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 1 -


오래 전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를 보았더랬다.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내게 저 가족의 탄생이란 제목이 어째서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가슴 깊숙히 날아와 꽂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로, 저 말이 어느 날엔가 불쑥불쑥 떠오를 때면 항상 잠시잠깐이라도 그 말 주변으로 떠오르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끈덕지게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늘어졌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몇 해나 지났을까, 문득 나는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만에 일찍 눈을 뜬 휴가 중 마지막 주말의 아침에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본다. 바라건데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들을 잘 밀어낼 수 있기를.

그래, 이건 단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냥 35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한 남자가 생각했던, 고민했던, 가족과 가족 이상, 사람과 사람의 네트워킹, 그리고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

*

가족이란 것이, 가정이란 것이 어린 시절의 내게 있어서는 그렇게 편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물론 스스로의 가족에 대해, 가정에 대해 불만 하나 없이 안온함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은 어찌되었건 그러했던 것이다. 그것들에 대해 여전히 아쉬움과 미련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이미 그 시절로부터는 꽤나 멀어져왔고, 나는 지금의 내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에서 보여준 나름대로의 책임감과 괴롭게도 포기해야만 했던 어떤 선택들에 대해 충분히 존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는 것이다.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꽤나 많은 이런저런 성품상의 장점을 지니고 계셨음에도 정작 가족의 생계나 가족이란 공동체의 어떤 생활 부분에는 안정감이 확실히 부족하셨고, 자식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시기만 하셨던 아버지,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도맡다시피 하시며 헌신과 희생으로 가족을 지탱해나가셨던 어머니.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 해서 나름대로 집안의 기대주, 우량주였던 누나. 사실 또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유별나거나 대단히 부족하거나 했던 가정환경은 아니었음에도(그 시절을 기준으로) 어린 시절의 내게 있어 그 모든것들이 그렇게 썩 편하게, 쉽게, 가정은, 가족은 내가 쉬는 곳 - 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만은 사실이란 얘기랄까. 

엄하디 엄한 아버지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하지 못했고, 어머니를 바라볼 적이면 언제나 빨리 자라서,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드려야겠다는 압박에 시달렸으며 어찌되었건 상대적으로 잘난 형제에게 위축되어 있었으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거야 당연한 노릇이다. 그래서, 그리하여 그 결과로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를 지나며 나는 가족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법을 조금씩 잊어갔다. 거품 물고 실신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에지간히 아프거나 한 건 어머니를 걱정시키면 안돼 - 라는 생각으로 좀처럼 말도 꺼내지 않았고, 청소년기에 부딪칠 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에 아버지는 너무 버거운 존재였다. 다행스럽게 누나와의 사이는 꽤나 좋은 편이었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 겪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이성의 형제에게 쉽게 이야기한다거나 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렇게, 어떻게 보면 꽤나 자연스럽게도 나는 가족들에게 마음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 가족이란건 내가 일련의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부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공동체,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내게 있어 어떤 '숙제'와 같은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딱히 풀어낼 가망이 보이지 않는 어떤 묵직한.

그리고 대단히 재미있게도, 그것이 바로 내가 자꾸만 내가 편안하게 무언가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어떤 네트워크를 가족의 외부에서 찾는 데 적극적이 된 이유다.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보상심리다. 가족에게서 채울 수 없었던 어떤 부족한 평온을 외부의 어떤 네트워크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 이를테면 애정결핍같은 것의 원인은 그런거란 얘기다. 내게 있어 필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없으면 당연히 다른 어딘가에서 그것을 얻으려 한다는 것. 그게 애정이건, 우정이건, 그래서 내 청소년기는 그렇게 자꾸만 밖을, 밖을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그건 또 그렇게 막연한 기대심리였다. '세상 어딘가에는, 가족이 아니어도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행복하게, 기쁘고 즐겁게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는 어떤 무리가 있을거야.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떤 집단이라면, 가족 이상의 어떤 굉장히 이상적인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거야' 라는 것. 물론 그 시절에 이런 생각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그 시절의 내 모습, 그리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장면들을 보면 바로 그게 내가 자꾸 사람들을 향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었다는 것이다. 조금은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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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스럽게도, 청소년기, 그리고 대학시절까지 이어지는 삶에서, 나는 항상 가득한 무리 속에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언제나 무리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근원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어떤 유전들,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간 속에서 내 안에 은근하게 배어들었던 어떤 것들로 인한 것이었다는 거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나는 영리한 편이었고, 또래보다 훨씬 키가 컸다. 워낙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며 자라서인지는 몰라도 타인의 어떤 감정변화들에 굉장히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어떤 성향에 맞춰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짓는 일에 능숙했다. 감수성이 예민했고,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내 희,애,락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하곤 했다(화는 에지간하면 내지 않았으니... 어쩌면 못했으니) 사실 또래 무리들과 어울리는데 저정도면 충분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학업 성적은 에지간히 나왔고, 큰 키 덕분에 일단 또래 무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서 그들로 하여금 먼저 손을 내밀게 하는데 꽤나 유리했다. 눈치가 빨랐으니 딱히 누군가들과 격하게 부딪칠 일이 없었고(학창시절에 싸운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솔직한 감정표현 덕분에 속내를 모르겠다, 뒤가 구리다 뭐 그런 취급 받을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가족 외의 어떤 네트워크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그 시절에는 나름의 적극성까지도 있었으니, 어디 가서 친구를 만들고 어떤 무리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달까. 

어울리는 범위 또한 보통을 기준으로 볼때는 상당히 광범위한 편이었다. 학업 성적 덕분에 공부 잘하는 수재형 친구들과 부대끼는데 별 문제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공부는 더럽게 안하는 통에 적당히 노는 무리들과도 즐겁게 어울렸다(사실, 어딜 가나 가장 친했던 무리들은 바로 그 '적당히 노는' 무리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막 나가는' 무리들과도 아주 친해져서 막 같이 어울린다기보다는 한발정도 걸쳐놓고 부대끼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게 꽤나 정확했다. 아주 친하게 부대끼는 무리 8-10명 정도, 그리고 가끔씩 만나 이래저래 즐거운 무리 10명 정도. 나머지 그냥 학교에서 같이 부대끼고 놀고 하는 무리들. 웃기는건 묘한 팔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학년이 올라가며,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년도에 친했던 이들과 또 같은 반이 되거나, 또 같이 부대끼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거의 매년, 새로운 애들만 그득한곳에 혼자 던져지는 수준) 그 와중에도 그렇게 빠르게 또 새로운 무리 속에 섞이고, 함께 부대끼며 비슷한 수준의 그런 무리들과 함께 해 나갔다는 것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다. 황당하리만치의 적응력은 그때부터 형성이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웃고 떠들며, 소란을 떨며 보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것이 평생 지속될 어떤 안정적인 네트워크라고 느꼈고, 그것이 가족보다 내게 안겨주는 행복들이 더 크다고 느꼈더랬다. 그리고 그 어떤 일련의 평온함들에 어떤 균열들을 느끼기 시작한건 정확히 내가 대입을 눈앞에 두고 있을 쯔음에 겪은 일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냥 피식 피식 웃으면서, 으아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하면서 던지는 농담들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그게 나름대로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어떤 '나의 세계'를 심각하게 흔들어놨던 사건. 첫사랑, 그리고 공동체의 균열.

*

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 실낱같아 부질없다 - 좋아하는 김윤아씨의 노래 가사중 한 소절이다. 이걸 처음 느꼈던 순간.

생각해보면 이별은 내게 있어 그때까진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워낙에 사람 욕심을 부려대던 시절이었던지라 그렇게나 넓게 친해지고, 만나고 하였지만 위에 말한 그 묘한 팔자때문에 연락하기 힘들어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느샌가 잊혀지고 하는 관계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그 와중에도 정말 오래오래 남기고 싶었던 인연들은 여전히 머물러 있기도 했고(그저께 함께 술을 마신 내 20년 지기와 같은), 어느 정도의 인연들과 특별히 이별이랄 것도 없이 멀어지고 하는 것은 그저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그런 자연스러운 어떤 인연의 흐름이 아닌 굉장히 사소한 일에서 빚어진, 어떤 신뢰하던 공동체의 균열이라는 것은 꽤나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게 그것으로 인한 것인지 제대로 감도 잡을 수 없었던, 돌이켜보면 그게 그때 그렇게 컸던 것이었구나 - 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그건 바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 첫사랑이 계기가 되었더랬다. 옛 얘기고, 가끔씩 블로그에 이야기를 한적도 있었으니 간단히만 요약하면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단에서 어떤 친구로 인해 어떤 처자를 알게되고, 첫사랑이란걸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풋내나는 첫사랑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대상이 그 친구 집단 중의 한명과 바람이 났고, 그래서 소주 9병을 퍼마시고 떡이 되었다가 새벽 알바를 하던 설렁탕집에서 손으로 선지국을 퍼먹고는 거 사랑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 봐야 되는거네 하는 웃기지도 않는 교훈을 남긴 채 마무리했더랬다. 뭐 다양한 이유가 있었는데, 정말 사실 그건 놀라우리만치 쿨하게 정리가 되었더랬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게지. 지금 생각하면 참 손발이 오그라드는 얘기긴 한데 당시의 나는 그 안정적이었던, 내가 아꼈던 그 무리가 그 일로 인해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더 걱정했었더랬다. 그래서 헤어진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크리스마스 파티 장소에 그 첫사랑과 그 친구놈도 함께 참여하는 것에 쿨하게 오케이를 날리는 관대함의 과잉을 보였던 것이다.

근데 그게 결국은 불씨가 되었더랬다. 즐거워야 할 자리가 순식간에 냉각되고, 친구들 사이에 네편 니편 하며 좌악 갈라져서 으르렁대게 되고... 나는 그 순간이 지금도 안타깝다. 그 당시의 나는 순전히 피해자의 입장이었으나, 나의 행동에 따라 적어도 그 집단에서 발생한 그 균열을 메꿀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허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입은 상처도 상처였거니와, 대입으로 인해 또 순식간에 다른 환경과 다른 생각, 다른 삶속에 파묻혀버리느라 굳이 그 괴로움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할 경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때 그렇게나 굳건히 신뢰했던 그 무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두어해가 지나, 기억하건데 야간에 보초를 서고 있던 부대의 초소에서 나는 내가 그 일로 인해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꽤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견고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리 완벽한, 흠잡을 곳 없어 보이는 어떤 관계일지라도 아주 작은 부주의, 혹은 아주 작은 실수, 혹은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 혹은 아주 작은 균열 정도만으로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라고. 그것은 어쩌면, 피로 맺어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가장 큰 차이일수도 있다고. 내가 멀어지려 하고, 등을 돌리고 싶어하고, 외면하려 그렇게 애를 써도 당신들께서 내 부모요 내가 당신의 자식임은, 내가 당신의 동생이고 당신이 내 형제임은 변함이 없으나 그렇지 않은 관계들은 어느 한순간의 어떤 선택이나 판단들로 순식간에 남보다도 더 먼 사이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참 슬픈 깨달음이지만, 살다 보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어떤 관문. 그게 그 시절에 내게 남겨졌던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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