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그러니까 스스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뭐 유난한 도덕심으로 무장된 인간은 아니다. 그냥 저냥 사회의 보편 타당한 도덕적 기준에 그럭 저럭 맞춰가며 살아가는 정도지. 조금 더 나가서는 대단한 도덕군자처럼 보이는 - 사람들을 조금 경계하는 편이기도 하다. 아마도 살아오며 그렇게 자신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타인에게 강제하는 이들이 정작 스스로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견고했던 도덕적 잣대를 무슨 흐물흐물 물렁뼈같은 것으로 삽시간에 전환하여 적용하는 것을 제법 많이 봤던 탓일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또 왜 그런 부분들도 있지. 어떤 부분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도덕적 성품을 가진 사람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일반적인 도덕적 관념에서 이만광년쯤은 멀어져 있기도 하는. 어쩌면 어떤 사회의 보편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도덕적 기준이야말로 어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되기에는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 라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한다. 뭐 도덕에 대한 토론을 하고 싶은건 아니니까 이쯤 해 두고. 중요한건 내가 그렇게 성인군자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다는 것.
근데 왜 사람이란게 참 재미있어서, 그런게 있지 않나. 예를 들어 굉장히 씻기 싫어하는 사람이 손씻는 일 만큼은 거의 결벽적으로 매달린거나 한다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지만 굉장히 기기괴괴한 어떤 강박에 가까운 결벽들. 외려 그런 부분 하나쯤 없는 사람을 찾는게 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엔 몇 안되는 그 결벽성을 띄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타인의 공로를, 공적을 내것으로 하는 것 만큼은 스스로 도저히 견디질 못한다는것. 남이 이루어놓은 어떤 일에 숟가락을 얻는 것도 무척이나 꺼려 하고, 어쩌다보니 숟가락을 얹게 되었으면 반드시 '전 숟가락만 얹은 사람입니다'라고 밝혀야만 직성이 풀린다는것. 이게 사실 사회생활 하면서는 가끔 스스로 '아 그냥 닥치고 있으면 편할텐데...' 란 생각이 시시때때로 일어남에도 도무지 어찌해서 구축된 성격인지는 몰라도 그런 상황이 오면 짐짓 모른척 하고 에헴 하고 뒷짐지고 있는 것조차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내가 한 일, 내가 이뤄낸 것'과 '남이 한 일, 남이 이룬 공적'에 대한 결벽적 구분,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과 남이 잘하는 것'에 대한 어마무지하게 냉정한 평가로 인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았을 - 뻔 했던 상황에도 그러지 못하고 넘어갔던 기억들이 참 많이도 있다.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연관 에피소드 중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스토리는 딱 두개정도다. 어차피 오랫만에 떠오른 기억이니 한번 끄집어내 볼까나. 첫번째로 가장 선명한 결벽적 성향을 드러낸 건 고1 때였다. 체육대회가 있었던걸로 기억하고, 종목 중 제일 핫했던 것이 당시의 농구 열풍과 더불어 반대항으로 진행되었던 농구 경기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농구공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않았던 시절이라 실력은 뭐 엉망진청이었으나 순전히 '길다'는 이유만으로 반 대표(후보선수)로 뽑혔더랬지. 당시에 우리반은 워낙 농구를 잘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굳이 후보까지 차례가 돌아갈까 싶을만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근데 대회 첫경기에서 우리반 동시에 우승후보였던 다른 반과 붙게 되어 무지하게 고전을 하게 된거다. 종료 5분전 동점인 상황에서 선생님은 혈전에 지쳐 헥헥거리던 주전 한명을 빼고, 있는건 키밖에 없었던 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뭐 어떻게 한건지 기억도 안날만치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우연찮게 결정적인 공격 리바운드 3개를 연속으로 잡아냈고, 결국 결승골 어시스트를 하며 힘겹게 이겼더랬지. 후보였던 나는 급작스러운 경기 종료 후 급작스런 주가 상승. 역시 농구는 키가 있어야해 - 뭐 이런 말들로 떠들썩하게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 후 경기를 위해 다음날 반 자체적으로 가졌던 연습경기에선 대표팀 주전으로 뛰게 되었으나.
여... 역시 히어로 타입은 아니었던 게지;
연습경기 중 리바운드를 잡고 내려오다가 다른 친구 발을 밟고 발목이 꽈직. 점심시간 지나니 발목이 통나무가 되어 있길래 병원에 갔더니 소견은 인대파열. 한달여간 반깁스를 하고 다니는 중 대회는 끝. 그리고 내 그 결벽적 성향은 첫판에서 어려운 상대를 이기고 이후 별다른 위기 없이 우승을 차지한 우리 반 농구 대표팀이 기념 촬영을 할때 드러났다. 반깁스를 하고 쩔룩거리며 가서 사진 촬영하는걸 보고 있는데, 애들이 막 와서 너도 뛰지 않았냐고, 같이 찍자고 그랬던 게다. 그리고 그야말로 개 단호박으로(...) 거절했지. 출전시간 5분에 공격 리바운드 3개 정도로 같은 팀에서 뛰고 우승에 기여했다고 티를 낸다는게 그렇게나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던거다. 아니 왜? 시상대에 같이 오른것도 아니고 그저 기념촬영일 뿐인데? ㅠㅠ 지금이라도 그랬을까? 라고 반문해보면 그래, 지금이라도 그랬을 것 같다(...) 어쨌든 이게 참 많이 아쉽기도 했었더랬는지, 꽤나 기억에 오래 남는 첫번째 사건이었고.
두번째는 대학교 노래패 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뭐 노래패였으니 해마다 한번 있는 발표회에서 부르게 되는 대부분의 곡들은 합창이었지만, 꼭 한두곡 정도는 솔로가 있었더랬다. 남자 여자 한명씩 정도, 혹은 선곡에 따라 남자/여자 중 한명 정도. 그리고 사실 또 그게 뽀대가 나잖아(...) 그래서 누구나 노리곤 했었더랬지. 근데 이게 역시 좀 돋보이는 자리다 보니 동일한 실력이면 윗학번 우선 - 이 암묵적 동의처럼 행해지고 있었고, 그래서 군대 가기 전 1,2학년때는 매번 후보-까진 올라갔는데 정작 하진 못했더랬지. 또 워낙 형들이 노래를 잘 하시기도 하셨고.
그리고 첫번째 기회가 온건 제대하고 3학년때였다. 선배들은 다수가 졸업, 동기들은 대부분이 악단. 선곡은 당시 무지 좋아했던 천지인의 '청계천 8가' 여러모로 좋은 기회였지만, 경쟁이 한명 있었는데 별명은 버펄로 (-_-;)란 무식한 별명이지만 생긴것과 목소리는 소년 그대로인 후배 L모군이었다. 그리고 선배들 앞에서 오디션을 봤었더랬지. 선배들의 반응은 뭐 둘다 나쁘지 않네 알아서 결정해라 - 였는데... 크흨 ㅠㅠ 놈이 잘했다. 잘하기도 잘했고, 솔직히 들어 보니 청계천 8가는, 놈의 목소리로 부르는 편이 훨씬 좋았어. 깔끔하게 니가 가라 하와이... 하고 말았더랬지. 그리고 최종 결정타는 4학년때였다. 1학년때부터 어쨌든 3번이나 솔로 후보에서 떨어졌지, 졸업 학번이지, 여론은 하세요 하세요 안말릴테니 하세요 였고, 선곡도 내가 자신있었던 노래였더랬다. 거기다 졸업반 안배까지 받아서 악단과 맞춰보는 건 딱 4번 정도만 해보자고 했어. 하긴 워낙 많이 부른 노래라 눈감고도 부를 자신은 있었는데. 근데, 그게
집이 망했어?!?!?!?!?!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장난의 운명인지 급작스러운 사고로 가세가 확 기울었더랬다. 원래 2학기쯤 휴학하고 1년은 뭐 좀 다른걸 해볼까 하던 계획은 완전히 무산. 급작스러운 인턴 참여, 집안 사고 수습에 정신없음 + 멘붕에 술술술 콤보가 터진거다. 그것도 이제 한참 준비해야 하는 기간에 딱 터져서, 얼추 의식 되찾고 수습이 되어간다 싶었던 시점이 어느새 발표회 1주 앞이었지. 근데 후배들이 얘기하는 거다. '형 이거 그렇게 지겹게나 불렀었는데... 그냥 리허설 전에 한번 맞춰보고, 리허설때 한번만 더 맞춰보고 가요. 지금 다른 사람 하기도 그렇고...' 고마웠더랬지. 사실 정말 정말 하고 싶었더랬어. 그냥 거기서 야 미안하다, 내가 일주일동안 혼자서라도 죽도록 연습할께... 이러고 슬쩍 넘어갔으면, 아마도 내 대학생활의 1/3쯤은 차지했던 노래패 활동은 마지막 화룡점정과도 같은 추억의 정점을 남긴채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던 거였는데...
차마 못하겠더라. 게다가 더 크게 나를 압박했던 건, 내가 회장을 할때도 그랬더랬어. 실수하고 못하고 그런건 넘어가도, 연습에 늦고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고 이런건 어마무지 혼냈더랬지. 근데 왕고랍시고, 졸업한답시고,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하고 양해를 구해서 다른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만 할 기회를 내가 가진다는게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더랬어. 하 참, 지금 생각해보니 또 막 잘한 듯 바보같은 듯 만감이 교차하네. 대신에 연습도 못 도와주고 그래서 아무도 할 사람 없다던 사회는 봤었더랬지. 그리고 무대 뒤편에서 멋지게 노래를 부르던 후배녀석을 보고 씁쓸하게 웃고 있었더랬고 말이다. 근데 뭐 어째. 그게 안되는걸. 나이를 먹고서 아직도 이런데 그때는 아마 그 똥고집이 더 심했더랬지. 별 수 있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엔 미련 갖고 그러는게 아니지. 낄낄. 아무튼 이 두개의 이야기는, 사실 조금은 그냥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 하고 넘어가는게 더 좋았을 수도 있음직한, 뭐 금전적인 이득이 걸리고 내가 그걸 취하면 누군가가 대단한 손해를 보고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필요 이상으로 완고했던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하는 에피소드다.
사실 이게, 지금도 별 변함이 없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고서 좀 적당히 둥글둥글해진 면도 있어요. 과거 같았으면 펄쩍 뛰며 무슨 터무니없는! 을 외칠 것들도 에효 뭐 사람이 다 그런게지, 뭐 실수 한번 할 수도 있는게지 이렇게 넘어가는 것들도 제법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근데 이 부분만큼은 요지부동. 어디 프로젝트 하나 끝내고 나서 막 고생했다고 공치사 하고 그러는 자리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썩 기여도가 크지 않다 하면 딱 얘기해요. 누가 잘해서 묻어가서 편했다고. 이건 겸손과는 다른거다. 가끔 내가 판단하기에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같은걸 혼자 해결하고 나면 그거 얼마나 막 자랑하며 신나하는데. 아 역시 천잰가봐 막 이러면서(...) 심지어 평가시즌에도 그런다. 작년에도 딱, 미안한데 A가 한장이고 나머진 B다, C랑 너랑 둘중에 한장인데 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물어보길래 딱 5초도 고민 안하고 바로 대답했다. '올해는 왔다갔다 헛힘만 많이 쓰고 별로 한게 없어요. B면 된거죠' 라고. 수차례 강조하지만 잘난척이 아니다. 그냥 스스로에겐 엄청나게 자연스러운 프로세스인거다. A와 B, C, 그리고 나 - 에 대해 객관화시켜 기여도를 판단하고 잘한건 잘했다, 못한건 못했다 깔끔히 인정. 그게 스스로 가장 속 편한 일이라는걸 안다. 가끔 내가 한게 아닌 일을 누가 내가 한거라 생각하고 있을때면 좌불안석. 다른 사람을 건너서라도 반드시 내가 한게 아니라고 정정해줘야 속이 편한.
장황하게 뭔 자랑질인것 마냥 써놨지만, 사실은 이게 그래서 더 곤욕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리고 그 햇수가 늘어나다보니 점점 더 못볼 꼴들이 자주 보이는게다. 후배의 아이디어를 자기 아이디어인냥 포장해서 팔아먹는, 드라마에서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당 상사들이 드라마에서만 나오는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지도 오래 되었지. 뭐 하나 하기로 했을 때 아무리 많이 쳐줘도 거기 기여한 포인트가 3%를 넘기 힘들어보이는 냥반이 막 말로는 자기가 한 120%는 다 한것처럼 떠벌이는걸 보는 것도 어디 한두번이랴. 내 공은 내 공이요 네 공도 내 공이다 이런 사람들이 참말 흔한거지. 이쯤되면 그냥 분위기에 편승해서 슬쩍 숟가락 하나 얹고 이러는건 애교에 가깝다. 숟가락 한개 더 놓고 라면 한 젓가락 덜어주는 건 뭐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이건 뭐 아이스크림 먹는데 한입만 해놓고는 막대기만 빼고 모조리 한입에 쳐넣는 얄미운 친구놈 보는 것 같은 경우가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 말이다. 내가 직접 겪는 것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일들이 허구헌날 이렇고 저런 일들이니 참 이게 다 뭔 난리냐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아저씨에서 그런 대사가 나왔던가. '아이 씨 깜빡이좀 켜고 들어와' 라고.
너도 나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고, 뭐 밥그릇도 제한적이니 숟가락 하나쯤 얹는거야 좋다 이거다. 근데 좀,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깜빡이라도 켜고 들어오면 안될까. 거 미안한데 한숟갈만 먹자 - 이런거라도 어떻게 안되는 걸까. 비겁함 만큼 쉽게 습관화 되는 것도 없다. 남의 것을 멋대로 가져다 짜집기 한 후에 인용이라며 박박 우기는 꼴은 좀 안보고 살 수 없을까. 나이 지긋이 먹고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만이라도 좀 그런것들을 부끄러워 할 수는 없을까. 정히 남의 밥그릇을 멋대로 빌어 무얼 하려거든, 내가 이 밥그릇 가지고 한상 다시 크게 차려 우리 나눠 먹자꾸나 하고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 수는 없는걸까. 남의 공을 가지고 생색을 제가 내려거든 생색 내는 와중에 원래 공 있던 사람 한번 추어 올려 주는 추임새라도 한번 넣어주면 안될까 그말이다. 어쩌면 스스로 원인모를 강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해보는 그저 푸념일 지도 모르겠지만. 네 이웃의 공로를 탐하지 말라 - 라고 말하고 싶은 것. 어쩌면 페어 플레이를 바라는 누구나가 외치고 싶은, 그런게 아니냐는 거다.
'가장보통의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 이야기 (2) (4) | 2014.10.27 |
---|---|
강원도 이야기 (1) (6) | 2014.08.20 |
맛있는 인생 (4) | 2014.07.22 |
냉면 (2) | 2014.07.21 |
그저 잡담 (2) | 2013.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