로그 창을 여는 것이 말이다. 마지막 글이 작년 3/31일 이었으니 거의 일년이 다 되었다. 트위터에 스쳐 지나가듯 한마디씩 남겨놓는 것을 제외하곤 어떠한 글도 쓰지 않았으니 새삼 생각하니 놀라울 뿐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할때 블로그에 올릴 컨텐츠를 고민하고, 삘 받으면 하루에도 장문의 글 몇개씩을 주룩주룩 토해내던 지난 날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똑 끊고 살았는지 신기한 마음이 앞선다.
바빴다 - 는건 말이 안되지. 뭔가,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바쁜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뭣때문이라도 항상 바쁨이 따라다니는 인간이니 말이다. 그렇게나 폭풍 블로깅을 하고 있을때 바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보면 역시나 바쁨의 이유보다는 어떤 내면적인 이유를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뭐 그러하다. 좋게 생각하자면 꾸역꾸역 마이너스 에너지가 넘쳐흘러서 혼자 나불대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치 속에 쌓이는 일이 없었다는것이고, 살짝 부정적으로 보자면 유래가 없이 평온이 길었던 시간들 덕분에 잔뜩 나태해져서 생각을 글로 쓰고, 정리하고, 다짐하고, 되돌아보는 일들에 터무니없이 게을렀다는 것일게다. 그리고 살짝 부정적으로 - 라고 말한 만치 그간의 침묵들은 전자쪽으로 8할정도 기울여 볼 수 있는 게지.
오랫만에 쓰는 글이라 길고도 장황하게 늘어놨지만, 요약하자면 이런것. 잘 삽니다, 바빴지만 마음은 정말로 이런 나날들도 있구나 - 싶게 평온함들을 유지하며. 소소한 일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가면서, 일은 위기에'만' 강해야 제맛이지 하던 날직딩에서 조금은 철이 든, 모범까진 아니어도 나름대로는 인정받는 로동자로 클래스 체인지 하면서 보낸 1년 남짓한 시간이었다. 사실은 작년 연말에 연말 정리글을 오랫만에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는데, 그만치 나름의 성과가 있었던 한해였던 덕분이겠지. 더 짧게 요약하자면 만족스러운 1년을 보냈다. 충분히 말이다.
*
근데 또, 결혼한다더니 이승을 등졌는지 블로그는 말도 없이 유령 블로그로 만들어놓고 잠잠하다가 갑자기 주절주절 잡담을 시작하는 이유라면? 뭐겠나. 위에 썼잖수. 뭔가 꼬여 마이너스에너지가 넘실거리는 통에 이걸 어디에라도 밀어내두지 않으면 뭐가 계속 숙변처럼 남을 것 같은 느낌에 어쩌면 그때보다 그 전에, 처음 블로그란 녀석을 알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도 못한 채 모 블로그에 정착했을 그맘때쯤에 블로그를 썼던 딴에 초심(?) 혹은 그때의 필요가 고스란히 살아나서 오랫만에 블로그를 연 것이지. 오히려 아주 오래 쉬어서 잊혀져버린 이제는 내가 여기서 굉장히 퓨어한 우울을 뿜어내건 중2병 놀이를 하건 신경쓰지 않고 주절주절 할 수 있지 않겠냐, 뭐 그런 생각도 문득 들었더랬고.
그래서 사실은 지지난주부터 꾸역꾸역 일어나는 마이너스에너지에 으어어어 이건 어디서건간에 좀 밀어내지 않으면 사고치고야 말겠다 하여 몇번이나 글을 쓰려고 했는데 와, 이거 오랫만에 써보려니까 손가락이 다 오그라들었는지 좀체 뭔 얘기가 안되. 아니 또 그리고 하필 구정 지나서부터는 바빠지기 시작했으니. 근데 그게 우습게도 또 그러던 와중에 지난주쯤엔 결정적으로 스트레스를 안겨줬던 문제가 어설프게나마 봉합이 되기도 했고, 고마우신 지인느님 덕분에 격하게 술마시고 수다떨다가 뭔가 흐물흐물 스트레스가 녹아내리기도 하고. 허 이렇게 또 어울렁더울렁 넘어가는건가 하고 있었는데 그게 뭐랄까, 근 1년을 묵었다가 새삼 뭐라도 좀 주절거리고 싶다고 자극을 한번 받아서인지 이 똥을 누기전엔 변기를 떠날 수 없다는 심정(...무슨 심정이냐)이 되어 결국 왠죙일 주구장창 회의만 하다가 지나가버린 월요일 저녁에 이렇게 꾸역꾸역 밀어내본다 - 라는 얘기. 야 근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이제 겨우 오랫만에 블로그 쓰게 된 이유까지 나왔는데, 언제 다 쓰지? -_-;;;;;
*
이게 정말 순수하게 트라우마 때문인데, 정말로 낙엽만 떨어져도 눈물이 나왔던 꼬꼬마 시절과(그...그정도까진 아니었나) 비교하자면 뭐 거의 멘탈이 휴지쪼가리에서 초합금Z 정도로의 강화는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여전히 약점이라는 부분이다. 난 아버지로부터의 스트레스에 무척이나 취약하다. 그부분만큼은 어째 과거에도 지금에도 전혀 변함이 없는, 초합금Z 로 커버되지 않는 파일더의 유리창같은 기분이 드는 부분이란 말이다. 한방만 제대로 맞으면 바로 멘탈이 빈사상태가 되는, 아킬레스건 중에서도 아킬레스건.
평화로운 구정을 효도하며 잘 보내고 연휴 마지막날에 정말 무방비상태로 아버지한테 얼마만에 당해보는지 모를 멘탈 브레이크 어택을 받고 나니 이건 뭐 오랫만에 당해서 그런지 순식간에 멘탈이 먼지가 되어 대략 2주를 멘붕 상태로 보냈더랬다. 이게 에지간한 일이면야 마음이 대해급으로 넓으신 아내님이랑 술이나 한잔 하고 그랬쪄용 속상했쪄용 토닥토닥좀 받고 잠들면 눈을 뜨고는 새로운 세상 눈누난나 이랬을 터인데 이게 무려 시댁으로써의 - 어쩌구인지라 아내님도 나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덩달아 멘탈에 스크래치가 나시는 통에 아주 부부동반 멘탈유실(;) 상태가 되어 고생을 두배로.
게다가 어쩌면 그렇게 화를 내시는 방법까지 예전에 그렇게나 치를 떨었던 딱 그,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주셔서 이건 멘탈 붕괴가 점점 분노로까지 변해가더라. 그대로 불타올랐으면 아마 더 큰 평지풍파가 일어났지 싶은데 그래도 극적으로 어찌저찌 봉합 후 해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찌뿌드한 앙금이 남은게 느껴지니 정말 오랫만에 겪은 일이라 새삼 과거에 내가 얼마나 저런것들을 싫어했었나까지 떠올라서 씁쓰레한 뒷맛이 가시지가 않는다. 이해를 굳이 하자면야 못할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이해하고 수용하려 하는 것 자체에 아직 스스로 거부반응이 남아있는것.
나이를 먹고,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무형의 유산들이 생각보다 많고, 아버지 자체도 인간적으로 이런저런 충분한 장점들과 매력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삶 그대로 인정하고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주저 없이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어떤 부분들만큼은 여전히, 앞으로도, 죽을때까지도 절대 닮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인간관계에 대한 방식같은 것.
*
부모의 흉허물을 제아무리 뭐 누가 읽어보랴 싶은 공간이지만 굳이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생략하고. 게다가 뭐 하루 이틀 겪는것도 아니고 이미 충분히 당신의 사고방식과 고집대로 지금껏 살아오신 아버지가 내가 아무리 뭐라 해본들 변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가능한 잘 포기하자 - 가 나름의 모토인데 그런것만으로 이렇게나 뭔가 찝찌름한 앙금들이 남았을리는 없다. 나란 인간은 결국, 주위에서 무슨 문제가 일어나건 외부, 타자, 환경 등 그게 아무튼 나의 문제가 아닐 경우에는 나름 굉장히 대응이 빠른 편인데 그게 '나'의 문제를 들춰낼 때에야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곤 하는 인간이어서 말이다. 어쩌겠나, 뭐 빈틈이 많은 인간인지라. 므헣허헣.
분을 가라앉히고 머리에서 열기가 좀 빠지고 돌아보니 여전히 풀리지 않는 찝찝함이란 어쩌면 아버지와 부딪친 그런 부분들이,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어떤 부분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나역시 그런것들을 어느정도 닮아버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가져온 근원적 공포심이 자극받은 덕분인거다. 물론 아버지와 나와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 성향도, 인간관계의 방식도 다르다. 그건 내 성격의 메인 스트림을 차지하는 것들은 대부분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에서. 나는 사람을 좁게 만나고, 오지랍 떠는 일을 무척이나 경계하고,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의 중요 목표중 하나이며 에지간하면 분쟁을 피하고 싶어하고, 누군가에게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데 별로 주저하는 법이 없다(물론 아버지가 이와 완전히 반대이기만 하거나 그래서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계라함은 어떠했었나.
그저그저 소소히 스쳐갔던 이들, 그리고 만난지 스무해가 되었거나 스무해가 머지 않은 친구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내 삶과 어떤 식으로든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내 사람을 제외하고, 삶의 어떤 순간에는 나에게 그렇게나 중요했던, 그렇게나 친해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친했고, 이 사람과는 정말로 오래오래 - 를 바랬거나 반대로 나에게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다가왔었던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바빠서, 삶의 영역이 어긋나서 멀어진 이들까지도 그렇다 치자. 나머지 사람들은, 한때는 나와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주고 받았던 이들은, 어떻게 지금 이렇게 멀어져 있게 되었더랬나.
그 부분에서 단 한마디 변명같은 것조차 할 수 없는, 온전히 내 부족함과 어리석음과 불안정함으로 인해 멀어지게 되었던 이들. 더러는 이기심으로 등을 돌리고 더러는 나를 견디지 못하여 등을 돌렸던 이들. 내 마음속 한 구석에 깊게 죄책감과 더불어 남아 있는 이들 말이다. 한순간에 실수라고 하기엔 제법 수가 되는. 그래서 떠올릴 적마다 더 스스로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고대로 배워 고대로 행한 덕에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잃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을 잃게 만든 내 어떤 인격의 단면을 내가 항상 주의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또 누군가들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살아가며 얻는 사람은 나날이 귀해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만치 귀한 이들일진데 그런 이들을 행여 어느날의 과오로 인해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어느날 눈을 뜨고 나면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통에 뭐라 사과할 말도 찾지 못하고 미처 사과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그런 굉장히 오래된, 이제는 조금은 잠들법한 그런 두려움을 자극받은 덕분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쿨하지 못한 인간이어서.
가끔은 그렇게, 이제는, 조금쯤은 덜어내도 좋을 기억들을 꾸역꾸역 부여잡고 있는 덕분에 앞을 향해야하는 발길이 질질 땅에 끌리는게 느껴질때. 그런 날이면 좀 한숨이 나는거지. 그래서 이렇게 오랫만의 끙끙 밀어내는 글도 깨작이고 있는거고.
*
역시 좀 밀어내고 나니 시원하구만, 낄낄낄.
어느새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처지라, 행여라도, 아직도 그냥 생각이 날 때면 일년에 한번쯤 슬쩍 여기 들려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 이라는 가정하에 안부성 이야기를 조금만 더 남기고 마무리해야겠다. 에에 - 그러니까, 잘 지냅니다. 오랫만에 우울 돋는 이야길 하긴 했지만 이건 그냥 뭐랄까, 음... 주기적인 발작(?;;)이 굉장히 오랫만에 도진거라 보시면 되고, 오늘쯤은 툭툭 털었어요. 음낄낄. 뭐 당장 내일부터 한달은 한치의 예측 오차도 없이 헬이 되어버린 프로젝트덕분에(왜! 도대체! 왜 난 꼭!) 또 뭐 미칠듯이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찝찌르름한거 털고 가려던게지요. 잘살구요, 잘먹구요, 잘쌉... 아 신혼은... 좋아요! 좋지요! 결혼 꼭 하세요 두번 하세요(야!) 흠낄낄낄.
어쨌든 오랫만의 멘붕과 신경쇠약 덕분에 블로그도 다시 찾았으니 이제 일주일에 한번씩은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자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냉면 (2) | 2014.07.21 |
---|---|
그저 잡담 (2) | 2013.03.06 |
가족의 탄생 - 2 - (30) | 2012.03.31 |
가족의 탄생 - 1 - (2) | 2012.02.11 |
35세. (6) | 2012.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