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 전까지 첫눈은 첫눈이 아니여. 그런거여.


회사 연말 평가기간이다.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은근히 골치를 썩는게 사실이다. 사실 평가 자체야 뭐 어헣허헣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뿌린대로 거두리니, 낭중지추로세, 도리불언 하자성혜니 이러면서 그냥 넘어가는 편인데 스스로 한해의 성과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을 등록해야 하는게 영 곤욕인게다. 워낙 잘난체는 질색팔색하는 덕분에 나 올 한해 킹왕짱 잘했소이다 하며 포장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그냥 실제 한 일 위주로만 딱딱 잘라 써버리고 말게 된달까. 헌데 또 그게 사람 맘이 묘한게 그렇게 쓰고 나면 어째 뭔가 허전한듯도 싶고. 야 내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써놓은건 요만큼이지만 올 한해 사경을 헤맨게 몇번인데... 내가 맘만 먹으면 블로그에 글 쓰듯 본인평가를 파샤샤샤 쓸 수도 있는데 앙! 막 이런 기분도 들고... 그러다보니 뭐 이래 저래 입력하기 전까진 은근히 고민스럽고, 입력하고 나서도 제법 찝찝하고, 그런것.

그게 또 그리고, 어찌되었건 입사 6년차, 연말의 이런 프로세스에 익숙해지다보니 거의 요맘때쯤에 한해가 저물어간다는게 실감나기 시작하는게다. 그러다 보면 회사 일 말고,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막 참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게지. 그런 관계로 요맘때쯤이면 겨울이고,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눈도 볼 수 있겠고, 뭐 그래서 들뜬 마음이 절반이고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무자비한 자아비판(?)으로 가라앉는 마음이 혼재한다는 거다. 아니 근데 또 조용히 그렇게 동굴속에서 가만가만 이런저런 생각을 보듬기엔 연말이 바쁘지 않았던적이 없었엌 다음주 목금토는 플젝 송년회-팀 송년회-친구들 송년회 로 이어지는 퐁당퐁당 음주기간이고 제길 한달짜리 컨설팅때문에 꼴랑 2주 좀 여유좀 부렸다고 뼈와 살을 분리해줄 기세로 일들은 쳐들어오지 덕분에 출장은 연기되게 생겼지 아오 빡...

뭐, 근데 생각해보면 또 그런 모든것들이, 어떤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연말다운 연말같기도 하고(웃음)

*

어찌되었거나 그런고로 업무 평가야 평가고, 부산에서의 이번 주 한주는 밤마다 늦게까지 꽤 오랜 자아비판시간을 가져보았는데.

낙제군, 완전 낙제야. 점수를 매기자면 D+ 정도.

연초엔 그래도 이런저런 호재도 있었고, 작년부터 연초까지 이어진 하드고어한 업무러쉬덕에 기합도 잔뜩 들어있었고, 개인적으로 좀처럼 풀리지 않던 문제도 어찌 저찌 스윽 풀려버리고, 야 뭔가 올 한해만 잘 메이드하면 내년엔 좀 눈에 보이는 많은 성과들이 있겠구나 그런 기대감마저 품을 수 있음직한 스타트였는데. 그래, 연초에 부산서 올라온 후 생애 첫 해외여행도 다녀왔구나. 그러던것이 팀에서 한참을 돌던 러시안 룰렛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탕 -_-; 하며 맞아버리고 생명단축의 꿈을 꾸며 4개월간을 광화문에서 헬오브지옥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찍는 순간부터 어 어... 그리고 나서 가을의 센치멘등신(...)짓과 콜롬비안지 나발인지 덕분으로 사지가 오그라드는 불안정함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 낭비. 아 정말 oTL. 딱 3개월. 딱 8,9,10 3개월만 정신줄 붙잡고 있었으면 그래도 B는 매길 수 있는 한해였을텐데. 에효.

그나마 이사 같은, 급작스럽게 압박으로 다가온 개인적인 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그 불안정함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겨우겨우 처리해냈다는 것만 아니었으면 F를 때려도 할 말이 없는 한해였을 듯 하다. 사실은 그 또한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나중에 가 봐서야 알게 되겠지만 어찌되었건간에 무언가 기반을 마련했다는 건 나쁘지만은 않았을거라 믿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 예전보다는 훨-씬, 훠얼~씬 이미 지나버린 어떤것들에 대해 반성은 하되 미련과 아쉬움은 잘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올 한해의 시간, 공간, 만남, 성취... 그 모든것들에는 꽤나 아쉬움과 미련이 많이 남는다. 물론 몇 해 전의 그 시간들만치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올해의 실기들도 과거의 어떤 것들처럼 앞으로 꽤 오랜 기간동안 문득문득 떠오를적에 마음을 괴롭게 하겠다는 것이 예상될 정도로. 

뭐, 어쩌면 이것도, 대망의 나이 35를 눈앞에 두고, 어금니 꽉 깨물라는 하늘의 계시인가(긁적긁적)

*

팀에서 또!(-_-;) 러시안 룰렛이 돌고 있다. 지옥 등급으로 매겨보면 6성급 지옥(...) 프로젝트인 H모 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원래 투입되어계신 차장님 한분에 대해 고객측에서 성격이 너무 유하시다고, 좀 '강한'리딩이 가능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교체 요청이 왔는데 그 분야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팀에 거의 없는지라. 팀장님께서 모 과장님, 모 차장님 이렇게 의사를 타진해보긴 하셨는데 워낙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 모두 고사했다고. 근데 그러던 와중에... 나한테까지 또 돌아왔어!!!!! 으엌ㅋㅋㅋㅋㅋㅋ 아니 팀장님 무슨 생각이신가요. 차장급을 대체해달라고 했는데 왜 날 ㅋㅋㅋㅋㅋㅋ 너무 절 과신하시는거 아닌가욬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전화받고 의식이 혼미해지는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쪽 플젝은 경험도 없고, 출퇴근만 하루에 4시간씩 할 수도 없고,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도저히 무리인지라 정중히 고사했다. 아니 내가 먼저 고사한 것도 아니고, 의식이 혼미해져서 음.. 어.. 이러고 있었더니 팀장님이 먼저 그러셨어. 아무래도 좀 힘들라나? 그치? 사람 불러야지?(-_-;) 근데 그러시다가...

너 장가 내년에 가냐?
아 뭐 생각은...
언제쯤 가냐?
가게 되면 봄에 가야 하지 않을런지요(...)
그래? 그럼 안되겠네. 대신 장가 가라, 두번 가라(...는 아니고) 이번엔 꼭 가라!

......지옥에 들어가거나 장가를 가거나 2지선다인가. 아니 아무리 지가 매듭입니다 팀에서 지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잖숨까. 이제 장가 못가면 어디 오지체험 극과극 하는데로 보내버리실지도 몰랔 으앜 살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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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참 빠르지. 한달이구나.... 했는데 벌써 다음주면 철수다. 물론 한주정도 더 연장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 해도 크리스마스엔 올라가겠지. 계획대로라면 마지막 한주의 주말은 애인님 뫼시고 부산 투어나 하면서 못다한 먹부림을 하려고 했는데 어제 최종 컨설팅 산출물 리뷰에서 비오듯 수정사항이 쏟아지는통에 FAIL. 하기사 아직 이사하며 새로 지른 가구들도 주말에 들어온다고 하니 집정리도 더 해야 하고... 주말엔 얌전히 집에서 일도 하고 좀 쉬면서 부산에서의 마지막 한주 준비를 해야겠다.

사실 산출물때문에 어제 한바탕 하는 통에 저녁엔 퀵하게 코로 쏘주를 뿜어주고 잠들었는데... 뭐... 굳이 따지자면... 계획대로야(...) 도무지 머리를 쥐어 짜내도 스스로 전공분야가 아닌 쪽 파트가 영 걱정되긴 했는데 일부러 자신있는 쪽으로 헛점을 노출했다 -_- 역시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는통에 자신없었던 파트는 일단 통과. 우후후후후후후후후. 사람 가만히 있다고 가마니로 보지 말라구? 내가 짬을 딱히 괄약근으로 먹은게 아니지말입니다? 이제 주말에 수정사항 나왔던 부분들만 착실히 채워서 다음주에 '이건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산출물이 아냐! 이탈리아 장인이 폰트 한글자 한글자(...)' 하며 통과하면 끗끗끗. 죽어도 성공해야한다 -_-; 정말 재수없으면 크리스마스를 부산에서 맞이하게 될 수 있어. ㅎㄷㄷ

그러고보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2주 앞이네. 휘유~ 점심먹고 간 까페베네에서 들려오는 캐롤송에 마음이 설레설레. 크리스마스에 원하는건 당신뿐이죠!

*

서울은 첫눈 왔다는데 부산은 폭풍바람만 불고 화창 -_- 아 눈보고 싶어.
날씨가 급 추워졌는데 모두 감기 조심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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