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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05 일은 일, 사람은 사람.

일은 일, 사람은 사람.


팀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일 굇수(?)'를 꼽으라면 C부장님과 C차장님이다. C차장님이야 일 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 내가 자신있게 롤 모델이라고 얘기하고 다니시는 분이시고 C부장님은 조금 캐릭터는 다르지만 일단 '일'에 대해서만큼은 뭐 누가 토를 달 건덕지가 없이 끝장나는 분이시다. 사실 C부장님이 C차장님의 선배기도 하시고. 

일에 대해서는 뭐 그렇게 거의 쌍벽을 이룬다 하는데 위에 얘기했듯 두 분의 캐릭터는 엄청 다른게 좀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장 간단한 차이는 리더쉽의 차이. C차장님이 함께 으쌰으쌰 - 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면 C부장님은 파워 리딩(-_-;), 나를 따르라 스타일. 그 외에도 이래저래 참 다르신 두분인데(심지어 외모도 좀 마이 달라) 어느날 문득 발견한 두 분의 공통분모가 있었으니, 이런거였다. 

일과 사람의 분리 - 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 그걸 봤을땐 참 적응이 안되었더랬다. 이를테면 스타일이 다르시니 일하다가 다른 사람 갈구는 횟수야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일단 갈구면 두 분 다 장난 아니게, 사람 뼈와 살을 분리할 기세로 갈구신다는 공통점은 있다. 근데 더 재미있는건 두 분 다 뒤끝이 없고 깔끔하다는 거다. 아니 뭐랄까, 정말 첨엔 과장 좀 붙이면 무슨 이중인격같았어. 일때문에 막 옆에서 보기에도 사지가 오그라들게 사람 갈군게 바로 몇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딱 그 몇시간 지나고 나서 저녁먹는 자리나 술자리나 가지고 그러면 이게 완전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그런거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변에서 보기엔 꽤 놀라울 정도. 그게 뭐 정말 갈궜으니 잘해줘야지, 채찍과 당근이제! 이러면서 의식적으로 하는거면 어느정도 티가 날텐데 그게 도무지 아닌것 같은거다. 의식적으로는 저런 표정과 저런 멘트와 저런 것들이 나올 수가 없어! 저건 분명 해리성 인격장애... 가 아니고, 아무튼. 

그게 참 놀랍기도 했던게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아무리 일때문에 티격태격한거라 해도 일단 치고받고 했으면 앙금같은게 남게 마련이지. 근데 그게 전-혀 없는거다. 아니 속으로야 어떨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태도에서 전혀 그게 드러나질 않아. 이게 정말 처음엔 와 - 했었더랬다. 저것도 짠밥을 먹으면 되는건가. 짠밥을 먹고 통이 커지는건가 아니면 짠밥을 먹고 싫은 것도 티를 안내는 스킬이 느는 건가. 거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로세. 뭐 그런 생각들을 한참 전에 했었더랬다. 대략 두어해쯤 전이었나. 그런데. 연말 연시부터 헬로 끌려들어와서 어느 순간 갑자기. 

뭐여, 이런거였나. 어느 순간 카피하고 있구나 또. 

이게 그러니까 정말, 우리팀에서 하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옆팀 프로젝튼데 빵꾸가 났다는걸 처음엔 팀장님이 다른 대리님께 지원좀 해주라고 얘기했다가 아으 팀장님 제발, 거기 프로젝트 담당자가 쒯이에요. 말이 안통해요. 저는 도저히 발담구기 싫네요 하고 고사하는 바람에 또 러시안 룰렛 탄환을 (-_-;) 내가 맞고 온건데 왔더니 과연 명불허전인게다. 경험이 부족해서 우왕좌왕하는건 그렇다치고 도저히 이렇게 되기 힘든 프로젝트를 이모양까지 끌고 왔음에도 여전히 고집만 세고 좀처럼 뭘 같이 얘기하거나 하려 들지를 않고... 연말만 해도 정말 빡쳤더랬지. 솔직히 까놓고 양팀 팀장님들에게 딱 메일로 분석된 문제점만 딱딱 정리해서 보내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우자, 차라리 내가 끌고 가겠다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더랬어. 

아으 근데 그게 정말 망할놈의 성격상 (ㅠㅠ) 고자질같은 느낌이 자꾸 들고 그래서 메일을 썼다 지웠다 하며 옆에서 한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체크하고 체크하고 체크하고 계속 압박해가며 어느정도, 대형 똥 두개 빼고는 정리되어가는 분위기를 만들어놨는데 그게 어느 순간 보니 그러고 있더라. 업무시간엔 옆에 붙어서 계속 쪼고 말하고 은근히 갈구고 압박하고 그러고 있다가 뭐 맨날 야근이니 둘이 같이 저녁먹으러 가고 그러면 또 엄청 사근사근하게 대하고 있어(...) 워낙 말수가 적은 분인지라 먼저 막 이거저거 물어보고, 올해부터 팀이 바뀌어 같은 팀이 되었으니 이거저거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얘기도 해주고, 가족 얘기나 그런것도 먼저 물어보고 같이 얘기하고. 아 정말 처음에 와서 일 벌어진 모양새 보고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하겠구나 우아아앙? 이런 기분이었는데. ㅎㅎ 그게 스스로 우습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일단 저거 좋다 그러면 잘 배우는 편이라니까. 좋아하는 사람의 어떤것들은 쉽게 닮는 스타일이고. 

하기사, 일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것냐. 그분이라고 좋아서 하루 네시간씩 출퇴근시간 써가면서 한살짜리 아이와 임신한 와이프를 두고 불철주야 하고 있것어. 뭐, 그런 생각을 하면 또 짠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사담을 나누다 보니 사람은 또 참 착해. 되게 순하고, 다만 말수가 원체 적고 말주변이 좀 없고... 그러니 뭐. 그래, 일이야 잘 되지 않으면 둘다 고생만 하고 욕만 쳐듣게 될 수 있으니 일은 일단 잘 되게 해야 하는건데 사람에 딱히 거릴 두진 말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 마인드. 그래서 조금 숨고를 때 되면 철수하기 전에 황량한 벌판에 떨렁 하나 있는 통닭집에서 맥주라도 한잔 하자고 약속했다. 술도 잘 못드시는 분이라 뭐 아쉽긴 하지만. 남자끼린 그래도 소주잔을 들고 잔부림(?)을 해봐야 되는건데!

일은 일. 사람은 사람. 그리고 일은 일. 삶은 삶. 어찌되었건간에,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그래도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는것들이 쌓여서 재산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오늘은 왠지 흥겨운 기분. 뭐, 이런 맛이 있어야 일도 하는거제. 자, 오늘도 기운내서 막차시간까지 일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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