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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에 관하여


만약 자신의 삶이 남다른, 유별난, 보통은 겪지 않는 불행의 연속으로 점철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권유하고 싶다. 왜 나에게만 이런이리이이 하고 부르짖기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긍지를 갖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론 말이니까 쉬운 말이고 실제로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아니 대체 저 사람에겐 왜 저렇게 삶의 굴곡이 거친걸까, 정말로 운이 나쁜걸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사람들의 앞에서 저런 말을 한다면 사람 가지고 장난하냐고 대뜸 멱살이나 잡히기 십상인 말이지만, 적어도 스스로 받아들이기엔 그렇게나 유별나고 대단한 불행들이 가득한것처럼 느껴져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에 그렇게까진 - 이라고 생각될만한 이들이라면 말이다(물론, 멱살잡힐것이 두려워 좀처럼 꺼내지 못하는 말이긴 하다)

살아오며, 사람에 대해 거듭해서 느끼게 되는 것이라면 이런 것이다. 참 약하기도 강하기도 한 동물이라는것. 먼저 물리적인 면만 봐도 그렇다. 감기 한번 안걸릴 것 같은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큰 병에 걸려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거나 하는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겠는가. 반대로 문고리 잡고 백살까지란 말처럼 금새라도 숨이 넘어갈듯 넘어갈듯 보이는 사람이 질기고 질기게도 삶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터무니없이 작은 사고, 상처로 허무맹랑하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쉽게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도 있고, 살아있는것 자체가 신기할정도로 큰 사고를 거듭해서 당한 사람이 언제 그런 사고를 당했냐는 듯 멀쩡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물론 정신적인 부분을 봐도 마찬가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았던 사람이, 그야말로 절대이성을 장착하고 있었던 것 같은 사람이 어떤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삽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폐인처럼 지내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허구헌날 왕따에 구박에 온갖 트라우마란 트라우마는 다 껴안고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이 자신의 일이나 어떤 분야에서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트라우마로 범벅된 삶을 뒤집어버리듯 여봐란듯이 살아가고, 혹자는 젊어서의 총기를 눈 깜짝할새 잃어버린채 흐리멍텅한 눈빛과 죽지 못해 살아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저 삶을 유지한다. 저 사람은 강한 사람이야, 나약한 사람이야 라고 어느 한 순간에 어떤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것 자체가 무리일 정도로, 사람의 '내구성' 이란 것은 놀라우리만치 예측 불허한 영역이라는 것이랄까.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강함은 제쳐두고라도, 그렇게나 쉽게 부서져버리고 어느 한순간에 말 그대로 훅간다는 표현이 어울리게 훅 가버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스스로가 겪어온 인생의 굴곡들을 떠올려보자. 조금은 생각의 가지를 키워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이러저러한 선택을 했었더라면 - 이란 것을 최악의 방향으로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렇게, 인생에 굴곡이 심했다고 자타가 공인할만한 사람이면 더더욱 그렇게, 내 존재 자체가 신기해 하는 기분이 들게도 마련이다. 내가 살아있는게, 내가 지금 이렇게라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게, 내가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가고 있는게, 어찌 저찌 밥값은 하고 살아가고 있는게, 그런 모든것들이 신기하고 놀라울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리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저떻게든 그 무수한 굴곡들을 넘고 넘어, 지금 그 자리에서 여전히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해내고 있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타인의 삶과의 불필요한 비교따위로 평가절하 하지 않은 순수한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긍지를 가져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헉, 저렇게나 대단한 사람이 저렇게 한방에 훅 가버렸어? 라고 하는 이야기, 말들이 시시때때로 튀어나오게 되는, 불확실성만이 가중되고 있는 세상이다. 그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속에서, 어찌되었건 지금까지 잘 해오지 않았던가. 이랬든 저랬든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렸을 수도 있었던 그 무수한 불행과 위험을 거치고 거쳐, 스스로를 질질 끌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앞으로야 어찌 되건간에, 우선 지금 이 순간의 삶 자체에 대해, 지금 이 순간의 내 삶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음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긍지'를 가질만한 자격이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나 무수한 괴로움과 아픔을 이겨내며,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거나 책임을 돌리거나 푸념과 원망으로 시간을 단순히 '소모'하는데 그쳤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스스로를 어딘지 모르는 미래지만 그 한치 앞도 모르는 어딘가를 향해 질질 끌고 가려고 발버둥쳤던 사람이라면, 정체되지 않고 걸어가는 길을 선택했던 그대들이라면 말이다.

삶에 괴로움이 밀려올 적이면, 또 나에게만 이런 일이! 라는 울컥한 마음이 치밀어오는 날이면 한번쯤 지난 고난들을 떠올려보며 그렇게 숨을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잔뜩 움츠러들게 만드는 모든 상황들이 벌어져도 오히려, 오기로라도 피식 하고 웃으며, 만화 주인공같은 허세스러운 말 한마디를 내뱉어보는건 어떻겠는가. '훗, 네놈들과는 겪어온 아수라장의 숫자가 달라' 와 같은 허세 순도 200%의. 그게 왜 또 나에게만 이런 이리이이 하며 울부짖는 편 보다는 상황을 수습하고 해결하는데 백배는 더 이롭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것은, 스스로의 삶에 긍지를 가질 수 있을만치 스스로의 삶을 꾸준히 가꿔나가는 것이 가장 먼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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