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7.24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4
  2. 2014.07.22 맛있는 인생 4
  3. 2014.07.21 냉면 2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그러니까 스스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뭐 유난한 도덕심으로 무장된 인간은 아니다. 그냥 저냥 사회의 보편 타당한 도덕적 기준에 그럭 저럭 맞춰가며 살아가는 정도지. 조금 더 나가서는 대단한 도덕군자처럼 보이는 - 사람들을 조금 경계하는 편이기도 하다. 아마도 살아오며 그렇게 자신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타인에게 강제하는 이들이 정작 스스로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견고했던 도덕적 잣대를 무슨 흐물흐물 물렁뼈같은 것으로 삽시간에 전환하여 적용하는 것을 제법 많이 봤던 탓일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또 왜 그런 부분들도 있지. 어떤 부분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도덕적 성품을 가진 사람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일반적인 도덕적 관념에서 이만광년쯤은 멀어져 있기도 하는. 어쩌면 어떤 사회의 보편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도덕적 기준이야말로 어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되기에는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 라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한다. 뭐 도덕에 대한 토론을 하고 싶은건 아니니까 이쯤 해 두고. 중요한건 내가 그렇게 성인군자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다는 것. 


근데 왜 사람이란게 참 재미있어서, 그런게 있지 않나. 예를 들어 굉장히 씻기 싫어하는 사람이 손씻는 일 만큼은 거의 결벽적으로 매달린거나 한다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지만 굉장히 기기괴괴한 어떤 강박에 가까운 결벽들. 외려 그런 부분 하나쯤 없는 사람을 찾는게 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엔 몇 안되는 그 결벽성을 띄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타인의 공로를, 공적을 내것으로 하는 것 만큼은 스스로 도저히 견디질 못한다는것. 남이 이루어놓은 어떤 일에 숟가락을 얻는 것도 무척이나 꺼려 하고, 어쩌다보니 숟가락을 얹게 되었으면 반드시 '전 숟가락만 얹은 사람입니다'라고 밝혀야만 직성이 풀린다는것. 이게 사실 사회생활 하면서는 가끔 스스로 '아 그냥 닥치고 있으면 편할텐데...' 란 생각이 시시때때로 일어남에도 도무지 어찌해서 구축된 성격인지는 몰라도 그런 상황이 오면 짐짓 모른척 하고 에헴 하고 뒷짐지고 있는 것조차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내가 한 일, 내가 이뤄낸 것'과 '남이 한 일, 남이 이룬 공적'에 대한 결벽적 구분,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과 남이 잘하는 것'에 대한 어마무지하게 냉정한 평가로 인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았을 - 뻔 했던 상황에도 그러지 못하고 넘어갔던 기억들이 참 많이도 있다.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연관 에피소드 중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스토리는 딱 두개정도다. 어차피 오랫만에 떠오른 기억이니 한번 끄집어내 볼까나. 첫번째로 가장 선명한 결벽적 성향을 드러낸 건 고1 때였다. 체육대회가 있었던걸로 기억하고, 종목 중 제일 핫했던 것이 당시의 농구 열풍과 더불어 반대항으로 진행되었던 농구 경기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농구공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않았던 시절이라 실력은 뭐 엉망진청이었으나 순전히 '길다'는 이유만으로 반 대표(후보선수)로 뽑혔더랬지. 당시에 우리반은 워낙 농구를 잘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굳이 후보까지 차례가 돌아갈까 싶을만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근데 대회 첫경기에서 우리반 동시에 우승후보였던 다른 반과 붙게 되어 무지하게 고전을 하게 된거다. 종료 5분전 동점인 상황에서 선생님은 혈전에 지쳐 헥헥거리던 주전 한명을 빼고, 있는건 키밖에 없었던 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뭐 어떻게 한건지 기억도 안날만치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우연찮게 결정적인 공격 리바운드 3개를 연속으로 잡아냈고, 결국 결승골 어시스트를 하며 힘겹게 이겼더랬지. 후보였던 나는 급작스러운 경기 종료 후 급작스런 주가 상승. 역시 농구는 키가 있어야해 - 뭐 이런 말들로 떠들썩하게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 후 경기를 위해 다음날 반 자체적으로 가졌던 연습경기에선 대표팀 주전으로 뛰게 되었으나. 


여... 역시 히어로 타입은 아니었던 게지;


연습경기 중 리바운드를 잡고 내려오다가 다른 친구 발을 밟고 발목이 꽈직. 점심시간 지나니 발목이 통나무가 되어 있길래 병원에 갔더니 소견은 인대파열. 한달여간 반깁스를 하고 다니는 중 대회는 끝. 그리고 내 그 결벽적 성향은 첫판에서 어려운 상대를 이기고 이후 별다른 위기 없이 우승을 차지한 우리 반 농구 대표팀이 기념 촬영을 할때 드러났다. 반깁스를 하고 쩔룩거리며 가서 사진 촬영하는걸 보고 있는데, 애들이 막 와서 너도 뛰지 않았냐고, 같이 찍자고 그랬던 게다. 그리고 그야말로 개 단호박으로(...) 거절했지. 출전시간 5분에 공격 리바운드 3개 정도로 같은 팀에서 뛰고 우승에 기여했다고 티를 낸다는게 그렇게나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던거다. 아니 왜? 시상대에 같이 오른것도 아니고 그저 기념촬영일 뿐인데? ㅠㅠ 지금이라도 그랬을까? 라고 반문해보면 그래, 지금이라도 그랬을 것 같다(...) 어쨌든 이게 참 많이 아쉽기도 했었더랬는지, 꽤나 기억에 오래 남는 첫번째 사건이었고. 


두번째는 대학교 노래패 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뭐 노래패였으니 해마다 한번 있는 발표회에서 부르게 되는 대부분의 곡들은 합창이었지만, 꼭 한두곡 정도는 솔로가 있었더랬다. 남자 여자 한명씩 정도, 혹은 선곡에 따라 남자/여자 중 한명 정도. 그리고 사실 또 그게 뽀대가 나잖아(...) 그래서 누구나 노리곤 했었더랬지. 근데 이게 역시 좀 돋보이는 자리다 보니 동일한 실력이면 윗학번 우선 - 이 암묵적 동의처럼 행해지고 있었고, 그래서 군대 가기 전 1,2학년때는 매번 후보-까진 올라갔는데 정작 하진 못했더랬지. 또 워낙 형들이 노래를 잘 하시기도 하셨고. 


그리고 첫번째 기회가 온건 제대하고 3학년때였다. 선배들은 다수가 졸업, 동기들은 대부분이 악단. 선곡은 당시 무지 좋아했던 천지인의 '청계천 8가' 여러모로 좋은 기회였지만, 경쟁이 한명 있었는데 별명은 버펄로 (-_-;)란 무식한 별명이지만 생긴것과 목소리는 소년 그대로인 후배 L모군이었다. 그리고 선배들 앞에서 오디션을 봤었더랬지. 선배들의 반응은 뭐 둘다 나쁘지 않네 알아서 결정해라 - 였는데... 크흨 ㅠㅠ 놈이 잘했다. 잘하기도 잘했고, 솔직히 들어 보니 청계천 8가는, 놈의 목소리로 부르는 편이 훨씬 좋았어. 깔끔하게 니가 가라 하와이... 하고 말았더랬지. 그리고 최종 결정타는 4학년때였다. 1학년때부터 어쨌든 3번이나 솔로 후보에서 떨어졌지, 졸업 학번이지, 여론은 하세요 하세요 안말릴테니 하세요 였고, 선곡도 내가 자신있었던 노래였더랬다. 거기다 졸업반 안배까지 받아서 악단과 맞춰보는 건 딱 4번 정도만 해보자고 했어. 하긴 워낙 많이 부른 노래라 눈감고도 부를 자신은 있었는데. 근데, 그게


집이 망했어?!?!?!?!?!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장난의 운명인지 급작스러운 사고로 가세가 확 기울었더랬다. 원래 2학기쯤 휴학하고 1년은 뭐 좀 다른걸 해볼까 하던 계획은 완전히 무산. 급작스러운 인턴 참여, 집안 사고 수습에 정신없음 + 멘붕에 술술술 콤보가 터진거다. 그것도 이제 한참 준비해야 하는 기간에 딱 터져서, 얼추 의식 되찾고 수습이 되어간다 싶었던 시점이 어느새 발표회 1주 앞이었지. 근데 후배들이 얘기하는 거다. '형 이거 그렇게 지겹게나 불렀었는데... 그냥 리허설 전에 한번 맞춰보고, 리허설때 한번만 더 맞춰보고 가요. 지금 다른 사람 하기도 그렇고...' 고마웠더랬지. 사실 정말 정말 하고 싶었더랬어. 그냥 거기서 야 미안하다, 내가 일주일동안 혼자서라도 죽도록 연습할께... 이러고 슬쩍 넘어갔으면, 아마도 내 대학생활의 1/3쯤은 차지했던 노래패 활동은 마지막 화룡점정과도 같은 추억의 정점을 남긴채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던 거였는데...


차마 못하겠더라. 게다가 더 크게 나를 압박했던 건, 내가 회장을 할때도 그랬더랬어. 실수하고 못하고 그런건 넘어가도, 연습에 늦고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고 이런건 어마무지 혼냈더랬지. 근데 왕고랍시고, 졸업한답시고,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하고 양해를 구해서 다른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만 할 기회를 내가 가진다는게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더랬어. 하 참, 지금 생각해보니 또 막 잘한 듯 바보같은 듯 만감이 교차하네. 대신에 연습도 못 도와주고 그래서 아무도 할 사람 없다던 사회는 봤었더랬지. 그리고 무대 뒤편에서 멋지게 노래를 부르던 후배녀석을 보고 씁쓸하게 웃고 있었더랬고 말이다. 근데 뭐 어째. 그게 안되는걸. 나이를 먹고서 아직도 이런데 그때는 아마 그 똥고집이 더 심했더랬지. 별 수 있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엔 미련 갖고 그러는게 아니지. 낄낄. 아무튼 이 두개의 이야기는, 사실 조금은 그냥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 하고 넘어가는게 더 좋았을 수도 있음직한, 뭐 금전적인 이득이 걸리고 내가 그걸 취하면 누군가가 대단한 손해를 보고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필요 이상으로 완고했던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하는 에피소드다. 


사실 이게, 지금도 별 변함이 없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고서 좀 적당히 둥글둥글해진 면도 있어요. 과거 같았으면 펄쩍 뛰며 무슨 터무니없는! 을 외칠 것들도 에효 뭐 사람이 다 그런게지, 뭐 실수 한번 할 수도 있는게지 이렇게 넘어가는 것들도 제법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근데 이 부분만큼은 요지부동. 어디 프로젝트 하나 끝내고 나서 막 고생했다고 공치사 하고 그러는 자리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썩 기여도가 크지 않다 하면 딱 얘기해요. 누가 잘해서 묻어가서 편했다고. 이건 겸손과는 다른거다. 가끔 내가 판단하기에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같은걸 혼자 해결하고 나면 그거 얼마나 막 자랑하며 신나하는데. 아 역시 천잰가봐 막 이러면서(...) 심지어 평가시즌에도 그런다. 작년에도 딱, 미안한데 A가 한장이고 나머진 B다, C랑 너랑 둘중에 한장인데 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물어보길래 딱 5초도 고민 안하고 바로 대답했다. '올해는 왔다갔다 헛힘만 많이 쓰고 별로 한게 없어요. B면 된거죠' 라고. 수차례 강조하지만 잘난척이 아니다. 그냥 스스로에겐 엄청나게 자연스러운 프로세스인거다. A와 B, C, 그리고 나 - 에 대해 객관화시켜 기여도를 판단하고 잘한건 잘했다, 못한건 못했다 깔끔히 인정. 그게 스스로 가장 속 편한 일이라는걸 안다. 가끔 내가 한게 아닌 일을 누가 내가 한거라 생각하고 있을때면 좌불안석. 다른 사람을 건너서라도 반드시 내가 한게 아니라고 정정해줘야 속이 편한. 


장황하게 뭔 자랑질인것 마냥 써놨지만, 사실은 이게 그래서 더 곤욕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리고 그 햇수가 늘어나다보니 점점 더 못볼 꼴들이 자주 보이는게다. 후배의 아이디어를 자기 아이디어인냥 포장해서 팔아먹는, 드라마에서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당 상사들이 드라마에서만 나오는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지도 오래 되었지. 뭐 하나 하기로 했을 때 아무리 많이 쳐줘도 거기 기여한 포인트가 3%를 넘기 힘들어보이는 냥반이 막 말로는 자기가 한 120%는 다 한것처럼 떠벌이는걸 보는 것도 어디 한두번이랴. 내 공은 내 공이요 네 공도 내 공이다 이런 사람들이 참말 흔한거지. 이쯤되면 그냥 분위기에 편승해서 슬쩍 숟가락 하나 얹고 이러는건 애교에 가깝다. 숟가락 한개 더 놓고 라면 한 젓가락 덜어주는 건 뭐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이건 뭐 아이스크림 먹는데 한입만 해놓고는 막대기만 빼고 모조리 한입에 쳐넣는 얄미운 친구놈 보는 것 같은 경우가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 말이다. 내가 직접 겪는 것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일들이 허구헌날 이렇고 저런 일들이니 참 이게 다 뭔 난리냐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아저씨에서 그런 대사가 나왔던가. '아이 씨 깜빡이좀 켜고 들어와' 라고. 


너도 나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고, 뭐 밥그릇도 제한적이니 숟가락 하나쯤 얹는거야 좋다 이거다. 근데 좀,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깜빡이라도 켜고 들어오면 안될까. 거 미안한데 한숟갈만 먹자 - 이런거라도 어떻게 안되는 걸까. 비겁함 만큼 쉽게 습관화 되는 것도 없다. 남의 것을 멋대로 가져다 짜집기 한 후에 인용이라며 박박 우기는 꼴은 좀 안보고 살 수 없을까. 나이 지긋이 먹고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만이라도 좀 그런것들을 부끄러워 할 수는 없을까. 정히 남의 밥그릇을 멋대로 빌어 무얼 하려거든, 내가 이 밥그릇 가지고 한상 다시 크게 차려 우리 나눠 먹자꾸나 하고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 수는 없는걸까. 남의 공을 가지고 생색을 제가 내려거든 생색 내는 와중에 원래 공 있던 사람 한번 추어 올려 주는 추임새라도 한번 넣어주면 안될까 그말이다. 어쩌면 스스로 원인모를 강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해보는 그저 푸념일 지도 모르겠지만.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 라고 말하고 싶은 것. 어쩌면 페어 플레이를 바라는 누구나가 외치고 싶은, 그런게 아니냐는 거다.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 이야기 (2)  (4) 2014.10.27
강원도 이야기 (1)  (6) 2014.08.20
맛있는 인생  (4) 2014.07.22
냉면  (2) 2014.07.21
그저 잡담  (2) 2013.03.06

맛있는 인생

살이 차오른다 - 가자... 가 아니고, 아마도 최근 하고 있는 고민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민이다. 사실 고민을 하면서도 허 참 내가 이런 걸로 고민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라는 어이없음이 먼저 떠오르는 거다. 살이 찌고 있다. 한참을 어어어? 하는 사이에 아주 그냥 뽀독뽀독 살이 붙어가다가 요즘은 조-금 소강상태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물론, 살찌는 중년 남성들의 고민이 그냥 살이 찌는게 아닌 것처럼, 어김없이 배둘레햄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아니지, 어쩌면 더 심각한건 배둘레햄보다 얼굴일 수도 있지. 평소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다가도, 요즘은 우연찮게 찍힌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아주 그냥 몽달귀신인지 달걀귀신인지 대보름 귀신인지 얼굴이 빵빵 - 하니 동동 떠다닌다. 아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지난달인가 처가에 가서는 처제에게 무려! 형부, 얼굴에 코만 삐쭉 나온것 같네예... 까지 들었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 이 아니고 이 일을 어쩐다. 


더 통탄할 노릇인 건 여전히, 나의 이 괴로움들을 어디 하소연해봐도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이들조차 없다는 거다. 다이어트 해야겠어.. 라는 말만 꺼내면 대번 정색하며 얼씨구? 란 말이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그래 물론 아직 내 키의 평균체중에는 미달이지. 한 5키로 정도 남았나? 뭐 그리고 오랫만에 얼굴 보는 사람들은 죄다 얼굴 좋아졌네 이제 좀 사람같네 뭐 이런 얘기를 먼저 꺼내기도 하지. 야 네놈도 장가가더니 살이 찌긴 찌는구나 뽀하하하 장가 잘갔네 뭐 이런 소리 듣는거는 아내님 면도 있고 그러니 나쁘지 않다 쳐.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전에 산 바지들도 모조리 폐품으로 만드는 이 썩을놈의 배둘레헴과 호빵맨같은 부한 얼굴은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다고! 사진속에서 웃고 있는 오방떡같은 이놈이 나일리가 없다고! 위기라고! 움직여! 폐타이어라도 주워서 허리에 매고 동네라도 뛰어다니란 말이다! 그 배에 잘도 밥이란게 넘어가나 네놈은? 산소라도 흡입을 줄여!!!


...라고 해봐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분명히, 이 굉장히 어색한, 어서와 다이어터는 처음이지? 뭐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떠오르는 걸 몇가지 적어보자면... 그래 나이살. 우선은 나이살이지. 이게 분명히 다르다니까. 과거 무말랭이 체형으로 살던 시절 그렇게나 살찌려고 바득바득 애를 써봤지만 매번 실패했던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증량은 어떻게든 해볼 수가 있었는데 감량을 막을 수가 없었더랬지. 매일 저녁 운동하고 닭한마리를 쳐묵쳐묵해가면서 눈물겨운 3~4kg 를 찌워 놓으면 뭘해. 조-금 바쁜 프로젝트나 조-금 스트레스받는 일 같은거 하나 있으면 숨쉬기 운동만 해도 미칠듯한 폭풍감량이 자동으로 일어나는걸. 근데 이게 확.실.히 달라. 예전이었으면 아마 한 10kg 정도는 순식간에 빠져서 체중 하한 마지노선까지 위협했을 만큼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한해를 보내고 있는데 체중계 눈금은 요지부동. 마치 전진만 있고 후진은 없다는 남녀간의 스킨쉽 진도처럼 고스란히 멈춰서 답보상태가 될지언정 감량에 이르지 않는 건 역시 나이의 영향을 꼽을 수 밖에 없는거다. 장황하게 썼다마는 뭘, 늙은거지. 과거처럼 뭐 좀 한다고 칼로리가 내일의 죠처럼 활활 불타올라서 잿더미만 남고 그러지 않는게야. 아 갑자기 쓰다보니 왜 눈물이...


또 있지. 결혼빨. 야 나는 결혼 전에 주위 어르신들이 장가가야 살찐다 - 라는 말이 그냥 뭐 용기를 얻으라고 하시는 말인줄 알았지. 아니에요 여러분. 에지간 - 하면 장가가면 살찝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냐. 혼자라는게 때론 지울수 없는 낙인같아 살아가는게 나를 죄인으로 만들던 뭐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서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때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 야식! 야식! 폭풍야식! 술! 닭! 소화가 잘되는 고기! (...) 게다가 매일같이 퇴근이 늦으니 아주 늦은 시간에 먹는 폭풍야식이라는 것도 가산점! 그래 맞다. 사실 이러고 살이 안찌길 바라면 그게 나쁜놈이지. 아니, 과거에도 야식을 안먹던건 아니었으니 그렇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던 이전이 비정상이었던 게지. 으찌되었건 확실한 결혼빨도 이 체중 증가의 원인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이것 말고도 사실 잡다구리하게는 몇가지 더 있지. 폭풍야근과 피로로 인한 운동부족, 면식수행 등 밀가루 즐겨찾기... 그러나, 사실 가장 핵심되는 이유는 이것들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곁가지에 불과해. 나를 찌운건 8할이 OO 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적이고도 결정적인 이유란 것은. 


'맛'에 눈을 뜬거지. 맛.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과거 그렇게나 살이 안찌던 시절 주변의 뽀독뽀독 살이 잘도 오르는 친구들을 모니터링하며 내렸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살이 잘 찌지 않는 사람의 경우(체질 때문이라거나 하는 뭐 이런걸 배제하고 그냥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같은 걸 먹어도 '맛없게' 먹는다.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깨작거린다'는 거지. 식탐도 없고, 뭘 먹어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른 사람들이 보기엔 저거 왜 저렇게 깨작거려 하는 식으로 먹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거지. 단적인 예를 들면 같은 고기를 먹더라도 괜히 다 구워진 고기를 뒤척뒤척 하다가 고기만 쏠랑쏠랑 집어먹는 사람과 상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의 혼돈의 카오스, 먹을 수 없는 것만 빼고 다 올려서 쌈싸먹어주마! 이렇게 먹는 사람과의 차이라는 거다. {김치,계란후라이,간장,밥} 이라는 한정된 메뉴가 있다 해도 계란후라이를 반숙해서 밥위어 얹어 노른자를 탁 터뜨리고 간장을 넣고 비빈후에 매 숟가락에 김치를 척척 찢어 올려서 먹는 사람과 반찬도 없네... 하며 깨작거리는 사람과의 차이야 있을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최근, 늘어나는 배둘레햄을 끌어안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가 아니고 생각하다보니 느낀건 바로,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저것이라는 것. 딱히 없던 식탐이 생기거나 한건 아니지만 적어도 '맛'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맛'있게 먹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것. 그 차이랄까. 


무슨 산해진미를 먹겠다고 -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식당 앞에서 줄서는걸 치과 가는것과 동급으로 싫어하던 인간이 맛집이라고 하면 제법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뭘 먹든지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 라고 하며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허기를 채우는 목적'외에는 하는 일이 없던 인간이 이제는 오늘은 뭣이 땡기네 하며 땡기는 음식을 찾아 나서는 날들도 잦아졌다(많은 경우 술안주라는 것은 안자랑) 심지어 아주 가끔이지만 요리도 한다!(게다가 내가 지금껏 했던 요리들은... 나쁘지 않다!) 어머 저건 먹어봐야 해! 하는 것들도 종종 생긴다. 어쩐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도로 찾아가는 기분인거다.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이나 열광했던(그래서 그렇게 통통했었더랬지), 우리 OO이는 먹는게 복이 있어~ 라고 항상 흐뭇하게 웃어주시던 외할머니의 손맛이 가득 담겼던 음식들과 멀어진 이후로 잃어버렸던 '맛'을 말이다. 대략 15세 이후로 20여년동안을 맛없는 인간으로 살았더랬다. 재미있게도 연애로 인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의 종류는 하나 둘씩 늘어났으나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맛'의 즐거움을 이제야 다시 느끼게 된거다. 


어쩌면 눈물나게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 가며 사실 즐길 거리라는 것이 그렇게 늘어만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친구들과 뭔 별다른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꺄르륵 꺄르륵 넘어가던 어린 시절과는 다른게다. 이제사 식도락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을 안다. 맛있는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를 안다. 정성들여 차린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 주어 고맙다고, 먹는게 예쁘다고 해주는 이를 바라보며 나 또한 조금은 부끄럽지만 기쁘고 즐겁다. 맛있는 집에 친구들을 데려가서 오 - 하고 감탄사를 내뱉을때 으쓱해하는 즐거움을 안다. 여전히 썩 좋아할 수는 없는 식당 앞에서의 대기도, 맛의 즐거움을 알기에 어느 정도는 견딜 만 하다. 여전히 서툴지만 한참을 낑낑대며 무언가를 만들어놓고, 간을 맞추면서 맛을 볼때 제법 그럴싸한데? 라고 하며 자뻑하는 즐거움도 안다. 어쩌면 단순히 '맛'의 즐거움을 아는데만 그치는게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수한 음식들의 무수한 맛들처럼, 맛의 즐거움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즐거움들이란 얼마나 현란한가. 내 이제사 그 즐거움들의 앞에 다시 발을 디딘거다. 

그래, 이것은 뱃살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해서 맛의 즐거움에 대한 현학적 고찰을 통해 비겁한 변명을 하려는 글...은 아니지만 뭐 그래, 일단 죽어가는 얼굴 라인과 볼링핀형(?) 체형에서는 좀 벗어나야 한다 쳐도, 인생이란게 뭐 그런게 아닌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마냥 좋기만 한것도 마냥 싫기만 한것도 좀처럼 있기 힘든 그런. 일단은 즐겨도 좋을 것들은 즐겨두자. 맛있는 인생이다. 당신의 인생도 충분히 맛있어지길. 어떤 면에서든 말이다. 

그나저나, 저녁엔 또 뭘 먹는다.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 이야기 (1)  (6) 2014.08.20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4) 2014.07.24
냉면  (2) 2014.07.21
그저 잡담  (2) 2013.03.06
1년만의 우울  (7) 2013.02.25

냉면

일요일 저녁이었다. 우연찮게 오후 늦게 어딜 좀 나가야 했던지라, 아내와 함께 나간 김에 저녁을 먹고 들어오기로 했다. 동네의 아끼는 식당중 세손가락 안에 드는 샤브샤브집에 앉아 주문을 했었더랬다. 아으, 역시 여름엔 시원한 집이 제일 좋은집이지 -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한접시 가득 야채며 고기들이 올라온다. 배도 고팠더랬지. 육수를 팔팔 끓여서 야채를 집어넣고, 고기를 담궈 휘휘 저어 꺼내어 먹고. 주말의 만찬인데 술 한잔이 빠질 수 있나. 신나게 먹고 마시던 참이었다. 워낙 먹는데 열중하느라 주위에 누가 앉아있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었더랬는데 옆 테이블에서 작은 소요가 일었다. 대략 짜증이 가득한 - 목소리가 울리는걸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중년쯤 되어보이는 부부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보이는 어린 소녀가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약간 하이톤으로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엄마로 추측되는 여자분, 그리고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종업원 아주머니. 


뭐 남이 클레임 걸고 그러는걸 듣고 싶어 듣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워낙 조용한 식당에 목소리가 뾰족하게 울리기에 절로 귀로 날아들어오는 내용을 들어보니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샤브샤브 집이지만 삼겹살 등의 구운 고기 메뉴가 있었고, 구운 고기 메뉴를 시키면 후식 냉면을 주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샤브샤브를 먹고 나서 후식 냉면을 주문했더니 고기를 먹은 테이블에만 가능하다 - 해서 그런게 어딨냐 어쩌냐 하고 있었던것. 나중에 들어보니 요즘 하도 덥고 해서 고기 주문 손님도 없기에 일시적으로 냉면 메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후식 냉면이건 그냥 냉면이건. 그렇다고 굉장히 진상 손님마냥 목청 높여가며 아줌마야 아줌마야 냉면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어 먹으리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니 그냥 냉면이라도 안돼요? 어떻게 안돼요? 이렇게 간헐적인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는데 그 텀이 좀 짧았더라는 것이다. 첨에야 뭐 상황을 잘 모르니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더랬지. 아니 여기 뭔 냉면 맛집인가 어째 그리 냉면에 매달릴꼬. 게다가 이미 남자분도 여자분도 먹을만치 먹은듯, 아우 배불러 하는 소리를 조금 전에도 들은 것 같았었는데 말이다. 허 뭐, 남이사 냉면을 먹건 말건 내것이나 마저 신나게 먹자 하고 건더기들이 슬슬 사라져가는 육수에 칼국수를 쓱삭 밀어넣는 순간 들린는, 조금 전보다 조금은 더 날카로워진 여자분의 목소리. 


"글쎄 안된다잖아! 오늘 냉면이 없대! 떼를 써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그렇게 먹고 싶어? 그럼 이따가 나가서 가는 길에 냉면집에 들려서 사준다잖아!"


허허, 그제야 상황을 좀 짐작할 수 있었으니, 이미 그 즈음부터 눈시울이 벌개지기 시작한 어린 소녀다.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실망한 표정을 머금고는, 조금 아까처럼 다그치다가, 또 부드러운 말로 살살 어르며 달래다가, 이것저것 음식을 떠서 입가에 가져다주기도 하다가, 도로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르고 달래기에도 지친 엄마가 맘대로 해, 먹지 마! 라고 하고는 등을 돌리자 인제는 아주 벽쪽으로 돌아앉아서 고개를 떨구고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터무니없는 떼를 쓰는 딸네미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빠는 그제서야 우물쭈물하며 울지 말라고 달래기에 거들고 나섰다. 인제는 많이 언성이 낮아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울지 마, 이따 가면서 냉면 먹자. 아니 이런걸로 울면 어떻게 하니, 울 일도 아닌데... 한참을 그렇게 달랬을까, 그제야 눈물을 멈추고 다시 상가로 앉은 소녀다. 또 잠시 지나자 좀 전까지 언제 그렇게 서럽게 울었냐는듯 방긋방긋 웃으며 아빠가 먹여주는 죽을 맛있게 삼키고 있다. 어쩐지 그제야 나도 좀 마음이 좋아져 다시 내 접시며 술잔에 집중한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쯔음으로 이제는 확연히 풀린 엄마의, 차분한 훈계가 들려온다. 


"아무리 그래도, 너 오늘처럼 떼쓰고 그러면 안돼. 식당 아주머니도 안된다는데 떼를 쓴다고 그게 되는게 아니잖아. 그리고 이런걸로 울고 그러는 것도 나빠. 다음부터 그러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고 있던 아이였다. 잠시 후 먼저 자리를 일어나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그래도 웃음이 가득하다. 내 앉은키만은 할까 한 어린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식당 밖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남아있는 술잔에 동동 떠다닌다. 무엇하나 포기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나 어린 날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포기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어째서 내가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괜스레 심통이 먼저 치밀고, 그 때문에 한마디 혼이라도 나고 나면 삽시간에 서러움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어찌되었거나 누군가의 어르고 달램 - 을 받고, 그리고 마지못해 포기해야 함을 깨닫고 수용하게 되면 참으로 다행이다. 운 나쁘게도, 어떤 어린이들은 갖기도 전에 빼앗기고, 아예 가져본 경험조차 없이 자라나곤 한다. 포기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들은 많은 경우 고스란히 결핍으로 남고, 폭력 따위의 굉장히 불유쾌한 강압에 의한 강제된 포기는 가벼운 할큄이든 깊은 자상이든 상처로 남게 마련이다. 포기하는 방법을 잘 배워야 하는게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각박해지고, 사회는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떠나 아이들에게 '양질의 포기법'을 가르쳐주는데 나날이 인색해진다. 더러는 스스로도 그렇게 포기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한 것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더러는 스스로의 서럽고 괴로웠던 포기의 경험들에 대한 보상 심리로 아이들에게 적절히 포기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게을러지게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어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결정장애에 시달리게 되거나, 더러는 포기를 모르는 불꽃남자(혹은 여자)로 자라나서 내것이 되지 못할 바에야 모조리 불타버려라 하는 식의 극단적 행동을 보이는 괴물로 자라기도 한다. 반대로 포기하면 편해 하지마가 어린 시절부터 아주 깊숙히 배어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것들까지도 쉽사리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게다. 어떤 쪽이든 좋지 못하다는것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배움 중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배우지 못하면 평생을 걸쳐 그 배우지 못함이 두고 두고 삶을 괴롭히는. 포기하는 방법이란게 바로 그런 배움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잘 가르치려면? 뭔 매뉴얼이 있겠나, 교본이 있겠나. 포기의 영재로 키웁시다 따위의 자기개발서가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다. 방법은 하나다. 아이들의 인생에 걸친 현명한 포기(?)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 어른들의 인내다. 무작정 다그치지도, 몽둥이를 휘두르지도 말고, 무조건 오냐오냐 우쭈쭈쭈 잘한다 잘한다 내새끼 하지도 말고. 때론 단호하되 냉정하지만은 않게. 끈덕지게 설득하고, 바른 선을 그어주는 인내. 아마도 그 어린 소녀는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샤브샤브 끝에 나오는 죽까지 남김없이 먹고 배부른 숨을 몰아쉬던 부모는 집에 가다가 들리는 냉면집이 내킬 리가 없었겠지만, 부모에게 떼를 써가며샤브샤브를 먹지 않고 버티면서까지 바라던 시원한 냉면 면빨을 호로록 호로록 빨아들이던 그 날에 자신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결국 떼를 써서 쟁취해낸 냉면이 아닌, 그렇게나 끈질긴 부모의 인내와 그에 못지 않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설령 깨닫지 못하더라도, 귀여운 소녀가 어여쁜 아가씨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가는 먼 훗날까지 무수히 부딪치게 될 무수한 버림과 취함의 순간에 따뜻한 등불이 될 거라는 것을.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4) 2014.07.24
맛있는 인생  (4) 2014.07.22
그저 잡담  (2) 2013.03.06
1년만의 우울  (7) 2013.02.25
가족의 탄생 - 2 -  (30) 2012.03.31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