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 여름휴가 전 마지막 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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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다. 한두 해 야근을 해온것이 아님에도 사무실에서 맞는 밤은 언제나 조금은 특별한 느낌이다. 아주 약간의 외로움과 삶의 끈적함이 실감난다는것, 고작 그정도의 차이만으로도 보통의 밤과 사무실에서 지새는 밤의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진다는것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아,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야근중인 로동자들이 비슷한 기분을 공유하리란 보장은 없겠지.

삶의 끈적함이야 뭐 녹초가 된 몸으로 사무실에 앉아있는 스스로를, 그래도 뭔가 끈임없이 손가락을 놀려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적에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아주 약간의 외로움 <- 이 부분이 매번 느낄때마다 조금은 재미있고 새롭다. 그건 사람들과 같이 밤을 지새우냐, 홀로 지새우냐와는 완전히 무관한 문제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앉아서 키보드를 도닥거리고 있는 사무실에도 피로에 떡이 되었지만 야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득 존재하고,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지만 그런것들과는 무관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란 것이다. 썩 달갑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썩 싫기만 하지도 않은 그런 약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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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중요한건 내가 그래서, 가끔 사무실에서 지새우게 되는 그런 밤들을 썩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매일같이 새라고 하면 사양이다만(웃음). 위에서 이야기한 약간의 외로움, 그리고 대낮과 비교하면 놀라우리만치 줄어들어버린 소음, 그런 아주 작고 소소한, 하지만 사무실에서 지새는 밤 이외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어떤것들을 느낄 수 있고, 바로 그것들이 피로로 떡이 된 와중에도 가만가만 웃으며 그 밤을 즐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랄까.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고층빌딩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나가 난간에 빨래처럼 팔을 걸쳐놓고 담배연기를 모락모락 피워올리며 바라보는 야경, 혹은 노트북에 빨려들어갈 듯이 일하다가 퍼뜩 고개를 쳐들었을때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 태어나서 몇 번을 보았는지 셀 수도 없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보게될지 어림짐작조차 하기 힘들지만 매번은 아닐지라도 많은 경우에 경이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도시를 밝히는 형형색색의 불빛들.

물론, 내가 맞이했던 무수한 밤들중 가장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밤을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괴롭고 힘들었던 시절에 사람 하나 차 한대 다니지 않는, 가로등조차 제대로 켜있지 않은 어느 시골길을 먼 곳에 켜있는 불빛 하나만을 바라보고 걷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빛의 조각을 손으로 쥐어 부서뜨린 듯 별들이 가득 하늘을 메우고 있었던 그 밤을, 그 밤의 하늘을 꼽겠지만 사실 도시의 야경은 그런 것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빛나는 별들은 없지만, 밤이 새도록 꺼지지 않고 반짝거리는 이 골목 저 골목의 네온사인들이, 어쩌면 삶의 치열함같이 뜨겁게도, 혹은 삶의 냉엄함처럼 차갑게도 느껴지는 그런 맛. 휘청휘청 갈지자로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취객의 등뒤로도 걱정어린 시선 한번을 던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그런 기분. 아, 뭐라 말할 수 없는, 그저 도시의 그 밤, 그 풍경에서만 느껴지는. 그런 기분.

아, 당연히,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이렇게 감상적으로 변해버릴 수 있는 것 역시 그 밤이 가지고 있는 매력중에 하나임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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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넘게 지리하게 이어진 제안P가 내일로 끝이다. 체력은 애초에 바닥난지 오래고 숨 고를 틈도 없이 달려온 덕분에 바닥에 바닥까지 닥닥 긁어 쓴 정신력도 이제 거의 한계다. 내일 아침이면 아마 내일의 죠 포즈로 의자에 몸을 기댄채 불태웠어 새하얗게를 읇조리고 있겠지. 누가 탁 치면 억 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하하. 정말, 천만다행으로 마지막까지 요동치던 휴가일정이 우선 모레부터 시작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불안불안하다. 상반기에 프로젝트 끝내고 갔던 휴가때 달랑 이틀 집에서 폐인되어있다가 호출받아 복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에. 하지만, 버뜨, 그러나, 이번만큼은 죽어도 휴가사수다. 나올래 사표쓸래 하면 사표쓸 각오. 이번에도 쉬지 못하면 이건 일을 떠나서 아예 인생에 회의가 생길듯. 크아아앙.

운좋게 계획대로, 모레부터 한 10일간 휴가를 다 쓰게 된다 하더라도 할일이 너무 많아서 휴가가 짧게만 느껴지는 지경이다. 근 반년을 사람을 못만나고 지냈으니 -_-; 게다가 애인님이랑 여름휴가기간도 3년만에 처음 맞췄지. 집에서 할일도 한가득이지. 계획 정비도 다시 해야지. 어 뭐야, 갑자기 우울해져. 이건 휴가인데 일할때보다 더 바쁜 휴가가 될지도 몰라 oTL 사실 정말 필요한건 혼자 좀 그간 입은 내상을 치료하는 시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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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웨어, 어쨌든. 삼촌(간만에 하려니 어색하군 ㅋㅋ) 살아있구요. 하드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의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오늘밤 새하얗게 불태우고,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요즘 근성이 딸리는것 같아서 모 차장님께서 강추하신 그렌라간 극장판을 보고 있는데, 과연 마지막 혼이 불타오르더군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으아!!!!!!!!!!!!!!!!!!!!!!!!!!!!!!!!!!!!!!!! 나의 키보드는 개야근을 돌파할 키보드!!!!!!!!!!!!!!!!!!!!!!!!!!!

네놈은 하루하루 월급을 축내는 도둑일뿐이지...라고 하면 낭패 -_-

더운 여름이지만 슬슬 여름휴가기간이고, 모두 힘내자구요. 뽜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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