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2'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7.22 맛있는 인생 4

맛있는 인생

살이 차오른다 - 가자... 가 아니고, 아마도 최근 하고 있는 고민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민이다. 사실 고민을 하면서도 허 참 내가 이런 걸로 고민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라는 어이없음이 먼저 떠오르는 거다. 살이 찌고 있다. 한참을 어어어? 하는 사이에 아주 그냥 뽀독뽀독 살이 붙어가다가 요즘은 조-금 소강상태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물론, 살찌는 중년 남성들의 고민이 그냥 살이 찌는게 아닌 것처럼, 어김없이 배둘레햄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아니지, 어쩌면 더 심각한건 배둘레햄보다 얼굴일 수도 있지. 평소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다가도, 요즘은 우연찮게 찍힌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아주 그냥 몽달귀신인지 달걀귀신인지 대보름 귀신인지 얼굴이 빵빵 - 하니 동동 떠다닌다. 아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지난달인가 처가에 가서는 처제에게 무려! 형부, 얼굴에 코만 삐쭉 나온것 같네예... 까지 들었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 이 아니고 이 일을 어쩐다. 


더 통탄할 노릇인 건 여전히, 나의 이 괴로움들을 어디 하소연해봐도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이들조차 없다는 거다. 다이어트 해야겠어.. 라는 말만 꺼내면 대번 정색하며 얼씨구? 란 말이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그래 물론 아직 내 키의 평균체중에는 미달이지. 한 5키로 정도 남았나? 뭐 그리고 오랫만에 얼굴 보는 사람들은 죄다 얼굴 좋아졌네 이제 좀 사람같네 뭐 이런 얘기를 먼저 꺼내기도 하지. 야 네놈도 장가가더니 살이 찌긴 찌는구나 뽀하하하 장가 잘갔네 뭐 이런 소리 듣는거는 아내님 면도 있고 그러니 나쁘지 않다 쳐.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전에 산 바지들도 모조리 폐품으로 만드는 이 썩을놈의 배둘레헴과 호빵맨같은 부한 얼굴은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다고! 사진속에서 웃고 있는 오방떡같은 이놈이 나일리가 없다고! 위기라고! 움직여! 폐타이어라도 주워서 허리에 매고 동네라도 뛰어다니란 말이다! 그 배에 잘도 밥이란게 넘어가나 네놈은? 산소라도 흡입을 줄여!!!


...라고 해봐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분명히, 이 굉장히 어색한, 어서와 다이어터는 처음이지? 뭐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떠오르는 걸 몇가지 적어보자면... 그래 나이살. 우선은 나이살이지. 이게 분명히 다르다니까. 과거 무말랭이 체형으로 살던 시절 그렇게나 살찌려고 바득바득 애를 써봤지만 매번 실패했던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증량은 어떻게든 해볼 수가 있었는데 감량을 막을 수가 없었더랬지. 매일 저녁 운동하고 닭한마리를 쳐묵쳐묵해가면서 눈물겨운 3~4kg 를 찌워 놓으면 뭘해. 조-금 바쁜 프로젝트나 조-금 스트레스받는 일 같은거 하나 있으면 숨쉬기 운동만 해도 미칠듯한 폭풍감량이 자동으로 일어나는걸. 근데 이게 확.실.히 달라. 예전이었으면 아마 한 10kg 정도는 순식간에 빠져서 체중 하한 마지노선까지 위협했을 만큼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한해를 보내고 있는데 체중계 눈금은 요지부동. 마치 전진만 있고 후진은 없다는 남녀간의 스킨쉽 진도처럼 고스란히 멈춰서 답보상태가 될지언정 감량에 이르지 않는 건 역시 나이의 영향을 꼽을 수 밖에 없는거다. 장황하게 썼다마는 뭘, 늙은거지. 과거처럼 뭐 좀 한다고 칼로리가 내일의 죠처럼 활활 불타올라서 잿더미만 남고 그러지 않는게야. 아 갑자기 쓰다보니 왜 눈물이...


또 있지. 결혼빨. 야 나는 결혼 전에 주위 어르신들이 장가가야 살찐다 - 라는 말이 그냥 뭐 용기를 얻으라고 하시는 말인줄 알았지. 아니에요 여러분. 에지간 - 하면 장가가면 살찝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냐. 혼자라는게 때론 지울수 없는 낙인같아 살아가는게 나를 죄인으로 만들던 뭐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서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때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 야식! 야식! 폭풍야식! 술! 닭! 소화가 잘되는 고기! (...) 게다가 매일같이 퇴근이 늦으니 아주 늦은 시간에 먹는 폭풍야식이라는 것도 가산점! 그래 맞다. 사실 이러고 살이 안찌길 바라면 그게 나쁜놈이지. 아니, 과거에도 야식을 안먹던건 아니었으니 그렇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던 이전이 비정상이었던 게지. 으찌되었건 확실한 결혼빨도 이 체중 증가의 원인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이것 말고도 사실 잡다구리하게는 몇가지 더 있지. 폭풍야근과 피로로 인한 운동부족, 면식수행 등 밀가루 즐겨찾기... 그러나, 사실 가장 핵심되는 이유는 이것들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곁가지에 불과해. 나를 찌운건 8할이 OO 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적이고도 결정적인 이유란 것은. 


'맛'에 눈을 뜬거지. 맛.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과거 그렇게나 살이 안찌던 시절 주변의 뽀독뽀독 살이 잘도 오르는 친구들을 모니터링하며 내렸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살이 잘 찌지 않는 사람의 경우(체질 때문이라거나 하는 뭐 이런걸 배제하고 그냥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같은 걸 먹어도 '맛없게' 먹는다.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깨작거린다'는 거지. 식탐도 없고, 뭘 먹어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른 사람들이 보기엔 저거 왜 저렇게 깨작거려 하는 식으로 먹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거지. 단적인 예를 들면 같은 고기를 먹더라도 괜히 다 구워진 고기를 뒤척뒤척 하다가 고기만 쏠랑쏠랑 집어먹는 사람과 상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의 혼돈의 카오스, 먹을 수 없는 것만 빼고 다 올려서 쌈싸먹어주마! 이렇게 먹는 사람과의 차이라는 거다. {김치,계란후라이,간장,밥} 이라는 한정된 메뉴가 있다 해도 계란후라이를 반숙해서 밥위어 얹어 노른자를 탁 터뜨리고 간장을 넣고 비빈후에 매 숟가락에 김치를 척척 찢어 올려서 먹는 사람과 반찬도 없네... 하며 깨작거리는 사람과의 차이야 있을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최근, 늘어나는 배둘레햄을 끌어안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가 아니고 생각하다보니 느낀건 바로,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저것이라는 것. 딱히 없던 식탐이 생기거나 한건 아니지만 적어도 '맛'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맛'있게 먹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것. 그 차이랄까. 


무슨 산해진미를 먹겠다고 -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식당 앞에서 줄서는걸 치과 가는것과 동급으로 싫어하던 인간이 맛집이라고 하면 제법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뭘 먹든지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 라고 하며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허기를 채우는 목적'외에는 하는 일이 없던 인간이 이제는 오늘은 뭣이 땡기네 하며 땡기는 음식을 찾아 나서는 날들도 잦아졌다(많은 경우 술안주라는 것은 안자랑) 심지어 아주 가끔이지만 요리도 한다!(게다가 내가 지금껏 했던 요리들은... 나쁘지 않다!) 어머 저건 먹어봐야 해! 하는 것들도 종종 생긴다. 어쩐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도로 찾아가는 기분인거다.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이나 열광했던(그래서 그렇게 통통했었더랬지), 우리 OO이는 먹는게 복이 있어~ 라고 항상 흐뭇하게 웃어주시던 외할머니의 손맛이 가득 담겼던 음식들과 멀어진 이후로 잃어버렸던 '맛'을 말이다. 대략 15세 이후로 20여년동안을 맛없는 인간으로 살았더랬다. 재미있게도 연애로 인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의 종류는 하나 둘씩 늘어났으나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맛'의 즐거움을 이제야 다시 느끼게 된거다. 


어쩌면 눈물나게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 가며 사실 즐길 거리라는 것이 그렇게 늘어만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친구들과 뭔 별다른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꺄르륵 꺄르륵 넘어가던 어린 시절과는 다른게다. 이제사 식도락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을 안다. 맛있는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를 안다. 정성들여 차린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 주어 고맙다고, 먹는게 예쁘다고 해주는 이를 바라보며 나 또한 조금은 부끄럽지만 기쁘고 즐겁다. 맛있는 집에 친구들을 데려가서 오 - 하고 감탄사를 내뱉을때 으쓱해하는 즐거움을 안다. 여전히 썩 좋아할 수는 없는 식당 앞에서의 대기도, 맛의 즐거움을 알기에 어느 정도는 견딜 만 하다. 여전히 서툴지만 한참을 낑낑대며 무언가를 만들어놓고, 간을 맞추면서 맛을 볼때 제법 그럴싸한데? 라고 하며 자뻑하는 즐거움도 안다. 어쩌면 단순히 '맛'의 즐거움을 아는데만 그치는게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수한 음식들의 무수한 맛들처럼, 맛의 즐거움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즐거움들이란 얼마나 현란한가. 내 이제사 그 즐거움들의 앞에 다시 발을 디딘거다. 

그래, 이것은 뱃살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해서 맛의 즐거움에 대한 현학적 고찰을 통해 비겁한 변명을 하려는 글...은 아니지만 뭐 그래, 일단 죽어가는 얼굴 라인과 볼링핀형(?) 체형에서는 좀 벗어나야 한다 쳐도, 인생이란게 뭐 그런게 아닌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마냥 좋기만 한것도 마냥 싫기만 한것도 좀처럼 있기 힘든 그런. 일단은 즐겨도 좋을 것들은 즐겨두자. 맛있는 인생이다. 당신의 인생도 충분히 맛있어지길. 어떤 면에서든 말이다. 

그나저나, 저녁엔 또 뭘 먹는다.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 이야기 (1)  (6) 2014.08.20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4) 2014.07.24
냉면  (2) 2014.07.21
그저 잡담  (2) 2013.03.06
1년만의 우울  (7) 2013.02.25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