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쏘울


서울 복귀!

우여곡절끝에 지난주 금요일 무사히 철수해서 서울로 복귀했다. 철수하는 날 아침까지 고객 리뷰가 밀려버리는 통에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철수 전야의 술부림과 다음날로 이어지는 혀 꼬임에도 꿋꿋이 리뷰를 진행하신 K과장님과 함께 무사 귀환. 아침에 폭풍처럼 챙겨나온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한낮에 부산역으로 가서 KTX에 올랐다. 팀 송년회 관계로 일찍 출발할 수 있었던것도 완전 뭔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기분. 떠나기 전 메신저로 L과장님께 리뷰 잘 끝났다고, 차표 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노래 부르며 올라가겠다고 한 것처럼 역시 들뜨더라. 항상 프로젝트 철수할때의 그 짜릿함은 거의 중독에 가까운 건데 그게 또 지방에서 철수를 하니 뭔가 정말 더 짜릿하고,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한달여의 생활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고. 전날의 여파와 오전의 긴장으로 인해 올라오는 KTX에선 떡실신된채로 잠이 들었더랬지만 정말 기분좋게 올라왔다구. 팀에 복귀해서 사람들과 인사 하면서도 막 그냥 괜히 기분좋고, 마냥 들뜨고, 신나고. 확 추운 공기조차 반갑고. 그런데. 

지... 지옥의 송년회였어... oTL

이게 처음엔 계획대로였다니까. 대충 보니까 송년회고, 올해 중간중간 입사하신 분들도 많은데다가 이런 저런 프로젝트가 딱 끝나는 타이밍이랑 맞아떨어져서 프로젝트 복귀자도 많지, 뭐랄까 딱, 곱게 끝날 자리는 아니다 싶은게야. 근데 피곤하긴 미치도록 피곤했거던. KTX에서 자는게 그게 자는건가 어디. 아 이거 어설프게 잡혀있다간 죽도록 마시고 내일 거의 시체가 되어 기어다니겠구나 차라리 1차에서 그냥 좀 취한 액션 좀 하다가 집으로 튀자 딱 그런 계획이었지. 그래서 뭐 이 자리 저 자리 간만에 뵙는 분들이랑 정담도 나누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필름이 훅. 으아 정말 피로 앞에 장사 없다는 얘기가 그렇게 실감날수가. 아니 그냥 몇잔 먹도 않고 어허허헣 좀 나른하네 이러던데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냥 그 뒤론 사정없이, 정말 매끈하게 필름이 뚝. 정신차려보니 집. 므어? 여긴 어디 난 누구? 어찌되었거나 1차 끝나고 도망치는건 성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피로와 숙취에 겔겔겔겔 좀비모드. 아 증말. 

다행히 토욜로 예정된 친구놈들 망년회가 소식 없이 캔슬되어 망정이지 정말 간을 하얗게 불태울 뻔 했네. 어찌되었거나 서울로 왔다.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였지만 어쨌거나 왔다. 휴. 역시 나이를 먹었나. 돌아오니 참 좋은데, 증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음네. 집떠나면 고생이여. 컴백홈. 휴. 

*

근데 어찌되었거나, 참 귀한 한달이었다는 말이지. 

일단 주말을 요양모드로 보내고 나서, 월요일 꼭두새벽부터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오늘 BGM이 많이 깔리네) 떠나진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출근해서 제일 먼저 느낀게 그런거였다. 와 이거, 진짜로 좀 충전이 되었구나. 정말 에너지가 차 있구나 하는 기분. 이게 딱 다르다. 똑같이 한치앞도 모르는, 예상 프로젝트마다 헬오브지옥급들만 기다리고 있는 그런 상황은 10월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완전 느낌이 달라. 부산행의 여독이 주말동안으로 말끔히 털어낼만한 것은 아닌지라 여전히 몸은 좀 피곤하긴 하니 HP는 그저 그런데 SP나 MP가 가득 차 있는 느낌. 헬이면 뭐 어쩔것이여. 어차피 내가 있던곳이 헬이 아니었던게 별로 없어. 익숙해. 그까이꺼. 그런 여유만만한 마인드가 넘쳐흐른달까. 스스로도 정말 놀라울정도로. 

일하느라 바쁘고, 술먹느라 바쁘고 했던 한달동안의 출장이었지만 정말로 혼자서, 고독감을 마음껏 자근자근 씹어가면서, 낯선 동네의 포장마차며 낯선 동네의 바닷가며 낯선 동네의 골목 어귀어귀를 돌아다니며 보낸 시간이 정말로 정신건강에는 무지막지하게 영양만점이었구나 하는 생각. 그래, 나란 인간은 그게 참 필요한 인간이었지 하는걸 새삼 절감하게 되었달까. 물론 같은 이유로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이 되긴 한다.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온전히 혼자서 오롯이 혼자만의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은 줄어갈텐데 그때는 우째쓰까잉 뭐 그런 걱정들. 

그래도 뭐,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언제나 거기서 생각이 멈추곤 하지. 어떻게든 되겠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잘 이해해주고 있는 당신이 있는걸. 이라는 대목에서. 

*

이게 사실 개인적으로 애인님께 미안하기도 한 부분인데, 내가 사실 뭐 목표는 로맨스 그레이! 라고 외치고 다니는 인간이긴 한데 은근히 이벤트에 약하다. 그러니까 음, 그런거 있잖아. 써프라이즈! 뭐 그런거. 아 음, 그게 진짜 뭐랄까, 예전부터도 그런거엔 좀 약했다니까. 아니 뭐 그러니까 굉장히 즉흥적으로 그럼 고! 라고 외치고 폭풍처럼 어딜 간다거나 그런 것도 그냥 '같이'하는 그런거니까 음, 그래 뭐 그러니까 왠지 좀 손발이 오그리토그리 광속퇴갤할것 같은 그런 이벤트, 아 그런거 진짜 좀, 음, 사실 내가 그런걸 받는다 해도 그냥 좋은건 좋은건데 그것때문에 더 놀랍거나 더 좋거나 그렇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애인님께 물어봤을땐 아 나는 영화 결말 다 알아도 영화 재미있게 잘 보는 사람이라 그런건 - 이라고 말해주셔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혹시 그게 좀 아쉽지 않으실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이번 연말은 좀 미리 알차게 준비해보자 하는 마음에 신경을 좀 썼다. 우야튼둥 한달이지만 주말커플하며 이래저래 맘고생도 하셨을게고 해서. 크리스마스때 하나 연말에 콘서트 한번. 개인적으로 콘서트는 완전 기대중. 무려 정현느님이야! 시경씨야 뭐 그렇다치고라도. 정현느님 콘서트 간게 벌써 한 6년은 된것같은데! 나 정현느님 짱 좋은데!(...) 근데 이래저래 일정을 짜놓고 보니 이게 또 일정도 맞춰야하고 해서 이미 애인님께 다 공개해버렸...; 아 음, 뭐, 어헣허헣 역시 써프라이즈는 내 취향이 아닌갑다. 아니 뭐 꼭 놀라야 좋은건가. 뭐 그냥 좋은게 좋은거 아니게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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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올라오자마자 어김없이 드래그 미 투 헬... -_-;;;; 이 될뻔 했는데 L과장님의 귀신같은 구원으로 일단 당분간은 좀 평화로울듯. 물론 평화는 그렇다치고 술자리는 널려있다. 친구들이랑 망년회 한번, 다음주는 멘토링 모임 망년회도 있고. 아으어으어 연말은 직장인의 간 근성 테스트 타임이야 무슨. 아 그래서 사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가득인데 좀처럼 연락을 잡질 못하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무려 18년 친구 S녀석에겐 콜롬비아 갈 지 모른다! 라고 한 후에 연락을 못했으니, 게다가 저번에 연락온걸 바쁘다고 한번 씹었으니 콜롬비아 간 줄 알고 있으려나 -_-;;;;; 그... 그냥 내년에 보자 친구;;;;;

아마도 내년도, 점점 더 바빠지고, 올해 벌여놓은 일과 내년에 일어날 일로 인해 점점 통장에 퍼가요~♡는 늘어나고(...) 오늘도 통장에 급여가 스치운다 하며 여유는 점점 줄어들고, 할 건 무궁무진하게 늘어나고 하고 싶은 건 무지막지하게 많은데 채 몇개 손도 대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 늘어가겠지. 그렇지 않아도 얼굴보기 힘든 사람들과 얼굴 마주보고 웃으며 으쌰으쌰 술이라도 한잔씩 걸치고 그러는 날들도 줄어갈테고, 이런저런 책임은 늘어나고 부담도 늘어나고... 하겠지만

힘 내자. 좀 더 빡시게 살면 되지. 그까이꺼. 낄낄낄. 근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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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5년이나 지났다니. 시간 참. 

*

나이먹으며 얻은 약간의 뻔뻔함도, 때론 유용할때가 있는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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