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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낡은 겨울 코트에 관하여

사춘기 시절의 가정환경과 아버지의 영향으로 물건에 대한 집착이라는건 거의 없다시피 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애착이 가는 것들이란건 있게 마련이다. 또, 사람마다 어떤것에만큼은 유난히 집착하거나 하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나의 경우에는 그게 옷이란 얘기다. 마치 옷은 새 것이 좋고 - 를 몸소 반증이라도 하듯 마음에 쏙 드는 옷 같은 경우에는 너덜너덜해져서 더이상 입고 다니다간 거지라 의심받겠다 싶기 전까지는 주구장창 입고 다니기도 하거니와 이미 충분히 너덜해져서 아마 다시는 걸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매번 옷장에서 꺼내 내놓았다가 그래도 한번쯤은 - 하고 도로 옷장에 넣어놓기가 일쑤인 것이다. 


물론 거기엔 개인적인 웃지 못할 이유도 한몫 함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테면 쓸데없이 지나치게 길고 그에 비해 예전보다야 살이 쪘다고 한들 여전히 누가 봐도 처음에는 말랐네 - 를 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엿가락 같은 체형 말이다. 좀처럼 길이에 잘 맞으면서도 지나치게 허수아비같지 않고 적당히 몸에 잘 맞는 옷을 찾기가 힘들어 야 이건 꼭 맞는데?(혹은 안 짧아보이는데?...) 하는 옷의 경우에는 다른 옷들보다 착용 횟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언젠가 아버지의 옷장 습격을 받아 버려졌지만 여전히 기억에는 미련으로 남아 있는 옷들도 있다. 고2,3을 함께하고 대학시절 초반 이런저런 이유로의 노숙들을 함께했던 전신을 다 감싸는 농구 코트라거나(이건 정말 지금 찾아봐도 쉽지 않은 길이일게다) 담배빵을 한 세군데 당하고도 꿋꿋이 지켜냈었던 고교 시절의 츄리닝이라거나 하는 옷들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단순히 옷이 잘 맞는다거나, 잘 어울린다거나 하는 이유만으로 옷에 대한 어떤 이상 애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지고 보면 단순히 그 옷을 오래 잘 입었고 이런 이유보다는 반대로 그 옷들을 자주 입고 다녔기에 어떤 순간의 기억을 그 옷과 함께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적합할 것이다. 이를테면 위에서 얘기한 내 생애에 가장 길었던 농구 코트는 첫사랑(이라기보다 첫 연애)의 종언을 나와 함께 맞이하며 한겨울 춥고 추웠던 지하 주차장에서의 노숙에서 나를 지켜주지 않았던가!!! 담배빵이 세번 난 츄리닝은 생애 처음으로 동대문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맞춘' 유니폼이 아니던가! 그러니 어쩌면 그건 어떤 특별한 이유보다는 자연스러운 서사에 가까운 거다. 잘 맞는다 > 즐겨 입는다 > 많이 입는다 > 많은 기억을 공유한다 와 같은 말이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사라져버린 옷가지들이었지만 내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한여름에 농구코트를 입고 탈출이라도 했을것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전우여... 아 여기까진 아닌데.


오랫만의 포스팅에 왠 쓸데없는 옷얘기로 광분이냐면, 바로 어제 또, 욱씬거리는 과거가 진득하게 들러붙어 도저히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녀석 하나와 이별하게 되어서이다. 생각해보면 처음 샀을적부터 대단히 고난과 역경을 많이 겪어서 수명은 이미 두어해전에 다했던 녀석이다. 정확히 기억하건데 2006년 10월에 산 겨울 코트다. 옷을 아낀다 한들 그닥 뭐 옷을 꼼꼼히 제대로 관리하거나 하는 인간은 아닌지라 눈비를 하도 맞은데다 그걸 그대로 방치한 덕에 버클이며 단추의 녹이 여기저기 묻어 있고, 무슨 털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하얀 백호의 털처럼 맵시를 뽐내며 지퍼 경계를 장식하던 털들이 이젠 원래 동네 누렁이 털이었던 것처럼 변색되었고 본래 색깔이 그렇다고 주장하기엔 5초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미 등판이며 팔이며 어디며에 탈색의 흔적이 역력하다. 더욱이 치명적으로 뭔 땅을 기어다닌것도 아닌데 이리저리 쓸린 소매는 너덜너덜하여 정말로 수명을 다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실은 2년전 신혼집으로 옮겨올적부터 작년에 겨울옷을 꺼낼때, 올해 초 다시 겨울옷을 정리할때, 이미 여러차례 끄집어내어 이제는 작별을 고할 때가 왔구나 하며 현관까지 내놓았었던 녀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어제까지도 작별을 고하지 못한 건. 


그렇게도 괴로운 시절에 나를 지켜주었는데. 그 옷을 입고 빛을 품었던 적도 있었는데. 하는, 옷장을 열어 한자리를 두둑히 차지하는 녀석을 볼때까지는 이제야말로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다 - 라고 호기롭게 꺼내들다가도 그 진득한 세월의 흔적들을 보면 어쩐지 약해지는 마음에. 


사랑을 잃고 늙은 개처럼 도망쳐간 강원도에서, 그렇게 징그럽게도 퍼붓던 눈발 속에서, 한겨울의 바닷바람과 모래사장에 질퍽하게 녹아내린 눈, 허옇게 일어나던 파도 거품밖에 없던 겨울 바닷가에서, 죽자는 심정으로 술을 퍼마시고 몸을 가누지못해 널브러지던 어느 눈밭에서. 녀석은 한결같이 나를 지켜주었는데 - 라는, 누가 보면 참 몹시도 손발이 오그라들지 모르는 몹쓸 감상이 일어 차마 그간 이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만치나 나이를 먹은 지금에 와서도 떠올리면 가슴이 울컥해지는 그 괴로웠던 순간들에 항상 내 몸과 함께였던 너를 버리는게 어쩌면 차마 하면 안되는 짓 같다는 생각으로 이미 세탁을 맡겨 봐도 더이상 새로워질 수 없는 너란걸 알면서 괜스레 겨울옷 사이에 슬쩍 끼워 맡겨보기도, 현관에 나와 있는 녀석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도로 집어들어 옷장속에 구겨 넣기도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수명을 다한 어떤것들을 끝내 붙들고 있는 것이, 외려 또 그것들에 대한 적절한 예우는 아님을 알기에. 


이번에도 겨울옷을 정리하며, 아내님의 손에 의해 현관 앞에 나와있던 옷무더기에서 녀석을 보고 또 한참을 망설였었더랬다. 근 일주일간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애써 모른척 하기도 했었더랬고, 어떻할까 묻는 아내님의 말에 한번은 '에이, 날씨 궂은 날 한번쯤은 더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란 궁색한 핑계를 대며 마지막으로 한번 걸쳐 입어보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 이란 맘이 들었지. 어차피 내 지난 어떤 옷들처럼 내 기억속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오래토록 있을 것인데, 한때는 제법 근사한 모습을 자랑했던 녀석을 더이상 남루함이란 이름으로 기억되게 하는것도 몹쓸 짓이다 생각이 들어서. 다행히도 못내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에이 이제는 정말 못입겠다 - 라고 하는 말에 마음을 읽은건지 아내님이 얘기했지. 그거 내피는 아직 괜찮은 것 같은데? 내피는 남겨두자 - 오, 묘안이로세. 


그래서, 이제는 깔깔이처럼 내피만 덩그러니 남겨진 내 낡은 겨울 코트와, 그리고 그 진득했던 슬픔의 기억들과 이제는 바이 짜이찌엔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남겨보는 얘기다. 하기사 뭐, 옷을 버린다고 그런것들이 버려지는 것들이었다면 진작에 모조리 버렸을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함께 해준 내 오랜 벗 - 에게 안녕을 고하며 이정도의 글은 남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가며 짊어지고 갈 기억들에 낡은 코트 한벌 걸어둘 자리가 없겠는가. 도로 추운 계절이 왔다. 오늘도 누군가의 기억들과 더불어 그 한기와 괴로움들을 함께 이겨내고 있을 누군가의 옷들에게 경의를. 그리고 빛을 안고 있을 어떤 옷들에게도. 늙은 감상쟁이는 여기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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